스페인 명소순례(1) :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답사지 :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장소 : Madrid, Spain

 일자 : 2010년 3월 24일

 동행 : 한진관광 여행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개요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그림과 조각을 위한 전용 박물관으로 설립되었으며,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총 5,000개 이상의 그림과 2,000개 이상의 판화, 1,000개 이상의 주화와 메달 그리고 2천 개 이상의 장식물과
예술 작품, 700개 이상이 조각품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이라 불리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엘 그레코(El Greco)와 주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 ), 피터 폴 루벤스, 라파엘, 안드레야 만테냐, 보티첼리, 이탈리아의 화가였던 카라바조, 귀도 레니, 알브레이트 뒤러, 렘브란트 등을 비롯한 저명한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답사메모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왕궁에 들린 후 다음 코스로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는 고궁, 성당 등 역사 유적지 방문이 많아서 예술품을 많이 보게 되겠지만
 특히,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과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은 이번 여행에서 특히 기대를 많이한 곳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8000점이 넘는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 (또는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스페인 관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유럽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의 화폭이 현란하게 펼쳐져 있는터라
 그냥 어슬거리며 따라갔다가는, 우리처럼 미술에 식견없는 사람들에게는 뭐가 뭐가뭔지 눈만 휘둥그레 하다가 나오기 십상이다.
 물론 가이드가 알아서 주요 작품 쪽으로 인도하고 친절히 설명도 해 주지만 겨우 몇 시간동안에 이곳을 돌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따라서, 출발하기 전에 꼭 보아야할 작품을 인터넷 등에서 찾아보고 가는 곳이 좋으며,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스페인 화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것이 요령일 수 있겠다.

  


 미술관 주변

  

미술관(우측 건물)으로 들어가는 길  

 

무슨 특별전을 하는 모양이다.

 

입구에 있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동상

 

동상 아래에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었을 모델의 그림인 "옷을 벗은 마하"의 조각이 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이 여기서 사진 한장씩 찍는다. 


 주요 작품

 

 우선, 현대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프라도의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1828)의 작품으로는 
 유화 119점, 판화 488점이 있다.

 

 이 중에 꼭 보아야 할 작품들을 대충 정리해간 터라 가이드 따라 다니면서도 잠시간 시간을 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말로만, 사진으로만 보던 세계적인 명작의 진품을 바로 앞에서 내눈으로 본다는 것은

 미술에 눈이 어두운 사람에게도 꽤 흥분되고 특별한 감동이 밀려 들었다...

 

 이번에 감상하고 온 작품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작품들을 인터넷을 통해 상기해 보았다.
 물론 미술관 내에는 절대 사진촬영 금지이므로 여기 사진들은 해외 사이트에서 퍼서 온 것이다.

 

 (사진 위를 누르면 일부사진은 확대)

 

 

고야, "카를로스4세의 가족 (La Familia de Carlos IV)"

고야는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14세때부터 그림을 공부하여 나중에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가 된다.

위 그림에서는 사치스럽고 그리 능력없던 카를로스 4세를 비꼬기 위해 불룩한 배에 과하게 훈장들을 달게 만들고,
마리아 루이사 왕비도 그저 사치스럽고 탐욕스런 분위기로 그렸는데 (요즘 말로 된장녀 스타일?)
그래도 국왕은 이 그림을 보고 매우 흡족햇다고 한다.

뒤에서 외면하며 이들을 냉소적으로 쳐다보는 화가가 바로 고야 본인이다.

이러한 작가의 사상이나 시대정신이 뭍어 있기에 더 명작이 되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에서 왼쪽중앙 고개돌린 여자는 아직 결혼하기전의 가족 예정자 신분이라 그랬다던가...


고야, 알바공작부인 (The Duchess of Alba, 1795)

고야와 연인관계이었다는 통설이 있는 스페인 명문귀족인 알바 공작부인의 초상

그러나 그저 예술가와 의뢰자의 평범한 관계이었다는 추측도 있다.

 

 

고야, 알바공작부인

반지에 각각 "Alba"와 "Goya"가 적혀있다고 해서 가까이서 보았으나 작아서 확인이 안되었다.

단지 "오직 고야 (solo Goya)"라고 적힌 바닥을 가르킨다고 해서 보니 흐릿하나마 그리 보인다.

