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시령입니다.

 

어쩌다보니 우리 산하를 떠나게 되었고,

타지에 정착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한국의 산하] 자주 들르질 못했네요.

이따금 들르면 [한국의 산하] 제현께서

우리의 아름다운 산과 들을 주유하며 즐거움을 만끽하시는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곳에도, 능선의 자태가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그것과는 다르긴 해도,

미시령이 좋아하는 산이 널려 있기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답니다.

제가 사는 엑상프로방스의 동쪽에는 쌩트 빅투아르라는 산이 있는데,

이국생활에 다소나마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여행이나 별다른 일이  없는 주말 아침엔,

미시령은 항상   곳에 오르곤 합니다.

 

쌩트 빅투아르산을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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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멀리서 바라본 모습이지요.

지난 해 10월의 모습입니다.

동료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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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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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은 이렇게 썰렁해 보입니다.

그러나 마르세유에서 A51고속도로를 타고 오며 눈에 들어오는, 하얀 절벽은 경외스럽기조차 합니다.

 

 

세잔이 화구를 짊어지고 산자락에 자주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가 산을 그린 그림 점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바로 남사면을 그린 것으로 기억됩니다.

산자락의 자그마한 벽돌건물도 그의 이름을 따, 세잔의 대피소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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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쪽에서 댐을 지나 능선을 타고 오며 바라본 모습

 

 

쌩트 빅투아르산은 날카로운 능선이 동서로 길게 뻗어있습니다.

주위가 대체로 완만한 지형인데 것만 날카롭게 솟아있는 모습이

마치 한국의 월출산과 비슷한 지세입니다.

월출산에 비하고 나니,

국립공원인 월출산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못났습니다.

비교 취소!

 

 

서쪽에서 오르면 커다란 십자가가 설치된 봉우리에 닿습니다.

해발 941m 인데, Croix de Provence 프로방스의 십자가라는 뜻이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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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봉우리에서 능선은 동쪽으로 이어집니다. 

능선 우측, 남사면은 거의 90 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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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2~3시간 거리인 능선의 동쪽 끝에는 산의 최고봉인Pic des Mouches 버티고 있습니다.

해발 1,011m 인데, 능선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360 사방이 훤히 트여있어,

멀리까지 탁월한 조망을 선사해 줍니다.

 

동쪽 멀리로는 알프스 산맥 남서 산자락이라고 있는 산들이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국립공원인 뤼베혼산이 동서로 장막처럼 놓여있는데,

능선 너머로 해발 1,912m 방투산  봉우리가 솟아 보입니다. 

 

이 곳 서쪽 봉우리인 Croix de Provence에서는 서쪽으로 거칠 없이 트여

막세이 공항 , 지중해에 연결되는 에땅 베헤(베레호)까지 시원스레 눈에 들어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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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저 흙 끝나는 곳이 막세이 공항...

 

 

깍아지른 절벽처럼 생긴 남사면에도 여러 곳에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지도를 보면 대부분이 매우 어려움으로 표시되어 있지요.

미시령은 보통 곳으로 자주 오르는데,

어쩌다 동행이 있을 경우 어려움으로도 올라가 보기는 했으나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고  경사가 심하며

절벽에 쇠사슬이 매여있어 힘으로만 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고해서

혼자서는 가고 싶지 않더군요. 

날씨가 좋고 일행이 있을 하나씩 골라 시도해 볼만 하지요.

아주 드물지만 가끔 로프 매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프랑스 암벽꾼들도 보입니다.

 

북사면에는 군데의 등산로가 지정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하나가 비몽댐을 거쳐 길게 이어집니다.

 

복귀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미시령도 아직 동서방향 종주는 하지 못했는데,

아마  6~7시간 정도 소요될 합니다.

 

우리나라 산과는 무척 달리,

산은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서 등산로가 거의 너덜지대인데다가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걸음마다 신경이 쓰입니다.

능선 정상부 가운데 어느 곳은 넓은 고원을 이루고 있는데,

삐죽빼죽한 바위로 뒤덮여있어

설령 야영을 한다하더라고 평평한 땅도 찾기 어렵겠더군요.

한국에서는 왠만한 등산화라면 통상 4~5년은 너끈할텐데,

여기서는 아마도 2~3년이면 바닥이 낡아버리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미시령이 곳에  예정대로 5년을 머문다면 결과를 알겠지요?

 

남프랑스의 메마른 바위산들이 그렇듯이

산에는 나무들이 적더군요.

남사면 일부는 아예 사막같은 곳도 있지요.

원래부터 그런가 생각했었는데, 얼마 전에 들은 바에 따르면,

1989 여름에 산불이 나서 당시 울창하던 산림을 태워버렸다고 합니다.

 

후론 6 초부터 9 말까지 여름 건조기에 입산통제를 한다고 하네요.

