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산꾼의 히말라야 피크봉 등정기
    ( 메라피크 + 암푸랍차패스 + 아일랜드피크 연속등정 )
  
  
  안나푸르나, 랑탕, 에베레스트 지역으로의 트레킹 기본코스를 6차례 다녀온 후 내 머리 속에는 항상 눈덮힌 히말라야가 자리잡고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드디어 2007년 11월 01일 기회가 찾아왔다. 15년 경력의 베테랑 히말라야 사진작가 조진수씨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나에게는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내년 3월에 있을 ' 히말라야 사진전 ' 을 위해서 최종 확인차 50여일 간의 고된 사진촬영을 떠나는 길이었다. 히말라야 신들이 나에게 길을 열어주신 것을 직감하게 된다.
  
  대한항공 직항편에 몸을 싣고 약 7시간만에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했다. 고향에 온 것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짐을 찾아서 조진수 작가와 함께 공항 밖으로 나오니 언제나처럼 네팔 현지 사랑산 여행사의 희라지와 김이근 부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올 봄에 만났으니 약 8개월만의 재회이건만 오랜 벗처럼 반갑기가 그지없다. 낯익은 가이드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와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다보니 어느새 깊은 밤이다.
  
  제 2일째 카트만두에서 장비와 음식을 보충하였다. 서울에서 기본 트레킹 장비에 플리스틱이중화, 12발 아이젠, 장피켈, 하네스 등을 추가로 마련하여 장비는 추가할 것이 없었고 한달여간의 산행을 대비하여 음식물 보강에 주력하였다.
  
  제 3일째 버스를 대절하여 지리로 떠났다. 이번 산행 중 특이점 3개는, 첫째 지리-루클라 구간을 도보로 이동한다는 점, 두번째로 전 일정을 캠핑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라피크 등정 후 얌푸라차패스를 통해서 아일랜드피크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지리로 가는 길은 멀었다. 약 9시간이 걸렸으며, 점심은 중간에 가리조 마을에서 했다. 주변에 보테코시 강이 흐르고 있으며 풍경이 좋았다. 오늘의 목표는 지리(1,995m)이며 이곳에서 첫 야영을 하였다.
  
  
옛 쿰푸 트레일로 루클라 도착
   제 4일째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식사하고 8시 반에 드디어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2,330m 고지를 넘어 출렁다리 2개를 지나 도착한 곳은 시발라야 마을(1,770m)이다. 이곳에서 캠핑을 하였다.
  
  제 5일째 시발라야 마을을 출발하여 산바단다에 도착, 토속 요구르트 한 잔을 마시고 계속 진행하여 12시경 데우랄리(2,700m)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후 반다르 마을(2,190m)에 도착한다. 이 곳은 꽤 널찍한 초등학교도 있고 시장도 있으며 라마사원이 있는 깨끗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더 나아가서 노카르바 캠프에 도착 5일째 밤을 맞는다.
  
  제 6일째 노카르바 캠프를 출발하여 긴자 마을(1,630m) 체크포인트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4시경 세테마을(2,590m)에 도착해서 여정을 푼다. 루클라행 국내선이 생기기 전까지 쿰푸비역 셰르파들과 전세계 트레커들이 누구나 이용하던 코스였건만, 이제는 카트만두-루클라 국내선이 일상화되면서 쇠락해가고 있는 느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코스는 특히나 오르내리막이 많아 고도가 낮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소모가 많다.
  
  제 7일째 람주라 패스(3,530m)에 오른다. 오랜만에 보는 툭 트인 히말라야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힘들게 람주라 패스를 통과한 후 덕더르 마을을 지나 준베시 마을(2,680m)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저문다. 준베시 마을은 규모로 봐서는 남체바자르보다 더 번성했던 곳으로 보인다.
  
  제 8일째 탁신두 고개(3,071m)를 넘어서 탁신두 마을에 도착해서 하루 여정을 마친다. 큰 라마사원이 있는 마을이다. 오늘은 몸살기가 도는 게 한 걸음 옮기기가 몹시 힘들다. 아직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제 9일째 트레킹을 시작하여 10시쯤 풀라리의 외딴 로지에서 네팔티(치야)를 마시며 힘을 북돋는다. 좀더 진행하여 쥬빙 마을(1,680m)에 도착하니 동네가 타하르 축제로 분주하다. 네팔은 종교의 나라, 축제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종교행사와 종교축제가 많다. 이 타하르 축제는 우리의 추석에 해당하는 더사인 축제에 연이어 찾아오는 축제로 일명 빛의 축제라고 한다.
쥬빙 마을을 떠나 두드코시 계곡에 설치된 출렁다리를 건너간다. 이 계곡물은 필경 저 위 남체바자르 마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리라. 3시경 카리콜라 사원에 도착하여 사진촬영을 하고 카리콜라 마을캠프(2,060m)에 여정을 푼다.
  
