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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백두대간과 정맥 등  바른 한국의 산줄기에 대해 잘 모르고 산맥 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킬리만자로  호롬보 산장에서 느꼈던 안타까운 마음을  여기에 담아  둡니다

 

일제치하에서  왜곡 교육받은  잘못된 산맥, 산줄기 이름이 아니라  한국의 지하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약탈하기 위해  고토분지로가 1913 년에 만든  지질분포도의 이름인  '산맥'을  이제는 불식 시키고  바로 잡아야 겠지요

 

모두가  보다 빨리 알고  전파하여  국민 인식과  교과서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 백두대간, 장백정간과 13 개의 정맥

 

산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제천을 경유하는 백두대간이니 충북을 관통하는 한남금북정맥이니 하는 용어가 다소 생소하게 들릴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조선시대 이래 우리 민족의 자연 인식 체계를 이루는 주요한 틀이었다.

"택리지"의 이중환과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성호사설"의 이익이 모두 여기에 기초하여 지도를 그리고 지리서를 썼다.


 조선조 영조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1769 년에 펴낸 ‘산경표’에서 우리 국토는 1개의 대간. 1개의 정간, 13 개의 정맥으로 근간이 구성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또한 16세기의 조선방역지도 이후 19 세기에 들어 고산자 김정호 님에 의하여 원리이용지도인 대동여지도가 이러한 개념으로 만들어졌으나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인 고토분지로의 한반도 수탈을 목적으로 한 한반도 지질구조도가 발표된 이후 우리 고유의 대간, 정간, 정맥등의 용어는 사라지고 일본인에 의하여 산맥이라는 용어로 지리를  배우게 된 우리 지리사의 슬픈 역사가 이 용어들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이 땅의 산줄기를 그려보면  산자분수령 즉, 산은 물줄기를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산경표의 원리에 의하여 1 대간,1정간, 13정맥으로 나누어진다


 그중 1 정간과 4 정맥은 북한에 있고 남한에는 허리잘린 백두대간과 9 정맥이 있다

 

 



 

백두대간은 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며 동쪽 물길과 서쪽 물길이 서로 섞이지 않게  하며 이 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정간 또는 정맥으로서 우리나라 10 대강을 구획하는 울타 이다


대부분의 산줄기 이름을 강에서 따온 이유는 노년기 산지의 애매한 줄기 이어짐을 역으로 물흐름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산줄기는 분수령을 따르게 마련" 이란 뜻의 "山自分水嶺 "을 명문화 하고 있는 줄기 가름의 대원칙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맥의 이름은 그 정맥이란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는 물길에서 따왔다

정맥은 강의 울타리 즉 분수령이므로 어느 정맥에서 내려다 보거나 좌우의 물길은 반드시 별개의 강이다

예를 들면 낙동강 수계는 낙동정맥과 낙남정맥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비롯하여 지리산까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며 이어진 산줄기이다.

그 길이는 1,800 km , 높이는 100 미터에서 2,740 m 까지의 분포를 이룬다.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약 670 km이다.

( 이는 도상거리이며 진부령에 가면 남한측 백두대간의 실거리가 1,236 km 라고 표기 되어 있다. 도상거리와 실거리의 개념에 대하여는 따로 설명하기로 한다 )


백두대간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자연스레 터득한 지리관의 총화이다.

일제침략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잊혀져 왔던 백두대간이 대학산악회를 중심으로 부활되기 시작하여 산악인, 환경운동단체, 일부 시민단체로 확장되어 오다가, 이제 정부에서 민족정기 회복사업의 하나로 국토종합개발계획에도 포함시킨 것으로 안다.


 함경도 흥남과 비슷한 위도상의 마유령(972m) 북쪽은 모두 1천미터가 넘지만, 그 이남으로는 금강산(1,638m), 설악산(1,708m), 오대산(1,563m), 태백산(1,567m), 덕유산(1,614m), 지리산(1,915m) 만이 1,500m이상 높이를 간직하고 있다.


 남북을 꿰뚫는 세로 산줄기인 까닭에 예로부터 개마고원, 영동과 영서, 영남과 호남을 가로막는 장벽이었으며 그런 만큼 황초령(1,200m), 추가령(586m), 대관령(832m) 등의 고개가 주요 교통로가 되어왔다.


 산맥의 명칭은 정정되어야 한다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니 하는 식의 현행 산맥 명칭은 우리 고유의 산줄기 인식에 따라 백두대간, 낙동정맥, 한남금북정맥  등의 명칭으로 되돌려 져야 한다


 산맥이란 용어는 일제가 조선의 강점을 기정사실화 해 가던 무렵인 1903 년경  일본의 지리학자인 고토분지로에 의해 태어났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에 대한 지질 및 광산조사에 혈안이 돼 있었다.

청일전쟁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삼았고 특히 금에 관심이 많았다.


고토 분지로는 이 시기에 들어온 지리학자였다.

그는 교통사정이 열악했던 1900년대 단지 14개월 동안 국내 지질을 연구하고 돌아가 동경제국대학 논문집에 「조선의 산악론」과 「지질구조도」를 발표했다.

거기에 기초하여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따위의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1904년에는 정치지리학을 전공한 일본인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를 펴냈다.

그는 고토의 산맥지형도를 그대로 차용했다.

1905년 조선이 통감부체제로 들어가면서 교과서 내용에 제재를 받게 됐다.

