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산행일 :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누구랑 : 산찾사+초록잎새. 너른숲+황금사과. 홍사백+백장미. 큰곰+비너스 

산행코스 : 지리산 안내센터~구인월교~중군마을~장항마을~매동마을~등구재~창원마을~금계마을~의탄교.

 

 

   (둘레길 개념도) 

 

 

 

발길 닿는 대로.

눈길 닿은 대로 그저 마냥 걷고 싶었다.

 

신선한 가을바람을 따라

그냥 훌쩍 떠난길 걷다가 못 가면 말고....

 

쉬엄 쉬엄

아내와 단둘이 터덜 터덜 걸으며 

지금껏 살아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며

내안의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단둘의 여행 제안에

아내가 투덜댄다.

 

"뭔 재미루 둘이서 청승맞게 걸어~"

 

마눌을 무시하면 뒷 감당이 안된다.

ㅋㅋㅋㅋ

해서...

 

붙어주면 같이 가고 아님 말구....

카페에 공지를 올리고 나니 다행이 맘에 맞는 다정한 산우님들이 함께 했다.

 

내동에서 출발한 홍사백님과

덕유 휴게소에서 만나 어여쁜 뇨성들만 몽조리

나의 애마 투산이에 태우고 시커먼스 사내들을 홍사백님 차로 몰아낸 뒤

인월의 지리산길 안내센터 주차장에 도착후 지리산 둘레길의 여정에 들어 간다.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에서 단체사진) 

 

 

오늘 걷는 거리가 19.3 km..

대략 7시간이면 아주 널널 하리라.

 

지리산 안내선터 앞을 지나  구인원교를 향한다.

구인월교를 건너 되돌아 내려오는 제방길 아래 왼쪽으론

맑은 하천이 흐르고 오른쪽으론 벌써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누우런 벼가 여물어 간다.

 

   (구인월교를 지나는 하천)

 

 

 

제방길이 끝나고

중근마을로 향한 아스팔트길 옆 텃밭엔

수수와 고추 참께 고구마가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은 아직 한여름인데

절기는 속일 수 없는지 어느새 곡식들은 알곡이 여물어 가는 중이다.

 

나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한결 더 여유로운건 디카를 빠트리고 온 탓이 크다.

맨 뒤에 처진 너른숲님이 내 대신 이것 저것 하나라도 놓칠세라

디카에 모조리 쓸어 담는 중이다.

 

늘정대며 걷는 시골길....

썬그라스로 멋을 부린 황금사과님이 부시럭 대더니

 

짜~잔~!!

 

태양을 가리는 양산이 등장한다.

준비성 하난 정말 끝내주는 쎈스쟁이 아줌씨다.

 

 

 

 

 

 

 

6.25때 선군, 중군, 후군부대 중

중군부대가 머물었다 해서 마을 이름이 중군마을 이랜다.

소담스런 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니 농가의 처마끝에 마늘이 메달려 있다.

 

새끼줄로 엮어

메단 마늘을 보자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난다 말하자

큰곰님이 왜~ ? 라며 묻는다.

 

마눌이 내 대신 답 해준다.

 

"우리 아버님이 얼매나 야무지게 마늘을 엮어 멨는지

한해가 다 가도록 뒷 베란다에 걸어놓고 먹어도 썩는 마늘 하나 없고

탑시기 하나 안 날렸다니께요"

 

정말 그랬다.

우리 아버님은 뭐든 일 솜씨가 야무졌다.

성격은 온화 하시고 세심하여 다정했기에 울 마눌은

친정 아버지보다  시아버지가 오히려 더 좋다 하였으니....

 

평생 고생만 하다

불쌍하게 돌아가신 아버님....

 

3대 독자였던 할아버지는 한량이었다.

귀하게 컷기에 오직 자기 자신밖에 몰랐다.

그 덕에 아버지는 14살에 가장이 되어 온갖 고생을 다 하셨다.

그런 아버님께 시집온 우리 어머니는 시집오기 전까지 외할아버지의

무릅에 앉혀 귀염만 받던 외동딸였으니 그 시집살이의 고통은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녔어도 본인은 아마도 극한 고통였을 것이다.

 

그 사이에 낀 우리 아버님...

평생을 살아오며 마음 편한날이 과연 몇날이나 있었을까 ?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난

내 자식만큼은 정말 천하게 키워 나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되길 바랬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귀하게 대접받은 자식이 남에게도 귀한 대접 받는다며

자식을 엄격하게만 대하는 나를 항상 못마땅히 여겨 항상 다툼이 있어왔다.

 

다행히

이젠 다 자란 내 자식들이

아주 못돼 먹은건 아닌것 같아 마음이 놓이긴 하나

뭐가 옳고 그른것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으나 귀한 자식일 수록

천하게 키워야 한다는 나의 교육방침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시골농가의 처마끝에 메달린 마늘이

평생을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 올리게 만들어

마음이 순간 짠~ 해지며 숙연해 진다.