 

 

 (사진 위 누르면 큰 사진) 

 고야, 옷을 벗은 마하 (La Maja Vestida)

프라도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그림이다.
일반인들의 적나라한 나체화가 금지되었던 당시의 카톨릭 사회하에서 종교재판에까지 회부된 그림...

현대인에게도 예술적 가치보다도 요염한 관능미에 보다 더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위의 모델이 실제로 누구냐에 대한 이야기로 이 그림이 더 화제의 대상이 된다.
과거에는 알바공작 부인이라는 설이 많았으나,

요즘은 고야가 그저 몰래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라는 설,

모델의 모습이 정숙한 상류층의 여자가 아닌 것 같아보여 몸과 얼굴의 여자가 서로 다르다는 설 등 등
예술성보다 스토리에 더 많은 유명세르 치르고 있는 작품이다.


 

고야, 옷을 입은 마하 (Clothed Maja, 1800-03, oil on canvas) 
위의  그림과 연작으로 이 그림도 스토리가 많다.
고야가 연인인 공작부인의 아름다운 나신을 캔버스에 담고 있을 때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던 알바 공작이 갑자기 아틀리에에 들이닥칠 때를 대비하여
옷을 입은 이 그림을 먼저 그려 두고 있었다는 유머같은 이야기... 

 

 고야, 5월2일 El Dos de_ Mayo de 1808 en Madrid, 1813년
1808년 5월 2일 프랑스 기병대가 민중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마드리드 시내로 들어왔다.
날로 고조되고 있던 민간인 소요는 가두에서 프랑스군과 맞붙어 싸우는 폭동으로 바뀌었지만,
교외에 주둔하고 있던 에스파냐 군대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이 폭동 진압에는 나폴레옹 친위대에 소속된 터키출신 '맘루크'기병대의 활약도 큰몫을 했다.
이 사건이 바로 내전의 도화선이 되고 6년 뒤에 고야의 걸작 전쟁화 1808년 5월 2일과 1808년 5월 3일에 영감을 준다

  

 고야, 몽클로아의 총살 5월 3일, 1814년
나폴레옹 군대가 황량한 몬클로아 언덕에서 저항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왼쪽 저항군의 어두운 얼굴과 모습은 체념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군대의 총과 그 칼날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고 날카롭게만 보인다.
왼쪽 저항군에게 비춘 밝은 빛이 유독 그의 새하얀 웃옷을 비추고 있는데,
 이 셔츠의 순백색은 순결과 결백을 상징한한다.

 


  

고야 작품 다음으로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작품은 벨라스케스일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가 되어 펠리페 4세를 비롯한 왕족들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특히, 대표작인 시녀들 (Las Meninas)은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의 토론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브레다 성의 항복 (La Rendicion de Breda o las Lanzas)도 유명한 작품이다.

 

 벨라스케스( Velazquez), 직녀(실짜는 여인들)The Spinners (The Fable of Arachne), 1657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제로 한 것으로

오른쪽 흰 블라우스 입은 여인이 아테네에 도전한 직조기술이 뛰어난 아르크네이고, 왼쪽 노파가 변신한 아테네.

뒷쪽의 다른 무대에서도 아테네와 나중에 거미로 변한 아르크네가 묘사되었다는데 잘 모르겠고.

또한 이 그림은 당시 포르투갈과 까딸루냐가 에스파냐에 반기들 든 상황을 은유한다는 이야기 등

꽤 내용이 어려운 작품이다.

 

벨라스케스는 후세의 많은 화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평생의 마음속의 스승으로 삼았으며, 클림트는 세상에 화가는 나와 벨라스케스밖에 없다고 존경을 표시했다.

같은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도 벨라스케스를 너무 존경하여 아래의 <시녀들>의 주제만 가지고 수많은 탐구와
연관 작품을 그린다.

 

 (그림 위 누르면 대형 사진)

벨라스케스 (Velazquez), 시녀들 (Las Meninas)

 이 그림은 벨라스케의 대표작으로 너무 유명하여, 인터넷을 찾아보면 많은 설명이 있다.
빛과 공간의 처리, 인물의 위치와 구성 등 회화사에 큰 영향을 미친 그림이라고 한다.
화풍이나 미술적 특징은 생략하고 화면속의 인물을 보면

중앙에 왕위계승자인 마르가리타 공주, 왼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 본인,

시녀 둘이 공주 양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고

화면 오른쪽에는 남, 여 난쟁이가 있어 공주와 비교된다.

거울속에는 국왕부부가 비춰지고 있다.

