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16차 구간종주 산행기

1.산행일정 : 2002. 5.18(토)
2.산행구간 : 죽령-소백산-고치령
3.산행친구 : 나홀로
4.산행여정
- 5/18 : 제21소구간(죽령-제1연하봉-소백산-국망봉-늦은맥이-마당치-고치령 : 24.5Km)
23:26 울산 출발(5/17)
03:13 풍기 도착
04:00 죽령 도착 및 산행 시작
06:20 천문대
07:08 제1연하봉
08:22 소백산 비로봉(1,439m)
09:48 국망봉
11:23 늦은맥이
12:30 연화동 갈림길
13:37 마당치
14:50 고치령

5.산행기
- 죽령 가는 길
모처럼 2박3일을 산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산행준비를 하느라 텐트와 침낭 커버도 사서 장비 보충도 조금 한다. 산행 날짜가 다가 오는데 며칠동안 비바람이 몰아 친다. 다행히 산행 당일은 날씨가 괜찮다고 한다.

퇴근하면 바로 산행준비를 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축구를 한단다. 사업부 대항 축구대회란다. 월드컵 스페인팀 연습구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왼쪽 눈에 공을 맞아 얼굴이 안경에 긁혀 상처가 하나 생겼다. 올핸 머리며 얼굴에 자꾸 상처가 생기는 걸 보니 뭔가 조심을 단단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에 가기 전에 다리에 힘을 빼면 안 되는 데 하면서도 그 놈의 승부 때문에 온몸이 땀에 젖는다.

일찍 집에 와서 배낭 꾸리고 시간이 나면 조금 자 둔다는 것이 허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선다. 어깨가 예사롭지 않다.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닌 걸...

울산역에서 고향 의성으로 가는 회사 직원 박정숙씨를 만난다. 배낭을 보고 동그란 눈을 더욱 치켜 뜬다.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풍기로 향한다. 차창엔 작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아도 정거장마다 안내방송을 하는 것이 낱낱이 귀에 들어 온다.

숨가쁘게 달려온 기차는 새벽녘 비오는 풍기역에 등산객 몇 명만 내려 놓은 채 가던 길을 떠난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오는 건지 마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역 앞 택시 정류장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개인택시 사무실에 불만 켜진 채 아무도 없다. 잠시 기다리니 택시가 한 대 온다. 배낭을 뒷 트렁크에 싣고 나니 이미 택시 안에는 네 사람이 먼저 타 있다. 순서대로 타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기사가 미안하다면서 도로 배낭을 꺼내 준다. 두 번째 택시도 마찬가지다. 트렁크에 배낭만 싣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타서 앉아 있다. 항의를 하니 뒤에 남은 일행들 한테 비로사로 오라면서 출발을 재촉한다. 택시에서 배낭을 꺼 내며 남은 일행이나마 들으라고 한마디 한다. 산에 다니는 사람이 예의가 없다고...

하는 수 없이 지난 번 탔던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자고 있는지 신호가 간지 한참 있으니 전화를 받는다. 죽령에 가자고 하니 알았단다.
지난번에 죽령 주모의 말만 믿고 버스를 타기위해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하여 희방사역까지 걸어 내려 왔는데, 1시간을 걸어 와서 택시를 불렀었다. 기사는 오면서 과속 단속 카메라에 걸렸다고 투덜투덜했다. 기왕이면 그 택시를 이용해 주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금방 나타난 택시를 타고 죽령으로 간다. 비는 여전히 조금씩 내리고 있다. 죽령으로 오르는 꼬불꼬불한 길은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사는 운전대를 꽉 잡은 채 긴장된 모습으로 운전에만 열중한다. 죽령의 새벽 안개 때문에 택시기사들은 이쪽으로 잘 오려 하지 않는단다.

