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 2009년 5월 16일~17일                

● 누 구 랑 : 경인일보 지리산둘레길 1,2구간 특별취재팀

● 산행코스 : 1구간(다랭이길) 전북남원 매동마을 ~경남 함양 금계마을

               2구간(산사람길) 경남 함양 마천 의중마을~휴천 세동마을

● 사진은 ? : 본인및 특별취재팀

            

 

2구간(산사람길) 경남 함양 마천 의중마을~휴천 세동마을

   

            

           

           

                 

            

 

 소인 '지리산 롯지'는 지리산 자락에 둘려싸여 있는 폐교를 이용한 아담한 숙박시설입니다. 아침에는 산우님들중 몇분이 해장국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북어, 콩나물, 새우젓등 해장에 좋다는 것은 모두 들어 있는 특제 해장국이었습니다. 국물을 두 그릇을 비웠습니다. 이제 해장도 하였으니 지리산 둘레길 2구간의 장정에 오를 시간입니다.

제2구간은 경남 함양 마천면 의중마을에서 시작하여 휴천면 세동마을까지 10.11km를 걷는 코스입니다. 빨지산들이 다닌 길이라고 합니다. 국군과 경찰의 공비토벌 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길을 '산사람길'이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이곳에는 옛날에 징검다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뻐스 한대가 간신히 빠져 나갈 수 잇는 좁다란 의탄교가 놓여 있습니다.

출발에 앞서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의중마을 어귀에는 600년이나 묵었다는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켜봅니다. 지리산 더 안쪽에 있는 칠선계곡 끝자락 추성마을로 가는 새길이 뚫려서 의중마을에서 벽송사로 가는 옛길은 흔적만 남아 잊혀졌는데 다행이 이 지리산둘레길을 만들면서 단장을 했습니다. 이길은 옛사람들이 땔감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였을거고, 약초나 산나물을 캐러 다니기도 했을겁니다. 벽송사로 불공을 드리기 위해서도 이길을 사용했겟지요. 그러나 마냥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에 치인 현대인이 걷기에는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길은 이어져 계속 숲길을 갑니다. 아침에 오락가락 하던 가는비도 이제는 멈추었습니다. 시누대(?)숲을 지나 한참만에 서암정사에 도착입니다. 좌측엔 동귀대해일미수(同歸大海一味水), 우측에 백년가하만계루(百年江河萬溪流)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기둥을 만나게 됩니다. 그야말로 장승처럼 우뚝서 있습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시  조어삼천계(調御三千界), 마사대법왕(摩詞大法王) 란 글씨가 좌우측에 새겨진 두개의 돌기둥을 만납니다. 이 돌기둥들이 아마도 일주문이나 해탈문등의 구실을 맡고 있는듯 합니다.

들어가는 길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5m도 넘을 것 같은 우람한 사천왕상이 우측 절벽에 일렬로 우리를 맞습니다. 항상 절입구에서 단청된 사천왕만 보다 바위에 새겨진 사천왕상을 보니 속세에서의 만가지 잡생각과 망상을 다 달아나게 하는 듯 합니다.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인 대방광문(大方廣門)은 무지개처럼 생겨 우리를 맞습니다. 이 대방광문을 지나는건 곳 화엄의세계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조금더 들어가면 불상을 모신 법당 건물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곳에는 그저 사랑채 비슷한, 건물벽에 방하제연(放下諸緣)이라 쓰여진 한옥건물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한문에 문외한인지라 뜻풀이가 잘 안되지만 대략 세속의 근심, 미련, 시기심 뭐 그런것을 다 버리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봉긋한 봉우리를 갖은 굴법당이 보입니다. 동굴안에 사방팔방, 천정까지 온통 부처와 불보살등이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맨발인 나는 법당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째거나 정말 아름답게 꾸며진 절집입니다. 모두가 바위를 뚫고 새기고 한 정성의 결정체입니다. 이 서암정사는 주지인 원응스님께서 1960년 초 벽송사로 오시면서 원력을 세워 현재 40여 년째 진행되고 있는 원력 불사의 결정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다독이고 싶은 염원이 깃들어있다 합니다.

6·25때 지리산에서 무고히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기원하며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고자 불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좀체 수그러들지 않아 민심을 피폐케 하고 있는 동서 지역감정의 발로가 되는 모든 이기심과 분열을 없애고 부처님의 품안처럼 평안하고 자비심으로 살자는 마음에서 발원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지리산은 한많은 우리의 역사를 보듬어 안고 있습니다. 일찍이 마한, 진한을 시작으로 가야와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국경으로 서로 뺏고 뺏기는 전쟁을 하여야 했으며, 고려때는 왜구에게 시달렸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참상을 지켜봐야 했던 산입니다. 그뿐아니라 근대에 가까이 와서는 동학혁명의 무대이기도 하였습니다. 해방후에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서로를 죽여 계곡과 능선을 피로 물들게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리산은 말없이 지켜볼 뿐입니다.  서암정사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쪽이 아름다울 뿐입니다. 돌아나오는 길에 만난 다람쥐는 그저 모든 번뇌를 벗어 놓고 가라고 합니다.