 

벨라스케스 (Velazquez),  브레다 성의 항복(La Rendicion de Breda o las Lanzas)

1625년 네델란드의 브레다 성이 스페인에 함락되는 장면
승자인 스페인의 입장에서 패자를 관용해 주는 모습이지만

패한 군대의 남루하고 비굴해 보이는 모습에 비해

스페인 군대는 화려하고 힘차보인다 (말까지도)

  


 엘 그레코(El Greco,1541년? - 1614년)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스페인 화가로. "엘 그레코"는 에스파냐로 올 때 "그리스인"과 같다고 해서
 스페인어로 "그리스인"이라는 말인 그레코(greco)라는 말을 불인데서 유래되었다.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 중의 한 사람으로 프라도 미술관에도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톨레도 산 토메 교회에 걸려 있다. (톨레도 편에서 소개) 

 

 

엘 그레코,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El Caballero de la Mamo en el Pecho)

 엘 그레코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수작 중의 하나이다.
깊이있는 눈매가  살아서 쳐다보는 것 같다.

세째 네째 손가락을 붙여 그리는 것은 무슨 종교적 의미기 있다고 한다.
(예수님 그림에도 나오고 아래의 모랄레스의 마리아도 그러하다) 

 


엘 크레코, 성 삼위일체
(Trinidad) 
예수와 그를 안고 있는 성부,
그리고 비둘기로 묘사된 성령 등 삼위일체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주요 작품 들

 

 안젤리코, 수태고지 (Anunciacion)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성령으로 인해 수태하게 될 것을 전하는 내용의 그림.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가 있고, 왼쪽에는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를 그려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 주며,

기둥 위의 하느님도 수태고지의 장면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귀도 레니(Guido REN), 아틀란타와 히포메네스(Atalanta and Hippomenes, 1612

황금사과를 줍느라 경기에서 진 아틀란타. 
히포메네스는 그렇게 해서 사랑을 얻는다. 
 

 

루이스 데 모랄레스(Luis de Marales), 성모자 (Virgin con el Nino)

  

무리요, Virgin and Child with a Rosary

무리요는 17세기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를 누렸던 바로크 양식의 종교화가로서
 대상을 이상화하고 때로는 정확하게 묘사하는 양식으로 유명하다. 
세비야 및 안달루시아 지방에 그의 작품이 많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4연작중 제1편)

- 사랑을 거절한 여인을 쫓아와 죽이는 기사
짝사랑하다가 자살한 기사와 사랑을 거절한 여인의 끝없이 죽이고 도망가는 숙명을 이용하여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는 스토리를 4장으로 그린 작품인데 내용이 섬뜩하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4연작중 제2편)

- 여인을 죽이고 내장을 꺼내 개에게 던져주는 기사
뒤에서는 또 다시 살아난 여인을 쫓고 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4연작중 제3편)

- 나스타조가 사랑하는 여인을 초청한 파티에 기사와 쫓기는 여인을 나타나게 한다.

 

제4편은 프라도 미술관에 없고 다른 곳에 개인 소장품으로 있다고 한다.

 4편에서는 겁먹은 여인이 나스타조에게 결혼을 승락하게 된다.

 

이 그림은 미술관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가이드가 안내하지 않더라도 잠시만에 보고 올수 있다.  

 


  

스페인 명소 순례 :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답사지 :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장소 :  Barcelona, Spain

 일자 : 2010년 3월 27일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개요

 

피카소 미술관은 바르셀로나 시의 몬트카다 거리에 있다.
몬트카다 거리는 중세 때 지중해로 상업을 확장해갔던 부상(富商)과 귀족들이 살았던 고풍스러운 거리로 유적으로서 보존해야 할 건물이 많을 뿐만 아니라 피카소가 미술학교를 다니며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1970년 2월 피카소는 이 미술관에 유화·파스텔화·소묘·판화를 포함한 자신의 초기 작품 900여 점을 기증했다.

그에 따라 전시관을 확장할 필요가 생기자, 바론 드 카스텔궁이 미술관의 별관으로 병합되었다.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소년·청년시대의 작품을 중심으로, 청색시대·입체파시대의 유화를 비롯하여 《과학과 자비》(1897),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시녀들)》(1957)를 개작(改作)한 작품 등 2,000점 이상의 작품이 수장·전시되어 있다.

작가의 생전에 개관한 미술관으로서 20세기 거장 피카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으로 꼽힌다.


답사메모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을 거쳐 바르셀로나로 날아 왔다.

