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성(大林山城)

 

충북 기념물 제110호(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산 45번지 일대)

 

대림산(487.5m)은 충주의 진산이다. 이곳에는 대림산성과 대림산 봉수대가 있다. 대림산성은 대림산의 골짜기와 능선을 따라 흙과 돌로 쌓은 산성이다. 동서로 긴 타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산성의 길이는 4,906m이다. 달천강을 끼고 있는 서쪽이 낮고, 동북쪽이 높으며, 성안 창골 마을로 개울이 흐르고 있다. 성안에는 또한 5,800평 정도의 농토가 있어 식량의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대림산성은 방어성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대림산성 성벽의 높이는 대략 4-6m이며, 성벽 안쪽으로 4m 내외의 성안길이 조성되어 있다. 1997년 지표조사를 통해 문지 4개, 건물지 12개, 치성 10개, 우물지 3개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망루와 장대 등 시설물을 추정할 수 있었다.

최근 연구에 의해 대림산성이 고려시대 몽골군을 물리친 충주산성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옛 문헌에 대림산이 충주의 진산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몽골군은 1253년 사령관 야굴(也窟)이 주력부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충주성을 포위 공략한다. 이때 고려군은 70일간 항전하며 승리를 거둠으로써 몽고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충주산성 방호별감(忠州防護別監)이었던 김윤후(金允侯)는 사졸(士卒), 노비(奴婢)와 함께 적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몽고 군사가 장차 이를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성을 지킬 것을 의논하는데 (서로)의견이 달랐다. 종주는 양반별초(兩班別抄), 홍익은 노군잡류별초(奴軍雜類別抄)를 거느리고 서로 시기하더니, 몽고 군사가 들이닥치자 종주ㆍ홍익과 양반 등은 다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오직 노군잡류가 합력하여 (적을) 쳐서 물리쳤다.”

세 번째로는 종주바위와 관련된 전설이다. 종주바위는 대림산 동문지 아래에 있는데, 고종 19년(1232) 대몽항전을 지휘하다 도망친 부사 우종주(于宗柱)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사 절요』에 따르면 군사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부사 우종주와 판관 유홍익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천민들이 힘을 합쳐 성을 지켜낸다.

그리고 대림산 정상부에는 봉수대 터가 남아있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따르면, 봉수대는 원형의 2단 석축으로 높이는 30척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석축 일부가 남아 있으며, 동서가 16m, 남북이 19m 정도 된다.

대림산 봉수대는 상주 – 문경을 지나 용인 -서울로 연결되는 직봉로 상에 있다. 남동쪽으로 마골재 봉수 - 주정산 봉수와 연결되며, 서쪽으로 마산봉수와 연결된다. 이 직봉은 가섭산 봉수 – 망이산 봉수를 거쳐 서울의 목멱산(木覓山: 남산) 봉수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