1908년 지리교과서였던 「고등소학대한지지」에 야쓰쇼에이가 발표한 「한국지리」가 옮겨졌다.


산맥은 지질개념으로 지리를 연구한 한 개인의 연구결과에 불과하다.

백두대간이 단지 명칭상의 문제가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지형의 개념이고 태백산맥은 지질의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산맥을 지형의 개념으로 지금껏 써오고 있다.

1906년 당시에도 정연호가 「최신고등대한지지」를 통해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언급하며 대간과 정맥을 말했지만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되고 말았다.


 일제는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된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없애고 산맥개념을 도입해 우리땅을 여러갈래로 갈라놓았다.

고토의 산맥도에는 아예 백두산이 없다.

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식민통치에 편한 체제로 바꾸면서 우리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일본이 지배하여 역사와 정신을 모조리 훼절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뒤안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지은 이름인 마천령, 함경, 태백, 소백 등의 산맥 이름만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우리 고유의 지리학에서는 백두대간, 정간과 정맥은 물을 건너지 않으며 오로지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반면 일본인이 지질구조에 의하여 만든 소백산맥, 태백산맥 등은 강을 건너기도 하여 실제 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인위적인 산맥개념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태백산맥이라는 곳에는 태백산이 들어 갈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다음 사항을 주의하여 보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왜곡된 태백산맥은 아래의 ‘잘못된 산맥 이야기’에서처럼 지질분포를 근거로 하여 태백산맥이 백두산은 포함 하지도 않고 원산 부근의 추가령곡에서 시작하여 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함백산을 거쳐 다대포까지 이어진다고 하였으나

 

산줄기를 제대로 공부 했거나 종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수 있듯이 태백산에서 물을 건너지 않고는 다대포로 가는 방법은 없다


굳이 방법을 찾는다면 태백산에서는 지나온 함백산,매봉산을 거쳐 태백의 삼수령까지 되돌아 가야만 물을 건너지 않고 백병산,주왕산,가지산,금정산을 거쳐 다대포로 갈 수 있는 것이니

결국 다대포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태백산이 들어 갈수도 없고  매봉산,함백산,태백산을 넣는다면 물을 건너야만 다대포로 이어진다는 결론이 된다


 이렇게 일제에 의해 왜곡된 산맥은 물을 건너지 않고 분수령을 이루며 이어져야 한다는 산줄기의 기본에서만 보아도 엉터리로 구성된 지질분포도의 개념인 것이다

산맥의 설명을 보면 ‘분수령’ 즉 강을 구획하는 능선의 산줄기 이야기는 없고

지질분포를 거론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대간 및 정맥 종주의 원리


능선의 구조상 능선의 안쪽과 바깥쪽의 물은 합해질 수가 없으며 산줄기는 개울이나  강을 건널수 없다.

또한 물은 산을 넘을수 없다.

이것이 산자분수령으로서 대간과 정맥의 원리이며 종주의 지침서가 되는 것이다


하나의 산에서 물을 가르지 않고 다른 산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이 원리에 의하여  대간이나 정맥, 기맥 등에 연결된 산이라면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어느 산이라도 물길을 전혀 건너지 않고 산줄기를 따라서 갈수 있게 되는데 때로는  직선거리  1 km 도 안되는  강건너 그 산을  몇천 km를 돌아서  간다면 전혀 물길을 건너지  않고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대간 또는 정맥으로 분류된 산줄기의 능선을 따라서 물을 건너지 않고 산길을 걷는 것을 종주라 하는 것이다


 정간과 13정맥들

 

장백정간(長白正幹)


북쪽으로 두만강, 남쪽으로 어랑천·수성천의 분수령이다.

백두대간의 원산 설령봉에서 일어나 만탑봉(2,205m), 괘상봉(2,136m), 궤상봉(2,541m), 관모봉(2,541m),도정산(2,201m)을 지나 함경북도 내륙을 서북향으로 관통하는 산줄기이다.

도정산 이후 산세가 죽어 들어 이후 고성산(1,756m), 차유령, 백사봉(1,138m), 송진산(1,164m)으로 이어져 두만강 하구 서수라곶에서 끝을 맺는다.

 

낙남정맥(洛南正脈)

 

북쪽으로 줄곧 낙동강을 받드는 낙남정맥은 남부해안지방의 분계선으로 생활문화와 식생, 특이한 기후구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산줄기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남하하다 옥산(614m)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543m), 여항산(744m), 무학산(763m), 구룡산(434m), 대암산(655m)을 거쳐 김해의 동신어산에서 낙동강에 가라 앉으면서 끝이 난다.

 

청북정맥(淸北正脈)

 

평안북도 내륙을 관통하며 압록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룬다.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낭림산을 지나 서쪽으로 흐른다.

갑현령(1,001m), 적유령(964m), 삼봉산(1,585m), 단풍덕산(1,154m)를 지나 온정령(574m)에서 산세가 수그러들어 신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의 미곶산에서 끝난다.

 

청남정맥(淸南正脈)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낭림산이 첫산이며 청천강의 남쪽 유역과 대동강의 북쪽 유역을 경계하는 분수령이다.

청남정맥의 으뜸산은 묘향산(1,365m)이며 이후 산줄기는 용문산(1,180m), 서래봉(451m), 강룡산(446m), 만덕산(243m), 광동산(396m)을 지나 용강의 남포에서 대동강 하구 광량진으로 빠진다.

