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알바! 탈출!" 한강기맥 4구간


"먼드래재→수리봉→부목재"산헹기(강원 평창·홍천·횡성/2001년 12월 29일(토)/날씨 : 폭설/총 산행시간 : 8시간 50분)

◎ 참가자 :
강환구, 이동건, 연어, 안일준(이상 4명)


◎ 산행코스
먼드래재→710m→여무재→수리봉(959.6m)→873.4m→908.2m→931.5m→940m헬기장→산판도로→부목재


◎ 개 요
▶ 여무재 : 옛날에는 산림이 울창하여 사람이 혼자서 왕래하기 힘들었던 고개에 여우가 많이 서식한다하여 여우재라 부른다.
▶ 수리봉 : 이 산 봉우리 바위 위에 서있는 소나무가 멀리서 보면 마치 독수리가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인다하여 수리봉이라 한다. (959.6m)
▶ 부목재 : 옛날 이곳은 무서운 산골이었는데 목동이 나무를 하러갔다 오다가 호랑이와 싸우고 있는 것을 지나가는 행인이 도와 주었다는 전설이 있어 부목재라 한다.(590m)


◎ 산행일정
09 : 10  먼드래재 출발
09 : 17  500m
09 : 51  710m
10 : 20  여우재(55분기다림)
11 : 44  770m(864m 분기점)
12 : 18  수리봉(959.6m, 10분 휴식)
12 : 45  안부(5분 휴식)
12 : 55  점심(40분, 13 : 35 출발)
13 : 47  873.4m
14 : 05  890m
14 : 18  908.2m
14 : 27  931.5m(장교산 분기점)
14 : 45  930m(장교산쪽)
16 : 00  931.5m 한강기맥 갈림길
16 : 20  940m 헬기장
17 : 30  임도
15 : 59  부목재


◎ 산행일기
원래 오늘의 산행 계획은 "먼드래재-수리봉-대학산-세목이고개"로 계획된 산행이었다.그러나 팀웍의 부조와 폭설로 인하여 계획된 산행의 2/3밖에 하지 못하고 "알바"를 거듭한 끝에 부목재로 탈출을 하였다.
06 : 30 횡성행 버스는 6번 국도를 달려 양평을 거처서 달리는 차안에서 모두들 스패치를 착용하니 연어님이 먼저 1225일 산행 때에 스패치 착용 유무를 묻는 질문에 필요 없다고 답한 것을 보고 가지고 오지 않았단다.
버스는 용두리를 경유하여 08 : 12 도 경계선 도덕고개를 넘어서 횡성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08 : 31으로 2시간 1분이 소요 됬다.
그곳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요금을 물어 보니 메터 요금을 달랜다.
택시는 어제 살짝 뿌린 눈길 441번 지방도를 달리어 홍천군경계인 먼드래재에 09 : 09에 도착한다.
택시 요금은 28,000원이다.
찌푸등하니 무엇인가 바로 쏟아질 것만 같이 하늘은 검은색으로 짙게 물들어저 있다.
바로 고개 우측 가파른 절개지 자락으로 올라서기 시작한다.
바람이 몹시 불고 하늘에서는 드디어 흰눈이 뿌려지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름길은 금방 추위를 잊게 하여 주며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능선 500m에 올라서 뒷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려 잠시 볼일을 보고 벙거지 모자를 꺼내어 뒤집어쓰고 다시 서쪽으로 내려서며 소나무 봉을 올려치고 둔덕을 넘어서서 굵은 참나무들이 있는 봉우리 2개를 넘고 둔덕을 두 개 넘은 뒤에 소나무가 있는 능선을 지나서 드디어 가파른 710m 바위밑에 도착한다.
바위는 눈이뿌려 있어 미끄럽지만 좌측으로 올라선 뒤 앞을 막고 있는 바위를 올라서야 되는데 미끄러워서 발을 붙일 곳을 확보 할 수가 없었다.
단풍님이 왼발을 지지해 주어 올라선 뒤 소나무를 손으로 잡고 올라서서 바위를 타고 오른 뒤에 뒤를 돌아보니 단풍님이 바로 따라 오르고 밑에서는 청계산님과 연어님이 대기하고 있어서 바위가 미끄러우니 우측 능선으로 우회하여 건너 보이는 능선을 타고 넘어 오라고 지시를 한뒤에  북쪽으로 급경사지에 표시기가 부착되어 있는 곳을 지나서 710m 암봉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발이 때리며 시계가 어두워 북쪽으로 수리봉이 윤곽만 어설프계 보일 뿐이다.