 

 

           

          

           

           

           

          

서암정사를 나와 다시 포장도로가 아닌 좌측으로 난 옛길을 따라 벽송사로 향합니다. 벽송사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자리잡은 절입니다. 벽송사 입구에는 목장승 2기가 서서 우리를 맞습니다. 그 목장승의 얼굴에 해학이 가득합니다. 짱구얼굴에 왕방울눈, 우뚝 솟은 코하며 재미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절안에는 아주 오래된 목장승 2기가 너무 늙어 한쪽이 부서진채 전각안에 모셔져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변강쇠전'의 무대도 벽송사 부근이라 합니다. 변강쇠가 힘들여 나무하기가 싫어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쓰다 팔도 장승의 분노를 사서 혼이 난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아마도 절에 목장승이 모셔져 있는 것은 불교와 지리산이 갖는 토착신앙이 결합된 좋은 예일 것입니다.

어디 지리산자락을 무대로 하는 것이 '변강쇠전'뿐이겠습니까. '춘향전', '흥부전'도 지리산자락을 무대로 하고있지요. 현대에 와서도 많은 작가들이 지리산 자락을 무대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황순원의 '잃어버린 사람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김동리의 '역마', 이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등이 지리산을 무대로 사랑과 분노, 이념의 갈등, 기쁨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벽송사는 한국전쟁 당시에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답니다. 국군과 빨치산의 교전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며, 사찰이 불타기도 하였답니다. 벽송사 뒷편에 삼층석탑(보물 474호)과 미인송, 도인송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와불사를 접수 받는 분의 설명에 의하면 그 소나무들을 보듬어 안고 소원을 빌면 소원성취한다고 하더군요.

                                   

         

        

 벽송사와의 데이트가 끝난후, 송대마을을 향해 출발합니다. 지리산 둘레길1, 2구간중 벽송사~송대마을 구간이 가장 힘들고 재미없는 구간입니다. 벽송사(해발600m)에서 시작된 오름은 그 위 해발 900m까지 올라야 합니다. 그런데다 능선길이 많기는 하지만 숲이 무성하여 주변 경관이 조망되지 않아 지루하기도 합니다. 이번 둘레길 특별취재팀에 합류한 몇몇은 별로 산행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었는데 약간 어려워합니다. 하긴 이길이 '산사람길'이라 불릴만큼 국군이나 토벌대를 피해 빨치산과 반란군들의 은신처이자 활동무대였을 만큼 험한 곳입니다. 1948년 여순사건 이후 달아난 반란군들이 근거지를 삼자 국군 토벌대가 와서 무차별 파괴를 하였으며, 6.25전쟁이후에는 빨치산 잔당들이 다시 지리산으로 모여들 정도로 험한 산입니다. 그중 송대마을은 빨치산들의 주요 은신처이자 중요한 양식공급처였다고 합니다. 이런 비극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화전민 몇가구가 평화로이 삶을 영위하고 있고, 지리산의 영기를 받기위한 굿당등이 몇채 자리 잡고 있는 평화로운 지리산 자락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송대마을 어귀에서 잠깐의 쉼을 갖습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모두 허기짐을 호소 합니다. 그러나 준비된 먹거리가 없으니 마지막 종착점인 세동마을을 향해 출발합니다. 송대마을~세동마을 구간은 임도코스입니다. 거의 세멘트포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구간중 경인일보의 송수복기자가 나의 맨발산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를 해줍니다. 동영상제공을 위해 두대의 동영상용 카메라로 촬영도 합니다. 터덜터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옵니다. 시멘트포장이 되어있어서 맨발로 걷기가 약간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벽송사~송대 코스보다는 지리산자락의 풍광을 볼 수 있어 그나마 위안입니다. 그 중간엔 400년된 소나무정자가 쉼터를 제공합니다. 2일간의 대장정에 지친 팀원들이 드러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여 쉼을 갖습니다. 발아래는 엄천강이 지리산의 유구한 역사를 보듬어 안은채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2구간의 끝자락은 세동마을입니다. '자연에 세들어 사는 마을'이라서 세동마을이라 한다지요.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은 평화롭습니다.

이렇게 하여 경인일보 지리산둘레길 1,2구간 특별취재팀과 같이한 지리산둘레길 걷기의 대 장정을 마쳤습니다. 정말 유쾌,상쾌하고, 지리산 북쪽의 일부구간에 대한 많은 역사와 자연을 만끽한 그런 걷기였습니다.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법정스님이 '산에 오르면'이란 시에서 말씀하신대로,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의 숨결에 귀기울인 그런 이틀이었습니다. 자연의 품안에 가까이 다가가 안기였던 그런 이틀이었습니다. 같이한 특별취재팀 모두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P.S)

                    

                      

                      

 지금으로 부터 23년전 1986년 10월 3일부터 4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적이 있습니다. 다니던 직장산악회원들이랑 회사 여직원회 회원들까지 따라나서 모두 50여명정도 나선 길이었습니다. 코스는 백무동에서 장터목산장으로 올라 하루 저녁을 묵고 아침에 천왕봉을 올라 칠선계곡을 거쳐 추성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이 칠선계곡이 무지 힘들었습니다. 등산초짜가 많은데 코스를 너무 무리하게 잡았던것 같습니다. 그 다음날 회사에 출근을 시켜야 하므로 정말 입에 단내가 나도록 내려왔는데도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까지 1시간 반, 천왕봉에서 칠선계곡을 거쳐 추성동까지가 8시간이 걸려 도합 9시간반에 걸친 대장정이었습니다. 그때 등산화를 벗고 양말만 신은채 엉엉 울며 따라 내려왔던 홍OO양, 지금은 50줄에 접어들었을 텐데 요즘도 가끔이라도 산에 다니고 있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