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 주촌 마을→고리봉→정령치→만복대→묘봉치→성삼재
※ 일자 : 2002. 8.31~9.1 (무박산행)
※ 구간별 소요시간
o. 04:05 - 덕치 버스정류소 출발 o. 08:02 - 만복대 (2km)
o. 04:20 - 고기삼거리 (1.2km) o. 08:41 - 묘봉치
o. 06:11 - 고리봉 (3km) o. 09:42 - 고리봉
o. 06:40 - 정령치 (0.8km) o. 10:14 - 성삼재(6km)
♣ 총소요시간 : 6시간 9분 ♣ 거리 : 13 km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일기예보를 접하니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 사실 한 달간 산행중 비를 맞은 것이 다반사라 그리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이번은 전과 달리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을 만나면 모두 퍼낼 것이요, 산이 가로 막으면 옆으로 밀치고 갈 것이니 그 누가 배장문인을 막을쏘냐.... 태풍을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태풍의 이동경로를 잘 살펴보면, 산행시점엔 태풍이 벗어나서 잔잔해질 확률이 아주 높다. 시내버스 속에서 배낭을 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 따가운 눈총들.... 왠지 나도 모르게 죄지은 사람처럼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동대문 주차장에 도착하니 바람과 함께 비가 매섭게 내리고 있다. 텅 빈 주차장에 버스 두 대가 썰렁하게 서있다. 그 중 한대는 거의 포기상태.... 나도 그렇지만 저 사람들도 아마 제정신이 아닌 듯싶다. 심각한 중독(?) 말기증세.... 세구간 밖에 안남은 이들에게 태풍이나 비바람은 안중에도 없다. 집안에 제사나 결혼식 같은 행사도 가족에게 미룬 채 참가할 정도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한번 빠지면 언제 다시 이 구간을 보충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참가한 아주머니 한분은 이구간만 빼고 완주를 한 후 무려 6개월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속이 후련하다고 하니 그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가?

버스가 주촌 마을에 도착할 무렵 차창을 거세게 때리던 빗줄기는 멈춰 있었다. 행여 비를 안맞아볼 심산으로 온몸을 우비로 감싼다. 그리고 스패츠도 채우고 챙달린 모자까지 쓰고 나니 얼굴만 나오게 된다. 4시5분 완전무장을 하고 덕치 버스정류장을 출발한다. 오늘 산행은 거리가 짧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가도된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15분 남짓 걷다보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고기삼거리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완전히 꺾어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간다.

처음부터 된비탈이 시작된다. 어미닭이 앞에서 ‘뒤뚱뒤뚱’ 천천히 올라가면, 그 뒤를 병아리들이 ‘졸졸졸’ 따르는 형상이다. 능선 주변에는 노송들이 세찬 바람에도 꿋꿋이 잘 버티고 있다. 그래도 바닥에는 잔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면 간밤의 비바람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여분 정도 오르다보면 좌측 편의 울타리가 능선과 나란히 길게 설치된 것을 볼 수 있다. 동물들의 이동에는 결코 이롭지 못한 시설물이다. 아마도 무엇을 보호하기 위함인데 울타리 없이 하는 방법은 없을는지....

고리봉까지는 3km인데 지속적으로 오르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간헐적으로 내리막과 평탄한길도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경사가 심하다고 보면 된다. 자욱한 안개가 이슬비 되어 내린다. 우비는 땀복으로 변신하여 온몸에서는 쉴 새 없이 땀이 흐른다. 행여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아주 그만일 듯싶다. 6시11분 고리봉(1,304m) 도착. 역시 사면은 안개에 휩싸여 아무것도 볼 수 없으나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고 있다. 이곳은 바래봉과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정령치까지는 내리막길로서 20여분 걸으면 된다. 휴게소 문은 닫혀있어서 마루 아래로 들어가 이슬비를 피하며 식사를 한다. 커다란 양푼 두개에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넣고 즉석비빔밥을 만드니 허기진 배가 놀랄 따름이다. 이런 산중에서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서로가 친해져서 먹거리를 분담해서 가지고 온 후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다.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만복대를 향하여 출발한다. 오르막은 그리 험하지 않아서 산행하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이곳은 여러번 지나지만 단 한번도 주변을 구경해본 적이 없다. 오늘처럼 날씨가 구질구질 하거나 해뜨기 전에 지나기 때문이다. 이곳은 대부분 나무가 별로 없는 벌거숭이 민둥산이다.

8시2분 만복대(1,433m)에 도착하니 제법 센바람이 우리를 밀쳐낸다. 그래도 몇몇 분은 돌탑을 의지 삼아 증거를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비바람에 쉴 곳도 마땅치 않아 다시 비스듬한 내리막길을 따라 간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더니 그 말이 실감난다. 신발도 물이 들어가서 걸을 때 마다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나온다. 능선이 완만하여 별 힘들임 없이 헬기장이 있는 묘봉치를 통과한다.

고리봉을 오르기전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는데, 때마침 순찰하는 공단직원과 마주쳤다. 여러 가지 질타와 훈계를 받고, 다음부터 주의한다는 말과 함께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난다. 오늘 같은 때는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성삼재까니 오리걸음!!’ 이라고 해도 달게 받을 텐데....
고리봉(1,248m)을 올라가기 전에 옆사면으로 갈림길이 있다. 별 차이는 없지만 정상에서 다시 좌측으로 내려가면 방금 전의 길과 만나게 된다.

10시14분 경사면을 따라 30여분 내려오면 오늘의 종착지점인 성삼재에 도달한다. 이맘때면 늘 붐비는 휴게소는 개미한마리 안보릴 정도로 적막하기 그지없다. 거리도 짧고, 또 비도 내리고해서 쉬지 않고 오다보니 너무 일찍 내려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버스가 없는 걸로 보아서 아직 올 때가 아니거나 아니면 아래에서 통제하는 것 같다. 연락도 안 되어 할 수 없이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시암재를 내려가니 버스가 올라온다.
지리산 온천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은 맑게 개이고 오히려 뜨거운 햇볕에 그을릴 정도다. 꼭 산행을 마치면 날이 좋아지니 하늘이 야속하기 그지없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