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4차 구간 종주 산행기

1.산행일시 : 2002. 1.26~1.27(1박2일)
2.산행구간 : 육십령-남덕유-삿갓재-무룡산-동엽령-백암봉
3.산행친구 : 이승철
4.산행일지
- 1/26(제7소구간 : 육십령-할미봉-장수덕유산(서봉)-남덕유산-월성치-삿갓재)
02:30 울산 출발
05:15 함양 도착
06:17 육십령 도착
06:51 산행 시작
08:10 할미봉
09:40 교육원 삼거리
12:28 장수덕유산(서봉)
13:25 남덕유삼거리
14:35 월성치
16:30 삿갓재대피소

- 1/27(제8소구간 : 삿갓재-무룡산-동엽령-백암봉)
06:10 기상
08:00 삿갓재 출발
09:11 무룡산
11:14 동엽령
12:21 백암봉
13:11 중봉
13:44 향적봉

5.산행기

- 육십령 가는 길

지난주 복성이재에서의 헤맴으로 인하여 육십령까지의 종주계획을 중재에서 마치고 나왔던 사실이 일주일 내내 가슴을 짓눌렀다. 그로 인해서 이번주의 백두대간이 지난주의 구간에 이어지지 못함이 안타까웠던 게 사실이다.
이번 주는 나홀로 산행이 아니라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산행 계획에서부터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한다. 육십령에서 출발하여 삿갓재에서 잘까, 첫날 향적봉까지 치고 이튿날 백암봉에서 시작해 볼까 궁리하다가 좀 무리를 해서 향적봉에서 자기로 하고 대피소에 예약차 전화를 했더니 어디에서 출발 하냐고 물어 왔다. 육십령이라고 하자 눈도 많이 와서 시간이 많이 걸리니 삿갓재에서 자고 오란다. 삿갓재에서 자면 이튿날 빼재까지 갈려면 굉장히 서둘러야 하는데... 일단 삿갓재에 전화를 하니 예약을 받을 수가 없단다. 이미 다 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잰장 지난번엔 우리만 잤는데... 그러나 일단 와 보란다.

여느 때처럼 새벽 2시에 일어 났다. 엊저녁에 책장 정리한다고 늦게 잔 탓인지 잠이 모자라는 것 같다. 배낭을 매고 내려가니 이미 이과장이 기다리고 있다. 함양까지 가는데 3번이나 차를 세워 잠깐씩 눈을 붙히는 바람에 예정시간보다 약간 늦다. 함양에 도착할 즈음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에 덕유산에 눈이 온다고는 되어 있었다. 택시를 잡아 해장국을 먹을 수 있도록 식당으로 가자고 했으나 함양에는 야식당이 4시에 끝난단다. 할 수없이 좀 떨어진 휴게소에 가서 자는 아줌마를 깨워 해장국을 아침밥삼아 한그릇씩 먹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눈이 제법 날린다. 육십령으로 가는 길에 택시가 눈에 미끄러져 이리저리 기우뚱거린다. 육십령휴게소 마당엔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이미 출발 예정시간은 지나 있다. 눈길 운행준비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장계쪽에서 택시 한대가 오더니 등산객 3명을 내려 놓는다. 다행이다. 잘하면 밤길 산행에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겠는 걸...
백두대간 안내판에 육십령 지명안내가 되어 있다. 안의감영에서 이곳까지 육십리이며 장계에서도 육십리라고 해서 나왔다는 설과 고개마루가 하도 깊어 산굽이 굽이가 육십개라해서 육십령이라 불렀다는 설, 마지막으로 이곳 고개 마루에 산적들이 많아 아래 동네 주막에서 장정 60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기위해 출발했다고 해서 육십령이라 했다는 설이 있는데 세 번째 설이 가장 그럴 싸 하다는 얘기였다.
지난번 복성이재에서의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돌다리도 두드린다고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대간 마루금을 찾아 붙었다.

