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구간

1.구간: 종석대-성삼재-여원재-사치재 (도상거리 32.7km)
2.인원: 문학기,윤기웅
3.일시: 2002.8.18
4.소요시간:약 17시간 37분(오전 12시38분 출발-오후6시15분도착)
휴식시간포함
5.산행개요:
대간은 지리산권을 떠나며 한껏 높이를 낮춘다.
낮아진 산은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원형이 많이 손상되어 독도에 어려움을 준다.
그러나 표지기가 잘 붙어있어 길 찾기엔 어려움이 별로 없다.

6.산행기:

만월의 `성삼재휴게소`는 고지의 서늘한 밤공기와 맑은 기운으로 온몸을 휘감는다.이만원에 부른 택시를 오천원 더 얹어주니 기사가 좋아하며 `즐거운 산행이 되시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인적이 끊어진 주차장에는 불켜진 텐트 두동이 서있고 도란도란 말소리도 들려오는데 우리는 이들을 뒤로하고 `노고단`까지 나있는 돌길을 따라서 천천히 오르기 시작하였다.풍부한 달빛이 있어 불빛 없이도 걸을만 하였고 고개들어 하늘에 떠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세 볼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주변의 물소리,새소리가 더 잘 귀에 들어왔으며 서서히 몸이 더워지고 땀이 제법 흐르기 시작할 때 즈음에 `종석대`입구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른다.

바로 노고단 방향 윗쪽의 `무넹기`는 일제때 물이 부족한 `화엄사계곡` 쪽으로 물을 인공적으로 넘긴 곳으로 물길을 가르는 대간이 인공적으로 끊긴 곳이므로 원상회복이 시급하다 아니할 수 없다.표시판 뒤로 오르는 길 초입은 정성스레 손질한 듯한 부드러운 산죽길을 지나며 이후 만난 오름길 주변에는 파헤쳐진 산돼지의 흔적들이 즐비하였다.그리고 멀리서 보면 마치 종을 엎어놓은 형상으로 보인다는 종석대 정상은 올라보면 그저 평범한 바위로 되어있는데 모든 사물은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항시 다르게 보이는 것이리라.달빛은 밝아서 온누리를 비추어서 `노고단`에서 이어지는 `왕시리봉` 능선의 실루엣을 뚜렷이 볼 수 있었고 앞으로 가야할 저 멀리의 `만복대`와 `고리봉` 능선쪽으로는 운해가 하얗게 넘실거린다.

`1320봉`을 지나서 성삼재로 내려서는 길은 초행인데다 제법 가파르고 습기를 머금은 흙길이라서 상당히 미끄러워 온몸의 근육이 긴장되므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였지만 결국 두 번이나 미끄러지고 말았다.다시 되돌아온 `성삼재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길을 건너고 열린 철문으로 들어서면 `만복대 6km.당동마을 3km`의 이정표가 서있으며 이제 등로는 날등으로 진행되는데 발밑으론 고개를 오르는 차량의 힘겨운 엔진소리가 들리고 이내 지나치는 헬기장 한켠에는 소형텐트 1동이 밤이슬에 젖어 있다.숲속에 서린 안개의 실체는 다름아닌 구름으로써 수풀 잎새마다 물기를 촉촉하게 묻혀 놓아서 헤치는 걸음마다 속절없이 온몸이 젖어들었고 한편 이정표를 2개쯤 지난 어느 산허리에서 발밑의 보이지 않는 돌에 왼발이 걸려 그대로 왼무릅을 바위에 제법 심하게 찧었지만 아픈 내색도 못하고 그대로 진행한다.

`작은고리봉`을 지나서 `만복대 2km` 남긴 이정표 뒤의 바위에서 몸을 추스르는데 능선상의 바람이 젖은 몸을 사정없이 식히므로 서둘러 오버복을 챙겨입고 간단히 요기도 하면서 신발을 벗어 기울이니 깜장물이 줄줄 흘러내린다.굵은줄로 등로를 구획한 길을 따라 오르면 어느덧 `만복대`정상인데 지리산 최고의 억새능선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의 풍광은 어둠에 가려 진면목을 볼 수 없었으며 바람만이 차갑고 세차게 불어오므로 이내 왼쪽 정령치 방향으로 내려선다.이정표의 거리표시가 잘못되었다고 문득 느낄 무렵에 헤드랜턴을 꺼도 사물이 보일만큼 주위가 밝아졌는데 해와 달이 공존하는 형상의 일월도(日月圖)가 숲사이로 간간이 펼쳐지는 가운데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며 미끄러운 계단을 내려서서 `정령치(鄭嶺峙)`에 도착한다.