- 안개 비를 맞으며 비로봉으로
택시는 죽령 주막을 지나 매표소입구에서 멈춘다.
여전히 짙은 안개는 온 사방천지를 감싸고 있다. 맞은 편 가로등이 짙은 안개로 하늘에 떠있는 달처럼 보인다. 천문대 7km, 비로봉 11.5km, 국망봉 14.6km라고 적힌 죽령의 이정표를 뒤로 하고 콘크리트 포장 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길섶 풀잎에 방울방울 맺혀 있을 물방울에 옷이 젖지 않아 좋을 것 같다. 랜턴을 끄고 안개비 내리는 새벽 길을 걷는다. 어둠 속이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콘크리트 길은 걸을 만 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염려도 없고 비가 왔다고 미끄럽지 않아 좋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해 그 어지러움이 나타난다. 무거운 배낭을 졌는데도 자꾸만 눈꺼풀이 내리 깔린다. 군 복무 시절에 졸면서 야간 행군했던 기억이 난다. 유난이도 행군이 많았던 군 시절이었던 같다.
도저히 잠이 와서 못 걷겠다. 배낭을 맨채 콘크리트 길 위에 벌렁 눕는다. 잠을 쫓으려 하늘에 대고 고함을 질러 본다. 눈을 뜬 채 어둠 속의 허공을 응시한다. 안개비가 얼굴을 적신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그대로 눈을 감는다. 대지의 숨소리를 느껴 보기 위해 조용히 귀 기울여 본다. 아침 일찍 눈을 뜬 새들의 지저귐이 들린다.

새벽 안개 자욱한 통나무 전망대에서 가져온 옥수수 하나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죽령을 출발한지 1시간 30분 만에 중계소 삼거리에 닿는다. 콘크리트 포장길은 오른쪽 중계소로 향하고 왼쪽으로는 천문대 2.7Km로 표시되어 있다. 그 길로 약 30분을 가면 천문대이다. 큰 길은 천문대에서 끝이 난다.
비로봉 4.2Km, 희방사 2.4Km, 죽령 7Km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 나무계단으로 된 탐방로를 따라 간다. 안개 속으로 보이는 나무 계단이 제법 운치를 더해 준다.

제1연화봉을 지나 비로봉으로 향한다. 안개는 여전히 나를 에워싸고 아무 것도 보여 주질 않는다. 촉촉한 능선 길을 오르내리며 계절의 절묘한 변화에 감탄한다. 숲속은 언제 자라났는지 온갖 풀들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록의 화원이다. 600미터의 나무계단을 따라 드디어 비로봉에 오른다. 안개 때문에 경치를 구경할 수가 없다. 키를 넘기는 소백산 비로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길을 재촉해 국망봉으로 향한다. 국망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는 5월 31일까지 출입을 통제한다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등산로 훼손 때문에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따라 걷는다. 안개 속으로 나무계단이 소실점처럼 사라진다.

아기자기한 오르내림과 길가의 들꽃으로 인해 산행길이 더욱 즐겁다. 안개는 내가 볼 수 있는 한계를 반지름으로 하여 그것까지만 보여 주는 것 같다. 최근 대간길 몇 번 동안 참 안개와 인연이 많다. 버리미기재에서 이화령까지가 그랬고, 벌재에서 죽령이 그랬고, 또 이번이 그렇다. 그 전부가 혼을 빼앗아 갈만큼 좋다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던 데 정말 아쉽기 그지 없다. 왜 나만 미워하는지 모르겠다.

- 고치령을 향해
아홉시 48분에 국망봉에 닿는다. 기묘하게 생긴 큰 암봉이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와 경북의 도경계를 이루는 소백산의 한 봉우리다. 여기에는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 온단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56代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명산과 대찰을 찾아 제천군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경저(東京邸)라는 궁궐을 지어 머물러 있었는데,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를 회복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엄동설한에도 베옷 한 벌만 걸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 이 곳에 올라 멀리 옛 도읍지 경주를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지었다 하여 그 이후 이 곳을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의태자의 슬픔을 생각하며 김밥으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상월봉으로 향하는 능선에는 늦게 핀 진달래와 고만고만한 키의 철쭉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물오른 꽃봉오리들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있다. 분홍빛 꽃망울들이 처녀 젖꼭지 같다.
상월봉 직전에 길을 잘못 우회하여 알바를 한다. 가다가 나침반을 보고서야 길을 잘못 들어 섰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거운 배낭에 알바는 사람을 거의 미치도록 한다. 다시 상월봉을 올라서서 고치령으로 향한다.