- 바람. 눈. 안개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만 이미 쌓여 있는 눈도 눈이지만 지금 내리는 눈도 만만찮아 보였다. 아직도 밤길이라 조심하여 걷는다. 바람은 오른쪽에서 부는 걸로 보아 동풍이 아닌가. 바람은 서봉을 오를 때까지 계속 오른쪽에서 불어 왔다. 할미봉을 지난다. 이미 밤의 어둠은 걷혔다. 홀가분하다. 그러나 안개가 온 산을 휘감아 산의 모습은 전혀 볼 수가 없다. 눈은 조금씩 내리고 바람은 세차게 분다. 할미봉의 전망이 좋다고 했는데 뭐가 보여야 전망을 얘기 하지... 이미 들어 알고 있는 그 위험구간이다. 밧줄은 노출되어 있지만 상당히 위험하구먼. 방수 장갑을 꺼내 한쪽을 이과장에게 준다. 끼고 있는 폴라텍장갑으로 줄을 잡으면 눈에 젖어 나중에 손이 시릴 것 같아서 이다.
이곳을 지나 한 20여분 걸어 왔을까 조그만 봉우리에서 내려 서는데 길이 갑자기 낭떠러지다. 눈이 쌓여 있고 잡을곳 하나 없고 중간에는 바위가 있다. 도저히 내려 서질 못하겠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다시 올라가 살펴봐도 다른 길은 없다. 이쪽으로 표지기도 하나 붙어 있다. 이궁리 저궁리 하다가 할미봉 위험구간에 대비하여 가져온 보조자일과 안전밸트 그리고 하강기를 꺼내 하강하기로 했다. 이과장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켜 먼저 내려 보냈다. 높이가 약 15미터나 되었다. 이곳에서 30여분을 소비했다.
교육원 삼거리까지는 평이한 능선길이다. 장수덕유를 향하여 오르막을 힘차게 오른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분다. 계곡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제법 매섭다. 싸락눈이 그 바람에 실려와 뺨을 때린다. 따갑다. 구름이 계곡 계곡마다에 가득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과장의 발이 시리다고 한다. 등산화에 눈이 녹아 물이 들어 온 것이다. 가죽 등산화에 방수왁스를 바르도록 했지만 오래 갈 리가 없다. 큰 일이네. 동상이라도 걸리면 정말 큰일 이다. 겨울산행시 주의해야 할 것들이 체온을 뺐기는 일이다. 물이 들어와 발이 젖는다던가 젖은 옷으로 산행하다가 저체온증에 걸린다던가 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다. 조금씩 가다가 괜찮느냐고 계속 물어 본다.
장수덕유를 오르는 길은 정말 힘든다. 진눈깨비와 바람 그리고 좋지 않은 시야가 산행의 어려움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과장은 젖은 발 때문인지 점점 걸음걸이가 느려지는 것 같다. 사진을 몇번 찍어 주며 힘을 내게 한다.
장수덕유. 안개 구름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 때문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조차 없다. 장쾌한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지리산 천왕봉을 위시한 보무도 당당히 도열해 있을 지리연봉들 그리고 오늘 나아갈 덕유능선의 군봉(群峰)들은 고사하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을 남덕유산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정표만이 산행객의 길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 바람에 맞서 외롭게 서있다.
장수덕유를 지나 남덕유를 향하는 길은 처음의 철계단을 지나면 호젓한 숲속의 눈길이다. 장수덕유를 숨가쁘게 오른 탓인지 얼마되지 않는 호젓한 눈길조차도 힘이 든다. 숲속으로 접어든 탓인지 조용하다. 그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남덕유와 삿갓재로 갈리는 삼거리다. 악천후로 인하여 300여 미터만 가면 되는 남덕유를 포기한다. 아쉽다. 지난번 갔을 때도 엉청난 바람으로 인해 그냥 지나쳐 온 적이 있지 않은가! 시간은 점심시간을 훨씬 지났다. 새벽의 해장국으로 여태 버텼으니 어지간 하다. 이과장이 허기에 지쳐 어디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가잔다. 월성치에서 끓여 먹자고 했으나 시간이 제법 걸린다.
일부러 앞서 가다가 길에 매트를 폈다. 코펠에 눈을 퍼 담아 녹이기 시작한다. 잘 녹지 않아 물통의 물을 부어 주니 잘 녹는다. 풀어 놓은 매트위에도 배낭위에도 눈이 쌓인다. 좁은 눈길옆으로 등산객 3명이 지나친다. 눈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은 처음이다. 눈이 깨끗하고 안깨끗하고는 나중의 이야기고 우선 고픈 배부터 안정시키는것이 급선무 아닌가! 꿀맛 같은 떡라면의 맛. 아마 이 맛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설거지도 편하다. 눈을 담아 쓱싹 쓱싹하면 그것으로 오케이다.
월성치를 지나 삿갓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아까 라면 먹을때 지나갔던 등산객을 다시 추월한다. 이게 바로 라면의 힘이다. 라면이라도 먹은 사람과 먹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다. 이 사람들과 함께 삿갓재대피소에 이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피소를 찾은 것 같다. 전에 와서 본 관리공단 직원이 예약을 했느냐고 묻는다. 어제 전화한 사람이라고 하자 들어 오라고 한다. 일찍 잠자리를 배정해 준다. 아까 그 사람들이다. 바로 육십령에서 우리 뒤를 이은 그 사람들이었다. 서울서 왔단다. 내일은 빼재까지 간단다. ~음 우리하고 같은 방향??
자리를 펴고 누웠다. 밥도 먹기 싫다. 취사장은 아마 시장통보다 더 복잡 할 것이며 눈 오는데 물도 길러 와야지 등산화도 다시 신어야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 같다. "이과장! 배고파?" "아뇨!" "우리 밥 먹지 말자." "그래요. 배도 얼마 안 고픈데.." "그래. 나중에 배고프면 남아 있는 떡이라도 갈라 먹고 자자." 우린 누워서 밥 안 해 먹을 궁리를 서로 하고 있었다. 그래 아침이나 든든하게 먹자. 피곤한데 잠이나 실컷 자자.