전망이 좋은 이곳에는 옛날 마한왕조가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위해 정장군을 보내어 재를 지키게 하였으며 후에 장열히 전사하자 바위에 석상을 새겼다는 전설이 있으며 주변엔 마애불상군과 석성등의 유적이 많아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새벽이지만 날이 개이려는 징조는 하나 없이 사위는 안개로 자욱하며 쉴곳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데가 없었으므로 휴게소 윗쪽에 있는 지붕없는 전망대 바닥에 그대로 앉아 휴식을 취한다.이어지는 대간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쓰이는 산머리 왼쪽으로 통나무를 세워 만든 문사이로 열려있고 약800여 미터를 지나면 `고리봉`(1304m) 정상의 이정표를 보게된다.비록 멀리까지 조망은 할수 없었지만 구불거리는 `정령치` 도로와 산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운해를 보다가 사진작가인 듯한 분에게 부탁하여 두사람의 사진도 찍었다.

다시 정상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초입부터 만만치 않은 경사가 계속되었고 역시 흙길이 미끄러워 제속도를 낼 수가 없었으며 `고기리 2km`이정표를 조금 지난 전나무 아래서 꿀맛같은 단잠을 잠시 즐겼다.여기는 500m 마다 이정표가 서있으며 도중에 길옆 오른쪽에 울타리가 쳐진 곳을 지나서 얼마 후면 `고기삼거리`에 내려서게 되고 우측으로 `운봉`쪽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엔 화훼단지와 이미 웃자란 사료용 옥수수들이 길가에 도열해 있고 곳곳에 수마에 의한 안타까운 흔적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는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고 있었다.`가재마을` 입구 삼거리의 `덕치정류소`에서 상당히 낡았지만 아주 편안한 소파에 오랜만에 편히 앉아서 요기를 하였는데 다른 대간종주자들이 자주 들렸음인지 주변엔 소시지 껍질 등의 흔적이 널부러져 있다.

도로를 건너서고 또 왼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도를 따라 `노치마을`에 들어서서 마을 중간의 오래된 샘에서 시원한 물을 보충하고는 이내 마을 뒷산의 아름드리 당산소나무 네그루를 지나서 오름짓을 얼마간 하니 `740봉`이다.여기서 다시 `790봉`을 지나 `수정봉`을 넘고나서 그늘지고 편편한 곳에 자리를 펴고 또 다시 대간꿈을 꾸어본다. 비가 계속내린 영향인지 소나무밭 주변엔 버섯들이 무진장으로 피어 있었는데 바위와 흙길이 반복되는 여기서도 송이가 채취되는지 플라이를 튼튼히 고정시킨 텐트가 한동 서있고 곳곳엔 비닐끈으로 구획을 해 놓은 것들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많이 눈에 띈다.도중에서 `사치재`에서 출발 하였다는 대간꾼들을 만나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고 풀이 무성한 `입망치`를 바로 지나치고 얼마 뒤 `운성대장군`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 `여원재`에 도착하여 건너편 정류장에서 숨을 돌린다.

앞쪽의 절에서 물을 보충하고는 늦여름 한낮의 치열한 열기를 나른하게 온몸으로 느끼면서 정류장 왼쪽으로 나있는 숲길에 접어들자 마을 입구에서는 뻔히 바라뵈던 `고남산`이 어인일로 보이질 않는다.초입의 마을은 `무학대사`가 지형을 살펴보고는 `고남산`에서 긴 다리처럼 뻗어내린다 하여 `장교리(長橋里)`라 지었고 이(李)씨와 김(金)씨가 번성할 것을 예언하였다는데 실제도 그렇다 한다.대간길은 숲길과 밭두렁 그리고 시멘트 농로등을 거치며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고 다시 마을 왼쪽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잠시 진행하다가 어느 무덤앞에서 크게 방향을 바꾸고는 제법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남산`을 향하여 크게 에스자로 사행을 한다.이곳의 식생은 소나무 일색인데 지난 산불의 흔적인지 온통 밑둥이 그을려 있어 애초롭지만 파란 새싹이 돋는등 주변에는 생명활동이 아주 왕성하다.