 

부당함에도 저항을 모르고

오로지 순종과 효심으로 평생을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보며

난 정말이지 아버지처럼 살진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겠다 했는데

이제야 되돌아 보면 나 또한 아버님을 닮아가는건 아닌지 ?

 

 

 (중근 마을의 풍경들)

 

 

 

중근마을의

농로를 따라 오르면 다랑논이 펼처진다.

여물어가는 논의 풍광이 한가롭고 평화롭다.

 

논뚝길옆엔 풀들이 지천이다.

모두들 농촌 출신이다 보니 옛 추억들이 펄떡 펄떡 살아 뛰처 나온다.

 

아이구~!

이거 소가 잘 먹는 풀인디~

학교 끝나구 돌아오믄 맨날 소깔 베려 쏘댕겼는디~

참말루 이런 풀들은 귀했쟈~!

 

전혀 그랬을거 같잖은

큰곰님의 말을 이어 고구마밭에 이르러는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던 얘기가 살아나고 수수밭과 콩밭이 보이면 또 그시절의

힘겨웠던 삶이 생활이 되살아 나와 애깃거리는 끝이 없다.

 

 

 

 

 

어느새 다랑논이 끝나고...

포장길은 서서히 오름길의 산으로 향한다.

 

첫 갈림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

 

황매암길은 숲길이요

삼신암 방향은 아스팔트길이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당근 숲이 좋은 우린 황매암길로 들어선다.

 

 

   

   (황매암 전경)

 

 

이정표를 따라 걷던 숲길이

황매암을 지나더니 삼신암에서 올라오는 도로와 만난다.

 

합처진 두길을 따라 조금 오르자

백련사로 향한 길과 만나는데 길옆엔 폐타이어를 주렁 주렁 메달았다.

 

뒤에 처진 산우들을 기다리며

휴식에 든 사이 베낭의 짐 줄이기 경쟁이 시작된다.

 

우선 갤로퍼님의

재주도 참 좋게 만들어 온 살얼음 동동 뜬 막걸리가 나오고..

황금사과님 베낭에선 황금사과보다 더 맛좋은 꿀사과에 이어서

다른님들 베낭의 이것저것 푸짐한 먹거리가 줄줄이 알사탕처럼 쏟아저 나온다.

 

   (백련암 갈림길에서 휴식중)

 

 

간식도 먹었으니 출발...

둘레길에 많은이가 보인다.

어린애도 노인도 중년의 아줌씨도....

 

서둘지 않은 걸음이다 보니

이내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다시 만남의 연속.

모두들 얼굴엔 해맑은 웃음이 번진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그저 천천히 걷는 걸음 이기에 여유가 흐른다.

 

가을은 숲그늘에 들어서면 몸이 알아챈다.

서늘함으로...

땡볕에 후줄근해진 몸뚱아리에 금새 소름이 돋는다.

 

수성대...

다른곳은 다 말라붙은 계곡인데

이곳엔 수량이 넉넉하다.

중근마을과 장항마을의 식수원이란다.

듣던 소문대로 청정한 계곡이다.

 

   (수성대)

 

 

 

수성대에서

장항마을까지 2km 정도의 숲길이 이어진다.

오름길에서 길게 줄을 이어 걷는 순례객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장항마을 전경)

 

 

장항마을로 내려서는 길옆...

멋드러진 소나무가 단번에 시선을 사로 잡는다.

신성한 위엄을 뽐내는 장항당산이다.

 

  (장항당산)

 

 

지리산 둘레길 첫 쉼터다.

장항마을 입구 당산나무 아래에 자리잡은 쉼터엔

둘레길 순례에 나선 이들이 파전에 막걸리를 놓고 세월을 낚는다.

 

 

우선 자릴 잡고 막걸리를 시킨후

파전을 주문했는데 재료가 다 떨어졌단다.

장사가 아주 잘 되나 보다.

 

그런 우리 일행을 본 옆자리 중년의 사내가

자신이 먹던 파전 반 이상을 쭈~욱 갈라 우리에게 건네다.

후덕하니 인심 좋게 생긴 모습처럼 마음도 넉넉하신 분이다.

그님의 덕분에 얻어 먹는 파전 맛은 더욱 더 좋았다.

 

    (장항마을 당산나무 쉼터)

 

 

 (장항마을 입구의 대숲)

 

 

 

장항마을 쉼터를 뒤로하며 길을 떠난다.

매동마을을 겉돌아 둘레길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의 시멘트 도로가 산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다..

 

  (장항교를 건너는 산우들)

 

    (초록잎새랑...)

 

 

 

상황 소류지 쉼터에 이르러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늘정대는 걸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모두들 배가 고프다.

 

시멘트 도로 한켠

숲속의 공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숲 그늘에 들어서면

이내 등판때기가 서늘해 진다.

바람도 살랑 살랑 불어주니 자리는 잘 잡았다.

