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다녀와서...


 

한민족의 출생과 한민족의 얼이 서려있는곳을 아직도 남의나라 중국으로 우회하여 가야만하는 南北분단의 슬픈 현실을 가슴에 안고 우리 愛山會는 4박 5일 일정으로 꿈에그리던 백두산을 다녀왔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우리(愛山會)의 족적을 남겨 훗날의 추억거리를 만들고, 그리고 처음가시는 분들에 조금 이라도 여행길잡이(여행정보)가 되지않을까해서 산행기라기보다는 여행기 형식으로 4박 5일을 정리해 본다.

 


 

  1일차 - 5. 31

(목) 


 

초등학교 학생시절이나 중년의 지금 아저씨 아줌마 마음이나 그저 소풍이나 여행은 마냥 가슴을 설레게 하는 위력이 있다.

  

여행 일주일전 우리 愛山會는 금년의 특별한 산행(여행) 의 일정을 체크하고 서로의 컨디션을 챙겼다.                                                                                                                                    ...

  

출발당일(5월 31일) 11:00까지 인천국제공항(3층A/B사이)에 도착 탑승티켓을 체킹하고 화물(1인당 가방1개정도)을 정리한뒤 대한항공(KE869)에 탑승 오후 1시에 공항을 이륙하여 현지시간 오후 1시 20분(중국이 한국시간보다 1시간 늦음)에 도착하여 마중나온 현지 가이드와 상견례하고 우리의 첫 행선지인 고구려 천리장성의 시발점이며 해안방어의 요지였던 비사성.유적지를 찾아 갔다. 
 

대련시 금주현성 동쪽 7.5km에 있는 비사성(卑沙城)의 규모는 둘레가 5km, 성벽너비3.3m, 높이 약 3~5m이며, 성문은 서남쪽 관문 입구에 있었다                                                                                                        ...

 

수나라가 당나라에 쳐들어 올때 산동반도의 동래에서 출발한 수군이 맨먼저 고구려군과 맞닥뜨리는 성이었다.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있어 서문으로만 오를 수 있었으며 현재 비사성안에는 당왕전(唐王殿), 서쪽기슭에 향수사(響水寺), 조양사(朝陽寺)와 관음각이 있으며 깎아지른듯 한 절벽과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관광명소가 되어있었다.
 

1시간 정도 관광한 뒤 300km의 도로를 약 4시간 정도 BUS로달려 단동으로 이동하여 국제호텔(0415-281-7788)에 첫날밤 여정을 풀었다.
 

이번에 함께하는 同行人들을 살펴보니, 퇴직교사들로보이는 중년층 7명과 부산에서 왔다는 스님일행 4명(남3명, 여1명), 그리고 60代중반으로 보이는 아줌마 친구분2명, 우리 5명 도합 18명이 4박5일을 함께할 가족들인것 같다.


 

2일차  - 6.1 ()


 

호텔에서 현지시간 5시에 모닝콜을 받아 기상하여 6시에 호텔식당(23층)에서 조식을 하고 7시에 BUS로 약 30분 정도 이동하여 고구려시대 염난수라 불리웠던 한국제일의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신의주, 위화도, 월량도를 조망하였다.

6.25때 폭격으로 끊어진 단동↔신의주간 철교는 역사를 뒤로한 채 새 철교가 연결되어 있어 북한땅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강건너 우리의 반쪽 북한땅에서는 아직도 우리나라 60년대의 남루한 옷차림의 우리 동포들이 무언가를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왔다갔다 하는 모습들과, 허름한 목선위에서 우리 유람선쪽을 훔쳐보는 모습들에 또다른 동포애를 뭉클하게 느껴보았다, 
 

유람선관람을 마치고 다시 BUS를 탑승, 약 2시간 가량 걸려 관전을 지나고 또다시 4시간정도를 이동, 환인에 도착하였다. 
 

이곳 환인에는 얼마전 온 국민을 들뜨게한 드라마 주몽에서 많이 보아온 오녀산성과 졸본성터를 뒤돌아보았다. 
 