다시 Back을 하여 눈 덮인 급경사면을 도저히 걸어서 내려 올 수가 없어서 배낭을 맨체 뒤로 누워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선 뒤 좌측으로 움직여 조심스럽게 710m를 내려섰다.
뒤를 돌아보니 눈만 오지 않았으면 바위를 타고도 싶게 내려설 수가 있는 곳이다.
문창환님이 스림줄을 준비하라고 한 것이 이곳 때문에 말을 한 것 같다.
안부를 지나서 620m에서 우측으로  잘나있는 능선을 따라서 우측내려 서다 보니 방향이 아닌 것 같아 다시 Back하여 620m에 오르니 그곳을 넘어서 가는 등로에 3구간 운무산에서 부터 길잡이 노릇을 하던 형광색 리본이 길을 밝힌다.
그곳을 넘어서 등로 사거리( L : 봉명리 구섬, R : 441지방도 북전지) 안부인 여우재를 지나 575.5m에 올라서니 10 : 23이다.
이곳에서 뒤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바람이 몹시불고 눈발까지 내려처 기다리는 것이 고역이다.
추위가 몰려온다. 손폰이 울리며 단풍님이 어디로 내려가느냐고 전화가 왔다.
내가 간 흔적이 710m에서 사라져 헤메고 있단다.
710m 못미처 표시기가 달려있는 급경사지로 내려오라니까 경사가 심한데 그곳으로 내려가느냐기에 내가 내려온 흔적이 있을 것이라니까 그제서야 알았다고 한다.
추위를 견디다 못하여 Pack를 벗어놓고 다시 710m쪽으로 뛰기 시작한다.
620m에 올라서 손폰을 때리니 이제사 내려오고 있단다.
기다렸다 여우재로 다시 오니 55분이 지체되었다.
문제가 많다. 내가 분명히 우측으로 우회하여 능선으로 오라고 하였는데 단풍이 올라오라고 하여 당기고 잡아주고 하다보니 시간이 지체되었고 내가 내려선 흔적이 없으면 급경사지 표시기가 달린 곳을 보아야 하는데 지도도 볼 줄을 모르며 흔적이 없는 남쪽능선으로 따라 내려갔단다.
어이가 없다. 우선 내가 대장으로서 판단을 하고 시킨 것을 제 나름대로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다.
먼저도 2구간에서 내 지시를 어기어 "아차산님과 김이권님"을 엄한 곳으로 보내어 애를 태우게하며 엄한 곳으로 갔다가 1시간 20분이나 늦게 찾아오게 하여 애 간장을 타게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울화통이 치민다.
한번도 아니고----- 어쩌든 아까운 시간을 까먹어 일기도 나쁜데 목적지까지 시간에 도착할 수가 있는지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기 시작이다.
마음이 바빠지고 서두르기 시작한다. 눈이 쌓인 등로를 미끄러지며 오른다.
아무래도 연어님이 주력이 떨어져 내가 뒤에서 밀고 하다가 단풍님에게 책임지고 같이 오라하고 나는 앞서기 시작한다.
미리 앞서가 등로를 열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둔덕을 몇 개 지나며 고도를 계속 높히고 암능지대를 우회하여 바위능선을 처 올라가 바위와 바위사이로 내려 왔다 다시 올라처 864m분기점 770m를 계속 오르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봉우리에 오른 뒤에 다시 봉우리 4개를 넘고 평사면을 걷다가 5봉, 6봉을 넘고 평사면을 걷다 다시 7봉 8봉에 오른 뒤에 깊게 내려서고 오르니 수리봉(959.6m)이다.
표지석(목)도 없고 표지판도 없으며 누군가가 처량하게 표시기에 매직으로 수리봉 959.6m라고 쓴 것만이 달려있다.
내 뒤에는 단풍님이 계속 따라 온다.
연어님은 어떻하고 나를 따라 오느냐니까 청계산님이랑 함께 온단다.