한진관광의 여행은 항공기 이동이 많아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수 있어 좋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최대의 산업도시이면서 동시에 까딸루냐지방의 옛 아라곤 왕국의 수도로서 역사의 도시이며,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물과 피카소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예술의 도시이다.

 

피카소 미술관은 파리에 있는 것이 크기는 하나, 피카소를 그림에 입문하게 한 역사성이 있는 동네에 피카소 본인이 작품을 직접 기증하여 개관한
피카소 미술관도 바르셀로나를 찾을 때는 꼭 들릴만 하다.


 미술관 주변

 

 이곳 피카소 미술관은 다른 유명 미술관과 사뭇 다르다.
 우선,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아니고 좁은 골목길 안의 18세기 고택 몇 채를 사서 리모델링한 곳이다.
 

 

피카소가 살던 시절의 모습과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한 동네의 모습

좁은 골목길에 건물 베란다에는 빨랫감이 널려 있다.

이 골목을 따라가다가 피카소 미술관을 만났다. 

 

흐름한 건물 벽면에도 예사롭지 않은 그림이 붙어 었다.

 

 

피카소 미술관 입구

 

미술관 벽에 걸린 피카소의 노년 모습  

 


주요 작품

 

1881년 스페인의 남부 말라가에서 태어난 파블로 피카소(Pablo Luiz Picasso)는 미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4살에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여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19세 때부터는 그림 공부를 위해 마드리드, 파리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23세 때인 1904년부터는 파리에서 정착해 살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였으며, 13살 때에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이 미술관에는 그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의 스케치나 낙서, 습작, 밑그림을 다수 소장하고 있으므로
대가 피카소 이전의 피카소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아래에는 이번 여행에서 유심히 보고 왔던 작품 중에서 
피카소가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보여주었던 작품인 15세 때 그린 "첫 영성체"와 16세 때 그린  "과학과 자비"
그리고,  이후에 그린 "시녀들" 연작 등 주요 작품 몇 점을 상기해 본다.

이 그림들은 해외 공개 사이트에서 퍼온 것이다.

 

  

 과학과 자비 (Science and charity), 1897, 16세때 전국미술전에 출품

이 그림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마드리드로 떠난다.
침상 옆의 의사는 아버지 돈 호세이고,
원근법을 잘 응용하여 왼쪽에서 볼 때와 오른쪽에서 볼 때의  침상 길이가 차이가 크다.

  

 자회상, 1896

 

첫 영성체, 1896, 15세때작품

 15세의 작품이라고 볼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하다.

시녀들(las meninas), 1957

피카소 후기의 작품으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50점의 연작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 회화의 신학’이라고 까지 불리며 
1957년에 완성한 이들 수십 점의 시녀들 연작에서 피카소는 다양한 방식의 입체파적 접근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가 피카소도 끊임없이 분석하고 탐구함으로서 비로소 자기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녀들(las meninas)연작 중의 일부

 

비둘기(Pigeons) 연작 (1957)

비둘기 연작도 모두 8점으로 그려졌으며
사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대상의 형상화를 추구했던 피카소의 끈질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Quatre Gats menu (1899) 

까탈로냐 광장 주변에 있는 카페 꽈뜨레 갓츠.

고양이 네 마리라는 뜻의 이 카페는 피카소가 단골로 드나들었던 곳이고
이 카페에서 여러 문인, 화가, 지식인들을 만나며 최초 작품 전시회도 갖게 된다.
피카소는 단골인 이 카페에 메뉴판의 표지를 그려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이 카페에는 피카소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번 여행에서 답사함. 바르셀로나 편에서 소개)

 

 

Seated man (1969)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아쉽게 이번에 들르지 못한 곳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겨우 10분 거리에 있는데...

 페키지 여행이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가장 대표작인 게르니카로 유명하다.

 사진으로나마 잠시 감상해 본다. 
 
    

 

 

게르니카(1937), 크기 349x775 cm

 

게르니카는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비보에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작품은 파리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그러나 스페인이 프랑코 체제가 되자, 피카소는 그림반입을 거부하고, 1939년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 후
반드시 프라도에 전시할 것 등의 조건으로 이 작품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형식으로 빌려주었다.
이후 프랑코 정권 이후 1981년에야 스페인에 반환되어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소피아 미술관으로 옮겼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의 테마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 (인터넷 사전에서)

 

- Spanish Rose -

Ed Ca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