  제10일째 루링콤바 마을에서 메라피크로 가기 위해서 우측 길로 접어든다. 팡곰 마을(2,890m)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오늘은 여기서 머물려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제11일째 일찍 기상하여 루쿤다피크 일출을 감상한다. 남체바자르 마을에서 본 콩데가 루쿤다와 나란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등정을 허락한 신께 감사
  팡콤라 언덕(3,100m)을 지나서 탁신카르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신선한 우유 한 잔을 들이킨다. 10시경 도착한 잔미엘카르카(2,815m)에선 드디어 메라피크 중앙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과연 저곳에 오를 수 있을까? 신은 나에게 저곳을 허락할 것인가? 일전에 랑탕히말의 얄라피크를 경험하였지만, 메라피크는 새로운 무게로 나에게 다가온다. 오후 1시에 링소카르카(2,845m)까지 이동하여 캠프를 설치한다.
  
  제12일째 몸은 벌써 히말라야에 적응하고 있다. 세수도, 목욕도, 양치질도 그냥 주어진 환경대로 적응할 뿐, 꼭 해야 한다는 당위도 느낌도 감지하지 못한다. 링소카르카를 출발하여 협곡 같은 타케콜라를 지나 직벽 같은 지난한 능선을 올라서니(3,300m) 메라피크 연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가는 길은 직벽 같은 산사태지역이라 주의가 요망된다. 계속 진행하여 큰 바위가 있는 자타라콜라 근처에 캠핑할 만한 곳이 있어 서둘러 텐트를 친다.
계곡 양쪽으로 위치한 정글은 계곡과 어울려 장관을 연출한다. 네팔 트레킹 6회 동안 만나지 못했던 절경이다. 내 평생 이곳에 다시 와볼 수 있을까 의문이 인다. 여기는 정말 오지라는 느낌이 온 몸을 감싼다.
  
  제13일째 길도 집도 없는 오지로 접어든 지 벌써 사흘째다.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 걱정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오후에는 루클라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고 알려준다. 드디어 사람 구경을 하는구나! 얼굴에 미소가 돈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런가. 11시 반 루클라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덕터 삼거리(3,600m)에 도착했다. 정말로 이곳에서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다. 반가운 마음에 "나마스테!"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카싱딤마(3,430m)에서 점심을 먹고 마칼루 가는 갈림길에서 메라피크 방향으로 진행, 코테 마을에 다다른다. 눈이 내린다. 서설이겠지 자위하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제14일째 날씨는 맑았으나 손발이 시리다. 점점 눈 덮인 히말라야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자루파티히말, 톡토르히말, 쿠숨캉구루히말이 보인다. 서우레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굼마르, 탕락을 지나 오후 3시 탕락 캠프장(4,245m)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다섯 가구가 살고 있다. 오늘 날씨는 체감온도 영하 10ºC로 느껴진다.

  제15일째 새벽 일찍 5,000m대 뷰포인트로 이동하여 메라피크, 쿠숨캉구루, 차레파티히말을 촬영하고 내려온다. 메라피크 베이스캠프(5,350m)로 이동하여 캠프를 구축하니 어느새 밤이다. 오늘은 힘겨운 하루였다. 저녁식사로 특식 야크사골국을 먹고 이른 기상에 대비한다.
  
  제16일째 4시 기상하여 카레 뷰포인트(5,100m)로 이동하여 촬영하고 하산하여 카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오늘은 일종의 예비일이다. 내일 하이캠프로 이동하기 위해 스탭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는 날이다. 오전 중에 장비점검을 완료하고 요리사가 만들어 준 만두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간다.
  
  제 17일째 하이캠프(5,780m)로 이동하여 캠프를 설치한 후 고소 적응 겸 북쪽 사면으로 이동하여 촬영한 후 하이캠프로 내려온다. 에베레스트, 마칼루, 아마다블람, 캉테가, 칸첸중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공격조와 함께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하고 개인장비 점검을 마친 후 잠자리에 든다.

  제18일째 오늘 드디어 메라피크(6,461m) 등정에 나서는 날이다. 새벽 4시에 출발하여 오전 10시경  메라피크 정상에 다다른다. 몹시 힘든 여정이다. 히말라야 고산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념 촬영을 하고 다시 하산길이다. 아쉬운 듯 사방을 조망한 후 걸음으르 재촉한다. 오르는 길도 쉽지 않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 어렵다. 감격과 힘겨움의 눈물이 계속 눈시울을 적신다.
오후 1시경 하이캠프에 도착한 후 짐을 정리한 후 하산한다. 한 걸음 떼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말이 아니다. 앞으로 3시간 이상 더 이동해야 목적지인데, 과연 오늘 중에 도착할 수 있을까 자문하며 계속 걸음을 재촉한다. 오후 5시경 공마딩에 도착하여 야크막사에서 밤을 지새운다. 별이 총총하다. 흘러내린 눈물은 얼어붙은지 오래다. 메라피크 등정을 허락한 신께 감사한다. 잠에 곯아떨어진다.
  
