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째 2017년 8월 18 금요일

잠을 제대로 못잤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 8시를 넘기고 일어났다. 호스텔을 나섰다. 부를라다는 작은 외곽 도시다. 거리는 일상을 시작하는 발걸음들로 북적인다.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자 잠이 부족했지만 기분은 상쾌해졌다. 걷는다는 것은 기쁨이요 은혜다. 가자 산띠아고를 향해서. 까미노는 주택가 안길 도로를 따라 빰쁠로나로 이어지고 있다. 태극 마크를 보고 한국인 젊은이가 인사를 건넨다. 외 국인 순례자와 정답게 말을 주고받으며 앞서 나간다. 대화를 참 맛있게도 한다. 빰쁠로나로 진입하는 운치 있는 다리가 거울처럼 잔잔한 강물 위에 얹혀져 있다.

빰쁠로나는 2000년 역사를 지닌 궁전, 성당과 같은 건축물이 즐비하며, 갖가지 전설과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도시이 다. 중세에는 로마 제국의 침략 루트들이 만나는 전략적인 도시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요리로도 유명한 이 도시는 일 년 내내 중요한 문화행사가 많이 열린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in가 매년 7월 6 일부터 14일까지 열리며, 대표적으로 엔시에로 Encierros(소몰이) 행사를 꼽을 수 있다. 빰쁠로나에서 세요를 받을 곳은 3곳이다. 먼저 나바라대학교를 검색하니 까미노와 방향이 다른 루트를 보여준다. 옳거니 잠시 까미노를 벗어나 길찾기를 해보자. 순례자들의 흐름을 등지고 구글지도를 실행한 채 걸었다. 화살표 내비게이션에 익숙 하지가 않아 한동안 왔다리 갔다리를 여러 번 반복했다. 똑 같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다시 되돌아오고 똑같은 원형교차 로Roundabout를 빙글빙글 반복해서 돌았다. 몇 차례 발품을 팔고서야 도로 표시 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도로의 표기 방법이 지도만 있으면 혼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바라대학교를 목적지로 하여 맵을 실행시키고 내비게이션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나바라대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까미노상에 위치해 있다. 한참 떠돌다 원위치되었다.

캠퍼스 모습이 2013년 이른 아침에 통과할 때 그 모습이다. 본관 입구 벽면에 명함 크기의 자그마한 까미노싸인이 부착되어 있다. 현관에서 세요를 받았다. 교직원이 빰쁠로나 세요란에 다른 알베르게 스탬프가 찍힌 것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다른 란에다 시원스럽게 찍어준다. 세장피드포르에서 방심하여 나바라대학에서 받을 란에다 세요를 찍어 달라고 가리켰었다. 마이 미스테이크다. 대학교 캠퍼스를 둘러보며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시카고플랜을 생각했다. 시카고플랜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식 의 독서법을 따른 것으로 철학 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설립 초기에는 사실 이름 없는 사립대학교였으나 시카고플랜을 통해 8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시킨 명문으로 성장하게 된다. 각 국의 각 대학교들이 명문으로 거듭 나기 위해 어떤 학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벤치에 앉아 오가는 학생들의 걸음걸이를 보며 오전에 산 바게트를 뜯어먹었다.

나머지 2곳의 세요 장소는 까미노에서 1시간여 벗어나 있었다. 강변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산책하던 한 마담이 까미노가 이 방향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현지인들은 무관심 한 듯해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순례자에게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는 듯하다. 나바라 부속 대학 캠퍼스에서 세요를 받은 후 다시 유엔이디UNED를 들려 세요를 받았다. 까미노에 들어서기 위해 오던 길로 되돌아왔다. 강변길은 하늘을 찌를 듯한 가로수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빰쁠로나 관내에서 오후 시간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도심의 도로 표지를 익히는 등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자꾸 눈이 감긴다. 걸어가며 가면(假眠) 상태가 된다. 등산을 자주하다 보면 자기에게 맞는 몇 가지 보행 기법을 익히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걸어가면서 쉬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경우 오른쪽 발을 딛은 상태에서 왼발을 떼었다 내딛는 순간까지 오른발이 휴식을 취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보행 기법을 익히게 되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도 주행을 해 낼 수 있다. 잔디밭이 잘 관리되고 있다. 잔디 깎는 기계차가 푸른 잔디 위를 부지런히 누비고 있다. 이런 일꾼들 덕분에 도시 미관이 정갈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이 곳은 걸어가는 길목에 멈추어 서면 그 곳이 바로 푸른 잔디 공원이다. 철로 길 위 고가도로를 지나 까미노는 이어진다. 오늘 일정은 시수르 메노르에서 마감하자. 빰쁠로나가 저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 입구 첫 알베르게에 체크인하였다. 주인 마담의 순례자 차림의 전신 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다. 침대를 배정받고 더운 물로 샤워를 한 후 한숨 잤다. 마을 슈퍼에서 요리 거리와 과일을 샀다. 알베르게에서 요리하여 맛있게 먹었다. 순례자 한 분이 큰 소리로 알려준다. 앞마당에서 불꽃 시연을 할테니 구경하란다. 60세가 넘어 보이는 남자 순례자가 입으로 기름을 뿜어서 나무막대기에 불기둥을 만들어 낸다.

까미노상에서는 이채로운 순례자들의 모습을 많이 접하게 된다. 마법사 망토 차림에 요술지팡이 같은 주렁을 짚으며 맨발로 걸어가는 순례자, 오늘 이처럼 묘기를 부리는 순례자 등이다. 순례자 차림도 다양하다. 배낭을 멘 쌍 스틱 차림이 보통의 순례자 차림이다. 말을 타고 간다. MTB를 타고 간다. 망아지에 등짐을 지우고 간다. 애견에 등짐을 지우고 간다. 두 바퀴 수레에 어깨 끈을 매달아 끌고 간다. 세 바퀴 수레를 밀고 간다. 배낭을 차편으로 보내고 비무장으로도 간다. 머리를 완전 삭발하고 걷는 남녀 순례자들도 목격된다. 삭발한 대머리에 검은색 시보리 바지 차림으로 나홀로 걸어가는 젊은 여인을 바라보노라면 가끔은 경외로운 느낌을 받곤 하였다. 나도 한번 보름간 수염을 깎지 않았 다. 수염 기른 모습이 수도사들처럼 좀 멋져 보이려나 했는 데 영 그렇지가 않았다. 샤워를 하면서 항상 면도를 했다.

간절히 소망합니다.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대학교에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어느 나라는 1개 대학교에서 8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1명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밖에 나오지 아니 했습니다. 한편 일본이 25 명으로 국가 순위 5위이고, 중국이 12명으로 18위입니다. 이들 국가보다 공부를 등한히 한 것인가요. 가르치기를 소홀히 한 것인가요. 아니면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기를 게을 리 한 것인가요. 참으로 열불난다. 이 나라 이 곳 업소의 TV 모니터가 대부분 한국 제품이더군요. 일본제 모니터가 널려 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한국 제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응용과학도 다 순수과학의 바탕 위에서 발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 한국도 특히 과학 부문에서 수상자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부디 우리나라 머리 위에도 은총 내려 주시옵소 서. 오늘 걸은 거리 14.1km 걸은 시간 13시간 1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