 

해서정맥(海西正脈)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지방의 문화권역을 경계하고 있는 분수령이다.

백두대간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서남쪽 개연산에 이르러 다시 북상하다가 언진산(1,120m)에서 부터 남하하기 시작하여 멸악산(816m) 지나 서해의 장산곶에서 끝난다.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황해도의 오른쪽 울타리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임진강, 남쪽으로 예성강의 분수령이다.

해서정맥의 화개산에서 시작하여 학봉산(664m), 수룡산(717m), 천마산(762m), 송악산(488m)을 지나 정맥의 끝은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 즉 개성의 남산인 진봉산(310m)이다.

 

한북정맥(漢北正脈)  L = 177.6 km


 북쪽으로 임진강 남쪽으로 한강의 분수령이 된다.

백봉에서 시작한 한북정맥은 백암산(1,110m), 법수령을 지나 휴전선 가까운 오성산(1,062m), 철책 넘어 대성산으로 이어진다.

포천 백운산(904m) 국망봉(1168.1m),운악산(936m), 서울 도봉산을 지난 다음부터  두가지 설이 있어 나뉘어 지는데

1769 년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의하면 북한산(837m) 백운대(삼봉산)에서 끝이 난다고 하였고

그로부터 100 여년 뒤인 1861 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북한산 전에서 서진하여 상장봉과 노고산을 거쳐 교하의 장명산(102m)에서 한강에 가라 앉으면서 끝이 난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나온 이 설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원산 부근 분수령에서 서남 방향으로 한줄기를 내어 한강과 임진강의 수계를 가르며 흐르는 산줄기 )


 낙동정맥(洛東正脈)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백두대간중 태백의 삼수령에서 분기되어 울진 백병산(1,259m) 통고산(1,067m), 울진 백암산(1,004m), 청송 주왕산(720m),경주 단석산(829m), 울산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부산 금정산(802m)을 지나 백양산(642m)을 넘어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이 난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L = 152.7 km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속리산 천황봉(1,508m)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 선도산(547m), 상당산성, 좌구산(657m), 보현산(481m)을 지나 칠장산(492m)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과 갈라지면서 한남금북정맥은 끝이 난다.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줄기차게 남으로 뻗어오다 중원의 백미인 조령산 대야산 속리산을 빚으며 그 마지막 봉우리인 속리산 천황봉에서 멈칫멈칫하다 대간은 그대로 남으로 흘려 보내고 충청북도를 북서로 달리는 산줄기를 하나 더 만들어 시종 일관 달리다가 경기도로 훌쩍 넘어가 안성 칠장산에서 금북정맥 한남정맥 두줄기를 만들어 금강의 북쪽 울타리와 한강의 남쪽 울타리로 삼고 한남금북정맥은 그 소임을 다하고 흐름을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에게 인계하고 멈춘다 )


 한남정맥(漢南正脈)   L = 171.3 km


 한강 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한다.

한남금북정맥의 칠현산 북쪽 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칠장산( 492 m )에서 시작 된다.

백운산, 보개산, 수원 광교산(582m), 안양 수리산(395m)을 넘으며 김포평야의 낮은 등성이와 들판을 누비다 계양산(395m), 가현산(215m) 지나 강화도 앞 문수산성에서 한강에 가라 앉으면서 끝을 맺는다.


 (백두대간이 줄기차게 남으로 뻗어 내리다 속리산에서 머뭇거리며 불타오르는 듯한 열정적인 바위 군락을 빗어 낸 뒤 천황봉에서 한줄기를 더 만들어 충청북도를 북서 방향으로 양분하는 한남금북정맥을 만들고 경기도를 훌쩍 넘어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한줄기를 더 만들어 충청남도를 휘젓는 금북정맥으로 흘려 버리고 또 한줄기는 초지일관 경기도를 북서 방향으로 나누어 한강의 남쪽 수계를 이루며 용인의 석성산 수원의 광교산 안양의 수리산을 거쳐 비산비야를 달려 김포 강화대안에 우뚝 솟은 문수산을 마지막으로 한강으로 뛰어드는 산줄기를 말한다 )


 금북정맥(錦北正脈)


금강의 북쪽 울타리이다.

칠장산(492 m)에서 한남정맥과 헤어진후 칠현산(516m),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519m), 아산 광덕산(699m), 청양 일월산(560m), 예산 수덕산(495m)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678m)에서 멈칫거리다 성왕산(252m), 백화산(284m)를 거쳐 태안반도로 들어 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장수 영취산(1,076m)에서 시작하여 장안산(1,237m) 수분현(530m) 팔공산(1,151m), 임실 성수산(1,059m), 마이산(667m), 부귀산(806m)을 거쳐 주줄산에서 끝이 난다.


금남정맥(錦南正脈)


진안 주줄산에서 북으로 치달아 대둔산(878m), 계룡산(828m)을 거친후 서쪽으로 망월산을 지나 부소산에서 금강에 가라 앉으면서 끝이 난다.

금강의 온전한 남쪽 울타리를 이루지 못하는 이 산줄기는 운장산을 지나 왕사봉에서 남당산-까치봉-천호봉-미력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호남정맥(湖南正脈)


낙남정맥과 함께 우리나라 남부해안문화권을 구획하는 의미 있는 경계선이다.

정맥의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이다.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래친후 강진 만덕산(762m)을 처음 만나고 이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 남도의 큰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에서 남쪽을 달려 섬진강을 휘감으며 망덕산(197m)에서 섬진강에 가라 앉으면서 끝이 난다.


