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하 홈피에 산행기를 올려본 지가,

족히 5년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산행기를 그냥 글로만 남겨도 조회수가 꽤나 되었었는데....

얼마 전부터 사진을 첨부하지 않으면,

아예 거뜰떠 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산행중에 사진찍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계속 올리지를 못하다가,

이제서야 사진을 가지고서 자신있게 올려봅니다. 

 

저의 산행기가 더 있읍니다

혹시나 궁금하시면,    저의 블로그를 보신다면.....

http://blog.daum.net/sydouble

 

August 2, 2008(Saturday), 트레킹 둘 째 날

 

6시에 일어나니 어젯밤 내 방의 천정에 비가 새 들어와

의자에 걸어 놓았던 옷가지들이 비에 젖음. 

옷가지가 젖었다 해도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는 이 장사치들... 

또 참아야지.. ..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면서 무조건 팔자구나하면서

참는 것이 상책이란 걸 깨닫는데 까지 며칠은 걸린 것 같다. 

짐 챙겨 매고 7시 쯤 계란 후라이드와

커피 한 잔 마시고 7시 74분경 길을 나서다. 

 

해가 숨은 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이곳 간드룩은 마치 산골city 같다. 

작지만 예쁜 시골박물관도 있고... 

이곳에서 채석되는 빗장처럼 갈라지는 돌로 이어진

지붕을 얻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높은 산꼭대기에 옹기종기 돌로 이은 지붕을 한 정다운 마을 풍경 

 

 

 

                이정도의 풍경은 하도 많지만 한 컷트 올려본다 .    계단식 논과 밭 들

 

8시 40분경, 모양새가 좋은 둔덕에서 휴식.  

잠시 동안, 네팔인들이 영험한 산으로 여겨

입산까지 전면 금지시킨 마차푸추레 봉Machhapuchhare,

영어로는 평화의 꼬리(peace tail)라고 함)이 자기모습을 아주 조금만 보여준다.

 

 

               트레킹 도중 서너번을 마주친 물방아간 시설, 때로는 발전 시설로도 사용한 

               엄청난 계곡폭포의 힘을 이용한다.

 


 

 힘든 트레킹 도중에 가이드 녀석이 자기얘기를 털어 놓는다. 

네팔에서도 아주 산간벽지에 살았었는데 16세 되던 해

큰 홍수가 나서 계단식 논과 밭, 집을 몽땅 쓸려 보내고

목숨만 살아서 포카라로 오게 되었단다.

 

그 이후의 삶이 참으로 팍팍했노라. 

방 한 칸짜리 사글세방에, 나이는 불과 24살이지만

네팔 풍습에 따라 16세에 결혼하여 아이가 5, 3살 두 명이 딸려 있고,

집안의 장남으로 부모까지 봉양해야하는

처지가 되다보니 어떤 밤에는 하늘이

온통 자기의 어깨만 누르는 것 같고,

삶이 참으로 버겁다는 등.. 

 

아아!  나는 이 녀석 나이에 무슨 고민과 걱정으로 보냈을까?? 

겨우 늦게나마 철이 나서 어떤 대학, 무슨 전공을 해야 하나,

밤새도록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포카라에서 이 녀석을 처음 보는 순간,

꼭 한국인과 같이 생겼길래, 

나는 무작정 네팔아들로 삼겠다고 한 것이 잘 된 일인가?  

 

 

               내 아들보다도 어린녀석,  그래도 두 아이의 아버지...     

 

듣자하니 겨우 초등학교교육밖에 안 받은 듯한데,

혼자서 얼마나 노력을 했길래, 

이 녀석의 영어는 외국 사람과의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이니,

머리도 상당히 영리한 편이다.

 

이 녀석을 한국으로 불러들여서 돈을 벌게 하고,

돌아가 우리 돈 5천만 원이면 짓는다는

3층짜리 게스트하우스를 짖고,

부모 모시고 아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의무를 갖고 돌아왔다. 

