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泰山)에 오르고 싶다
 
   
 
한국 사람들 중에 태산(泰山)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아마도 양사언(楊士彦)의 시조(時調)가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메만 높다 하더라.
 
이 시조가 교과서에 실린 것은 학생들에게 노력의 보람을 일깨우는 교훈적인 내용과 함께 "초장: 3, 4, 3(4), 4/ 중장: 3, 4, 3(4), 4/ 종장: 3, 5(5~8), 4, 3"으로 된 시조의 음수율(音數律, 외형률)의 모범으로 그 숫자에 맞추어 쓰는 것이 시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양사언(楊士彦)은 중종 ~선조 시대를 살다간  분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 삼등현감, 평창군수, 강릉부사, 함흥부윤, 금강산 회양군수 등 당시 관리들이 꺼리는 외직(外職)인 지방관리(地方官吏)을 주로 역임한 것을 보거나, 그의 호(號)를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인 '봉래(蓬萊)'라 한 것을 보면 자연과 산을 좋아하던 성품이었던 분 같다.
금강산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그의 글씨 '蓬萊楓嶽元化洞天'가 전해 오고있다.  그는 안평대군(安平大君), 자암 김구(金絿), 석봉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서예가(書藝家)의 한 분이었던 것이다.
다음은 그 세 분 중에 김구(金絿) 선생이 지은 시조다.
 
올해 댜른 다리 학긔 다리 되도록애  ; 오리의 짧은 다리 긴 鶴의 다리 되도록
거믄 가마괴 해오라비 되도록애   : 검은 가마귀 하얀 白鷺 되도록
향복무강(享福無疆)하샤 억만 세(億萬歲)를 누리소셔. : 끝없이 福을 누리시어. 억만 년 장수하소서
 
위 시조는 자암 김구가 젊어서 궁중에서 수직(守直; 숙직)을 하고 있을 때 김구의 낭랑한 책 읽는 소리에 산책 나온 중종이 이를 듣고 김구에게 와서 술상를 차려 술 한 잔을 권하면서 시 한 수를 지으라 할 때 지어 부른 즉흥 시조다.
자암 김구보다 양사언(楊士彦)은 30세 아래로 같은 시대 사람인 것을  보면, 그의 '태산이 높다하되~' 시조도 김구와 교류하며 시조를 익힌 솜씨 같다. 
양사언이 시조를 자세히 살펴 보면 공자(孔子)와는 달리  태산을 직접 올라가 보지 않고 쓴 것 같다.
"登東山小魯 登泰山小天下(등동산소노 든태산소천하)"라고 '동산에 올랐더니 노나라가 작게 보이고 태산에 올랐더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라고 갈파한 공자의 고사(古事)나 다음과 같은 속담(俗談)을 듣고 쓴 글 같다. 

"걱정이 태산(泰山)이다.”,
"산(山)이 흙 마다 않는다.",
"태산(泰山) 명동(鳴動)에 서(鼠) 일필(一匹)": 소문은 야단스럽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다.
"태산(泰山)을 넘으면 평지(平地)가  된다.":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
"태산북두(泰山北斗)": 태산과 북두칠성처럼 뭇사람이 우러러 받드는 사람.
"태산압란(泰山壓卵)": 큰 산이 알을 누른다는 뜻으로 큰 위업으로 여지 없이 남을 억누르는 것 비유
"티끌모아 태산’: 적소성대(積小成大). 조그마한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된다.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떠 올리지 못하여 태산을 이루지 못했다.’:유종지미(有終之美) 강조

실제의 태산(泰山)은 봉래 양사언 선생이나 우리들의 생각하는 태산보다 그리 높지가 않은 산이다.
백두산(2,744m)은 물론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태백산(1,561m)보다 낮고 높이가 오대산(1,530m)과 비슷한 산이다. 태산의 최고봉인 옥황정(玉皇頂)이 1,545m에 불과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산의 등반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남천문(南天門)을 지나면 천가(天街)라는 하늘길이 있다는데 거기서 굽어보면 화북평원(華北平原)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 평원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버스를 타고 5~6시간을 달려도 평야의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에 우람스럽게 우둑 선 산이 태산泰山)이라 한다.
그 평원이 해발 25m라고 하니 한국 대개의 산처럼 산의 중간 이상에서 오르는 산이 아니라, 울릉도 성인봉(聖人峰, 983.6m)처럼 산의 바닥 가까이서 오르는 산이기 때문이다.
태산지도한자 001.jpg
태산 매표소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태산을 오르는 계단이 나타난다. 이를 지나 중천문(中天門)을 향하여 오르면 그곳까지의 계단 수만 하더라도 화강암으로 조각하여 만든2,399 계단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녀 반질반질하게 윤이난다고도 한다. 
중천문에서 남천문(南天門)까지가 태산 등반에서 가장 어렵다는 급경사 지대로 거기의 계단수만도 3,296개로 태산의 정상인 옥황정까지 총 6,366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모양이다.(중국태산홈페이지)
아내는 '당신이 이팔청춘이냐. 무릎을 아예 망가뜨리려고 작정을 한 것이냐, 그 나이에 왠 고집을 그리 부리느냐"고 펄펄 뛰며 만류하지만 나의 태산 등반은 뜻있는 중국인들처럼 오랫동안 별러오던 숙원(宿願)이었다. 
그래서 나쁘게 말하면 '고집(固執)'이지만 좋은 말로는 '의지(意志)'라고 다짐하며 요즈음은 밤 늦도록 태산(泰山) 자료 수집에 태산에 심취하고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 예로부터 전해 오는 말에 '태산에 오르면 10년 젊어진다고-.' ,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 준다.' , '100세까지 산다.'고 하니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면서-.
나는 66세와 74세에 '지리산 산행기'를 쓰기 위해서 25kg의 배낭을 메고 지리산 단독종주(單獨縱走)를 한 경력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가장 오래고 늦게 한 종주(縱走)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늙은 팔순(八旬)을 1년 3개월 앞둔 나이라서 은근히 걱정은 된다. 그러나 현재는 미래 나의 어느 때보다 가장 건강한 때라 생각하고 망설이지 않겠다.
나의 여행(旅行)은 가기 전에는 부지런히 자료를 모으며 예습(豫習)을 하고,  현지에 가서는 열심히 자료 수집과 카메라 찍기에 누구보다 열중하며, 돌아와서는 이를 종합하여 여행기(旅行記)를 쓰는 것이 일과(日課)다.
이를 수십년 반복하다 보니 나는 각분야에 조금은 도(道)가 통했구나 하고 자위해 보기도 한다.
도(道)란 어느 분야의 모르는 세계에 익숙해지는 경지(境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태산(泰山)에 가고 싶다.  그 태산에 가서 내 온 정력을 다하여 오르는 행복한 고행(苦行)을 하고 싶다.
공자가 태산을 올랐다고 하지만 공자(BC 552~479)는 74세까지 사셨으니 당시 70세는 지금의 100세보다 더 장수한다 생각할 때이니, 공자가 태산에 오른 것은  아마도 50대 후반일 것이다.  그 공자보다 더 많은 나이에 태산과 그 근처 있는 노산까지를 오른다고 하니 우리 나이에 이 어찌 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ilman의 태산 등정은 10월 중순으로 예약하여 놓았디/  시작(始作)은 반(半)보다 더 목표에 가까이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멋진 산행기를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