제법 전망이 트인 `김해김공묘`를 지나면서는 본격적인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이젠 햇살을 가릴 장소도 없고 지금껏 솔밭을 스치며 몸을 식혀주던 바람마저 멈춰 아주 많은 땀을 짜내게 하므로 우리는 우스개로 `고남산`이 아니라 `고난산`이라고 명명한다.전망좋은 바위에서 잠시쉬다가 줄이 매어있는 약간의 암릉을 거치면서 이내 도착하는 `고남산`정상에는 스텐레스로 만들어진 정상표지가 있으며 주변은 헬기장과 통신탑,콘크리트도로 등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운봉평야에 우뚝 솟아있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던 이곳은 고려 우왕때 `이성계`가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고나서 왜장 아지발도를 황산에서 크게 무찔렀고 후에 조선을 건국하게 되어서 `태조봉` 또는 `제왕봉`으로 불렀다.정상에서 왼쪽으로 돌아내리면 산불감시초소와 헬기장을 지나며 잠시 후 통신기지 울타리를 왼쪽으로 휘돌아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마주친다.

다시 기지 입구쪽으로 조금 올라가 왼쪽에 걸려있는 대간기를 확인하고는 내려서며 콘크리트 포장길을 두 번쯤 횡단하면 역시 포장된 `통안재`를 지나고서는 계속 숲길이다.진행방향 왼쪽엔 오래된 사당?이 눈에 띄고 이내 내려서는 농로길에서 잠시 요기를 하고는 오르내림이 비교적 심하지 않은 숲길을 따른다.간간히 보이는 하늘은 점점 밝음을 잃어가는데 곧 임도를 지난 고개에 선다.원래 대간길은 임도고개에서 계속 직진하여 마을을 감싸돌면서 운성초등학교 뒤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굳이 능선을 고집하지 않고 좌측의 `매요리 마을`로 들어서서 경로당 지나 삼거리에서 좌측의 `매요휴게실`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시원한 맥주를 주문한다.

얼음처럼 찬 물에 얼굴과 머리를 씻고나니 겨우 사람 행색이 돌아오는데 대간종주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신순남` 할머니의 정성어린 부침개를 안주로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나서 부듯함을 느꼈며 다시 캔콜라를 마시며 길을 나선다.물론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고 이때의 과식으로 나중에 잠시 고생을 했다.낮술로 불콰한 얼굴의 나그네는 `매요리`를 떠나며 담쟁이 넝쿨로 온통 뒤덮인 폐교를 왼쪽으로 지나치고 길 삼거리에서 왼쪽의 산으로 올라 `제기공장`앞으로 다시 내려서고는 해거름에 주위를 둘러본다.왼쪽은 고속도로 모래재로 직행하는 고속도로고..음.. 저기 `제기공장` 윗쪽에 보이는 무덤을 기준삼으면 아! 우측 산모퉁이에 대간기가 펄럭이므로 뒷마당의 박달나무 잔해들 옆으로 난 절개지로 올라서면서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르내림의 반복은 아래.위로 나란히 서있는 두 개의 무덤지나 왼쪽으로 꺾어지고 얼마 뒤 작은 너덜길을 넘어서자 일대에만 비가 내렸었는지 잎새들이 젖어 있다.잠시 뒤 내려선 `아실재`라고도 부르는 `사치재`에는 장수군과 남원시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로 등을대고 서있으며 `지리산 휴게소`는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가면 되지만 만사가 귀찮아 들머리의 리본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버렸다.하늘이 빙빙 돌며 몇번인가를 토한 끝에 속은 일단 진정이 되었지만 머릿속은 하얗다.오늘도 대간은 미묘한 울렁거림을 남긴다.



대간길 좌표
성삼재 N 35 18.12 5 E 127 30.45 9 196
종석대입구 N 35 18.09 5 E 127 30.44 0 190
종석대 N 35 17.34 1 E 127 30.58 1 194
1320봉 N 35 17.45 8 E 127 30.43 8 195
만복대입구 N 35 18.18 2 E 127 30.47 2 196
만복대 N 35 20.38 9 E 127 31.05 3 196
정령치 N 35 21.05 7 E 127 31.09 2 197
노치마을샘 N 35 23.59 9 E 127 30.11 7 213
740봉 N 35 24.08 8 E 127 29.56 7 216
입망치 N 35 25.16 4 E 127 30.05 8 224
임도고개 N 35 25.40 5 E 127 30.07 2 228
여원재 N 35 26.38 1 E 127 30.10 2 243
고남산 N 35 28.16 4 E 127 30.10 5 286
사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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