 내용출처 : http://www.angangi.com/


 한북정맥( 백과사전의 내용 : 출처 : www.naver.com  )


 요약

강원과 함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평강(平康)군의 추가령(楸哥嶺)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한강과 임진강의 강구(江口)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본문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동쪽은 회양(淮陽)·화천·가평·남양주 등의 한강 유역이 되며, 서쪽은 평강·철원·포천·양주 등의 임진강 유역이 된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추가령에서 서남으로 갈라져 백암산·양쌍령(兩雙嶺)·적근산(赤根山)·대성산(大成山)·수피령(水皮嶺)·광덕산(廣德山)·백운산·국망봉(國望峰)·강씨봉(姜氏峰)·청계산·현등산(懸燈山)·죽엽산·도봉산·노고산·현달산(峴達山)·고봉산·장명산(長命山)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한남금북정맥 [漢南錦北正脈]


 요약

속리산 천황봉(千皇峰)에서 서북으로 뻗어 충청북도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도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 이르는 산줄기의 이름


 본문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종착지의 칠장산 에서는 다시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 (文殊山)까지의 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泰安半)에 있는 안흥(安興)까지의 금북정맥(錦北正脈)으로 이어진다.


 이 산줄기의 산들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천황봉에서 갈라져 말태재·구치(九峙)·시루산·구봉산(九峰山)·국사봉(國師峰)·선두산(先頭山)·선도산(先到山)·상봉재·상당산성(上黨山城)·좌구산(坐龜山)·칠보산·보광산(普光山)·행태고개·보현산(普賢山)·소속리산·마이산·차현(車峴)·황색골산·걸미고개·칠장산 등으로 이어진다.


 대간 및 정맥 종주의 실제

 ○ 종주산행의 시작

  백두대간 종주니 정맥종주니 하는 것은 이러한 산자분수령에 따라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발로 밟으면서 몇백년전에 훌륭한 우리의 선조들이 밝혀 놓은 지리인식을 재확인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던 산맥의 개념을 불식 시키고자 해방 이후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되어 계속 답사자가 늘어가고 있는 우리의 노력들이며 국토를 바로 알고 배우고자 하는 국토사랑 운동의 일환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비교적 많은 선답자들이 지나간 백두대간은 산이 높고 도로등 내려설 곳이 있는 곳까지의 길이 멀어 힘은 들어도 산줄기를 찾아 가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길이나 아직도 종주자들이 많지 않은 정맥종주는 상당구간이 길을 알아보기 어렵고 뚫고 나가기가 힘든 가시밭길과 잡목숲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세심한 공부와 자신과 악조건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없이는 완주가 어렵다.


 어쩌다 유명산을 지날때를 제외하고는 이정표나 안내판은 고사하고 길조차 제대로 안 나 있어서 새옷을 입고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되며 특히 나뭇잎이 우거지거나 날씨가 안 좋아 구름이나 가스가 찰 때에는 앞길을 조망할 수가 없어 오로지 지도와 육감에 의지하여 진행해야 한다


 지도상 방향은 맞는데 아무리 둘러 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분명히 바른 방향을 따라 갔는데 가다보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지독한 가시밭길과 잡목숲을 뚫고 헤매다 보면 길을 잃기도 한다


 유명산을 지날때가 아니면 종일토록 걸어도 사람하나 만나기 힘들다. 물어볼 데도 없다.

또 몇시간씩이나 갔던 길도 잘못된 것이 확인되면 되돌아 오기도 해야 한다


 정맥종주자들에게는 이 back 이 밥먹듯이 일어나는 일이다.

철저한 준비와 세심한 관찰은 back 횟수와 반비례한다고 보면 된다.

정맥종주자들은  한결같이 “백두대간 ? 그건 아우토반처럼 길도 넓고 핸들만 잡고으면 갈 수 있는 고속도로” 라고 말한다


  ○ 백두대간 종주 ( 종주산행은 대개 백두대간 종주로부터)


 백두대간 부활에 첫 시위를 당긴 이들은 산악인들이었다. 처음엔 대학생들을 중심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흔적조차 지워져 가시덩쿨로 뒤덮힌 길을 헤치며 온몸으로 금을 그어 나갔다

백두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지도상 거리로 670여 ㎞,실제거리는 1,236 ㎞에 이른다.

하루에 지도상으로 15㎞씩 걷는다 해도 40여일이 넘게 걸린다.

일주일에 하루씩 쉰다면 대략 50일은 잡아야 한다.

겨울철은 적어도 70일은 잡아야 한다.

해가 짧고 동계장비가 무거운데다 눈이 쌓여 있어 산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구간을 나눠서 주말에만 종주를 할 경우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나선다해도 40회 이상은 산행에 나서야 하므로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걸린다

 

여름철의 뙤약볕과 싸우며 걸어야 할 때도 있고,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내야할 때도 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침낭 하나에 의지해 긴긴 겨울밤을 지새야 할 경우도 있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악천후 속에 오도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헤매야 할 때도 있다.


며칠을 가도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할 때도 있고 길 아닌 길로 들어서 가시덩쿨에 온몸을 뜯겨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의 모든 고통을 죄다 풀어놓은 듯한 쓰라린 순간들이 매일매일 종주자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종주자들은 말한다. 그 고통의 순간들이 결국 종주를 마치게 해주는 힘이라고....