졸본성과 오녀산성이 있는 환인은 마치 단군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름을 연상하게 하는 곳으로 우리에게 새롭게 조명되는 지역이다. 고구려의 5부족(계루, 절노, 관노, 소노, 순노)중에 계루                                                                                                                      

  

부족으로 주몽이 오녀산성에 터전을 잡기 전에 오녀산성아래에있는 졸본성에 있었으며 후에 오녀산성으로 새도읍을 정하였는데 본인이 오녀산성에 직접 올라가보고 느낀것은 지형적으로 그 당시에는 철옹성같은 요새라는 것을 한눈에 알 것 같았다 한다. 지금은 올라가는 계단이 일직선으로 설치되어 급경사에 가까웠고  

계단의 수가 무려 999계단이었다. 여기에도 후지산 황산과 마찬가지로 올라가기 힘든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벌기 위해  2인 1조의 현지인 가마꾼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돈으로 3만원정도를 받는다 한다.  

  

산성위에서 내려다보니 굽이굽이 흐르는 江이 보이는데 비류수(훈하강이라고도함)로서 우리나라 태극기의 중앙부 S자 모습으로 흘러 태극강이라고도 하고 있으며 안내판에는 우리나라 태극마크를 그려놓은 설명문이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높은 지형의 바위산 위에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었으며 주거할 수 있는 넓은 지역이 있었고 당시에 사용했다는 큰 연자 맷돌이 있었.다  이곳을 답사하고 드라마 주몽을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하며, 
 

다시 BUS로 약 2시간 정도를 이동, 우리의 숙소 (단동호텔 0435-390-6666)가 있는 통화에 도착하였다.  

저녁식사후 내일 백두산 산행을 위해 발 마사지를 받고 일찍(오후11시) 취침에 들어갔다.


 


 

3일차 - 6.2 ()


 

오늘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백두산에 올라가는 날이다.

호텔식당(1층)에서 식사를 하고,아침일찍 6시에 통화를

                                                                                

 출발 약 4시간을 달려 송강하를지나 백두산 서파산문에 도착하였다 

차창밖에는 백두산 山신령이 비구름으로 天地를 호령이라도 하는 듯 운무에 드리워져있고 간간이 빗방울도 차창을 때린다.  

서파에서, 중국에서 운영하는 전용BUS로 옮겨타고  울창한 활엽수들이 빽빽이 들어서있는 진입로를 약 10여분간 이동하니 수목은 보이지 않고 아직까지도 녹지 않은 하얀 설경의 백두산이 우리를 기다리는 듯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다시 10여분정도 올라 차가 더이상 오를 수 없는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많은 인파들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계단으

                                                                                                  

로  천지를 향해 오르기 시작하였다.

쌓인눈의 높이가 어느지점은 어른키2/3를 넘는 정상 가는길은,  

약 1,300여개의 돌계단으로 중국에서 관광객유치를 위해 최근에 만든듯 싶다.

 

약 30~40여분을 걸어 天池가 내려다보이는 국경표시대에 도착하니 이내 구름이 天池를 뒤덮어버리고 기온은 뚝 떨  어져 한겨울이었다.

처음 시작하던 곳과의 일교차가 약 15℃가량 낮단다.


 

드디어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는구나 하는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단숨에 능선에 서니 운무가 우리의 가슴을 헛가레 치게했다.

 

이옷 저옷을 번갈아 바꾸어입고 이포즈 저포즈, 앉아서 서서 부랴부랴 셔터를 눌러보지만 천지의 푸른물을 볼 수 없는 아쉽고 허전한 가슴은 채울수가 없었다.


 

백 두 산

ㅇ우리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 동부 최고의 산맥이다.

ㅇ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흰머리산”이라는 뜻이며, 250년전에 화산활동을 멈춘 사화산(死火山)에 속한다.

ㅇ백두산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으로서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이 자라고있어 국가급보호구에 속한다.

ㅇ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은 -8도로 연중 눈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

ㅇ천지의 둘레는 14km이며 천지주변에 16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중 7개는 중국영토에  9개는 북한영토에 위치하고 있다.

ㅇ따라서 백두산은 6月말까지도 눈이 남아있고 9月에 첫눈이 내리는 추운 곳이다. 그러므로 入山할 수 있는 기간이 6월말 ~ 9월초의 약 3개월 남짓이므로 앞으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시기안의 일정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백두산은 보여주었다.

