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
제19차 구간 종주 산행기(1)

1.산행일정 : 2002. 6.29-6.30(1박2일)
2.산행구간 : 제25/26소구간(피재-댓재-백복령 : 51.0Km)
3.산행친구 : donkey only
4.산행여정
- 6/29 : 제25소구간(피재-건의령-구부시령-덕항산-큰재-황장산-댓재 : 24.0 Km)
23:26 울산 출발(6/28) 청량리행 열차, 영주에서 강릉행 열차로 갈아탐(6/30 03:00)
04:55 통리역
05:38 피재 도착 및 산행 시작
07:39 건의령
08:06 푯대봉 입구
10:48 구부시령
11:16 덕항산(1,070.7m)
13:18 지암재(장암재)
16:03 황장산(1,059.0m)
16:15 댓재(810m)-1박
(총 산행시간 : 10시간 37분)

5.산행기

- 6월의 추억
2002년 6월. 월드컵.
16강으로 우리의 꿈을 이뤘고, 8강으로 기적을 만들었으며, 4강으로 신화를 창조한 대한의 태극전사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실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정말 통쾌하기 그지 없다. 붉은 함성으로 열광한 그 뜨거운 6월은 결코 잊을 수없을 것이다.
무엇이 이 보다 더 즐거울 수 있으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2002년 6월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또 하나의 나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백두대간의 길을 떠난다. 한 달을 쉰 대간 길을 만회라도 할 요량으로 2박3일의 산행장비를 준비한다.

밤차를 타고 길 떠나는 일이 이젠 낯설지 않다. 연인인 듯한 두 사람은 아예 내 좌석을 돌려 놓고 다리를 쭉 뻗고 서로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다. 인기척에 놀라 다리를 오므려 준다. 난 짐을 선반에 올려 놓고 저 만치 빈자리에 가 앉으면서 잘자라고 한다. 듬성듬성 빈 자리를 남겨 둔 채 제각각의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다. 차내 안내 방송을 듣고 벌떡 일어나 영주역에서 내려 강릉행 기차로 갈아 탄다.

태백의 고원에 있는 통리역의 이른 아침은 제법 쌀쌀하다. 역 앞에는 택시 표시등을 밝게 켠 택시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택시기사는 아예 겨울 잠바 차림이다. 그러고도 춥다고 호들갑을 떤다. 기사가 안내한 식당에서 아침으로 해장국 한 그릇하고 다시 피재에 선다. 하늘은 맑고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채 지지도 못하고 아침 해에 들킨 반쪽 달은 파란하늘에 창백한 얼굴을 드러내 놓고 매봉산 위에 걸려 있다.

- 지루한 잡목 숲의 연속
빗물의 운명이 적힌 피재(일명 삼수령)의 조형탑을 뒤로 하고 숲길로 들어 선다. 북진하던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동북진하다가 여기 피재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화창한 날씨에 간간이 숲속 깊이 들어 오는 아침 햇살이 싱그러움을 더해 준다. 멀리 매봉산 언저리의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이 아침해를 안고 있다. 곧장 만나는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가다가 다시 숲길로 접어들어 몇 구비를 지나 잡목으로 부터 벗어 나니 넓은 공터를 지나는 임도가 나온다. 풀잎에 알알이 맺힌 아침이슬이 진주 목걸이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건의령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20여분을 더 가야 건의령이다. 내가 갖고 있는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한의령으로 적혀 있다. 대간꾼들의 하룻밤 다리 쉼을 했을 야영 흔적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푯대봉 오르는 길 도중에 하늘을 가리는 잡목 숲에서 벗어나 잠시 전망좋은 바위에 앉아 쉰다. 지도상에 태백시 삼밭골이라고 적혀 있는 마을이 조용히 앉아 있다. 마을에서 올라온 능선은 푯대봉으로 이어져 있다. 맑은 하늘과 푸른 산, 고운 햇살 퍼지는 마을의 아침 풍경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푯대봉 입구에는 '이 길은 대간 길이 아닙니다. 5미터 후진 후 좌회전'이라는 빨간 표지기가 달려 있다. 대간길이 푯대봉을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 대간길은 동급서완(東急西緩) 지세의 한 가운데로 가로 질러 올라 가고 있다. 오른쪽은 급한 절벽이요, 왼편의 서쪽은 완만한 지세를 이루고 있다.

