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백두대간 종주 대장정에 오르다 (2회차 4구간 / 매요리-중재마을)

인간의 일상 생활은 단조롭다 잠에서 깨어나고 하루3끼 밥을 먹어야 하고 그리고 하루 일을 해야 한다. 그 일 중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겠지 놀고있는 사람, 열심히 일을 하고있는 사람들, 등 이것은 인간 각자에게 주어진 일부분이며 연륜에 따라서 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그 일에 얼마를 충실하게, 기쁘게, 또 만족하게 하였나 를 사람마다 다르겠지.

한편으로 그 일 중에는 사람들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도 가는가 보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늙은이는 추억에 산다고 누가 거랬던가 희망이란 누구나 다 가질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 희망을 추억으로는 누구나 다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날의 꿈과 희망이 오늘의 현실이 되어 내일에 추억이 되고, 그렇게 하여 인간사 살아가는 희망과 추억이 반복되어 과거로 흘러가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절대로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말없이 흘러 가 버릴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잡기 위하여 아무리 발버둥 치지만 잡히지도, 지체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간다고들 한다 오늘도.

긴 여정에 올라선 오늘도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기쁘고 만족하기 위하여 2번째 자리한 여기에서 그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여 지금 백두대간 대장정에 올랐다. 순수하고 단조로운 삶에 대한 것들과 산에서 배운 수 많은 고통들을 한데 모아 많은 분들과 함께 훗날에 남기려 이 자리를 메우려 한다.

그 어느 날 인가를 위하여 !

1)산행회차 : 2회차 4구간 봉화산
2)산행기간 : 2002. 3. 16 (21:20)~ 3. 17 (19:20) 맑음
3)산행구간 : 4구간 매요리-중재마을 22km
매요리-복성이재-봉화산-중재-중재마을
4)산행시간 : 10 시간 예정
5)접근구간 : 자댁(21:20)-양재역(22:00)-천안안휴게소-덕유산휴게소-남원운봉-매요리(03:50)
6)산행여정 : 매요리(04:00)-복성이재-봉화산(09:00)-월경산(10:20)-중재고개(11:10)-중재마을
(12:00)
7)복귀구간 : 경남 함양 운산리(중재마을)(14:50)-신탄진 휴게소-양재역(18:30)-자댁(19:20)
8)산행 준비물 : 등산복(폴라텍 상의, 무명바지), 등산화, 28리터배낭, 비옷, 헤드랜턴, 나침판, 지도등
9)조식 및 행동식 : 찹쌀떡1봉지, 귤5개, 카라멜, 영양갱1개, 물2L1병,
10)산행 협조처 및 교통편 :
11)산행 후기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 판교 인터체인지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린다. 우리 일행은 지난번에 같이한 이제는 동료가 되어버린 사람들, 또 처음으로 만나게 되신 분들 왁자 지껄하게 한바탕 웃고 웃으며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하면서 버스는 계속하여 남으로 내려 간다.
천안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 하여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내일을 준비할 간단한 음식을
먹고는 다시 출발하여 뻥뚤린 진주간 고속도로를 한참이나 달려서 지리산 휴게소를 빠져 나와 지난번 복귀한 구간이였던 전북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에 도착 하였다.

