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의미 있는 칠순기념 해외여행

여행지: 북경.> 고궁박물관.> 용경협. >만리장성.> 왕푸징거리. >시내야경. >

           토문강(두만강). >용정중학교. >일송정. >만주벌판 >백두산

일   시: 2007.8.13~8. 17일까지(4박5일)

인   원: 조응구(70세) 처하자(66세) 조남규(42세) 임은주(43세) 조은비(15세) 조정연(11세)

내 칠순을 맞으며 큰아들 내외와 자식들이 칠순기념으로 외국여행을 하겠다고 몇 년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서 드디어 오늘 출발이다. 아침 6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어 어린 아이들과 긴 여행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아는 일이라 걱정이 많이 된다.

올해 70세를 맞는 나는 아들 삼 형제를 두고 첫째와 둘째는 결혼을 해서 첫째에 손녀와 손자 둘째는 손자만 둘이다. 딸이 없는 터라 딸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있었지만 큰 아들네 손녀가 하나 있어 다행이다. 아직 막내아들이 미혼이라 걱정이 많이 되지만 직장이 있으니 이전처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결혼을 했으면 지금쯤 내 마음이 얼마나 편할까 하고. 비 내리는 창가에서 잠시 걱정 썩힌 생각으로 창을 바라보다.

아내의 들뜬 마음으로 재촉하는 모습이 소풍가는 어린아이같이 보이기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쁨마음으로 짐을 같이 꾸려, 우산을 쓰고 큰아들 집으로 가서 공항에 갈 12인승 밴이 기다리려 짐을 차에 싣고 귀여운 손녀 손자와 손을 맞잡고 함께 차에 오르니 곧장 내부순환도로에 진입 촉촉이 내리는 빗줄기를 가르며 질주하여 자동차는 한 시간 정도 걸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을 했다.

공항에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예약한 남방항공사 비행기 매표소에서 짐을 탁송하고 비행기 표를 구입해서 검색대를 통과 보세구역으로 들어서니 11시이다.

47번 게이트에 북경행비행기 출발시각이 13시 10분으로 표시되어 있어 2시간 10분을 기다려야 하겠기에 우리는 각자 보세 구역 내에서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았으나 나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시중가보다 별로 싸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인천국제공항은 이전에 인천시티투어를 타고 송도. 영종도. 구경하면서 겉으로 지나치긴 했어도 비행기를 이용하려고 들어온 적은 처음이라 이렇게 넓은 줄은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었기에 더욱이 입이 딱 벌어져 정신없이 헤매다가 중간에 며느리와 손녀 손자를 만나서 게이트로 돌아오니 12시 30분이라 비행기 탑승준비를 하고 있어 줄을 섰다. 탑승을 하니 비행기는 정시에 활주로에서 10분 정도 비행할 준비를 맞히고 엔진이 굉음을 내며 비행을 시작하니 내 가슴이 울렁거림이 느껴져 온다.

아침부터 긴장한 탓인지 한 시가 지나니 시장기가 드는데. 비행기 고도가 안정되니 그때 기내식이 나와서 보니 적은 양의 밥과 빵 한쪽을 주어서 먹었다.

이내 잠이 들어 곤하게 자고 나서 눈을 뜨니 어느새 북경(北京) 상공이다. 비행기에서 착륙 안내 말과 함께 “북경 밖 기온은 32도이고 날씨는 청명합니다.” 하였다. 서울에서는 비를 맞으며 출발을 했는데. 날씨는 더워도 비도 안 와서 밖을 나오니 습도도 없어 후텁지근하지 않고. 날씨라 청명하여 기분이 상쾌했다.

 

국제공항을 나오며 13억 인구의 큰 나라 중국 북경국제공항이 우리나라 인천국제공항만 못함을 느끼며 톨게이트를 나오는데 선진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마저 느껴지는데. 가이드가 차은비란 팻말을 들고 잊어 바로 찾기는 했지만 손녀의 기분이 별로 안 좋은 표정이다. 도착시각이 예정보다 늦어져서 시간에 쫓기어 가이드의 권유로 예약한 12인승 승합차(도요타)로 바로 관광을 시작하여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가는데 손녀가 골이 많이 나 잊어. 며느리가 달래고 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팻말에 조은비를 차은비라 썼다 하여 기분 나쁘다고 한다며 며느리가 차씨는 할머니 성이니 할머니 딸 하면 되지 않느냐고 농으로 손녀를 달래며 웃고 넘겼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 북경시내 운영되고있는 전기용 육상전철 