눈길에 힘들어 하니 그래도 젊은 단풍님에게 말하니 당체 듣지를 않는다.
눈발이 커지며 많이 내리고 온통 가스에 차 시계는 0인 상태다.
오직 지도와 방위판과 그래도 가끔 보이는 흔적을 찾아서 오를 뿐이다.
북쪽으로 내려섯다 올라처 930m에 오른 뒤에 서남쪽으로 내려서며 눈에 빠지며 올랐다 내리며 미끄러지고 하며 안부사거리(L: 봉명리, R : 어론리 율목)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배가 고프니 식사를 하고 가잔다.
시간에 쫓기어 헬기장까지 가서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처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다 배가 고파서 못 가겠다기에 서쪽을 등진 능선에 바람을 등지고 않아서 식사를 한다.
라면을 쌂고 그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는다.
밥을 먹으며 나의 머리 속에는 시간이 지체되어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연상된다.
이럴 때는 혼자 오는 것인데 하며 자책감이 몰려온다.
아무리 빨리 먹어도 40분이라는 시간이 지체되었다.
Pack을 꾸리어 873.4m를 넘어서고 890m를 지나서 남서쪽으로 방향를 바꾸어 완만한 능선을 걷으며 간다.
나의 뒤는 연어님과 함께 오라고 하지만 단풍이 따라 붙는다.
청계산님과 연어님은 뒤에 처진다.
항시 10여분씩을 기다려야 쫓아 올라오곤 한다.
연어님이 아무래도 주력이 딸리고 눈길에 보행이 힘들며 체력의 소모가 많아서 부탁을 하여도 안된다.
908.2m를 지나서 931.5m에 오른다.
이곳까지도 고맙게 형광색의 표시기가 계속 길을 안내해 준다.
연어님과 청계산님이 오기까지 또 10여분을 기다린다.
마음속으로 도저히 오늘은 대학산을 지나서 세목이 고개까지 산행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2시간 30분 안에 대학산을 넘어 세목이까지 간다는 것은 길도 안 좋고 기상도 나쁘고 하여 체념을 한다.
이곳에서 단풍님에게 연어님과 같이 안 오려면 앞에서 치고 나아가라고 말을 한다.
눈길에 앞에서 러셀을 하며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이것은 경험과 숙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후미가 당도하여 단풍님이 앞을 치고 나가는데 우측으로 길도 없는데 표시기가 1개 보이나 똑바로 형광색의 표시기가 잘 달려 있고 등로는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주위에 잡목이 없는 등로가 확실해 보인다.
우측것을 확인해 보지 않고 단풍을 따라서 계속 내려치며 올려치며 가는 등로가 지도의 지형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
너무나 형광색 표시기를 믿어 내가 지금까지 931.5m라고 생각하는 곳이 판단을 잘못하였나 하는 의구심이 가며 내가 틀린 것으로 믿게된다.
몇번의 오르내림 속에 방위판을 꺼내어 방향을 보니 서쪽으로 가야하는 데 서쪽 방향은 안 나오고 계속 남으로만 가는 것이다.
형광색 표시기와 잔디밭산악회 분홍색 표시기를 따라서 계속하여 깊게 내려섯다.
뚝 떨어지는 게 이상하여 정지를 하여 Back을 하라고 하고 먼저 다시 back을 하여 지형을 보아도 아무 것도 주위는 보이지 않으나 이곳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산행을 끝난뒤에 복도를 해보니 장교산 쪽으로 911m를 지나서 980m에서 남동진하여 절골로 내려서는 계곡으로 내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에 스처가는 것이 있다. 아! 아까 우측으로 달린 쪽이로구나.
단풍을 찾으러 다시 내려가니 단풍이 올라오며 저 아래 내려서니 계곡이며 얼음판만 있단다.
다시 올라서는데 연어님이 나는 탈출하겠단다.
이시간에 어떻게 야간산행을 이기상하에서 할 수가 있느냐고 말하기에 단풍보고 네가 함께 탈출하라고 이야기하고 계속 올라 친다.
나의 계산은 이미 되어있고 대장의 나약함은 대원의 불안감을 조성하기게 말없이 방법을 모색해 놓고 있는데 이렇게 개인적인 행동을 하겠다는 말에 울화가 치민다.