감동이 어떻게 우리 가슴에 오는가를 백두산은 가르쳐 주고 있었다 
 

가볍고 경박한 탄성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가슴속의 무엇인가가 입술밖으로 흘러나오는 그런탄식!!

 

탄성과 탄식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백두산은말해주었다

꼭 한번 다시 오리라는 마음속에 각오를 다지며,하산 주차장으로 내려와 버스에서 점심(도시락)을 먹고 다시 40여분 정도를 이동하여 천지가 용암을 분출하여 만들어졌다는 V자 형태의 금강대협곡을 둘러보았다. 
 

풍화작용에 의해서 갖가지의 모양(마치 병풍을 둘러놓은듯한 풍경)을 한 바위들과 협곡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협곡이 글자그대로 너무 좁아서 사람들이 내려가기 역부족이다.  

백두산 서벽으로 가면 백두산의 또다른 일면을 볼 수가 있는 山行이 될 수 있어

2006년부터 개방된 山行코스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죽 돌아본 뒤 아침에 출발한 통화를 향해 다시 4시간정도 BUS를 타고 이동하였다.

 

숙소(만통호텔)에 오는길에 한인식당(북한식당)에 들려 저녁식사를 하고 피곤해진 몸을 어제 저녁에 받았던 발마사지를 다시 받고 숙소로 돌아와 취침에 들어갔다.


 

4일차 - 6.3 (日)


 

오늘은 고구려역사의 숨결이 가득한 유적지를 들려 다시 단동까지 내려가는 대 장정을 하였다.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으로 이동 우리 역사의 자존심인 광개토대왕비와 대왕릉, 동방의 금자탑인 장수왕릉을 보기위하여 숙소인 통화에서 BUS를 타고 2시간정도를 이동 집안(集安)에 도착하였다. 
 

광개토대왕릉비는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왕3년 (414년)에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중국 길림성 통화전구 집안현에서 동북쪽 약 4.5km지점의 태왕촌(太王村)에 있다. 
 

높이는 6.39m로 한국최대의 크기이며 너비는1.38~2.00m이고 측면은 1.35~1.46m로 불규칙하다. 
 

비의 머리부분은 경사져있고 대석은 3.35×2.7m이다. 네면에 걸쳐 1,775字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비문의 1면은 고구려 건국과정을, 2면은 광개토대왕의

 

 

 

정북전쟁업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3~4면에는 수묘제에대해 적혀있는데 수묘란 묘역을 지키는 것으로 의미된다. 
 

다시 광개토대왕릉으로 가보았다.

많이 훼손되고 무너진 상태라고 하는데 그래도 높이가14.8m나 되며 네모난 석실묘가 있는데 한변이 66m꼴인 바른네모 꼴이라고 하는데 네모 모양이 실감나지 않았다.  

봉분의 넓이만 4,360m2 (1.318평)이라 하였다.

무덤꼭대기에 관을 넣어 두었던 널방이 있었으며 머리를 조금 숙여야 들어갈 수 있었다. 널방은 관람객을 통제하기 위해 입구를 투명아크릴판으로 막아놓았다.
 

다음은 그곳에서 버스를타고 약 10여분거리에 있는 장수왕릉을 돌아보았다. 

왕릉은 화강암 표면을 정성들여 가공한 절석(切石)을 7단의 스텝 피라미드 형으로 쌓았으며 기단의 한변길이가33m 높이는 약 13m(아파트5층높이)이다.

정사각형의 하단에는 각면당 3개의 받침돌이 있고 받침돌 의 크기는 성인남성키의 2배정도, 정방형의 형태로 고고학적으로 천여개의 돌로 쌓은 적성총 돌무덤의 형태이었

 

  

으며, 인근에 딸린 무덤(고인돌형)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다시 약 20여분을 BUS로 이동하여 환도산성에 갔으나 BUS출입이 어려워 멀리서 위치만 확인하고 왔다. 
 

길림성 집안현에 위치하고 있고 유리왕 22년에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길때 위니암성이라는 이름으로 축조 하였고 198년(산상왕 2)에 환도산성으로 변경되었다.산성앞에 통거우강(通溝江)이 흐르고 있었으며 국내성이 내려다 보인다.

성벽둘레는 약 7km 동쪽성벽 높이는 6m이다.  