-아쉬운 매요리 마을을 뒤로하고-
차에서 내린 일행은 헤드 랜튼, 후레쉬 등 야간 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착용하고 알고 있는 지식들을
서로들에게 알려 준다. 그런데 지난번 낮에 보았던 매요리의 한가한 시골 풍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믐이 지난 캄캄함 밤 별빚 만 영롱한 매요리 마을을 밟힌다.
언제 여기를 다시 한번 올 수 있을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우리는 산행에 들어갔다.
새벽녘 아직 찬바람이 부는 매요리 삼거리를 뒤로하고 시멘트 포장길을 걷다가 우측으로 보이는 유정리
입 간판을 보면서 좌측 산 언덕 입구에 올라선다.
야간이라서 지형적으로 어디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우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이정표인 꼬리표를 따라서
한참을 갔는데 그만 꼬리표의 정체는 없어지고 서로들 처다보는 랜턴의 불빛만 보였을 뿐이다.
우리는 갔던 길을 뒤돌아 한참을 가다가 어둠 속에서나마 귀로 들리는 자동차의 요란한 소음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따라 찾아 간 곳이 88고속도로였다 고속도로가 바로 밑에 보이는 급한 내리막 길에 내려선다.
88고속도로는 말이 고속도로이지 2차선 도로에 차량 통행이 드문 시골길 같다 그 고속도로를 북쪽으로
약70도 좌측으로 가로 질러 산 능선입구에 올라 선다.
능선입구에 들어서면 개들이 짖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새벽녘 정적을 깬다는 말이 그 때를 연상 한 것 같았다 온 동네가 떠나 가는 듯 했다 아마 안쪽 동네에 개를 키우는 집이 있는가 보다.

-지리산 휴게소를 바라 보면서-
사치마을을 좌측으로 가파른 능선에 올라서면 사치재(이실재)에 닿는다 하얗게 마른 억새풀이 어둠이 가지 않은 시야를 백야로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산아래 내려다 보이는 지리산 휴게소에 불빛이 드문드문 하여 한가롭기 거지없다. 어둠이 가시는 새맥이재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시리봉 봉우리가 저만치 보인다.
억새길 을 헤집고 여러개의 능선을 넘다 보면 103-3-38 헬레페드 위치를 보게 된다 그 길을 따라서 계속하여 능선을 오르내리면 아막산성에 도착한다.
돌 무덤이라도 된 것 처럼 가파른 경사에 길도 없이 내리막길로 연결 된다 아주 위험한 돌 밭이다 그 옛날 신라와 백재가 무수한 전투를 벌렸던 격전지였다고들 한다.

-복성이재를 가로 질러서-
아막산성을 지나서 군데군데에 아름들이 소나무들이 잘려 있는 능선을 지나고 부토와 낙엽으로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는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 놓은 길을 한참 가다 보면 복성이재에 도착한다 허물어진 화차 1대가 우리를 물끄러미 처다 본다 벌목에 사용하였던 화차 인 것 같았다. 시멘트로 포장된 복성이재를 가로 질러서 다시 능선 길에 오르면 좌측으로 길게 처 놓은 거물 망이 보인다 전해진 말로는 염소를 키우기 위한 거물 망 이라고 하는데 확인된 것은 아니다.
처 놓은 거물 망을 따라서 산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트인 경관이 아침 일찍 산에 오른 우리를 속 시원하게 해준다 저 멀리 보이는 작년도 완공한 동화댐이 눈에 들어오고 산 아래엔 진달래 동산이 넓은 평야처럼 대단하다 아쉽게도 피우지 못할 계절이라서 진달래가 핀 장관을 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올라온 산정상에서 역사에 기록될 오늘 아침 식사를 한다 준비해 간 찹쌀떡과 귤 그리고 파스테르 우유2개로 아침 식사를 대신 하였다 우리의 인체는 계속 걸음을 걷게 되면 위가 아래로 처져서 음식물 소화에 장애를 받기 때문에 소화가 비교적 잘되는 찰떡 혹은 간단한 과일로 택했다 이유는 과거 조직 생활 할 때에 의식 고도화 훈련 중에 체험한 경험으로 메뉴를 택했다(의사가 아님).

-뻐꾸기의 울음소리의 전설-
이른 아침 뻐꾸기가 구슬프게 운다 왜 하필이면 아침에 울까 복성이재에서 올라온 정상에서 내리막 길에는 진달래 밭으로 키 만큼 큰 진달래 꼿 나무들이 지나가는 우리들의 얼굴을 때린다 그 기에는 큰 나무도 없는데 어디에서 우는지 그렇게 구슬프게 울어 댄다 뻐꾸기는 키 큰 나무 가지에 앉아서 우는데 오늘 따라 특이하게 울어 댄다 길조인지 아니면.

