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구간  성삼재 ~ 여원재

코스 : 성삼재-작은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수정봉-입망치-여원재       
(실거리 약 19.4km)
기간 : 2002. 2. 28(木) ~ 3. 1(金)
인원 : 아내와 나
기상 : 맑음, 실바람, 영상 5도 ~ 7도

봄방학 중이라 아이들이 부모님 집에 가있어 아내가 선뜻 따라 나섰다. 최근에 가끔 가까운 광교산에 오르긴 해도 하루 산행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따라나서는 아 내가 걱정은 되었지만 과거의 전적을 생각하자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수원역에서 밤 11시 22분 무궁화호에 탑승하니 입석으로 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않아서 가는 것이 괜히 마음에 걸려 아내와 난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새벽 4시 10분 구례구역에 도착하여 시래기 해장국에 주방아줌마의 입담을 반찬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에 올라 성삼재(05:00)에 도착하니 사방은 고요하고 기온은 제법 온화하니 산행하기 아주 그만인 날씨다.

성삼재 주차장을 출발(05:15)하여 861번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만복대 들머리인 철책 문이 밝은 달빛에 무단출입을 경고하며 하얀 이를 들어 내 보이고 있다. 허나 철문은 버젓이 들어가라는 듯 활짝 열려 있으니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당당하게 들어갈 수밖에.... 일천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시작하는 작은고리봉 오르는 길을 완만한 경사를 이루었지만 좁 은 길과 무수한 잡목터널 인지라 운행이 더디고 얼굴과 어깨를 성가시게 한다.

헬기장(05:36)을 지나 달빛을 머금은 작은 고리봉(1,245m)이 눈에 보이는 듯 하더니 제법 뚜렷한 길을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작은 고리봉을 우회(06:10)하고 말았다.

묘봉치(06:25)를 지나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니 눈앞에 만복대가 마주하는 반야봉과 함께 아침을 맞고 있다. 언뜻 보기엔 노고단을 닮은 모습이지만 그 산세가 노고단보다는 아름답다.
3번째 헬기장을 지나 만복대 3km지점(06:58) 부터는 줄 곳 마른 억새풀 냄새가 코를 기분 좋게 자극하고 간간히 나타나는 산죽지대는 산행재미를 더한다. 틈틈이 뒤에 오는 아내를 확인하고 지나온 능선 뒤안길을 살펴보면 지난번 1구간 산행기억 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감회에 젖기도 한다.
억새숲의 4번째 헬기장(07:07)을 통과 하니 줄 곳 만복대 까지는 목재울타리가 1Km 가량 길 안내하고 있다.
대간의 마루금을 밟는다는 것은 탁 트인 사방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멋진 풍경을 여러 번 경험을 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 벅찬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다.

만복대(1,433m/08:00)는 그동안 흘렸던 땀을 보상이라도 하듯 동쪽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 려운 황홀한 운해를, 남서쪽은 천왕봉, 반야봉, 삼도봉, 노고단, 종석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서쪽은 세걸산과 바래봉(1165m)이, 북쪽은 대간의 마루금과 고리봉이 지도처럼 또렷하게 그려져 있으니 지어진 이름에 걸맞게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는 조망이 뛰어난 산정임을 자랑하고 있다.
그뿐이랴 반야봉의 예쁜 엉덩이와는 달리 산골 아낙네의 펑퍼짐하고 넉넉한 만복대의 완만 한 능선은 온통 황금색을 띤 억새로 장관을 이루고 있어 감탄을 금치 못하고 한 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그렇게 서 있었다.
아무튼 시쳇말로 "죽음이죠!" 란 표현이 더 실감날 것이다.