종주를 마치고 진부령으로 내려오는 순간 왈칵 눈물이 치솟아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고 대부분의 종주자들은 술회한다.


그 모든 고통의 순간들이 너무도 또렷히 떠오르지만 언제나 말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백두대간의 어머니 품같은 따뜻함에 뒤돌아 뛰어가 안기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고 한다.


산악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종주를 꿈꾸는 백두대간, 백두대간 종주는 단순한 산줄기를 밟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수천년 동안 내려온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지리관을 느끼며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확인케 해준다.

 

지도에서 보는 종주산행

 



 

또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국가로서 백두대간은 통일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자리한다.

우리가 종주할 수 있는 것은 백두대간의 절반도 안되는 남한구간이다

민족은 두개의 체제로 나뉘어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철조망이 허리를 조이고있지만 백두대간은 결코 민족의 하나됨을 포기하지 않는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모든 산악인들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백두산까지 이어갈수 있기를 꿈꾼다.


  도상거리와 실거리


 도상거리는 산의 높낮이와 아래위 굴곡을 일체 무시하고 수평투영한 경우의 직선 거리이며 밑면과 높이가 1 m 인 직각삼각형에서 산길에 해당하는 빗변거리는 루트 2 즉, 1.414 m 이지만 도상거리는 수평거리인 1 m 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답사한 지리산 등의 구간은 실거리가 표기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산길은  실거리가 측정된 자료가 없으며 종주자들마다 다르게 실거리를 추정할 경우  많은 혼선이 초래되므로 종주산행에서는 자료의 통일성을 위하여 누구나 동일할 수 밖에 없는 지도상의 수평거리인 도상거리를 사용하는 것이며 경사도와 구불구불한 정도를 감안하여 도상거리대 실거리의 비율은 30 %~240 %를 할증하여야 한다.


지리산 구간에서는 도상거리대 실거리의 비율은 240 %에 이른다 


 ○ 종주산행의 방식

 

종주산행에는 크게 3 가지의 방식이 있다.

그 첫째는 완전무지원연속종주로서 종주자가 스스로 며칠씩이던 산속에서 자고 먹고 하면서 진행하다가 식량등을 구할 수 있는 곳에서 필수품을 보충하여 진행하는 방식이며 이들은 보통 3~7 일치의 야영산행준비를 해 가지고 텐트에서 자면서 진행하는 것이다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서바이벌울트라 마라톤과 같은 것으로서 종주구간이 끝날 때까지 일체의 지원이나 보급이 없다

40 kg을 넘나드는 워낙 무거운 배낭과 싸워야 하므로 웬만한 체력을 가지고는 도전하기 어려운 산행이며 종주자들로서는 그야말로 배테랑 즉 A급 종주자로 추앙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저 ‘71일간의 백두대간’ 을 종주한 김 춘일 같은 사람이 있다

그는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사투와도 같은 싸움을 벌였고 심지어는 쓰레기장에서 남들이 먹다 버린, 그러나 아직은 먹을 수 있는 캔의 음식마저도 구했었다고 했다


 둘째는 며칠씩의 야영으로 무지원 연속산행을 하긴 하되 중간보급의 지원을 받는 형태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동계단독 태백산맥 종주자이며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산악인 남난희가 있다

지금은 정선에서 ‘자연학교’를 열고 있는 그녀는 후배들에게 에베레스트 등정과 백두대간종주중 어떤 것을 권하고 싶느냐는 질문에 대해 당연히 백두대간 종주를  권하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는 길어야 한달 이내로 그것도 상당구간은 셀파들의 도움으로 짐을 운반

하면서 정상에 한번 올라섰다 내려서면 그만이지만 백두대간 종주는 인생살이와도 같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짐을 스스로 챙겨야 하고 힘이 거의 빠져갈  무렵까지도 올라섰다면 내려서고 내려섰다면 올라가야 하는 것이 끝없는 인내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며 불굴의 의지 없이는 도저히 완주가 불가능한 것이다”


 셋째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연속산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치 않는 직장인 같은 사람들이 주로 진행하는 ‘구간종주’ 라는 방식으로서 산행도중 시간과 체력을 감안하여 내려설 수 있는 구간까지 진행을 하고 다시 다음 기회에 그 지점에서 다음 구간을 이어 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간종주 방식이라 해도 모두가 다 짧게 구간을 설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데에 어려움이 있다.

지리산. 덕유산등 큰 산에서는 내려서는 데에만도 4 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탈출 한다는게 별 의미가 없는 곳이 많다


 구간종주는 주로 도로를 구간으로 구획하게 되며 종주자들의 조건에 따라 보통 하루에 도상거리 15~30 km 정도를 진행하게 된다

 







 

 

1. 왜곡 전달된 ‘산맥’에 대한 지적 및 회복운동에 대한 보도내용


 


 2005년 1월 16일(일) 오후 4:00 (한겨레신문)


 

60년간 방치됐던 ‘산맥’ 문제의 교훈


 [한겨레] 우리 국토의 산맥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교육부도 바로잡아 교과서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60여년 동안 가르쳐 온 교과서가 엉터리였다는 말인가?

이번 일은 기초의 일각이 잘못되어 있어도  수십년 간 그대로 흘러왔다는 뼈아픈 문제점을 보여준다.


 중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교사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산맥’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한다.


