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라운드. 토롱피크 등정기
 인천공항출발 홍콩 환승 카트만두도착..
단독으로  카트만두에서 30일간의 트레킹을 준비한다.1차로 안나푸르나 라운드 토롱피크와 토롱패스까지 18일간.다시 카트만두까지 돌아와서 셀파들이 사는 시골마을 파블릉에서 루크라 반대쪽의 탑딩까지8일간의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토롱패스로 가기 위해서는 카트만두에서 고속버스로 7시간 정도 걸리는 베시사하르까지 가야 했다.
첫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베시사하르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옛 고향에 버스를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 덜커덩 거리며 한참을 달리다 보면 농촌 마을 사람들이 한가롭게 보인다.

고속도로라지만 영락없이 우리나라 산골마을을 가는 것 같다. 가끔씩 쉬어 가는 휴게소는 시골 길가의 상점이다. 음료수와 오이, 바나나를 팔고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카드만두를 출발하여 이곳 베시사하르에 도착하니 벌써 주변에 포터들이 몰려들어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이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이미 계약이 되어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어렵게 구한 포터 한명>
베시사하르 마을은 제법 큰 마을인 듯 하다. 나는 이곳에서 내일 출발을 위해 포터 두 명을 구하러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곳 베시시하르에는 유럽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벌써 이 마을에도 온통 유럽사람들이 들어와 많은 포터들을 이미 계약해 놓은 것이다. 다행히도 짐꾼 한 명을 만나서 물어보니 한국사람들하고 트레킹을 한번 해보았다고 한다.

내가 두 명의 짐꾼이 필요하다고 하니 자기 혼자서 짐을 지고 갈 테니 두 사람 분의 돈을 자기한테 달라며 사정했다. 그러나 카트만두에서 나와 함께 간 셀파는 짐 무게가 55킬로그램이나 되어 혼자서는 안 된다며 거절해도 이 짐꾼은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린다.

사실 한 명을 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포터와의 약속대로 두 명의 일당을 주기로 하고 짐을 꾸려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포터 한 명의 일당은 300루피). 날씨는 더워지기 시작했고 가는 도중 점심을 먹는다.

꼬박 7시간을 걸어 쿠디에 도착해 하루 일정을 마친다. 마을은 강원도 어느 산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옥수수와 감자밭을 지나 계곡을 건너니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 고향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똑 같은 생활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순박한 시골사람 그대로 이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면 롯지를 정하고 식사준비가 시작된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식사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네팔 음식은 감자, 뱅켓, 티벳빵 등 메뉴는 다양했지만 내 입맛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출발할 때 양념을 준비해 카트만두에서 직접 배추김치를 담았다. 그걸로 라면이나 밥을 해서 김치찌개를 해먹었다. 이곳 롯지에는 모든 것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롯지에서는 자기네 집에서 음식을 먹어야 방을 준다는 집이 있어서

나는 방을 얻기 전에 내가 이 집에서 한국식으로 밥을 해 먹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방을 정했다. 다음날 내가 고용한 셀파, 포터와 동행하면서 포터의 짐 무게가 너무 많은 것을 걱정했다.
셀파가 가는 중에 포터 한명을 더 알아보자고 하여 이틀이 지났다. 사흘째 되던 날 고도가 심한 산길을 오르는데 셀파와 나는 뒤에 따라오는 포터와의 거리가 너무 떨어져 걱정을 하고 있었다. 포터는 욕심과는 달리 힘이 든 모양이었다. 어느 마을에서 그 포터는 한 명을 더 데리고 와 짐을 나누어 진 채 오고 있었다.

이 포터가 조금 안쓰러워 보였지만 나는 한결 걱정을 던 기분이었다. 트레킹 나흘 째 되던 날부터는 포터 2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 트레킹 코스에는 유럽사람들이 많은 코스이지만 내가 느낀 산길에는 고향에 온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주변이 편안하고 즐거운 길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사람들이 아주 가끔씩 찾아온다고 하는데도 원주민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닭 한 마리에 3만원이나>

어느 롯지에서 있었던 일. 하루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이 마을에서 닭을 한 마리 먹을 계획이었지만 닭을 사지 못했다. 닭 한 마리에 우리 돈으로 3만원 정도를 달라고 했다.

닭 한 마리가 왜 이렇게 비싼지를 셀파에게 물으니 이 집에서는 한국사람들에게 닭을 팔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3만원을 받고 팔았기 때문에 우리한테도 그 정도를 달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트레킹 중에 이러한 일을 몇 번 접했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마음이 좋아서 그런지 돈을 생각 없이 쓰는 것 같다. 다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것은 고쳐져야 할 것이다. 포터나 셀파에게 팁을 준다 해도 너무 많은 돈을 주게 되면 다음 사람이 또다시 그 정도 돈을 줘야 그들을 고용할 수가 있다.

내가 고용한 셀파는 나와 같이 칼라파타르, 아일랜드 피크, 메라피크에 이어 네 번째 같이 등반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포터들은 처음이지만 그들은 이미 한국사람들과 한번 이 코스를 가본적 있다고 하는데 역시 돈을 많이 달라고 한다.

과거 한국사람들과 갈 때 내가 주려고 하는 돈보다 조금 더 받고 갔다고 한다. 나는 이 셀파와 처음 일당 계약을 할 때 300루피로 계약했지만 다른 한국사람들은 안내를 통해서 오면 하루 일당이 셀파는 30불, 포터는 20불 정도로 계약을 한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팁을 줄 때도 그렇듯이 이런 마찰이 가끔 생긴다.이곳에는 셀파들의 훈련장이 있는 곳이 잇다.