, 특별히 건조하거나 바람이 많은 이외에는

기간 중에도 오전 11 이전에는 산행이 가능하다고 하니,  

보통 아침 일찍 산에 오르는 미시령에게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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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ix de Provence 바로 아래에는 돌로 지은 자그마한 수도원이 있습니다.

15세기 경에 지은 것인데, 바위산 위라 물이 없어 빗물을 모아 저장하여 사용했었다고 하며

지금은 머무는 사람은 없이 그냥 성소로 남아있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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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비몽 댐입니다.

 

 

 

남프랑스에 위치한 프로방스지방은

2,000 전인 기원전 1세기에 로마에 정복당한  

5세기경까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답니다.

아를이나 님에 가면 로마의 콜롯세움과 같은 원형경기장이 아직도 건재하고

돌로 쌓아 반원형으로만든 공연장도 일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관개를 위해 수로망을 건설했는데,

산에 수로용 터널을 뚫고 터널에 잇대어 수십미터 허공에

거대한 규모의 수로교를 건설하여 광활한 지역에 물을 공급했다고 하는데

그게 무려 2,000 전의 일이었다고 하니,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돌로 까마득히 높게 건설한 허공의 수로교들이 아직 여러 군데 남아있습니다.

수원 확보, 수로망 계획, 정밀한 경사도, 구조물 설계, 노동력동원

21세기에 살며 명색이 토목공학 언저리에서 30 가까이 밥벌이를 해온 미시령에게도,

따라하기 쉽지 않은 일로 생각됩니다.

비몽 댐은 근세에 지은 것이지만,

프로방스에는 고대 로마의 관개방식을 이어 받아

역시 방대한 지역에 터널과 인공수로로 수로망을 구축하여

농업과 발전에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네요.

댐은 사용재료를 기준으로 사력 댐과 콘크리트 댐으로 대별하는 ,

산하의 제현께서도 익히 아시다시피

한국의 소양강 댐은 바위, 자갈, 진흙으로 쌓은 사력댐이고,

비몽 댐은 전형적인 아치형 구조의 콘크리트댐이랍니다.

 

**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

 

산행에는 미시령이 다니는 기구의 동료가 가끔 동행합니다.

프랑스인들은 평상시에도 거리에서 눈만 마주쳐도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봉쥬흐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산행하며 인사를 나누는 자연스러워졌지요?

며칠 전에는 십자가 봉우리에서 나이 지긋한 프랑스인에게 인사를 건넸다가

거의 30여분 넘게 붙잡혀,

주위 마을 소개에서 시작하여 남프랑스의 역사, 로마의 침입,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의 유럽 진출과 몰락, 그리고 기원전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코끼리 타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가던 이야기까지

별별 얘기를 듣기도 했지요.

불행히도 미시령은 아직 불어에 입문을 못해 평시에는 인사말 외에는 말이 없는데,

프랑스 아저씨는 외국근무도 오래 했고 여느 프랑스인들과는 달리

영어를 매우 하더군요.

우리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길로 눈덮힌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

로마가 북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유럽 전역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

피비릿내 나는 프랑스 혁명, 코르시카섬에서 태어나 포병장교를 거쳐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간 단신의 나폴레옹,

그가 유배지인 앨바섬을 탈출한 것과 마침내 세인트헬레나섬에서의 최후 등등

어렸을 적부터 접했던 너무 익숙한 얘기들이라,

아는 적절히 맞장구를 치는 미시령에게 되려 경탄하더군요.

까짓거, 우리들에겐 상식이잖아요?

 

지난 가을 어느 날에는, 불어를 못하는 미시령과 영어를 전혀 못하는 노인과

산을 우연히 함께 오르며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답니다.

멀리 하얀 눈인가? 눈이 맞다.

북동쪽의 산들이 알프스 끝자락이다. 그러면 그게 몽블랑인가? 아니 그건 너머 너머 너머에 있으니 여기서는 안보인다.

북쪽의 저건 뭐냐? 뤼베혼산이다. 너머가 방투산이다.

쪽은 어디냐? 막세이고 저쪽은 뚤롱 방향이다. 너머가 깐느 니스 방향이다.

동네에 프랑스인과 결혼한 한국여자가 있는데 너도 아느냐? 아니 아직 모르는데 등등….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산에 대해 나누는 얘기는,

마음만으로도 거의 소통이 가능했던 같습니다.

노인이 언급한 한국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여기 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이신, 매우 친절한 분이시더군요.

 

프랑스 사람들 중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 사흘째인가, 차를 몰고 출근하다 길을 잃은 적이 있는데

페추이라는 마을에서 행인에게 영어로 길을 물으니,

분이 당황해하며 가게마다 들러 영어하는 사람을 수소문하더니

결국 식당 문열고 청소하던 어느 분을 찾아 길을 알려주도록 해주시더군요.

다른 동료들에게도 이런 사례를 여러번 들었답니다.

특히 남프랑스에는 라틴계가 혼입되어,

키는 다소 작지만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매우 많은  같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다음에는 어느 곳을 소개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