짐을 차에 실은 체 북경 중심가에 있는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을 한 사람당 입장요금: 60원(한화: 7.800원)을 주고 입장하여 보니 명나라와 청나라의 궁궐 자금성(紫禁城)은 25명의 황제가 500년간 집정했던 황성건물답게 고궁의 웅장함과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오문(午門)과함께 천안문(天安門. 쯔진청)은 자금성의 정문(正門)이라하며 가는 곳마다 웅장함과 수려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정말 아쉬운 것은 제한 없이 밀려드는 관람객이 서로 뒤엉켜 비켜설 수 없을 정도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어 답답할 정도이고 이로 말미암아 관리 소홀로 먼지가 가는 곳곳에 많이 쌓여 역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돈에 우선순위에 밀려 훼손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보였지만. 역사에 흔적 속에 매료되어 은비. 정연이가 잘 오고 잊는지도 모르고 까먹게 잊고 있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아들. 며느리 손을 잡고 잘 오고 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궁박물원 건물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궁박물원내에 자연석위에 지어진 건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궁박물원의  고굴건물 및 관람색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자금성내의 궁궐 건물과 인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자금성내에 황제가 앉아서 정치를 하던 자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서기 모택동의 사진이 걸린 천안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천안문 광장을 경비하는 중국군인 경비병

 현재 천안문광장에 모택동(毛澤東)사진이 걸려있고 청년 학생들이 1989. 6월에 민주혁명을 한 곳으로 세계의 제일 넓은 공공광장이며 1651년에 기획 건설되었다고 한다.

약 1시간 정도 구경을 했으나 서운한 것은 1976년 9월 9일에 공산당 주석 모택동(毛澤東)이 사망하고 시신(屍身)을 매장하지 않고 방부처리를 해서 건물 내에 전시하였으나 그동안의 긴 세월 속에 시신(屍身)이 많이 상하여 공개가 중단되었다고 하여 못 보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천안문광장 구경을 끝내고 시계를 보니 광장에 시계와 내 시계가 한 시간이 빨라서 확인해보니 우리나라보다 북경이 한 시간이 늦어 이제 17시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2008년 올림픽경기장모습

천안문광장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숙소(민박 아파트 21층)으로 이동을 하고 짐을 풀고 바로 주위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오리고기와 맥주 등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바로 베이징 중심가 명동(明洞) 야경을 보며 포장마차 거리를 돌아보는데. 장사하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우리나라 말을 정말 잘하는 것이다. “이것 맛있어요.” 한국에서는 없어요. 라고 위치며 그들은 눈치로 한국 사람을 가려내는데. 놀랄만한 수준이다. 물론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을 가도 일본사람이나 중국 사람을 잘 가려내고 그들 나라 말도 참말로 잘하는 것을 보아왔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 번화가의 야시장 음식판 포장마차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음식종류가 불가사리를 비롯하여 이름모를 곤충의 모습도 보인다

그곳에서 파는 음식메뉴도 참으로 다양하다. 불가사리부터 이름도 모르는 곤충 양고기 꼬치

을 거리에서 서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주저함이 없이 일회용 용기로 연인끼리 동요끼리 의자도 없이 서서 즐거워하며 먹는 길거리 음식문화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으로 옮겨 왕푸징(王府井)(*명동)거리로 들어서는데. 화려한 네온과 우글거리는 사람들이 13억 중국의 수도(首都)를 상징하는 베이징 중심거리답게 백화점이니 건물들이 화려함이 서울거리를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이다.

우리는 베이징중심거리를 두 량 연결된 개방된 관광차를 타고 순회하기로 하고 인민 화폐 한 사람에 15원(한화 약 1.950원)을 주고 타고 돌다 보니 중심가만 가로등이 있으나 겨우 어둠을 밝힐 정도일 뿐 답답하기까지 하며 중심가를 약간 벗어나니 가로등이 아주 없는 곳이 태반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른다는 나라가 전기사정이 이렇게 안 좋아서야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며 30여분을 돌아서 출발지인 왕부정(왕푸징)거리에 도착을 하니 야시장거리는 암흑천지였다. 사유를 물어보니 베이징야시장도 밤 10시만 되면 전기 공급이 단전된다고 한다.

10시 30분에 시내 야간 관광을 맞히고 차를 타고 오며 생각하니 1996년도 직장을 정년퇴임하고 보따리장사를 해보려고 천진(天津)과 북경(北京)에 시장조사를 하려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와는 시내 중심가가 몰라보게 발전하여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발전했다. 당시는 교통수단이라곤 우리나라 프라이드 같은 차에 퇴석하게 빨간 페인트칠한 영업용택시와 자전거 일력 거가 주종을 이루었다. 그런데 현재는 세계 각국의 자동차 전시장같이 고급 차도 많고 교통체증이 자주 이르나 관광하는데 짜증이 날 정도이다.

그리고 북경시내에 영업용차들은 현지제작한 우리나라 현대차가 많이 보여서 기분이 뿌듯했다. 더욱이 놀란 건. 공중화장실이 칸막이도 없는 노천화장실이 많았는데. 눈에 띄게 변하여 양변기 화장실로 개선되었다. 이는 바로 2008년도 올림픽 때문에 북경도 시내 여기저기에 수많은 타워크레인을 보니 고층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도시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차는 숙소 앞에 도착을 했고 숙소에 돌아오니 11시 30분이다. 우리는 샤워를 하고 12시에 취침에 들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9-04 1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