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째 2017년 8월 15일 화요일

한밤중에 잠을 깨다. 날씨 앱을 살피니 날씨가 좋단다. 오 늘은 오리손까지만 걷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 다.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 다. 천천히 그리고 끈기 있게 걷자(Slow and Steady). 순례 를 마칠 때까지 가져야 할 초심으로 삼고자 한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잠이 더 들지 않아 알베르게에서 빠져나와 새벽 녘의 마을 모습을 둘러보았다. 

음식류 및 신문 배달 차량들이 좁고 비탈진 마을 골목길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지만 견고한 성 벽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스마트폰 불빛을 비치 며 가파른 성곽 계단을 올랐다.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높은 성곽길이 길게 늘어져 있다. 길폭이 교행하기 힘들 정도로 비좁다. 전쟁 원혼들의 아우성이 금시라도 들려올 듯하다.

친절한 마담이 차려준 아침을 맛있게 먹고 순례자 사무실 앞으로 이동하였다. 이제 출발이다. GPS앱를 작동시켰다. 산띠아고 대성당 대광장에 도착하는 소요 일정을 34일간 으로 잡았다. 2013년에 29일 걸렸고 이번에도 바로 이 까 미노를 걸으면서 5개 도시의 대학교 및 유엔이디UNED 등 12개 소를 병행 방문할 계획이다. 편편한 돌로 촘촘하게 다져놓은 마을 안길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순례길을 걸어 나간다. 이 걸음들이 모여 성인 산띠아고에게 다가갈 것이 다. 걷는 동안 까미노 싸인을 놓치면 잠시 동안 어디로 가 야할지 당황하거나 몇 시간 동안 알바(길을 잃고 헤매는 일 을 뜻하는 등산 은어)를 하는 수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음 에 주의해야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들에 취 해서 또는 지친 심신으로 인해 어리버리하게 걷다가 자칫 까미노 싸인을 놓치는 수가 있으니 유념하자.

까미노는 완만하게 때로는 급하게 오르고 있다. 이제 까미 노는 이곳저곳 알베르게에서 빠져나온 순례자들의 발걸음 들로 넘실대고 있다. 노인 부부, 젊은 커플, 나홀로 여인 등 이 한데 어울려 이곳 가풀막을 오르고 있다. 자기 몸집의 두 배 정도되는 배낭을 맨 사람들도 있고, 손바닥 크기의 행낭을 매고 단촐하게 지나는 여인들 무리도 있다. 바이크 Bike 순례자들도 이에 질세라 페달을 부지런히 저으며 엉 금엉금 오르고 있다.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오 르고 내려온다. 택시들도 오간다. 순례길이 한적하지가 않 다. 사람과 차량들로 붐빈다.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 성인을 참배하러 순례에 나섰는데 까미노가 붐빈다고 탓을 해서 쓰겠는가.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순례 열풍을 믿음의 열 풍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알베르게에서부터 포장된 도로를 쭉 걸어왔다. 아마 피레네 산기슭까지는 이처럼 대부분 포 장된 도로이렸다. 걷다가 느낌을 받으면 까미노 옆으로 비 켜 서서 글을 쓰느라 걷는 시간이 지체된다. 오전 2회, 오 후1회 까미노 위에서 현장 상황을 즉시 기록을 하려고 하 는데 상황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까미노 옆에 어여쁜 야생화가 피어 있다. 고양이가 졸면서 풀 위에 앉아 있다. 울타리 곁 조랑말 가족에게 다가가자 아기 조랑말이 뭐라 고 소리치며 뒤로 물러선다. 방해하지 말고 당신 갈 길 가 라는 듯하다. 오냐 알았다, 아가야. 사시사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가면서 아는 척 해대니 이들도 얼마 나 피곤하겠는가.