안나푸르나3봉을 지나면 깊은 계곡이 있는데 네팔 셀파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이곳에서 한 달간 아이스클라이밍 훈련을 받아야 하고, 암벽등반은 카트만두 서북쪽에 위치한 바위에서 한달간 훈련을 받아야 한다.

네팔 셀파들은 트레킹 셀파와 아이스클라이밍 셀파(원정대원 셀파)로 나누어져 있다. 트레킹셀파는 트레킹루트를 잘 알아야하고 원정대에 참가하는 셀파들은 아이스클라이밍 훈련과 암벽훈련을 거쳐서 셀파가 된다고 한다.

지금 같이 동행하는 셀파는 트레킹셀파이다. 그와 아일랜드봉에 같이 갈 때 다와다망이라는 셀파와 같이 간적이 있는데 그는 2000년도 한국원정대화 함께 칸쳉중가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셀파와 다와다망셀파는 고향 친구사이였다. 셀파들은 거의 고향이 같고 트레킹 코스마다 고향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많다. 나는 이 코스를 마치고 난 후 셀파들의 고향인 탑딩으로 갈 예정이었다.

일정과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주변으로 하얀 산봉우리가 갈수록 가까워지는 마을들이 눈앞에 보인다. 피상마을 위에는 피상피크가 우뚝 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 마낭으로 가는 길은 먼지 바람 사이로 사막으로 가는 느낌을 준다.

나는 마낭에서 이틀을 쉬어갈 예정이다. 이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가 좋은 마을이었다. 옆으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펄쳐 있다.

이 마을에 들어서자 마자 롯지를 정하고 오늘은 양을 한 마리 먹기로 하고 셀파에게 부탁을 했다. 다음날 아침, 양 한 마리를 잡아서 일행과 몸보신 겸 파티를 열었다. 고산지역에서 사는 양이라서 인지 고기 맛이 아주 좋았다.

이곳은 해발3,500미터 고도를 지나는 마을로 매우 큰 마을이었다. 이 마낭마을은 트레커들이 고소적응과 쉬어 가는 마을로 병원과 전화국도 있었다. 또한 유럽사람들이 운영하는 자원봉사단 진료소까지 있는 곳으로 매일 오후 3시경에는 토룽피크 설명회가 열린다.
이 마을을 지나면 토롱피크 등산이 시작되는 곳으로 가파른 언덕길을 넘으면 눈앞에 토롱피크가 보인다. 뒤를 돌아보면 안나푸르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4시간 정도를 더 가면 롯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일교차가 매우 심하다.

이곳을 지나 베이스캠프까지는 고소적응을 못해 하산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이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베이스 캠프에서 하이캠프까지는 해발 200미터 정도의 고도차가 난다.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간단한 점심과 차 한잔을 마시고 오르기 시작한지 2시간 정도 만에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그곳은 하얀 눈으로 쌓여 있었다. 오늘 하루는 하이캠프에서 저녁햇살에 물드는 저녁을 맞이한다. 다음날 아침 5시에 출발시간을 정해두고 잠이 들었다.

<토롱피크 정상에서 느낀 허무감>

아침 일찍 일어나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외국팀들은 이미 출발한 것 같았다.
나는 약속대로 5시에 아침을 먹고 셀파와 함께 출발하여 5,415미터의 정상에 도착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컨디션도 아주 좋은 상태다. 정상에 오르고나니 허무한 느낌이었다. 다울라기리봉들이 한눈에 보인다.

기회가 되면 꼭 오르고 싶은 다울라기리를 눈앞에 두고 하산을 시작했다. 토롱피크를 뒤에 두고 묵티낫트에 도착하니 이곳은 또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또 하루가 저물었다. 묵티낫트느 성지가 있고 티벳 절과 셀파들의 절이 있는 마을로 셀파들의 절안에는 옛날부터 가스가 나오고 있었고 그 위로는 찬물이 흐르는 신비감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묵티낫트를 출발하여 칵베니 쪽으로 내려오면서 히말라야가 예전에 바다였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마을을 지났다. 군데군데 하얀 소금기가 있는 갯벌과 비슷한 땅을 지난다. 갯벌토지를 지나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 칵베니에 도착했다.
칵베니에서 좀솜까지는 넓은 강줄기로 이어지는데 이 강은 지금 건기철이라 물이 아주 조금 흐르고 있다. 우기철에는 무스탕쪽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넓은 벌판을 호수처럼 만든다고 한다.

좀솜 공항에서 포카라까지는 항공료 60불에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나는 이 공항을 이용해 포카라에 도착하여 간두릉난두릉을 두 번째 방문하고 다시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하루 휴식을 취하고 경비행기로 셀파마을인 파블룽에 도착하여 탑딩이라는 셀파들의 고향을 찾아가 보았다.
이곳사람들은 너무나 힘든 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표정과 마음은 언제나 즐거움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곳에 찾아 갈 때는 우리나라 시골 가는 마음으로 편하게 갔지만 한 마을을 넘기위해서 하루종일 걸어야 했다. 셀파의 집은 전기도 없이 밤에는 달빛에 의존해 살아가야 했다.

그 모습이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산 생활의 그 모습이 40년 전 내 어린 시절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이번 히말라야.토롱피크등정기는KBS세상은넓다 에서 12월9일 10일 이틀 동안으로 기록을남기고있다.

이번등정기는 홉페이지.보도기사 .KBS세상은넓다 에서다시볼수있다 ..

쏘롱라를 넘을시간적인여유는 최소한 16일정도를 잡으셔야할것으로생각합니다..2009년현재는 배시사하르에서 물부레를지나서 까지 뻐스가 통행하고있습니다..하지만 바운다라는 들리지않고  지나 건너편 길로 차다니는 길이한참 공사중에있습니다 참고하세요..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6-21 1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