-봉화산(919)정상에 오르다-
아침 식사로 충전한 우리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산 아래로 펼쳐진 진달래 꼿 동산을 뒤로 하고 멀리 보이는 봉화산을 향해 능선에 올랐다 능선을 따라서 치재를 지나고 또 높지 않은 산 이였지만 보이는 산 마다 민둥산이고 산들이 전부 골을 지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잘 정리된 옛날 능선 지도 같이 보인다
오래 전 산불로 인하여 민둥산이 되었다고 한다. 능선을 가다가 보면 푹 꺼진 얕은 고개엔 야트막한 무덤이 하나있다.
그런데 매년 벌초를 하지 않았는지 잡초가 무성하다 아마 작년도에 벌초를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잘 다듬어진 비석은 아주 깨끗하다 "홍성장공인성지묘" 라고 우리말로 새겨져 있다 멀리 있는 후손 들인가 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약 5시간의 산행이 계속될 때부터 지난번에 발생된 다리 통증이 시작된다 우측 정갱이와 무릎 사이에 다시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중단 할 수없는 일이기에 속도를 늦추어 계속 산행을 하였다. 봉화산을 바라 보면서 걷는 길은 낙엽으로 푹석푹석하여 금방 갈아 엎은 시골 과수원 길 같은 느낌이 든다 가지가 뻗은 덩쿨하며 자연히 생긴 일정한 간격의 나무 사이들, 혼자서 걷는 나를 아주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지루한 능선을 줄곧 걸어서 산불 감시 초소가 보이는 다리재를 지나 봉화산을 9시 정각에 도착한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기둥에 새겨진 "백두대간 봉화산" 팻말 누구인지 모르나 매직으로 쓰 놓은 920고지,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 냈으나 작동을 하지 않는다 아마 배낭을 꾸리면서 많은 물건들이 눌려서 카메라가 고장 난 것 같다 아쉽지만 어떡하랴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암시라도 하듯이 남으로 보이는 지리산 능선들이 뿌옇게 흐려있어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만 보인다.

-전북 장수군에서 경남 함양군으로 넘어서다-
출발은 전북 운봉 매요리에서 출발하여 약6시간 지난 통과 지점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을 지나고 있었다 우측 다리의 통증으로 일행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혼자서 산행을 하였다. 봉화산을 지나서 무명봉을 넘어면서 첩첩 산중에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불안 해 지기 시작한다 가진 지도와 설명상에는 이곳이 탈출로 인 것도 같다 판단을 흐리게 한다 다시 준비한 지도와 손목에 찬 나침판을 처다 본다 그래 계속 북으로만 가자, 마음 속으로 결정하고 지도를 보니까 전북과 경남을 넘나드는 경계선을 지나가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산신령을 만나다-
계속 나침판을 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가파른 경사 길을 가는데 사람이 마음이 조급하고 궁지에 몰리게 되면 아픈 것도 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터득 하였다 아픈 곳도 모르고 지친것도 잊은체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오르고 내리기를 1시간 여를 가는데, 저만치에서 등산객 한 사람을 만났다. 가뭄에 단비를 만나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공손히 인사를 하고 월경산을 넘어서 중재와 중재 마을을 가는데 이 길이 맞느냐고 물어니 맞다고 한다. 그때 그기분은 정말로 금방 뛰면서 춤이라도 한번 출 것 같은 기분 이였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판단을 잘못하여서 탈출로를 여기에 오기 전에 탈출을 하였다면 일행과 만나지도 못하고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어느 제조사의 상품 선전 문구를 연상한다 만약 그랬다면 제자리에 오는데만 약2시간이 넘게 걸려야 도착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찔하다. 땀도 식힐 겸 하여 살아 있는 산신령과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 연세는 61세 백두대간을 종주 중이라고 한다 5년 전 강원도 진부령을 출발하여 오늘 여기에 닿는다고 한다, 집은 충청도 라고 한다 정말로 대단하신 분 같다 나보다도 더한 것 같다 나는 신령님에게 반드시 종주를 끝내시고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중재(탈출로)-
중재란 아마 무거운 고갯길을 뜻 하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걷는 길이 왜 그렇게 지루한지 여러번 산을 다녀 봤어도 그렇게 지루한 산행은 처음 이였다 불교에서 고행이란 말이 이럴 때를 비유한 것 같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르는 능선길 발은 불어 터질 것 같고 우측 다리에 통증은 심해지고 혼자서 걷는 산행에 심리적 불안까지 겹쳐서 모던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럴 때를 불가에서는 苦行이라 하였던가? 모든 잡념을 버리고 인간사에 진리를 통달하고 교리를 탐독하며 사리에 맞는 지덕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 곳 중재에 비교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들이 심산유곡의 산중에 있었던 것인가, 그러나 어렵게 시작한 백두대간인데 쉽게 포기 할 순 없지 하면서 계속 산행을 하였다. 광대치를 지나고 무명봉과 월경산(980)을 넘어서 중재로 항했다.

