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96*백두대간 종주(정훈이) 2구간 도전. 만복대-구름 위를 걷고 오다!*

* 백두대간 종주 2구간 : 성삼재-작은 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 고리봉-고기리.

* 산행 거리 : 13km. 총 산행시간 : 5시간.

* 시간 : 성삼재 10시출발-만복대12시10분-정령치 중식 -큰 고리봉1시50분-고기리3시25분
대구 관음타운 도착 : 6시20분(너무 빨리 도착하였음)

백두대간 종주 두 번째 도전이다. 전날 스웨덴과의 8강을 깨고 더디어 4강의신화를
이루어낸 축구의 열기와 흥분으로 정훈이도 나도 늦잠,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이현IC로
달려갔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버스가 도착.
부슬부슬 계속해서 내리던 비는 고맙게도 지리산에서 멈추어 주었다.
작년 가을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내려오던 성삼재를, 백두대간을 목표로 다시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성삼재 휴게소를 뒤로하고 오르는 길은 서로 비켜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은 등산로,
정훈이 키를 훌쩍 넘는 잡목과 풀들이 정훈이의 얼굴과 몸을 할퀴었다.
작은 고리봉 쪽으로 오르는 길은 험하지 않고 원만하였지만 정훈이는 싫증을 냈다.
날씨까지 잔뜩 흐려서 답답한 모양이다. 정훈이 특유의 찡찡거림이 시작되었다.
혼자서도 힘든 산행인데 어린 아들과 함께 하니 더 신경 쓰이고 힘이 든다.
그런 정훈이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산을 다 내려 갈 때까지 한번도 찡찡거리지 않으면
5000원 줄 테니까 어떻게 할거냐고? 정훈이의 입은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런 조건을 건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나는 가끔씩 아이들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조건을
제시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는 힘이 들어도
참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제 축구의 4강 진출 흥분과 우승을 기원하면서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산행을 하였다.
작은 고리봉에 올라서니 저만치 만복대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구름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봉우리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만 같다.
내가 구름 위에 서있는지, 구름이 나를 안고 있는지 모르게 느껴졌다.
만복대까지 오르는 길은 완만한 능선길이다. 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고 엉겅퀴 꽃이
길가에 군데군데 피어서 보라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너무 예쁘다는 생각에 살며시 만져
보다가 엉겅퀴 가시에 그만 찔리고 말았다.
들꽃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듯이.....
만복대에 올라서니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만치 노고단의 봉우리가 조금 보이고 능선은
구름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만복대 정상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정령치로 향했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여유 있게 출발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정훈이는 힘이 나는지 열심히 잘도 걸었다.
몸무게 25kg 밖에 나가지 않는 정훈이에게 백두대간 종주가 무리일수가 있겠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욕과 용기, 하나의 작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은 것이다.
잠깐 사이에 큰 고리봉에 다다랐다. 고리봉 정상이라는 표지석은 없고, 무인 송신소 같은
것이 있고 철조망이 있었다.

고리봉에서 고기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길이어서 조심을 해야했다.
한참을 내려오니 소나무가 울창한 평탄한 내리막이 길이 시작되었다.
숲길이 너무 좋아서 노래라도 한 곡 시원하게 부르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참고 내려오는데, 고기리를 2km쯤 남겨 놓고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정훈이는 우의를 입는다고 좋아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미끄러운 빗 길에 혹시라도
다칠세라 염려가 먼저 앞선다. 오던 비는 그쳤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가 먼저 한번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고 나니 정훈이는 다 내려와서 온전히 한바퀴를 구르고 말았다.
다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다.

다 내려와서 정훈이 하는 말 "엄마 오늘은 산에 갔다 온 것 같지가 않아요. 우리 오늘
산에 갔다 왔어요? " 하며 농담을 한다. 5시간 정도 걸었지만 오늘 산행은 좀 쉬웠나보다.
마지막 후미 팀이 다 내려오고 나니까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등반대장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시원한 수박과 함께 소주 한잔으로 깔끔한 마무리를
하시는 대원들을 보면서 참으로 살맛 나는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감사함을 잊고 살다가도 이렇게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나면 항상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저절로 든다. 속세의 때를 산에 다 씻고 돌아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산은 나에게 무한한 배움을 주고, 나를 깨닫게 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래서 산을 찾는 것일까?

다음 산행 : 고기리-여원재-고남산.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