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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5. 화.  맑음 ( 제3일 - 킬리만자로 마웬지산장 고소적응 ) 

 

오늘은 짧게 마웬지봉 갈림길 까지만 갔다 와서 자며 적응의 시간을 갖는 날이므로 시간에 여유가 많았다

 

오늘도 04:40 기상, 05:00 산장을 출발하여 마라톤으로 어제 올라온 길을 뛰어 내려갔다 돌 투성이에다가 걸리는 곳이 많아 조심조심 뛰어야 했고  오늘은 이렇게 이른 시각에 불을 밝히고 내려가는 포터들이 어제보다 더 많았다.

 

“ 잠보~” 하고 인사를 건네면 그들도 “ 잠보~” 하며 화답을 했고 “ 아엠 어 코리안. 코리안 잠보 이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 하면 “ 안녕하세요 ?, 코리아” 라고 대답해 주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해서 추월하며 내려갔으나 25 분 정도의 시간에 생각 했던 것처럼 점심 먹는 쉼터 까지는 가지 못했다.

 

돌아가기로 했다.  1 시간 정도만 운동 하기로 했고 그 시간에 맞추어 출발한 거니까 ...

많은 포터들과 인사를 나누며 일일이 ‘코리아’를 심어주고  걷다 뛰다 하며 올라왔다

정권쿠샵 20, 체조와 냉수마찰을 하고 나니 몸이 아주 가뿐했다

샘터에 서 있거나 일을 하던  많은 현지인들이 나를 보며 ‘ 코리아, 코리아’를 불러 주었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웃어 주었다.

 

08:00  호롬보를 출발하여  마웬지봉 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쉼터가 있었다.



대원들을 기다리며 쉬자니 아르샤드가 서둘러 쫓아 올라와 함께 쉬면서 앞의 줄무늬 형태의 바위를 가리킨 뒤 갈빗대 부위를 가리키기에 동물모양의 바위 또는 갈빗대를 닮은 줄무늬를 설명하려나 보다 짐작 했는데  김헌용 대원이 공부해온 바에 의하면 그게 얼룩말 바위란다


이후는 별로 헷갈릴 길이 없다고 하므로 앞서 올라가 쉬기로 했다.

지나치게 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가다보니 이젠 앞에 사람이 없다.

마웬지봉 갈림길 이정표까지 주욱 올라가 쉬자니 대원들은 한참 있어야 올 것 같았다



마웬지봉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어 보니 영국 런던에서 왔고 여기서 마웬지헛 까지는 한시간 거리란다.



얼른 갔다 오고 싶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그냥 키보봉이 잘 보이는, 그리고 그 능선을 넘으면 일부는 내리막이 있다고 생각되는 5 분 거리 앞의 능선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듬성 듬성 화산암이 서 있는 그 곳에는 계절이 몇 번 바뀌도록 이 킬리만자로를 사랑하다가 산화한 어느 여인을 추모하여 가족, 친지들이 세워 놓은 동판이 있었다



이곳에서 키보봉과 그리로 가는 사막길이 길게 펼쳐지는 정경을 카메라에 담고는 이정표로 되돌아 내려 가서 대원들을 기다렸다



대원들도 그 능선까지 갔다 온다고 했다. 

나는 또 올라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마웬지 헛을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르샤드와 갔다 오란다

여기를 힘껏 채자니 비로소 목이 말랐다

참을까 하다가 고소증이란 놈을 염려하여 물을 마셔 두었다.

30 분에 올라선 마웬지 산장은 그냥 움막 같은 창고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키보봉이 멋있게 보이는 바위위에 올라가서 그를 배경으로 그리고 가깝게 다가와 있는 마웬지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찰떡파이, 초콜릿 등을 나눠 먹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뛰어 내려가니 아르샤드도 열심히 따라 왔다.

 14 분만에 갈림길 이정표앞에 도달 했으나 대원들은 능선에 갔다와서 하산을 시작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계속 뛰어 내려가니 5 분도 안되어 만날 수 있었다

나 때문에 안 가도 될 마웬지 헛까지 올라 갔다가 뛰어 내려오게 된 아르샤드에게는 약간의 팁을 주었다


주로 마웬지봉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으며 내려와서 시원한 맥주를 즐기기로 했는데 다들 고소걱정에 조금씩만 받아서 내 몫이 많이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저녁식사까지는 자유시간 이었는데  다들 고소증상으로 어렵고 피곤하다며 잠을 잤으나 산행시간도 짧았고 낮에 자면 밤에 깊은 잠을 이루기 어려울까봐 나는 자지 않고 책을 보았다. 

