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기행)

   “ 추억을 밟아걷는 가을의 산야 ”

                                       소설가 : 김 용 필

   2009년 9월 26일, 가림 등산 여행클럽을 따라 고등학교 동창 친우 4명이 지리산 둘레길 트래킹에 나섰다. 지리 산역에 70킬로미터를 빙 도는 둘레길 을 만들고 있는데 현재 5구간이 개통되어 폭발적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1.2구간은 꽃들의 세상이라 봄 트레킹에 적합하고 3.4구간은 황금빛 들녘을 끼고 도는 가을 나들이 코스이며 5구간은 늦가을부터 겨울로 가는 코스란다.
  오늘 3구간 트레킹은 황금들판을 가로질러 비탈길을 따라 오곡백화의 풍치를 만끽하는 여정이었다. 포근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익어가는 풍성한 과일과 곡식을 바라보며 그리웠던 사람과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 걷는 지리산 둘레길 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는 것은, 한없는 행복 이러라. 오르락내리락 산자락 둘레 길 풀숲을 내딛는 발길 하나하나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고 옛 정취에 취하는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둘레길이란 고산비탈에 사는 민초들이 높은 산을 넘지 않고 산자락 비탈을 따라 이동하는 생활로인 것이다. 논두렁길, 숲길, 고갯길, 마을길, 그래서 그 길을 따라가면 인간의 삶과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다. 숨 가쁜 도시 사람들에게 자유와 여유를 느끼며 추억의 길을 따라 인간의 냄새를 느껴보는 적절한 공간이란 점에서 둘레길 트레킹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 유익한 것 같다.
  인월 장항에서 매동을 시작하여 중황리 쉼터와 주막을 기웃거리며 계단식 논두렁 다랭이 들녘을 지나 상황마을, 등구재 청원마을, 마천의 금계에 이루는 전북과 경남을 넘나드는 12킬로미터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코스였다.





  아침 7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12시에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황토도자기 전시관에 마련된 황토 식당에서 토속 산채 부페식으로 식사를 하였다.  옹기그릇에 투박한 된장국을 놓고 여러 가지 산채를 골고루 비벼먹는 맛이란 맛 고장 남원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값은 5,000원, 맛은 두 배, 식사를 마치고 시간나면 도자기 박물관을 둘러보면 더 좋다.  
   식사를 마치고 계곡수를 따라 깊이 들어가면  인월이 나온다. 이곳에서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는 코스와 좌편으로 바로 오르는 코스가 있다. 우린 좌편 언덕코스를 택했다.
   ‘ 오감을 즐기는 트레킹을 작심한다.’
  오감, 시각, 미각, 후각, 촉각, 청각, 즉 가을 빛, 가을 맛, 가을 냄새, 가을느낌, 가을의 소리, 생각만 해도 풍요롭다. 이 맛이 트레킹의 참맛이 아닐까........

1. 감나무 밭에 홍시가,....... 고사리에 산나물이 무성하고.......
   인월에 내리니 산자락에 둘러싸인 들녘이 너무 아름답다. 가을 빛 가을 산야다. 코스모스가 만발한 길에 주인 없는 감나무 밭이 즐비하다. 감나무 밭 사이사이로 패버린 고사리 잎이 햇빛에 번쩍거린다. 누군가가 저게 당근 밭이지 라고 말한다. 고사리 집단경작지였다. 고사리는 3모작이다. 이른 봄에 나물을 꺾고 다시 2차 연한 고사리를 수확한 후 3차는 뿌리 번식을 위해 내버려 두면 웃자라 고사리 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마치 당근 밭 같다. 진 푸른 고사리 밭이 산비탈로 이어진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고사리 밭 사이로 늘어진 감나무에 감이 발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 진분홍 빛깔의 홍시,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린 아스라함, 잠시 가지를 흔들어 본다. 떨어지면 흙이 될 홍시다. 조심스럽게 받아 나누어 먹는다. 바로 이 맛이다. 홍시 맛이다. 몇 년 만에 맛본 홍시 맛인가, 어린 날 감나무에 올라 홍시를 따던 추억이 일깨운다. 우린 이런 저런 살아온 이야길 나누며 산자락과 들판이 맞닿은 비탈진 행로를 따라 열심히 걸고 있었다. 이정표는 푯말(붉은색 방향표)이 잘되어 있어서 길을 묻지 않고도 찾아갈 수 있다. 앞뒤로 길나들이 관광객이 많다. 이 길은 전에는 민초들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드나들던 길 행로인데 지금은 사라진 길인데 그 길을 다시 찾아 가는 것이다.