계속 올려쳐 931.5m 갈림길에까지 와서 기맥쪽 등로에 표시기를 많이 달아 놓고 있으니 청계산님이 "그래도 데리고 가야지." 하며 걱정 어린 말을 한다.
눈은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도 바람과 함께 뿌린다.
손폰이 울리며 단풍이 지금 Back을 하여 올라오고 있단다.
표시기를 많이 달아 놓았으니 찾아 오라하고 계속 앞으로 가니 등로가 높은 능선을 피하고 우측으로 좌측으로 돌아 허리로 가게 되어 있어 힘미 들지를 않는다.
아무리 눈이 많이와 등로가 눈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그 주변상황으로 등로변은 판단이 된다.
그것 또한 노하우다.
잠시 올라서 940m 헬기장에 도착하니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며 눈보라가 세차서 바람을 등지고 후미가 오기를 기다린다.
또 10여분의 기다림이 추위를 몸속 깊숙이까지 몰고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지난번에 산 비브럼 등산화를 길을 들여놓고 하여 발도 편하며 방수도 잘되고 하여 발이 시리거나 하지는 않다.
눈발이 점점 세차지며 헬기장에 잠시만에 수북히 쌓인다.
이곳에서는 눈보라로 육안으로 등로를 찾는 다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나 여기서 독도에 또 한번의 실착을 한다.
이곳이 940m인데 920m 지점으로 착각을 하고 등로가 없는 곳을 능선을 따라서 내려선다. 방위판을 보니 분명히 서쪽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방위판은 북서쪽을 가리키며 암릉으로 일구어진 험한 곳을 가고 있으며 암릉에서 보니 직진하는 등로가 없어보여 혼자서 우측으로 우회하려 급사면 능선을 내려서니 경사가 너무나 심하여 눈길에 미끄러지며 계속 아래로 내려가지며 좌측으로 진행하기가 힘들지만 위를 올려다 보니 암능선은 내려설 수가 있어 보여 바로 직진하여 암능으로 내려 서라 소리치고 눈에 미끄러지며 쓸어지며, 나무에 의존하며 간신히 능선상으로 올라 설 수가 있었다.
능선을 내려서니 암릉이 나오며 절벽이다.
우회하기 위하여 좌측으로 단풍님이 내려서고 있기에 잘못 들었으니 계속 좌측으로 진행하라하며 계곡으로 내려섰다 능선을 바위밑으로 어렵게 돌아 하나 넘어서서 안되것다 싶어 계속 밑으로 내려서다 확 미끄러저 넘어지며 미끄럼을 타며 2m는 됨직한 바위벼랑으로 떨어질랴 하기에 얼른 나무에 발을 걸어 꺼구로 일어서며 위기를 모면한다.
떨러저 바야 죽기는 안 하지만 어딘가는 다칠게 분명하다.
잠시후에 연어님이 그곳에서 밑이 바위니 "청계산님 조심하세요" 하더니 나와 같이 미끄러저 내리다 나무를 잡아서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더니 겁을 먹어서 진행을 못한다.
잘 보니 등로는 아니지만 사람이 다녔던 흔적을 찾을 수가 있었다.
눈이 있어 등로는 보이지를 안지만 잡목이 없는 라인이 희미하게 보인다.
가파른 곳을 미끄러지며 라인을 따라서 내려선다.
드디어 부목재로 통하는 임도에 도달하며 계곡아래는 물골의 전기불빛과 441번 지방도를 통하는 차량의 불빛이 간혹 보인다.
눈은 그치지 아니하고 세차게 뿌린다.
임도에서 북쪽으로 바람을 거슬리며 구불구불한 산판도로를 눈에 빠지며 계속 걸어간다.
단풍님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임도로 내려와서 가고 있는 중이란다.
자네는 오지 말고 그곳에서 연어님과 청계산님이 내려오기를 기다려 함께 오라고 지시하고 혼자서 계속 길을 재촉한다.
산골의 어둠은 일찍이 찾아들고 더구나 나쁜 일기로 인하여 칡흑 같은 어둠이 찾아 들었지만 길에 쌓인 흰눈이 길을 안내하여 주고 있다.
드디어 44l번 지방도에 접한 부목재에 도착하니 이곳 임도는 차단기로 차량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곳이다.