- 백암봉에 서서

대피소의 밤은 요란했다. 늦게까지 단체 등산객들의 대화소리가 이어진 듯 하다. 그런데 잠을 실컷 잔 것 같다. 개운하다. 눈을 뜨니 여섯시가 넘었다. 이과장을 깨웠다. 이미 깨어 있었는지 금방 일어 난다. 주섬주섬 잠자리를 정리하고 취사장으로 갔다. 복잡한 취사장에 겨우 자리를 잡는다. 밖에는 바람이 세차게 분단다. 어제의 배고픔과 엊저녁의 굶음을 보상이라도 할 요량이었는지 라면 두개에 남은 가래떡을 다 넣었다. 둘이서 양껏 먹었는데도 남는다.
빨리 준비 한다고 했는데도 출발할려니 여덟시다. 대피소에서 밤을 보낸 그 많은 등산객들이 대피소 앞뜰에서 제각각 출발준비 하느라 부산하다. 단체로 왔는지 번호를 대는 사람, 한쪽에서는 오늘 등산시 주의사항을 일러 주며 산행안내를 하는 사람 등등.. 대부분 남덕유산으로 가는 것 같다. 어제 서울서 왔다는 옆 사람들은 늦게 일어나 산행을 포기하고 황점으로 내려 간단다. 그래도 서울서 왔는데 산행이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자 서울가는 차편이 마땅찮다고 한다.
무룡산을 향하여 오르막을 시작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날씨는 눈만 그쳤을 뿐이지 어제 보다 더 못하다. 바람과 안개는 여전하다. 이미 어제 내린 눈으로 온 천지 사방이 눈이다. 길도 더 못하다. 누가 앞서 갔는지 러셀은 되어 있다. 무룡산 가는 길은 그런 대로 갈 만하다. 잠 잘 잤겠다. 아침 든든하게 먹었겠다. 바람은 좀 불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데도 무룡산까지의 산행시간은 좀 길어 진듯 하다.
무룡산에서의 시계(視界)는 제로상태다. 바람이 부는 것으로 보아 산 정상인지를 알지 눈으로 보아선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가 없다. 능선길을 내려 섰다가 다시 능선길로 올라서면 여지 없이 불어 제끼는 바람. 능선길 왼쪽 골짜기에서 구름이 바람따라 왔다가 사정없이 오른쪽 골짜기로 달아난다. 체감온도가 상당히 춥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군복무 시절. 한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천리행군을 위해 군 수송기에 몸을 실었었지. 몸을 제대로 가눌수 조차 없는 군장을 매고 이 덕유산 인근의 거창군 위천면에서 강하를 했었지. 해가 질녁에 한 송이 낙하산에 의지하여 송이송이 눈꽃송이 처럼 벼를 배고 아무것도 심지 않은 논 바닥에 차례 차례 떨어졌었지. 바람이 불어 다치기도 많이 다쳤었지. 6.25이후 처음 군인들이 왔다고 온 동네 사람들이 낙하산부대원을 구경왔었지.
우리는 행군 첫날 이 덕유산 어느 골짜기로 들어와 비트를 구축했다. 밤에 본 주위의 산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그 눈바람은 엄청 추웠었다. 당시만해도 귀했던 군용 닭털침낭 속에서도 꽁꽁 언 군화는 아침이 되어도 녹지 않았었다. 그 비트 속에서 화투놀이 하다가 대대장님에게 들켜 팬티만 입고 이 덕유산 골짜기의 매서운 바람에 당당하게 맞섰던 그 때 그 겨울. 옆에 서서 이빨을 소리내어 덜덜덜 떨면서 끝까지 베레모의 나약함을 보이지 않을려고 했던 나이 많은 선임하사들. 지금은 제법 나이를 먹었겠지.