2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다. 풀이 덮인 비포장 돌길 구간을 지난다. 구름이 걷히고 따가운 햇볕이 비치기 시작한다. 오 리손 다음 마을인 론세스바예스까지 그대로 계속 주파를 해버릴 것인지 잠시 갈등이 생긴다. 서둘지 말자. 서둔다 고 안될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길은 계속 가파르게 오르 고 있다. 경사진 초지 밭에서 양 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무리 속에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린다. 리더격이나 중심적 인 양의 목에 매단 것 같다. 방목중 무리에서 이탈되는 것 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 같다. 먼치로 오리손 알베르게가 어 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저기서 오늘 하룻밤 묵으려 한다. 한국은 오늘 광복절이다. 2013년 그때 그 주인 마담 이 반갑게 맞이한다. 손님들의 주문 때문에 정신이 없다.

먼저 세요를 받고 오늘밤 숙박, 저녁식사 및 내일 아침 스 낵, 점심 샌드위치를 주문 예약하였다. 40유로를 지불하였 다. 오늘 점심으로는 소파Sopa(스프), 또르띠야Tortilla와 과일 샐러드를 먹었다. 점심값으로 14유로를 지불하였다. 이집 소파를 2013년에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했는데 오늘 그 맛을 다시 본다. 2시간 정도 기다려 숙소 배정을 받았 다. 어제 세장피드포르의 오스피탈레노(자원 봉사자)에게 부탁해 전화로 예약을 했건만 이보다 앞선 예약들이 많았 던 모양이다. 본채가 풀이라 도로 건너편 별채의 베드를 배 정받았다. 철제 2단 침대 5개가 놓여 있다. 샤워실 2개, 변 기 1개다. 남녀공용이다. 침실바닥이 결로 현상으로 물기 가 흠뻑 배여 있다. 난방을 좀 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곳 오리손 알베르게는 고지대에 나홀로 위치하다 보니 물도 귀하고 와이파이도 안된다. 샤워도 5분 동안 쓸 수 있 는 코인이 지급된다. 아이티IT 기기를 이용해 순례 일기 및 지피에스트립GPS Trip을 매일 기록하고자 했던 당초 계획 을 불가피하게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의 인터넷 속도에 비해 너무 느리고 데이터 전송중 먹통이 된다. 용량 을 줄여서 보내도 부지하세월이다. 2시간 정도 낮잠을 잤 다. 별채 숙소에 세 사람이 더 입실하였다. 베드수가 10개 인데 총 8명이 되었다. 나홀로 3인, 가족팀 3인, 친구팀 2 인이다. 밖으로 나가보니 비가 추적대고 물안개로 인해 칠흑같이 어두워 한치 앞이 안 보인다. 오늘 밤 이곳 알베르 게에서 묵는 순례자들 모두가 저녁 만찬을 먹기 위해 식당 에 다함께 모였다. 총 43명이다. 어린아이들도 3명이 함께 하고 있다. 엄마아빠를 따라 이처럼 순례길에 나서다니 참 으로 장하다. 전식 본식 후식으로 이어지는 맛있는 성찬을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활력 넘치는 주인마담이 참석자 모 두에게 자기소개와 순례를 나서는 소감을 말하라고 안내 한다. 이 시간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나홀로 또는 몇 명으 로 구성되어 순례길에 나선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이 시간 을 통해 서로를 좀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는 언어는 다르지만 순례 일정 초반에는 까미노 위에서 또는 알베르 게에서 마주치면 옛 친구 만나듯 서로 인사하고 격려를 주 고받게 된다. 절뚝거리며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경우,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휴식 중이다가도 서슴없이 다가와 어깨 를 쓰다듬고 엄지손가락을 치겨세우며 격려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오늘 이곳에 동양인은 나 혼자뿐이다.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한국어 등으로 소개가 이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10시를 넘겨 별채 숙소로 오니 비어 있 던 베드 2개가 늦게 도착한 2명의 젊은 여인들에게 배당되 어 10인용 침실이 다 찼다. 사용하지 않고 갖고 있던 샤워 코인을 한 여인에게 사용하라고 건네 주었다. 오늘 걸은 거 리 6.6km 걸은 시간 3시간 2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