서북측으로 내려가면 서석에 가는 길이고 남서쪽으로 내려서면 동면 노천리로 가는 방향이다.
손폰을 때리니 이제 연어님과 청계산님이 내려와서 임도를 걷고 있단다.
고개 마루라서 바람은 쇠소리를 내며 눈보라를 일으키고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주위를 서성이며 걸으며 오늘의 산행을 정리하여 보니 산에 대한 식견이 없는 분들은 오늘 같은 날은 길을 잃고 헤메다 동사하기 십상이다.
오히려 등로를 잘못들어 이곳으로 내려섯기에 부목재까지 거리가 가까웠지 대학산 직전의 안부 임도로 떨어 젔드라면 이곳까지는 거리가 무척 멀어서 시간이 좀더 걸렸을 것이다.
장교산쪽 980m에서 계곡으로  떨어져서 Back하는 시간부터 임도로 내려서기까지 2시간 20분동안은  폭설과 사투를 벌인 시간이었다.
또한 대장의 말이 산행중에는 절대적이어야지 자신들의 주관을 행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며 200111일 신년 산행으로 혼자서 "먼드래재-수리봉-대학산-세목이고개"를 결행할 것을 다짐한다.
눈이 금방 쌓이며 도저히 추워서 더 견디기가 힘들다.
손폰을 때려 내 랜턴 불빛이 보이느냐고 하니 안보인다고 말하여 도저히 추워서 이곳에 더 지체를 못해 도로를 따라서 물골쪽으로 천천히 내려서겠다고 하며 발목이 잠기는 눈을 헤치며 도로를 따라 서서히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걸으니 내 불빛이 보인다고 연락이 오고 저쪽의 불빛도 보인다,
도로 우측에 불이켜진 콘테이너 Box가 보여 그곳으로 가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두 분이 식사중 이시다.
버스 막차가 몇시냐고 묻자 깜작 놀라며 이 일기에 이 밤에 어디서 오는것이냐며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주어 따듯한 난로불에 몸을 녹히며 손폰을 걸어서 이곳으로 오라고 전한다.
이분들은 의용 소방대원으로 폭설로 비상이 걸려 부목재에 모래를 뿌리기 위하여 올라와 계신 것이란다.
모두들 이곳으로 들어오라고 연락을 취하고 이야기 하니 5분만 내려가면 "물골가든"이 있는데 그 분이 바위도 타시고 얼음도 타시는 산악인이니 그곳에 가서 식사를 하시며 협조를 구하여 보라고 일러주신다.
잠시후 일행이 들어와 몸을 녹히고 잠시 쉬며 한담을 나누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도로를 걸러 "물골가든"에 도착하여 두부찌게를 주문하여 식사를 하며 협조를 구하니 택시를 불러 주겠다고 전화를 하신다.
눈이 무지게 쏟아지니 택시가 못 올라오겠단다.
식사가 끝난 후에 그곳 사장님의 배려로 20 : 30이 막차인 노천리까지 데려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곳 "물골가든(033-433-5986∼7) 최정식 사장님"은 전문 산악인으로 해외원정중에 후배를 눈사태로 잃고 그 상처로 산악계를 떠나서 이곳에 오셔서 조용히 살고 계신분이다.
한강기맥을 동국대보다 먼저 시작하였으나 암벽과 빙벽을 타지 않는 시간을 이용하여 종주하다보니 동국대보다 나중에 끝났다고 말씀하시며 산을 무지막하게 다니면 나중에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들 하시니 무리하지말고 여유를 가지며 쉬엄쉬엄 다니시라고 말씀하신다.
후배와 선배님들 중에 20대부터 산을 타 관절로 인하여 지금 산행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씀하시며 한수를 가리켜 주시며 외국에도 가까운 일본만 하여도 우리와 같이 무지막하게 산을 타시는 분들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보다는 연배가 한 참 아래지만 받아들일 만한 좋은 말씀을 충고하여 주셨다.
앞이 안보이는 누길로 노천리까지 데려다 주셔서 무사히 서울에 23 : 30에 도착하였습니다.
"최정식" 사장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무사히 하산을하여 집에 도착하여 산행기를 정리하며 다시 생각하니 재미있고 추억에 길이 남을 산행이라 생각하며 얼굴에 웃음을 띄워 본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