신선봉갈림길이라는 이정표에 닿는다. 아마도 지도상의 늦은맥이고개가 여기리라. 왼쪽으로 가면 신선봉과 구인사이고 오른쪽 길이 마당치로 가는 대간길이다. 배낭을 맨채 털썩 주저 앉아 휴식을 취한다. 안개가 걷히면서 잠시 초록빛 산과 파란색 하늘의 모습을 드러내 놓는다. 막힌 숨구멍이 터진 것처럼 시원하다. 숨 호흡을 크게 해 본다. 완연한 실록의 계절이다.

마당치로 향하는 길은 지도상에서 느낀 그대로이다. 밋밋하고 특징없는 능선길이다. 길은 갈참나무와 같은 잡목들로 둘러 쌓여 아무 것도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곳곳에 피어 길가에도 떨어진 키 큰 철쭉꽃만이 지치고 외로운 대간꾼을 반겨 준다. 어쩌다 한번씩 손바닥만 나무 숲 사이로 햇볕이라도 들어 오면 새소리 지절대는 푸른 숲과 연분홍 철쭉이 엷은 안개와 더불어 꿈을 꾸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늦은맥이고개에서 지리한 능선 길을 따라 한 시간 쯤 걷다 보면 연화동갈림길에 닿는다. 연하동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 있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란다. 이 이름은 풍수의 연화부수(蓮花浮水)에서 따온 말로써 물위에 뜬 연꽃 형국의 명당을 품은 탓에 연하동이라 불리어 졌단다. 아직도 고치령까지는 한참을 가야 한다.

짓누르는 어깨를 추스르고 지친다리에 채찍질하며 마당치로 향한다. 모자 창에는 땀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바지 가랑이는 풀섶에 달린 물방울을 모조리 쓸어 담아 다 젖어 있다. 오늘은 속도가 나면 마구령에서 야영을 하고, 내일은 곰넘이재에서 자고, 모레는 일찌감치 집에 갈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 너무 무리를 하는 모양이다. 배낭이 너무 무겁고 잠을 한 잠 못잔 탓일까?

집을 나설 때 아내가 장인 어른 심장 수술하기 전에 찾아 뵈어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은근히 산에 가는 걸 만류하는 눈치였다.
"태백산 천제단에 가서 수술 잘 되라고 빌고 올께!"
하고는 배낭을 들쳐 매고 집을 나왔었다. 사실 오늘은 수술에 필요한 피를 뽑으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장인 어른을 찾아 뵙지 못하는 것이 하루종일 마음에 걸렸다.
오늘 일정도 거의 끝나는 시점에 어떻게 할까를 고민해 본다. 몸은 피곤하여 고치령에서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고, 장인 어른을 찾아 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휴대전화를 꺼내 미리 택시를 부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당치에 내려 선다. 제법 넓은 공터에 잡초만 무성하다. 옛날에는 제법 넘나들었을 백두대간상 고개들이 요즘에는 큰 신작로가 나 있는가 하면 이렇게 흔적 조차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묻혀져 있는 곳도 있다. 마당치에서 마지막으로 1,032봉을 힘겹게 올라 고치령 0.3Km라고 적힌 이정표에 다다르자 아물지 않은 흉한 상처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불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검뎅이 그대로다.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들은 새잎을 하나도 내지 못했고 풀도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려 온다.

고치령에 내려선다. 이 곳에서 소백이 끝나고 이 곳으로부터 태백이 시작한다. 정상에 있다던 산신각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새끼줄이 쳐진 채 나무 몇 그루만 심어져 있다. 아마도 산신각이 있던 자리인 모양이다. 쓸쓸함이 감도는 고갯마루를 외롭게 지키고 있어 지나는 산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던 산신각에는 북쪽 영월에서 죽어 태백산신령이 되었다는 단종과 남쪽 순흥으로 유배되었다가 안동에서 죽어 소백산신령이 되었다는 금성대군을 함께 모시고 있는 곳 이었단다. 산신각은 얼마 전에 순례객이 켜 놓은 촛불에 의해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소실되었다고 택시기사는 전해 준다.(終)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풍기(기차 11,400), 풍기-죽령(택시 15,000)
- 복귀로 : 고치령-영주(택시 40,000), 영주-동대구(버스 8,800), 대구-울산(버스 5,000)

7.제17차 구간종주 계획
- 일정 : 2002. 5.26
- 구간 : 고치령-도래기재(24.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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