평지에 있는 국내성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이곳으로 피난하여 대적했다 한다. 
 

다시 약 10여분을 이동하여 국내성터를 돌아보았다.

집안시내에 있는 성벽으로 APT담과 지반을 받쳐주는


 

 

받침대역할을 하고있는 국내성은 시내를 돌아보면 자연히 보이게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국내성 바로 옆은북한땅이었다. 단숨에 뛰어가면 바로 북한땅, 국내성에서 바라보는 북한땅을 보니 속이 상한다.


 

바로 코앞에 두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관리조차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우리의

반쪽 북한!! 
 

유적지를 대강 돌아보고 우리 일행은 다시 BUS에 몸을 맡기고 약 5시간을 이동하며 단동에 도착하였다.


 

오는길에 평양출신 가이드(李宝坪)가 북한땅을 가장 가까이 가보겠다며 해평안땜에서 강물을 건너가려 시도했지만 마침 공사중으로 포기하고 아쉽게도 그냥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일이 생겼다. 
 

한국에서 업무차 급한 연락이 되도록 로밍을 해간 필자의 핸드폰에 급박한 상황발생시 바로 연락해주세요라는 문자 메세지가 우리나라 외교통상부로부터날아온 것 이었다. 우리가 북한을 가깝게 가려고 시도하려한 타임을 그렇게 절묘하게 맞추어 문자를 보냈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함 이다.


 

 

내려오다 구둘족들의 집안구조와 그리고 생활상을 보기위해 현지 민가애 들렸었다. 현지민들의 순박한 모습에서 역시 우리 人間은 나라만 다를뿐, 하나라는 동족애를 짙게 느껴보기도 하였다. 
 

단동까지의 길은 압록강과 同行하는 길이었는데 차창에 비치는 중국의 들판은 모내기하는 아낙들 모습뿐이었고, 끝도없는 옥수수 밭이었다. 그리고 북한의 山들은 거의 정상부분까지 개간한 민둥산이었다. 
 

단동에서 첫날 묵었던 국제호텔로 다시 들어가 내일 귀국을 위한 짐정리, 마음정리를 하고 간단한 소주파티를 하며 그간의 여정을 정리하다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5일차 - 6.4 (月)


 

모든일정을 끝내고 귀국하는 마지막날 이었지만,마지막날까지의 아침은 서둘러야 했다. 
 

우리가 귀국하기위에 탑승해야 할 공항이 대련에 있기에 단동에서 다시 대련까지 약 4시간이상을 육로로 달려야  했다.  
 

아무튼 아침 5시에 일어나 23층에 있는 호텔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6시30분에 단동을 출발, 비행기 탑승시간 때문에 대련 가까이가서 점심을 도시락으로 먹어야 했다.  대련공항에 12시 30분경에 도착.현지시간 14시 30분에 이륙하는 대한항공(KE870)에 탑승 인천공항에는 약 5시가 넘어 도착했다, 
 

백두산 그리고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보는 길고도 먼 여정 우리가 백두산까지 다녀온 거리가 대련에서 약 2,500km  32시간이상을 BUS로 이동하는 긴 여행이었던것 같다. 
 

우리 일행은 여행의 아쉬움을 뒤로한채 또 내년의 山行을 기대하면서 각자 해산했다.


 

 

 

여행기를 끝내면서...,

  

 3년째 함께하는 우리 愛山會다섯 모두 늘 건강하길  바램하며,  항상 이것 저것 챙겨주시는 큰형님한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후지산,황산,백두산까지 산행의 즐겁고 아름웠던 추억  영원히 간직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동반자로써 우리 들의 우정이 영원하였으면 합니다. 

                                                                         2007. 7. 7    - K.S.H -


 


 

대련에서 백두산 가는 길!

 

버스 이동 순환표

일차

이동

시간

이    동    구    간

32

 

1일차

4

대련(공항) ⇒ 단동 (국제호텔 0415-281-7788)

2일차

8

단동 → 관전(2), 관전 → 환인(4), 환인 →통화 (2)

3일차

8

통화 → 송강하 (4), 송강하 → 통화 (4)

4일차

8

통화 → 집안 (3), 집안 → 단동 (5)

5일차

4

단동 → 대련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