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째 2017년 8월 25 금요일

8시가 임박해서 알베르게를 나섰다. 미화원이 청소하며 바빠서 그런지, 늦게 나서는 순례자들 때문에 청소가 늦어져 짜증이 나서 그런지 작별 인사에 대꾸가 없고 어째 퉁명스러워 보인다. 이곳 지명인 벨로라도의 어원이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하던데 이 양반의 오늘 모습은 아름답지가 않아 보인다. 나도 까미노상에서 순례자들이 먼저 인사를 건넬 때 무심결에 대꾸를 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 이 기분이 그분들의 기분이었으리라.

마을을 벗어나자 까미노는 N-120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도로상에는 오늘도 차량들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소형차나 오토바이가 분노의 질주를 하듯 대형 물류 차량을 앞지르기하는 광경을 볼 때면 모골이 다 오싹해진다. 영화배우 폴 워커가 생각난다. 그는 친구가 운전하는 스포츠 카에 탔다가 전복되어 불타는 바람에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친구와 함께 불타 죽었다. 안전운전하자. 초보운전하듯이. 참고로 유투브에 올려진 그의 추모곡 'See You Again' 조회수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수억회 앞서버렸다. 싸이 곡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유투브 조회수가 억회에 육박했었는데 이때는 유투브가 억회 이상의 조회를 인식하지 못했었다. 싸이의 곡으로 인해 부랴부랴 프로그램을 손보았는데 뒤늦게 올려진 추모 곡이 어느 순간 ‘강남스타일’을 추월해 버린 것이다.

까미노는 기본적으로 차도와 나란히 가고 있다. 육안상 한 참 떨어져 가다가도 다시 나란히 만난다. 차도변에서 까미노싸인을 놓치는 경우 그냥 차도가로 걸어가면 까미노싸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순례 중에 교통사고를 목격하는 불상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시내에서도 보면 운전자들의 교통질서 준수 수준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순례자가 길을 건너려 할 때면 대부분 차를 멈추고 먼저 건너가라고 신호를 준다. 마을 도로나 도심지 번화가 도로 등에서도 클락션소리를 좀체 듣지 못한 것 같다. 허벌나게 눌러대는 우리네와는 다른 것 같다. 또한 원형교차로Roundabout는 보행자들로 하여금 교차로에서 약간 비켜서 있기에 좀더 걷게 하는 불편을 주는 듯하지만 구조적으로 건널목 정지선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여 사고 예방 효과가 더 있는 듯하다.

또산또스 마을을 향하는 까미노는 해바라기밭을 지난다. 흑진주마냥 알알이 영글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밀밭과 해바라기밭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대평원속을 뚫고 까미노는 이어지고 있다. 잠시 이 광활한 경작지를 바라보며 우직하게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부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전기 및 전화 혜택을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받은 것으로 기억되는 필자의 고향에도 이들처럼 우직하게 고향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형제들이 있다. 고향이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져가는 세태를 바라보며 참으로 이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존경을 표할 뿐이다.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 마을의 오까산은 중세시대에는 순례자들의 돈을 빼앗고 목숨을 노리는 산적들이 출몰하고 늑대들이 들끓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은 나무 벤치를 갖춘 평온한 까미노로 변하여 순례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명상의 기운을 내뿜 어주고 있다.

산적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노인이 길을 가다 산적을 만나 말과 지갑 등을 다 빼앗겼다. 이것이 다냐. 강도들은 칼을 들이대며 물었다. 그렇다. 이것이 다다. 산적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작은 봇짐만 달랑 메고 다시 길을 떠 났다. 그런데 그 봇짐 속에 딱딱한 물건이 느껴졌다. 따로 넣어둔 금덩이였다. 노인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 산적들을 다시 만나, 나도 모르게 이것을 빠트리고 주지 못했다, 이것도 마저 가지라며 금덩이를 내밀었다. 산적들은 이 노인의 정직함에 감동을 받아 빼앗았던 물건을 모두 다 돌려주 었다고 한다. 이 노인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다. 정직이 산적을 이긴 것이다. 해발 750m인 아름다운 마을 벨로라도에서 시작한 까미노는 해발 1157m 오까산까지 16km 거리에 걸쳐 서서히 오르고 있다. 까미노는 자동차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다. 오까산 수목길 까미 노상에 매대가 보이고 승용차가 시동이 걸린 채 주차되어 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에서 칼을 입에 물고 있는 여배우 크리스티안 세라토스를 연상시키는 글래머 여인이 가죽 자켓, 핫바지, 롱부츠에 야구 모자를 쓰고 가죽 장갑을 낀 손을 허리춤에 걸친 채 다가오는 순례자를 바라보고 서 있다. 되게 멋지다. 중세 여자 산적 옷차림이 아마 저러지 않았을까. 여인이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다행히 여자 산적은 아닌 것 같다. 매대에서 순례자들에게 먹을 것을 팔 다가 시간이 돼서 철수하려던 참인 것 같다. 승용차에 다시 올라 몇 바퀴 굴러가다 차를 세우고 나를 불러 세운다. 사진을 찍겠단다. 거절했다가 나보다 덩치가 더 큰 그녀에게 한 대 얻어 맞을 까봐 웃으면서 브이V 포즈를 취해 주었다.

페드라 하 언덕Monte de la Pedraja에서 까미노는 다시 하 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언덕에는 동족상잔의 스페인내전을 상기시키는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다. 300여 명이 총에 맞아 피강물이 되도록 숨졌다는 이곳이 격전의 현장이 라도 되는 것인가. 까미노는 다시 스키장의 활강 코스를 닮은 내리막길로 한참 내려온다. 내리막에서는 발가락 물집 통증이 더 느껴진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성인 야고보는 목이 잘리어 순교를 했는데 겨우 발가락 물집 때문에 신음 따위를 내서야 되겠는가.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걷자. 오까에서 산후안 데오르떼가 마을까지는 12km의 거리이며 중간에는 마을이 없고 음식을 취할 곳도 없다.

오르떼가마을 초입에서 저녁거리를 구입한 후 일몰 시간이 좀 남아 있어 계속 아헤스 마을로 향했다. 오르떼가 마을 말미에 있는 까미노 이정표에 부르고스까지 이르는 두개의 루트가 안내되어 있다. 전통적 루트를 선택하였다. 아헤스 마을 알베르게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오리손에서 만찬하며 안면을 익힌 독일인 순례팀 3인조가 카페의자에서 드링킹을 즐기다 나를 보자 두손 들어 환호성을 지른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이들이 미소지으며 이 광경을 바라본다. 한류스타들이 외국에 나가서 받는 대접들이 이런 모습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여인은 내게 다가와 손바닥으로 어깨를 쓰다듬어 내리며 수고했다고 치하한다. 괜히 어깨가 으쓱거려진다.

처음 들린 알베르게가 풀이라 옆집 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을 하였는데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침상의 위층을 배정받았다. 아래층을 배정받아 휴식 중이던 젊은 여인이 자기 침상과 바꾸자고 한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 식당의 순례자 메뉴Pilgrim Menu를 주문하였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이 주방장인데 싹싹하고 음식 솜씨도 뛰어나다. 본식이 빠에야라서 오랜만에 쌀맛을 보았다. 남의 잘못은 눈에 잘 보입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은 잘 안보입니다. 남에게 충고하기는 좋아 하면서 자기는 남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 못된 이기적 심성을 깨우쳐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 걸은 거리 28.6km 걸은 시간 11시간 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