 

 

                내 옆에 여인이 가장 미인이었는데, 글쎄 다른 여인들의 질투로 고개를 못 들고 있어요,,,

               내가 배에다 전대를 차고 다니는 줄도 모르고, 내 배를 보라면서 웃는 순댕이 아낙들입니다요...

 

10시 30분, 콤롱(Komrong)에 도착

 한참을 끙끙대고 올라가는데,

들에 일하러 나가는 몇 명의 동네 아낙들을 만났다. 

가이드를 시켜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아줌마들이 먼저 좋다고 오케이 한다. 

 

어쩌다 그 중 한 아주머니의 등을 잡으면서

사진을 찍자하니 난리가 났다. 

수군수군 서로가 손가락질,  얼러리 껄러리 누가누구와 무엇했데요..... 

그들의 환한 얼굴,  참으로 착하디착한 그 여인네들... 

 

늦게 올라와 자기도 찍어달라는 할머니,

아가씨까지 사진 몇 커트 찍고,

얼른 선물로 사간 볼펜 한 자루씩 나누어주고...

 

 

                한 집안 3대를 찍어 드리고 

 

 

               늦게 올라와 자기도 찍어달라고 떼를 쓰는 아주머니도 또 한 판 박아드리고..

 

한 참을 걷자하니, 당나귀주인이 여물을 주면서

등짐을 메기위한 등받침대를 올려놓는 장면을 보았다.  

아뿔싸!! 자세히 보니

당나귀들의 등줄기와 옆구리가 받침대에 받혀 모두 헐어서 진물이 가득... 

그 위에 또다시 무거운 받침대를 올리다니.. 

나의 등허리가 아파오는 것 같다. 

 

사람들을 포함하여 척박한 이네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후 한참(1시간 반 정도)을 계속 내려가서

도착한 곳이 킴롱(Kimrong) Khola Lodge에 도착한다. 

낮은 구릉에 자리 잡은 소박한 집이다. 

 

마당이 바위 돌로 되어있어서 배낭을 열고 젖은 옷들을 펼쳐 말린다.  

햇 볕이 좋아 금방 바삭 마른다. 

이곳까지 내려오는 길은 습기와 물기가 많다. 

특히 큰 나무가 길에 쓰러져 있어 숲으로 돌아내려오는데

신발에 거머리가 까맣게 붙어있다. 

아이고 무섭고 징그러워라.. 

 

점심으로 국수를 시켜먹고, 

들판에서 금방 따온 구운 옥수수를  두 번이나 시켜 먹었다. 

내 생애에 이렇게 맛있는 옥수수는 처음이다. 

알도 굵고 담백하고 올지다. 

 

 

                킴롱 로지에서 옷가지를 말리면서 네팔 아들녀석하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12시 반에 출발 

쉬는 시간을 포함 오르막길을 1시간 반 이상을 올라

꼭대기에서 보니 앞 편으로 촘롱(Chomrong)촌이 보인다. 

이제는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리기보다는

옆으로 이어진 길을 가게 되어 있으니

조금은 힘이 덜 들 모양이다. 

날씨도 어제보다는 시원하다.


 

15시경 촘롱촌에 도착 1,950m 

  첫 마을을 지나 10여분쯤 오르니 한글로 된 간판이 보이고

International Guest House Lodge에 도착.

이 Lodge는 원래 한국사람이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그가 떠나고 없지만 무척이나 유명했단다.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 김치찌개 등의 한국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다.

 

우선 샤워, 땀에 젖은 옷 등 세탁,  아 이 시원한 거.. 

 

이곳 촘롱지역은 전 히말라야 지역의 로지들 중

네팔대통령상(아마도 환경상인 듯)을 비롯하여 2번이나

일등상을 받았다는 깨끗한 곳이다. 

 

하기는 여기만 깨끗한 것이 아니라

전 트레킹 루트가 휴지, 담배꽁초 하나 없이 정말 잘 정리되어 있다

(하기야 길가에 수두룩한 소나 당나귀 똥을 제외하자면).