덕유능선을 지나니 옛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그때 그 이름 모를 덕유골짜기도 이 어디쯤에 있을 성 싶은데 대간절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그 때 그 기백으로 크게 함성을 몇 차례 질러 본다.
날씨라도 좋았으면 정말 좋은 산행이 되었을 것이다. 대간길 주위에 지천으로 핀 눈꽃송이 하며 순백의 덕유연봉들이 대간꾼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걷고 이 길이 백두대간상의 한 능선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위안이 된다.
삿갓재를 출발하여 세시간이 지난다. 배낭을 벗어 이과장을 기다린다. 아침에 보니 계란말이를 가지고 왔길래 나중에 먹자고 하면서 넣어 두라고 한 것이 생각난다. 비상간식으로 양갱이다 쵸코렛이다 사탕이다 뭐 이런 단것들만 먹으면 속이 느끼해질때가 있다. 쵸코바를 하나 먹고 나니 이과장이 도착한다. 양갱이하나 먹으라고 하니 허기가 져서 이미 지 혼자 먹었단다. 아까 그 계란말이를 내놓으라고 해서 같이 나누어 먹는다. 정말 맛있다. 짭찌리한 것이 속이 시원하다.
동엽령이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고개마루에 온통 바람뿐인데 등산객 4명이 안내판을 이리보고 저리보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향적봉이라고 하자 어디서 왔느냐고 또 묻는다. 어제 육십령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안내판을 이리저리 보면서 육심령(?) 육십영(?) 하면서 찾아 보더니 없다고 한다.
이제 부터는 오르막이다. 대간길이 갈리는 백암봉까지는 지금까지의 능선길과는 사뭇 다르다. 몇차례 오르막을 반복하다가 백암봉에 닿는다. 배낭을 벗는다. 바람이 엄청나다. 마찬가지로 시계제로다. 하루종일 한치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악천후의 연속이다. 오늘 대간길은 여기서 접어야 할까 보다. 빼재로 향하는 대간길 길목을 몇번이나 왔다 갔다 해본다. 시간상으로는 가도 될것 같은데 삿갓재대피소 관리직원의 말이 생각난다. 빼재까지는 눈이 허리까지 왔다고 한다. 더욱이 대간하는 사람이 없어 러셀도 안되어 있단다. 할 수 없다. 여기서 구간종주는 마쳐야 겠다.
중봉으로 향한다. 대간길을 포기하니 힘이 빠지는 것 같다. 힘이 든다. 바람은 여전하다. 중봉에 오르니 어떤 사람이 젖은 목장갑에 귀마개만 한 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올라온다. 보기만 해도 내가 떨린다. 누군가가 사탕을 한웅큼 쥐어 준다. 조심해야지. 향적봉에서 오늘의 산행을 끝낸다.(終)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함양(승용차), 함양-육십령(택시 3만원)
- 복귀로 : 무주리조트-함양(택시 6만원), 함양-울산(승용차)

7.제5차 구간 종주 계획
- 일정 : 2002. 2. 9~ 2.10(1박2일)
- 구간 : 백암봉-지봉-빼재-삼봉산-대덕산-덕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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