몇 번의 오르내림으로 힘이 많이 든다. 한 달만의 산행이라 그런가. 예정된 시간 보다 늦어 진다. 오늘은 댓재에서 자고 가면 되니까 구태여 힘들게 빨리 갈 이유가 전혀 없다. 쉬엄쉬엄 쉬면서 가자. 목장용 철조망이 쳐진 1,016봉을 지나고 1,055봉을 지나니 산골짝은 온통 기계톱 엔진 소리로 요란하다. 산등성이는 나무와 수풀이 베어 지고 핏빛 황토를 드러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도대체 무얼 하려고 이 높은 곳까지 이렇게 하는 걸까? 시끄러운 소리와 성가신 잡목으로 인해 산행길이 더욱 힘 드는 것 같다.

한 주막 여인이 남편이 요절하는 바람에 아홉 번의 재혼을 했다는 구부시령을 지난다. 돌 무더기 위에 누군가 쌓아 놓은 10개의 작은 돌탑이 서 있다. 한 여인과 아홉 남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함인가? 한 돌탑 위에 작은 돌을 하나 얹어 놓고 덕항산을 향한다.

11시 16분 덕항산(1,071m)에 오른다. 동해의 파도가 넘실대듯 첩첩의 산이 겹겹이 들어 차 있다. 동해 바다는 보일 듯 말 듯 바다 안개만 뿌옇게 보인다. 숲속으로 들어가 간단히 요기를 한다. 미숫가루를 타서 마시고 마른 누룽지에 물을 부어 배낭에 넣는다. 가다가 물에 불으면 퍼 먹으면 산에서 먹는 점심으로는 괜찮다.

배낭을 메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50대 부부가 커플티를 입고 덕항산에서 숲길로 내려선다. 앞서던 부인은 나를 보고는 멈칫 놀란다. 태백에 사시는 부부로 가까운 도래기재에서 시작한 대간 초년병이란다. 먼저 진부령까지 마치면 남쪽 구간은 지리산에서 도래기재까지 할 예정이란다. 길을 잠못들어 30분간을 헤매다 왔단다. 푯대봉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도도 없고 오로지 표지기만 보고 다니시는 것 같다. 간간이 붙어 있는 표지기인 태백여성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에 힘입은 바 크단다. 오늘은 댓재까지 한단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던 부부는 자리를 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고 가자고 한다. 잘 됐다. 누룽지가 적당히 불었을 텐데...

13:18 넓은 공터가 있는 자암재(장암재)에 닿는다. 표지기가 어지러이 달려 있다. 한참을 앞서던 부부가 환선굴 쪽에서 되돌아 온다. 또 알바를 하시는 군. 길을 잘못 들어 환선굴 쪽으로 가다가 되돌아 온 것이다. 부부는 무거운 짐을 진 나를 앞서 금새 시야에서 사라진다. 자암재를 지나 우거진 잡목덩굴을 한참을 헤치며 길을 찾는다. 정말 성가신 길이다.

수풀 길을 벗어나 광동댐이주단지에 도착한다. 온 산 사면에 고랭지 배추밭이 조성되어 있다. 정말 엄청난 규모의 밭이다. 저 쪽 사면에서 밭일 하는 아낙네의 모습이 점점이 보인다. 어린 배추 모종을 이식하는 사람, 가뭄에 목 말라 하는 배추에 물을 주는 사람, 경사진 사면에 소 코뚜레를 잡고 쟁기질을 돕는 할아버지, 밭에서 돌을 골라 내는 사람들이 제각각 할 일을 다하고 있는데, 그 큰 밭은 조용하기만 하다. 밭 언저리를 지나 대간 길은 계속 된다.

안개가 산아래 골짜기로부터 차 오른다. 큰재를 지난다. 정말 지겨운 길이다. 온갖 잡풀과 잡 덩굴 그리고 잡목이 길도 가리고 하늘도 가리고 앞도 가린다. 도대체 이 길의 끝은 어디인고. 안개와 온갖 잡동사니 수풀 속의 길을 찾아 끝도 없이 오로지 걷기만 하고 있다.

두어개 봉우리를 지나 황장산(1,059m)을 지난다. 황장목이라는 좋은 나무들이 간간이 보인다. 산죽밭을 따라 조금만 내려 가면 조형탑이 보이고 건너편에 산신각이 있는 넓은 댓재의 고개마루에 닿는다. 댓재(竹峴 810m)는 삼척과 정선을 연결하는 도로가 나 있다. 피곤한 몸이지만 길고 힘든 한 구간을 또 무사히 해 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댓재 휴게소에서 시원한 사이다로 목을 축인다. 휴게소 이층에 여장을 풀고 내일의 산행을 준비한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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