 

여기서 오늘을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도착 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하늘이 갑자기 새까맣더니만

비가내리기 시작하고 해가 저물자 장대비가 퍼붓는다. 

나의 가이드 녀석은 이런 날 다음에는

날이 맑게 게인다고 입에 침이 다 마른다.

 

저녁에는 스페인 젊은이 한 쌍, 

젊지만 젊잖게 생긴 호주커플 한 쌍,

불란서 친구와 나 가이드들 4명이 둘러 앉아 얘기의 꽃을 피운다. 

 

역시 젊음은 좋은 것.  이 친구들 얘기가 끝이 없다. 

나도 가끔 끼어들기도 하지만,

역시 나이가 많은 나는 그저 그들을 경청해 주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한다. 

그 중에서도 내 네팔아들인 가이드 녀석 아는 것도 많다. 

유럽축구 얘기에는 다른 친구들도 그저 경청하고만 있을뿐... 

 

어젯밤에 럭시에 럼주에 양주에 맥주에 취해있던

불란서 친구는 오늘은 멀쩡,  역시 젊으니까 가능..  

 

 

 

               29살의 불란서 청년, 자기 친구도한국 장애인 농아여인을 사랑한다는 착하디 착한 녀석..

               한국처녀들에게 신랑감으로 소개해주어도 손색이 없을 착하디 착한 젊은이였다. 

 

네팔에 지금 두 달 동안 머무르는데 여기에 오려고

몇 년을 준비해서 결국 성공했다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착한 녀석...

앞으로는 1년씩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네팔에 와서 살 것이라네요.


 

 피곤하여 방에 들어와 곧바로 잠에 떨어졌다. 

눈을 뜨니 새벽 3시.  뒤척이다 그럭저럭 4시. 

이곳에서부터는 새벽에 한기를 느낄 정도이다. 

 

 비행기에서 가지고 온 담요가 트레킹뿐만 아니라

인도와 네팔 전 여정에서 긴요하게 쓰일 줄은 미처 몰랐었다.

 

불을 켜고 어제의 트레킹을 떠올리며 일기를 정리하고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도 동시에 반추해보는

나만의 호젓한 시간을 가졌다. 

 

새벽 빗소리는 멈추었고,  사위가 조용 물소리만이 우렁차게 들린다. 

여름 우기 철이라 연일 비가 오는 바람에

계곡에는 물 천지, 더구나 수백 수천 미터 산꼭대기에서부터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내는 폭포의 장관이란 말로 표현이 힘들고...  

 

트레킹 처음에 신기해서 찍은 폭포사진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빛을 바래고,

나중에는 찍으면 오히려 자연에 누가될까봐

그저 내 눈으로만 사진을 찍기로 했다. 

 

5시 20분 정도가 되니 사위가 환히 비쳐온다. 

밖으로 나와 보니 바로 나의 코앞에 오른쪽은 마차푸추레,

가운데 힘출리(Himchuli), 왼쪽은 안나푸르나 봉이

저마다 하이얀 속살을 들어내며 장관을 이루고 서 있다. 

 

 

 

               촘롱의 Int'l Guest House 마당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 마차푸추레, 중간 힘출레, 왼쪽 안나푸르나 설산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 장면도 2-3분 보여주고, 이내 구름으로 덮는다

 

 

 

               카메라만 좋았다면 끝내 줄 광경,  안나푸르나 봉이 그저 ......... 

 

그것도 잠시 심술궂은 구름 한 무더기가 그 위를 덮고 만다. 

6시 정도에 나 홀로 뒷산으로 올라본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나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신들에게 진심으로 빌었다. 

 

나와 어머니, 집사람, 아들 녀석, 동생들 각자를 위해서... 

나는 오늘 히말라야 당신의 그 크나큰 힘(정기)을 받아 갑니다.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