[ 묘봉치에서 만복대 일대는 억새군락으로 교목과 관목의 지지기반이 없는 토양으로 탐방객들의 발길에 맨땅이 넓어지고 기후의 변화에 토양이 씻겨나가고 있으며 이로 인한 토양침식으로 탐방로가 깊게 패어져 그 보완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나마 관리공단에서 더 이상의 침식을 막기위해 흙마대를 깔고 목재 울타리 시설로 복원 을 시도하고 있어 다행으로 여겨지지만 흙마대 보다는 목재 발판이 더 효과적인 대안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다시는 입장료 아깝다 생각지 말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떡과 커피를 먹고  만복대와 아쉬운 이별을 하며 10여분 내려서니 갈림길(08:27)이 나온다. 길 주의란 대간 안내지도의 표기와는 달리 기념리본들이 길 안내를 충실히 한 덕에 탐방로 안내 표지판(08:37)을 지난다.

그런데,
잔설로 미끄러운 북사면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던 중 뒤 따라 오던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엉덩방아를 찌고 않아 있는 아내 모습이 심상치가 않다. 서둘러 올라 아내를 부축하니 왼쪽 골반부위를 만지며 통증을 호소한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니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고 몸이 균형을 잃으며 왼발을 잘못 디뎌 근육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구간을 지날 때 곳곳의 잔설로 아이젠을 채워줄까 여러 번 생각을 했는데 선 듯 시행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으니 미안함이 앞선다. 일전에 윤기웅씨가 준 로션타입 파스가 배낭속에 있는 것이 기억이 나서 얼른 꺼내 바르고 아이젠을 채워준 뒤 무거운 마음을 배낭에 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불감시초소(09:17) 아래서 아내를 기다리는 데 아내의 걸음이 매우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그나마 아내에게 얼마 전 사준 두 개의 스틱이 제몫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렵게 나선 길인데 내게 부담을 줄까 불평한마디 안 하는 아내가 측은하다.

정령치(1,172m/09:20) 737번 도로에 내려선 맞은편 정령치 휴게소는 휴일에도 불구하고 문 이 굳게 닫혀 있고 차량 또한 일체 볼 수가 없다. 휴게소 왼편에 난 계단을 올라 서쪽을 보니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하여 장터목, 세석, 명선봉, 토끼봉, 반야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이제 시작인데 저리도 많은 산정을 내가 지나 왔더란 말인가. 왼발을 절고 있는 아내에게 계속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으나 내심 욕심이 앞서는 마음이야 어찌할 도리가 없다.

괜찮다는 아내를 일으켜 세우고 오른쪽에 있는 철책을 넘어 고리봉으로 향했다. 고도차가 그리 크지 않은 굽은 길을 지나면서 제법 규칙적으로 다듬은 돌밭길을 만나게됐 다. 이상하여 유심히 살펴보니 정갈하게 쌓은 모양세가 산성터(09:47)임에 분명했다.

자료에 의하면 수정봉과 입망치 구간에 운봉산성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 정령치와 고리봉 구간에도 석축으로 쌓은 산성터 흔적이 있다. 갈림길인 고리봉(1,305m/10:01)을 조금 숨차게 올라보니 북사면 아래로 정령치에서 내려오 는 737 지방도로 끝자락에 고기리 고촌마을이 내려 다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세걸산과 바래봉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고리봉에서 줄 곳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 되 아내가 더욱 걱정이 된다. 제법 모양 좋은 소나무 한 구루가 있는 산정(10:25)에 서니 고도계가 1,195m를 표기한다. 고기리 2km지점(10:49), 묘1(10:52), 묘2(11:22), 묘3(11:28), 묘4(11:39)를 독도에 주의 하며 내려왔지만 자주 보이는 기념리본 덕을 톡톡히 봤다.