 해방 이후 줄곧 우리가 배워 온 우리 국토의 산맥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언론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항공기에서 직접 촬영한 산줄기를 보여주면서 “차령산맥은 있지도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그리하여 교육부도 우리 국토의 산맥을 바로잡아 교과서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어안이 벙벙하다. 해방 이후 자그마치 60여년 동안 가르쳐 온 교과서가 엉터리였다는 말인가?

우리 국토의 산맥이 우리네 삶과 우리네 학문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잠깐만 생각해 보더라도 이것은 그냥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고 산업 입지를 선정하는 문제나 국토를 지키기 위한 방어선 등 거시적인 판단은 물론, 등산이나 여행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삶의 이모저모와 밀착된 가장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지식이 바로 산맥 개념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해방 이후 지금까지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우고 잘못 알고 있다니!

 

우리는 이 일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의 가장 저변을 이루는 기초의 일각이 잘못되어 있어도, 누군가 나섰더라면 좀더 일찍 해결될 수도 있었던 문제가 수십년이나 잘못된 채 그대로 흘러왔던 뼈아픈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접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교사는 항상 학생들로부터 “이런 내용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답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차령산맥을 왜 알아야 되지요?”라는 학생 질문에 대답을 한 적이 있는 교사의 처지를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한마디로 이번 일은 난센스다. 그것도 학교 교과서 전체의 공신력을 일거에 실추시킨 엄청난 엉터리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치자. 그래도 이 일에서 값비싼 교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로 우리나라의 학문도 이제는 ‘우리나라의 학문’이 되어야 한다. 학문의 식민성을 이제는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나?

 둘째로 학문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진보시키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에 충실해야 한다

있지도 않은 차령산맥을 공리공론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쳤다니 이보다 더 낯이 후끈거리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제는 재개발되어 사라진 난곡 빈민촌에 대한 사회학적인 조사, 학문 연구 작업이 한 일본인 학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10분만 가면 우리나라 제일의 명문 국립 서울대가 있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이 땅의 수많은 학자들은 무엇을 위해 학문을 하고 있는가? 셋째로 우리 모두 좀더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관련 학문을 전공하는 학자 분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닌 줄 안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전문 학자들은 아니라 할지라도 학문 연구의 성과들을 파악하고 있는 분들 아닌가?

 더욱이 직접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처지 아닌가? 이번 일이 너무 쉽게 지나쳐버리는 일들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성대/서울 삼성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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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월 9일(일) 오후 6:48 <경향신문>


 

을유년 벽두부터 ‘백두대간’이 화제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첨단기술로 ‘대동여지도’와 별 차이 없는 백두대간의 실체가 확인됐는가 하면, 시민단체는 ‘백두대간 국가 지도에 표기하기’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는 또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원년이기도 하다.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두류산,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영취산,지리산으로 끝간 데 없이 어깨 겯고 이어지는 우리땅의 등뼈다.

 그 마디마디에서 1정간과 13정맥이 갈라진다.


 - 생명 길러낸 우리땅 등뼈 -백두대간의 장쾌한 마루금을 떠올리며 4년 전 세상을 떠난 이우형 선생을 생각한다.

 그는 재야 고지도 연구가이자 산악인이었다. 대동여지도 연구에 빠져 있던 그는 1980년대 초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18세기 초 여암 신경준이 제작한 것으로 여겨지는 옛 지리서인 ‘산경표’를 발견했다.

 그것은 우리땅의 인문·지리 개념을 바꾼 ‘대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를 일일이 대조하면서 백두대간이 우리 국토의 큰 뿌리임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틈만 나면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를 배낭에 넣고 산과 강을 쏘다녔다. 그는 산경표를 현대 지형도의 능선에 맞춰 새롭게 그려낸 ‘산경도’를 제작했다

실측을 통해 ‘우통수’로 알려졌던 한강의 발원지를 태백 ‘검룡소’로 바로잡은 것도 지리학계의 소득으로 남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산맥이란 개념은 일제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땅속의 지질구조를 근거로  만들었다고 한다.

호남정맥과 노령산맥의 차이는 이름에만 그치지 않는다.

산맥선을 따라가면 도중에 강이 막아서고,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다.

노령산맥의 속리산과 운장산을 금강이 갈라 놓는다.


 태백산맥에는 태백산이 없다.

 

반면 백두대간의 산줄기는 결코 강이나 내로 끊어지는 법이 없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다.

같은 산자락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사투리를 쓰고,같은 문화를 나누는 공동체의 울타리가 된다.

이것이 이우형 선생에 의해 ‘재발견’돼 우리 산줄기에 대한 인식의 틀을  뿌리부터 바꿔놓은 백두대간의 핵심이다.


 그는 학계와 산악인들을 상대로 백두대간 개념의 탁월함을 설명했고 , 태백산맥 대신 백두대간이라는 말을 쓰자고 호소했다.

남난희씨 등 산악인들이 그의 뜻에 호응해 마루금만 따라서 남쪽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뒤를 이어 대학 산악반이 줄지어 대간 종주팀을 꾸렸다. 90년대 중반부터 일반인들도 가세했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늘어나면서 대간의 환경문제가 부각됐다

이는 환경단체들의 백두대간 난개발 반대운동으로 이어졌다.