 

주 가이드 샤베즈가 우리에게 와서 뭐라고 얘기하며 토하는 흉내를 내는 것으로 보아 체했거나 고소증상 때문인 것 같았는데 내가 사혈해 주느냐고 물으니 커다란 덩치에 안 어울리게 겁을 내고 싫단다

우리가 준비해온 약을 주었다. 오늘밤 자보고 정 안되겠으면 내일 하산 한단다

 

우리 대원들도 약을 먹는 사람이 늘었다.

김 형옥씨는 수지침과 사혈의 효과를 알고 원했기 때문에 체증에 대해 사혈을 해주고 그것과 멀미증상 호소에 대해서 서암봉으로 기맥보사를 해 주었다

 

“오늘밤 자고 나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세요. 병의 반은 환자가 고친다는 말이 있어요”

‘어느 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한 약은 떨어지고 없어 급한대로 소화제를 먹이면서 당신은 이제 약을 먹었으니 꼭 나을 거라고 믿음을 주었고 그 환자는 증상과 관련없는 그 약을 먹고 실제로 병이 나은 실화도 있었다’

그런 얘기들을 들려주고 “내일 아침이면 거뜬해 질거라는 자기암시를 걸으세요”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서암봉으로 기맥보사만 해 주었다

 

그리고 나가서 찬물로 머리 감고 등멱도 했다.  몸이 한결 개운해졌다

 

오후에 시간이  많이 나니까 대화의 시간도 많아졌다

대장이 영어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역설했다

‘ 김 계장님을 보라. 문법이나 스페링이 전혀 안 맞지 않는가 ?  그런데도 열심히 떠들어보고 대화를 할려고 노력하니까 조금씩이나마 의사소통을 해 가고 있지 않은가 . 사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단어는 그리 많은게 아니다중요한 건 자꾸 입 밖으로 내어 말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 지금은 정말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느끼고 있겠지만 막상 집에 돌아간 뒤에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소홀해지거나 잊고 만다.  직장의 분위기도 좀 문제가 있다

언젠가 외국인이 왔을때 농업기술센타를 제대로 통역하지 못해서 애를 먹은 일이 있었다

평소에 영어를 활용할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 되어야 하고 공부하려는 사람을 도와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산체험을 통하여 배울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데에도 인색한 편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본인의 노력이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공부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

 

우리의 식사습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외국을 많이 나가 본 대장은 여러나라의 식사문화를 접해볼 기회도 많았는데 결론적으로 한국인은 식사를 너무 급하게,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는 대화도 없이 일어 선단다

외국은 식사에 기본이 1 시간 이상이고 천천히 먹으면서 대화도 많이 갖는다

저녁을 무려 6 시간 이상 먹는 것을 본적도 있다. 그들이 절대 많이 먹는건 아니다

술도 1 병을 갖고 여러명이 둘러 앉아 몇시간씩 마신다. 심지어 먹다 남기고 다음에 와서 마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 ’

 

저녁을 먹고 나서 단장, 대장, 나 이렇게 셋이 앉아 여유를 갖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생겼다

그들은 산행경력이 20 년 이상인 베테랑들이고 나야 이제 겨우 6 년의 초보였다

산행경력 불과 6 년에 킬리만자로 등정에 따라 나선 나는 성공한 거란다

 

“ 처음 간 산은 어디세요 ? 산에 다니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  다녀보시니까 어떤 점이

 좋던가요 ?”

 

“ 99 년 봄 영월 김 삿갓 묘 앞의 곰봉이 첫 산행 이었지요

동기요 ? 글쎄, 나는 산이 좋기도 했지만 운동으로 다니기 시작했어요.

99 년 우연히 지마회의 산행에 따라가게 되었고 거기서 이 연규씨를 만났으며 그가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고 자랑하고 좋다며 산꾼이라면 한번 해볼만한 거라고 권유 했고 그해 가을에 산행경력 30 년이 넘었다면서도 엄두를 못내고 있던 회장등 두 사람을 이끌고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 했지요.

종주산행의 최대 난관은 독도와 무거운 짐인데 내가 해결해 준다고 했어요

  

백두대간 종주에 이어서 정맥종주를 함께 할 사람을 찾았으나 생활정보지 등에 광고를 내어도 동반자를 찾을수 없어서 낙동정맥은 단독으로 종주했고 다른 정맥들은 서울의 동반자를 만나 함께 했어요

 

열심히 했지요.

보통 새벽 4-5 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아침 먹기 전에 서너시간은 걸었고 하루 12 시간은 기본으로 걸었는데 종주구간이 저 한강기맥 두로봉에서 운두령 구간처럼 14 시간 이하로는 끊을데가 없고 만약 중간에 억지로 끊어서 탈출하면 내려서는데 4-5 시간, 다음에 이어갈 때는 그 끊은 자리로 올라가는 접근시간만도 6-7 시간이 걸려 웬만한 산악회의 하루 산행거리가 되기 때문에 길게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많았어요

 

또 짧게 끊고 내려오면 그만큼 여러번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먼거리 어떤 곳은 도달만도 6 시간, 즉 왕복 12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곳을 자주 간다면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종주를 하다보면 재를 기준으로 구간을 가급적 길게 끊게 되지요

 

발로 직접 걸으면서 우리나라의 산줄기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고 드디어 작년초 남한의 10대 산줄기인 1대간 9정맥 종주를 마무리 했어요.