2. 쉼터 주막에서 동동주, 막걸리를 마시니 옛날이 그립도다.
  행로엔 간이 주막들이 10여 군데 있다. 촌로들이 주막마다 색다른 음료를 준비하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산머루, 동동주, 산초막걸리, 도토리 묵, 파전, 나름대로 자기 맛을 지닌 먹거리들이었다. 동동주 한 병에 6000원,......군데군데 주막이 있어서 먹을거릴 준비하지 않아도 즐거운 행보를 할 수 있고 초보자들도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3. 다랭이 논엔 황금알이 주렁주렁, 부자가 따로 없네.
  노란들판이 산자락 끝에서 층층이 내려 퍼진다. 산비탈을 다듬어 돌담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메워 만든 다랭이논이다. 중국의 광시성에 가면 세계적인 다랭이 논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리산 다랭이 논은 그곳에 못지않은 풍경을 자아낸다. 어쩌면 병충해 하나 없이 잘 익었을까. 진노랑 벼이삭 알골이 탐스럽고 풍요롭다. 올 농사는 대풍인 것 같다. 친구가 벼이삭의 수를 세어본다. 150개 정도, 원래 천수답 논엔 벼이삭이 120여개 달리는 것에 비해 올해는 많이 달려 대풍이라고 말하고 박정희 대통령 때 곡알을 세던 농촌 통계를 회상시켜준다.
  온 들녘이 노랑천지다. 깨끗한 벼이삭을 바라보며 친환경 쌀 맛이 그리워진다.
다랑이 논은 천수답 돌계단 층이기에 아무리 물을 넣어도 금방 새어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산에서 흐르는 생수는 차가워서 그대로 댈 수가 없다. 일단은 물막이 뚝을 만들어 생수를 돌려 온도를 높인 다음에 논에 물을 대는 것이다.
  다랭이 논 풍경은 농사를 지어 놓은 사람에게는 감동 깊이 추억되는 진풍경인 것이다.













4, 오곡백과 가 만발하니 풍년가가 절로난다.  
  가는 길섶 비탈 밭엔 갈대와 억새 꽃, 오곡이 만발하였다. 붉은 수수밭엔 아직 고개를 늘어뜨리지 않은 수수가 올곧은 목을 하늘로 치올리고 서 있었다. 붉은 수수밭. 중국의 근대화 때 개혁으로 파란만장한 역경에 내몰려 죽은 농민들의 애환을 그린 비국 소설이다. 그 붉은 피로 물들던 수수밭이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탐스런 목을 늘어뜨린 조밭이 이채롭다. 농작물 중에서 일손이 가장 많이 가는 작물이다. 들깨 밭 사이로 이어지는 콩밭엔 콩깍지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길가엔 막 캐낸 땅콩을 내다 팔고 있었다. 벼와 콩, 조와 수수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한다. 오곡은 쌀, 보리, 콩, 조, 수수라고 생각했는데 수수가 아니고  기장이란다. 기장은 천수답에서 재배하는 벼과 식물이다. 원래 기장은 피사리에 속하는 작물인데 논이 없는 고산지대에서 쌀 대용으로 재배한다.
길가에서 기장 터는 아주머니와 이야길 나눈다. 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잠시 설명해준다. 벼처럼 털어서 껍질을 절구통에 넣고 찌어서 키로 까불어 껍질을 날려버린 속 알곡으로 밥을 짓는단다.
아주머니의 한탄....., 조, 수수, 기장은 껍질을 벗겨야 먹는 것인데 어떻게 먹으려고 따 가는지 모르겠다.









5. 마지막 비경, 마천의 백무동 계곡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산내들로 이어지는 수많은 인파들이 추억의 오솔길에서 자연에 묻혀,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정다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걸어간다. 길가에 피어난 야생초화에 의미를 두고  추억을 그려내며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하는 시간이었다. 4명의 친구가 자식 이야기, 살아온 그런 저런 이야길 나누며 12킬로미터 4시간여 걸어 종착지인 마천에 이른다. 마천의 칠선 계곡과 백무동 계곡은 천왕봉에 오르는 길목이다. 바로 촛대봉을 지나 천왕봉을 6시간이며 오르는 최단 코스이다.
   칠선 계곡은 허가 없이는 산행을 할 수 없는 곳으로 하루에 50명 정도 입산을 시킨단다.
칠선계곡은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오염되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천연의 비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마천에 이루러 백무동 계곡에 흐르는 냇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차를 마신다. 다시 찾고픈 아쉬운 여정이었다. 다음엔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오고 싶다. 꼭 갈 것이다. 가림등산여행클럽에 감사를 드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