 - 우리 산줄기 이름 찾아야 -90년대 초 이우형 선생을 만났다. 그는 제도권 학자들에게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고토에 의해 우리나라 민족 자존심과 국토인식의 왜곡이 시작됐다고 했다. 학생들의 지리 교과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생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시대의 고산자’ 이우형 선생이 백두대간을 복권시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제 와서 고산자가 발품을 팔아 만든 지도가 오늘날의 등고선 지도보다 더 정확하다고 호들갑 떠는것은 좀 생뚱맞다

하루 빨리 태백산맥이니, 소백산맥이니, 차령산맥이니 하는 산맥 명칭을 우리 전통의 산줄기 인식에 따라 백두대간, 호남정맥, 한북정맥으로 되돌리는 일이 먼저다.

 그것이 실제 지형과 일치하며, 우리네 고유의 지리인식이기 때문이다. 늦어도 너무나 늦었다

‘애국이란 땅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음은 그 땅에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우형 선생이 평생의 가르침으로 여겼던 고산자의 말은 그의 대동여지도만큼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김석종 문화부장>

2005년 1월 7일(금) 오후 6:02 <경향신문> 
 

[사설] 잘못된 산맥지도를 100년동안 써왔다니


 

정확한 한반도 산맥지도가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위성영상 등 첨단과학 자료와 기법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새 산맥지도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산맥체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보여준다.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3년 저서 ‘조선산악론’에서 발표한 내용을 과학적 검증 절차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새 산맥지도는 먼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연결돼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현행 교과서는 백두대간의 줄기인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이 추가령구조곡으로 단절돼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18세기 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가 제시한 백두대간 중심의 한반도 지리체계가 100년 넘게 왜곡돼 온 것이다.


 산맥체계도 14개가 아니라 48개의 크고 작은 산맥으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묘향, 차령, 노령산맥 등 일부 산맥은 실제로는 없거나 방향·위치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새 산맥지도는 현행 교과서보다 산경표의 산맥체계에 더 가깝고, 19세기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의 산줄기 체계와는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그동안 지형에 밝은 산악인들은 교과서 산맥이 실제와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리학자들은 현행 산맥체계는 땅 밑 구조를 바탕으로 작성된 만큼 외형과 다를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국토연구원의 분석 결과 교과서 산맥체계와 지하 구조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루빨리 지리 교과서의 산맥지도를 바로잡는 것이다.

고토(小藤) 이론,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을 맹종해온 학계와 당국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국토연구원이 일련번호로 매겨놓은 48개 산맥의 이름을 정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학술적 논의와 폭넓은 여론 수렴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침 녹색연합이 ‘백두대간 지도에 표기하기’ 운동을 벌인다고 하니 활발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2.  지질분포에  근거한  ‘잘못된 산맥’ 이야기


 태백산맥 [太白山脈]


 개요

 낭림산맥과 함께 한국의 중추를 이루는 척량산맥(脊梁山脈).

 

설명

 길이 600km. 해발고도 800~1,000m. 원산 부근의 추가령곡(楸哥嶺谷)에서 동해안을 따라 낙동강 하구의 다대포 부근까지 이르는 산맥으로 한국에서 가장 긴 남북주향의 산맥이다.


 산맥은 해안산맥 ·중앙산맥 ·내지산맥의 3줄기로  나누어져 있고, 동쪽은 급사면으로 동해에 임하며 좁고 긴 해안지대를  이룬다.

서쪽은 지맥인 광주 ·차령 ·소백 등의 산맥이 남서방향으로 완만하게 뻗어내리고 있으며 이들 지맥을 분수령으로 그 사이를 한강 ·금강 ·낙동강이 흘러 황해와 남해로 흘러든다. 


 산맥의 지반은 주로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에 화강암이 사행(斜行)하고 있다.

산맥 중에는 주봉  태백산(1,567m)을 비롯하여 금강산(1,638m) ·오대산(1,563m) ·설악산(1,708m) ·함백산(1,573m) 등의 명산이 솟아 있다.

태백산맥은 기후풍토상으로도 영동(嶺東) ·영서(嶺西) 양지방의 경계선을 이루며, 또한 교통상으로도 큰 장애가 되고 있으나 예로부터 대관령(大關嶺:866m) ·대간령(大間嶺:641m) ·추지령(楸地嶺:645m) 등의 고개가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최근에는 관동팔경과 더불어 웅대한 산용(山容), 아름다운 계곡, 천태만상의 지하궁전을 이루는 석회암동굴 등 관광자원이 많아 설악산과 오대산 일대는 각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낭림산맥 [狼林山脈]

 

개요

 자강도와 함경남도 및 평안남도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 방향으로 뻗은 산맥.

 

설명

 평균높이는 1,470m이며, 최고봉은 와갈봉(2,260m)이다. 자강도 중강군 중지봉에서 시작하여 평안남도 대흥군의 소마대령까지 길게 뻗어 태백산맥과 함께 한반도의 등줄기 산맥을 이룬다


 산맥은 지형상으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산맥에는 맹부산(2,217m)·와갈봉·희색봉(2,185m)·낭림산(2,186m)·천의물산(2,032m)·백산(2,076m)·중지봉(1,086m)·오가산(1,227m)·천리산(1,869m) 등의 고봉과 오가산령(1,119m)·불개미령(1,386m)·가릉령(1,324m)·황수령(1,475m)·덕유대령(1,501m)·설한령(1,433m) 등의 고개가 있다.

 

동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높이 1,000m 안팎의 강남산맥·적유령산맥·묘향산맥이 갈라져 나가 빗살모양으로 뻗는다.