 

이것저것 찬이 많다.

그런데도 너른숲님은 비싼 국산 한우를 준비했단다.

그러나 정작 그걸 구워낼 버너의 아답터를 빼먹어 걍~ 침만 흘렸다.

 

무쟈게들 먹는다.

막걸리와 맥주 소주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뱃속에 들이민 후에야 성찬은 끝났다.

 

배부른 다음 걷는 걸음이 거북하다.

당연 느릿 느릿 갖은 해찰을 다 부리는 게으른 걸음이다.

 

그러나 다행인것은

시멘트 도로가 끝나며 이어지는 숲속길이 아주 황홀하다.

완만한 경사로에 울울창창 숲이 내뿜은 숲향이 싱그럽고 육산에 발걸음은 편하다.

 

 

 

 

상황마을이 내려 보이는 곳에 이르자

지리의 주능선이 길게 이어진 풍광이 멋지게 다가선다.

 

지리산 둘레길은 이래서 좋은가 보다.

정작 지리산에 들면 지리산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둘레길 숲속에 들면 아주 똑똑히 지리산의 진면목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도 쉼터가 있다.

솔직히 이곳은 그냥 지나치려 했다.

뱃속도 그득하고...

 

쉼터의 이름이 이쁘다.

정을 담은 다랭이 쉼터란다.

 

이곳 쥔장 할머니가 지나치는 우릴 향해 한마디 던진다.

 

"이곳 물이 시원햐~"

"그냥 가지말구 시원한 물 한모금 먹구들 가~"

 

막걸리 한잔 하구 가라했슴 아마도 그냥 지나 쳣을거다.

정이 뚝뚝 흐르는 촌 할머니의 그  한마디에

물맛도 보고 평상에 앉아 쉬다보니 그냥 갈 수 없어 또 막걸리와 소주를 시켰다.

 

안주는 굳이 안 시켜도 된단다.

이참에 너른숲님은 불이 없어 못 먹은 한우를 들고가 

쉼터의 주방을 잠시 빌려  직접 불고기 요리를 했는데 그 맛이 한마디로 쥑여줘요~다.

 

 (다랭이 쉼터에서)

 

 

 

 

 

상황마을을 내려보며 걷는

등구재로 향한길은 다랑논 사잇길이다.

층층 논길에 펼처진 풍광은 이미 깊어가는 가을이다.

 

아~아~ 으악새는 벌써부터 슬피 울고

다랑논의 벼들은 숙어들어 누런 황금빛으로 일렁이며

공활하기 이를데 없는 높고 푸른 하늘에 걸린 두둥실 흰구름은 흘러가다 금대봉에 걸렸다.

 

 

   (등구재로 향하는 길)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쉼터다.

 

그중 등구재 쉼터에서

또 산우들이 게으름을 핀다.

어느사이 쉼터의 둘레꾼들 속에 끼어든 너른숲님은

양말까지 벗고 들고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다.

 

쉼터마다 배를 채운다.

오늘 걸음에 다 소화는 못 시킬게 분명하니 

그게 다 뱃살로 허리살로 쌓일게 뻔하니 이번 지리산 둘레길은

허리의 둘레를 키우는 베들레햄길이라 이름 지어야 겠다.

 

   (등구재 쉼터)

  (등구재 가는길)

 

 

등구재는 삼봉산에서 내리 뻗은 산줄기가

백운산으로 치켜 올라서기전 주춤거린 안부의 고갯길이다.

 

상황마을과 창원마을이

소통하던 길의 안부인 등구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길이다.

 

아주 오랜 옛적에

이길을 따라 함양의 아낙과 남정네들은

등짐을 지고 이고 남원의 장을 보러 다녔을 테고...

꽃가마를 타고 새색씨가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시집을 갔었으리라.

 

   (등구재에서)

 

 

등구재를 넘어 창원 마을을 향한

다랑논 사잇길로 들어서자 지리산 동부능선이 마중을 나왔다.

 

그중 동부능선 끝머리의

함양 독바위가 반갑다 인사를 하고.....

 

 

   (지리 동부능선의 함양 독바위)

 

 

지리산을 넘어오는

오도재도 선명히 그 모습을 들어낸다.

 

   (저멀리 오도재의 모습)

 

 

창원마을 뒤쪽의

층층 논길을 내려선 둘레길은

또다시 산길로 이어지다 금계마을로 빠저나오며 오늘 걸음에 종지부를 찍는다.

 

마지막 금계마을을 앞두고...

지금껏 잘도 걷던 황금사과님이 투덜댄다.

 

 

"아이구~!"

"산길이 아니구 그냥 짧은 산책길이라더니"

"왜~ 이리키 먼겨~어~"

 

"내가 맨날 속아유 속아~" 

 

   (금계마을로 향한길)

 

 

 

 

   (오도재를 넘어오며...)

 

 

함께 걸음하신 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산에서 건강을...산찾사.이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