가볼수 없는 북한에는 허리 잘린 백두대간과 두만강가의 장백정간, 그리고 4 개의 정맥이 더 있으므로 한반도 전체에는 1대간 1정간 13 정맥이 있는 것이지요”

 

대장이 거들었다.  자기도 정간 하나가 두만강가에 있는걸 알고 있단다

 

“그때까진 다른데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고 시청에서 새천년 맞이 시계종주를 하는줄 알면서도 참여하지 못했으며 그게 아쉬워서 작년에는 단독으로 시계종주를 마쳤지요

 

커다란 계획을 가지고 강력하게 밀어 부쳤던 남한의 산줄기 종주가 끝나서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월악산 등 전 같으면 아침운동꺼리 밖에 안되는 3-4 시간 짜리 산행도 따라 다니고 그 지역의 소문난 음식과 온천도 찾아 다니게 되었지요

사실 산행후 어차피 땀은 씻어야 하는데 다녀보니 온천요금이 목욕탕과 같거나 더 싸더라구요

 

아직도 백두대간과 정맥을 모르고 산맥이란 단어를 쓰거나 우리나라의 지리역사 교과서가 수정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워요

그래서 가끔 내게 정맥등의 산행자료를 부탁하거나 한국의 산줄기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발로 걸은 산행기나 내가 발췌, 정리해 놓은 대간과 정맥 자료를 보내주곤 하지요”

 

외국인에 비해 한국인들은 식사시간이 너무 짧고 급하다며  만들어진 오늘 저녁 산장에서의 시간은 좋은 대화분위기가 형성 되었고 내게 이런 말을 할 기회를 준게 고마웠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혹 아직 바른 한국의 산줄기에 대한 윤곽이 잘 그려지지 않거나 일제시대 치욕스런 역사의 산물인 ‘산맥’ 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우리 선현들이 이미 밝혀놓은 백두대간, 장백정간, 13 정맥등 바른 우리나라 산줄기 이름으로 교과서가 수정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분들을 위해  한국의 산줄기 자료를 따로 붙이기로 한다

 

답변삼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 산에 다니면서 배운점, 많지요.  우선 산은 대자연으로서 참으로 웅장하고 위대하며 상대적으로 우리 인간은 작은 존재라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강인한 탐험정신을 가지고 극지등을 탐험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적당치 않겠으나  그래도 크게 보면 산만 해도 하늘이 길을 열어 주지 않으면 그 진면목을 볼 수도, 오를 수도 없는게 산이라고 생각해요 . 큰 산에 갔다가 날씨가 나빠 조망을 못 보거나 정상을 못가는 사람도 많잖아요.

 

또 날씨가 나빠 설산 산행중 눈보라가 몰아치고 눈사태가 내려 덮이면 한 순간에 사람들의 목숨이 날아 가잖아요 ?.

 

따라서 살아가는 주변에서 작은 것을 가지고 남과 아웅다웅 다투며 심지어 남을 비방하고 모략하며 해롭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먼저 사과할 줄 알며 좋게 살아야죠

힘이 있으면 그런 대자연에 도전해 보거나 외국에 나가 외국인과 싸우거나 외국을 점령하지, 그런건 못하면서 가장 사이좋게 지내야 할 만만한 제 동료,이웃, 제 동포를 물고 뜯고 못살게 굴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

  

평소 12 시간이면 갈수 있는 코스가 어쩌다 폭우라도 퍼붓거나 눈이 푹 쌓인 날은 18 시간씩이나 걸리거나 아예 목적지 도달을 포기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거든요

글쎄 용두산-감악산 왕복에 4:40 hr 면 되는 내가 어느 겨울 눈이 무릎이상 빠지게 쌓였던 날 용두산으로 올라 피재점까지 가려 했는데 러셀을 하다하다 지쳐서 피재골 약수터 맞은편 능선으로 탈출한 적도 있었어요

 

산에 다녀 보니까 좋은 점은 많았어요.  위와 같은 점을 배우고  맑은 공기가 있고 잡념이 사라지고 건강해 지며 동심으로 돌아가 있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지요 ”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대장과 단장도 좋은 말을 들려 주었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고 한 사람의 이야기,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자연을 음미하며 즐기는 산행등......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호롬보 산장에서의 2 번째 밤이 깊어갔다

산행 사진등은 제 카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