동쪽 비탈면에서는 압록강의 지류인 장진강과 후주천이 발원하고, 서쪽 비탈면에서는 장자강의 지류와 자성강이 발원한다


 산맥의 기반암은 주로 시생대 화강암, 편마암, 결정편암, 규암류 등이며 남부와 북부 일부에는 석회암이 분포한다.

이곳에는 구리·납·아연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며, 북한에서 손꼽히는 원목 산지로서 오가산·화평·낭림·장강·용림 등의 임산사업소가 있다.

식물상은 아한대성 침엽수림과 침엽수 및 활엽수의 혼합림이 분포하고 1,900m 이상 되는 지역에는 고산초원이 펼쳐진다


 주요 수종은 분비나무·가문비나무·잎갈나무·젓나무·사스래나무·자작나무·참나무·고로쇠나무·박달나무·피나무·소나무·단풍나무·물푸레나무 등이다. 와갈봉에서는 장군풀·돌부채 등의 특산식물이 자라며 오가산에는 원시림이 자연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산맥은 예로부터 관북지방과 관서지방의 경계를 이루어 동서간 교통의 장애가 되었다.


 따라서 강계·강진 사이의 아득령(1,479m), 덕천·함흥 사이의 검산령(1,127m), 양덕·영흥 사이의 거차령(557m), 양덕·고원 사이의 기린령(725m), 평양·원산 사이의 마식령(788m) 등 산맥 중의 고개가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으나, 철도가 개통된 후 거차령과 아득령에는 철도가 지나고 그밖의 고개에는 도로가 뚫려 교통 장애가 완화되었다.


함경산맥 [咸鏡山脈]


 함남 ㆍ함북 중앙을 북동 방향으로 뻗어 있는 산맥.

 위치 : 함남, 함북 중앙


 

설명


 

마천령산맥과 교차하는 곳에 솟은 두류산(頭流山:2,309m)을 경계로 함남 부전령산맥에 연속되며 북동으로 두만강 남안, 경원군 운무령(雲霧嶺:526m)에서 끝난다.

동해안에 병행하여 급경사를 이루는 이 산맥은 남쪽 해안에 좁은 평야를 전개한다.


 

산맥의 서쪽은 개마고원의 일부를 이루는 무산고원(茂山高原)으로서 아시아 대륙의 지단상단층(地段狀斷層)을 이루며, 무산고원을 흘러 두만강으로 유입하는 서두수(纖水) ·연면수(延面水) 등과 동해로 유입하는 동해 사면의 수성천(輸城川) ·주을천(朱乙川) ·어랑천(漁郞川) 등의 분수령을 이룬다


 관모봉(冠帽峰:2,541m)을 비롯하여 만탑산(萬塔山:2,205m) ·괘상봉(掛上峰:2,139m) ·궤상봉(櫃床峰:2,333m) ·설령(雪嶺:2,442m) ·투구봉(2,355m) ·도정산(渡正山:2,202m) 등 높은 산이 있다.


 차령산맥 [車嶺山脈]


 개요

태백산맥의 오대산(五臺山)에서 갈라져서 충북의 북부, 충남의 중앙을 남서방향으로 뻗은 산맥

위치 : 태백산맥의 오대산(五臺山)에서 갈라져서 충북의 북부, 충남의 중앙

크기 : 길이 250 km. 평균고도 600 m


 설명

길이 250 km. 평균고도 600 m. 마식령(馬息嶺) ·광주(廣州) ·소백(小白) ·노령(蘆嶺)산맥 등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중생대 말의 습곡산맥으로 편마암과 화강암으로 구성된 구릉성 산지이다.

또 차령산맥은 최한월(最寒月) 평균기온 -3 ℃의 등온선과 일치하여 한국의 기후구를 남부의 온대와 북부의 냉대로 크게 구분하는 경계가 되고 있다.

산맥 중에는 차령 ·백운산(白雲山) ·만뢰산(萬쨋山) ·칠갑산(七甲山) ·금계산(金鷄山) ·서운산(瑞雲山) 등이 솟아 있고 금 ·은 ·중석 등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칠갑산을 중심으로 한 일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1973년 충남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소백산맥 [小白山脈]


 개요

태백산맥(太白山脈)에서 갈라져 남서방향으로 뻗어 내려오다 영남과 호남지방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

 

설명

 소백산 ·문수산(文殊山) ·속리산(俗離山) 등 높고 험준한 산을 일으키며 남서로 뻗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여수반도에 이르러 바다로 빠지는데, 그 사이 황학산(黃鶴山) ·민주지산(珉周之山) ·대덕산(大德山) ·덕유산(德裕山) ·백운산(白雲山) 등 해발고도 1,000 m가 넘는 장년기산지를 조성하고 중부 ·영남 ·호남 3지방의 분수령을 이룬다.

북쪽 일대는 화강암산지로서, 산지는 비교적 높아 고원성이지만 둔정봉(鈍頂峰)이 많다.

 

추풍령(秋風嶺) 부근에서 갈라진 산맥이 남북방향으로 이어져 지리산(智異山)이 솟아 있는데, 경남 함양 ·산청 ·하동,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3개도 5개군에 걸쳐 높은 산악지대를 이룬다. 지질은 주로 화강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차별침식으로 산릉(山稜)을 이룬다.

동쪽의 화강암과 중생층(中生層)에는 영주 ·거창 ·산청 등의 침식분지가  북동∼남서 방향으로 나란히 발달하여 지방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