  제19일째 아일랜드피크로 가기 위해 암푸랍차 고갯길에 오른다. 콩마딩마 호수(4,695m)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세티포카리(4,945m)에 이르러 하루의 여정을 푼다. 기온은 급강하하여 몹시 춥고 고도에 비해 고소가 심하게 온다.
  
  제20일째 오른쪽으로 바룬체히말이 보인다. 셰르파니콜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며 우측으로는 호수가 연이어 보인다. 장관이다. 설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있는 전형적인 히말라야 고산 풍경이다.
  
  
암푸랍차 고개 넘어 아일랜드피크로
  제21일째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암푸랍차 패스(5,800m)를 넘어서 아일랜드피크 베이스캠프(4,970m)에 오후 5시나 되서야 도착한다. 중간에 빙벽을 만나서 나와 조작가, 모든 스탭, 그리고 장비와 부식 일체가 로프로 오르내리고 하니 거리에 비해 시간이 곱절이나 걸린 하루였다. 저녁 7시에 먹은 토종된장국이 그나마 힘을 돋우고 있다.
  
  제22일째 아침 일찍 기상했으나 스탭들이 지쳐서 하루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 하루가 늦어진다고 하니 또 다시 걱정이 엄습한다. 물도 부족하고 해서 추쿠우 마을로 내려가기로 한다. 오전에 추쿵(4,730m)으로 이동해서 오래 묵은 빨래를 하였다. 점심 먹은 후 조 작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추쿵리(5,030m)로 캠핑장비를 챙겨서 올라간다. 하루 야영하고 내일 아침에 내려올 예정이다. 나는 오랜만에 스탭들과 오락시간을 갖고 지친 스탭들을 위로하며 재충전의 기회를 삼는다.
  
  제23일째 오늘은 장비점검을 마치고 내일 등정을 위해서 하이캠프로 이동하는 날이다. 메라피크 등정 때보다 더 마음이 설렌다. 정오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오후 3시 하이캠프에 도착, 캠프를 설치한다. 분주한 하루다.
  
  제24일째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4시에 정상공격에 나선다. 약 2시간 급경사를 오르니 동이 트기 시작한다. 일행들과 들뜬 마음으로 설산을 걷는다. 눈앞에는 온통 새로운 세상뿐이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 내 평생 상상도 못한 풍경들이다. 이래서 사람은 더 높은 곳을 갈구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12시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고 감격의 포옹을 한 후 서둘러 하산한다. 오후 4시에 추쿵 마을까지 내려온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어야겠다. 이제 내일부터는 하산길이다. 마음 한편으로 긴장이 풀림을 느낀다.
  
  제25일째 조 작가와 헤어지는 날이다. 한 달간 동고동락을 같이 한 조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오랜만에 마음이 통하는 히말라야 사나이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조 작가는 칼라파타르를 다시 촬영한 후 고쿄피크로 해서 촐라패스를 지나 롤왈링까지 앞으로도 20여일 더 촬영할 예정이다. 조 작가의 남은 여정도 순적하기를 바란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이제는 열심히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추쿵을 출발하여 딩보체를 지나 소마레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소마레에서 탐세르쿠, 콩데, 아마다블람을 마음껏 조망한다. 팡보체를 지나 탕보체에서 하루 여정을 마감한다. 탕보체 사원(3,820m)은 네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불교 성지 중 하나다. 타우제피크가 좌측으로 보인다.
  
  제26일째 탕보체를 출발하여 하산하던 중 오전 11시경 박영석 대장을 만났다. 약 30여분간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며 헤어진다. 쿰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남체에 이르러 여정을 풀었다.
  
  제27일째 몬조, 박팅 마을을 지나 루클라 마을에 도착해서 로지를 예약하고 국내선 항공을 재확인하고 휴식을 취한다.
  
  제28일째 아침 7시 첫 비행기를 예약하였으나 카트만두에서 안개로 인해 이륙하지 못하는 관계로 10시나 되서야 비행기가 들어온다. 1시간에 걸친 비행 후 저 멀리 카트만두 시내가 보인다. 휴우~! 안도감이 밀려온다. 공항에 도착하니 김이근 부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호텔로 이동하여 체크인하고 오래 밀린 샤워를 하고 피로를 푼다. 서울 아리랑 레스토랑에 가서 오랜만에 한식으로 회포를 푼다. 매번 올 때마다 들르는 서울아리랑은 한국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나의 오랜 단골 식당이다. 식사로 피로를 푼 후 타멜에 나가서 기념품을 구입하고 카트만두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제29일째 대한항공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환갑을 바라보며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고, 당뇨로 인해 항상 남모를 고민을 한 나에게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목표를 허락한 히말라야 신께 감사한다. 뒤에서 후원해 준 미투리산악회 회원 여러분, 전 일정을 관리해 주고 조진수 작가와의 동행을 주선해 준 네팔고우투어 양준호부장, 네팔 사랑산의 히라지, 김이근 부장, 그리고 함께 한 스탭 겔진, 올갠, 치링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과연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최효범 미투리산악회 등반대장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2-08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