-세월없는 내리막길-
그렇게 2시간의 고행 끝에 중재에 닿는다. 중재를 우측으로 탈출하여 우마차 내리막길 또한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길이였다 터벅터벅 걷는 발자국 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걸음 같이 무겁다 발바닥엔 물집이 생겨서 아픈데 그 길이 왜 이다지도 지루하였던가 마을이 저 만치 보이는데도 아무리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 산길 얼마를 걸었을까,

-중재마을 종착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재마을엔 몇 가구 살지 않는 전형적인 시골 농촌 마을 시냇가에 물이 흐르고 이른 봄 밭에는 농사일을 준비하는 농부들 중재마을에 도착 하였음을 알리듯 우리를 부르는 것 같다 무사히 잘 도착 하였구나 하는 안도감을 내쉰다 먼저 출정식 때에 三神에게 빌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산신령이 길을 잘 인도 하여 주어서 무사히 여기까지 잘 도착 하였노라고,
길옆 민가 공터에서 여장을 풀고 마을 앞 냇가 흐르는 시냇물에 산행에 지친 발을 발목까지 담가 본다. 아직 발이 시려서 오래 담거지를 못하겠다 마을 농부에게 동네 이름을 물어 본다. 중재란 이름으로도 부르며 중기 마을 이라고도 한단다.
그런데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탓인지 그 농부의 대답이 퉁명스럽다. 경상도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사람들과 견제를 하는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주고 간 건가, 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짖는다.
우리는 준비해간 전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충북 번호판을 붙인 고동색 마티즈 승용차가 우리에게 백두대간 할아버지를 못 봤느냐고 묻는다 내가 만난 살아 있는 그 산신령 이였다. 그 때 우리는 저 만치 도착한 할아버지를 보고 있을 때였다. 저기에 있다고 하니까 고맙다고 한다 그 승용차는 할아버지를 태우고 다시 우리 앞을 지나면서 조금 전에 물었던 감사의 회답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지나 간다. 아마 딸(며느리)일꺼야 하고 추측해 본다 효성이 지극한 것 같다 이것을 보고 모두들 무엇을 생각 했을까.

-2회차 4구간 종주를 끝내고-
중재마을(운산리)에 도착하여 준비한 전심을 먹고는 산행에 지친 육신을 차에 싣고 귀경 길에 오른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있게 해준 三神에게 감사를 한다고 하며 잠시 묵념을 한다.
산은 인간에게 겸허와 성실 그리고 인내의 미덕을 가르처 준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모든 분들께 감사 한다.

그 살아 있는 산신령의 무사한 종주를 빌면서
다음의 여정을 준비 한다.

3. 3회차 5구간 종주 계획
1)산행일정 : 2002. 4 .6 ~ 4. 7
2)산행구간 : 중재마을-중재-백운산(1278)-영취산-깃대봉-육십령
3)행정구역 : 경상남도 함양, 전라북도 무주

2002년03월19일 씀
Chari Killo 장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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