지리산 국립공원의 경계인 고기리 삼거리(560m/11:49) 730 지방도로에 내려서 잠시 휴식
을 취하니 이곳이 백두대간인가를 의심케 한다. 고기리 도로를 따라 1km정도를 내려와 급한 커브길 기점에서 왼쪽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진 입하면 주촌리 운천교회(12:11)와 운천초등학교가 반긴다.
이곳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길을 계속 따라가면 가까이에 가재마을(12:20)이 정겹게 다가온다.
전형적인 농촌마을 풍경이다.
마주치는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니 불청객 보듯이 시큰 둥 하시다. 이곳에서 여원재 까지는 물 구경하기 힘들다는 말을 기억하고 수통에 물을 채우려 마을사 람에게 말을 건네니 흔쾌히 안내까지 해주며 물을 받게 해준다.
수통에 물을 채우고 있노라니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우리에게 정겹게 말을 건네고 언제 떨구었는지 골목에 흘린 지도까지 주워 내민다. 더 보태어 마을을 떠날 때 배웅까지 해주니 시골인심이 아직도 쇠퇴하지 않았음에 마음이 한없이 넉넉해져 온다.

이렇게 백두대간은 험준한 산을 잠시 내려와 지나는 길손을 기분 좋게 쉬어가게 하니 그 배 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마을 뒤 아주 오래되고 기품 있는 소나무 4그루 아래서 점심(12:35)으로 먹은 떡국은 기상천외 한 맛이다.
곰국에 건조시킨 시금치 된장을 풀어 떡국을 끓이니 퓨젼요리가 따로 없다. 점심을 맛나게 먹은 후 허리를 펴고 누워보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13:40)

어렵게 몸을 일으켜 다른 나무는 찾아볼 수 없는 빽빽한
소나무 숲길을 숨 가쁘게 오르고 또 오르니 깃발은 온데간데없고 깃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수정봉(804m/14:41)에 올라섰다.
수정봉 내려서는 길은 아내의 아픈 다리로 내려서기가 그리 좋지 못한 상태여서 마음이 조 급해지고 염려스럽다. 자료에 표기된 데로 운봉 산성터로 보이는 기와크기의 석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아내
의 왼발을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황산대첩으로 유명한 황산벌이 보이는 듯 하더니 이내 소나무 숲으로 가리워 지 곤 하니 조금은 답답한 운행이다.

입망치(15:19)에 도착하자 뒤이어 오는 아내는 앞에 보이는 750고지를 보고는 기겁을 하며 울상을 짓고 만다.지금와서 격려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 그래도 넘어서야 할 길이기에 마지막 안간힘을 쏟는 방법외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내는 어떻게 올랐을까, 정말 가파른 오르막길을 이를 악물고 오르니 그 모습이 비장하기 이를 데가 없다.(05:53) 제발 이제는 여원재가 보이기를 학수고대하며 길을 찾으니 암봉사이로 여원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하지만 가깝게만 보이던 여원재가 야속하게도 빨리 다가오지 않자 아내의 인내심에 한계가 온 듯 한순간 일그러진 아내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다.

파헤쳐지고 흉물스럽게 찢겨진 백두대간의 임간도로를 30여분 통과하니 드디어 여원재다.(470m/17:15) 여원재 표지판 옆 버스 승강장에 서니 바로 남원 행 버스가 마침 우리 앞에 멈춘다. 버스에 올라탄 아내는 그제야 하얀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 같다. 위로의 말을 전하니 조금은 고통스러웠으나 좋은 경험이었음에 자신을 위안한다. 아마 다시는 안 올 것이라 확신하지만...#@$*X

고통과 싸우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을 아내에게 맛난 음식이라도 사줄겸 남원역(17:30)에 서 택시를 타고 춘향골내 한 음식점에서 갈치정식을 먹었는데 아쉽게도 그 맛이 보통이다. 남원역발(19:58) 무궁화호에 피곤한 몸을 실어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남쪽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관통하는 72개의 도로중 이제 겨우 6개의 도로를 통과했을 뿐이 다.(벽소령,코재,성삼재,정령치,고기리도로,여원재) 갈 길은 아직도 멀지만 차곡차곡 무언가 성취되는 듯한 느낌이라 즐겁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