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 5구간
(산줄기 138일째)

일 자 : 2002년 10월 9일
구 간 : 행테고개 ∼ 보광산 ∼ 모래재
날 씨 : 맑음

참석자
김종국, 나종학, 장성인, 류민형, 조삼국, 유정홍,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한용수, 김수남, 최경섭, 우종수, 이영주, 김호택, 김종범, 설기현, 정석봉, 박미희, 선종한(21명)

도상거리 : 11.3km
행테고개(36번 국도) - 2.8 - 378.5봉 - 0.5 - 보천고개(515번 지방도) - 1.5 - 377.9봉 - 1.2 - 379.2봉 - 1.8 - 395.4봉 - 1.5 - 보광산(539) - 2 - 모래재(34번 국도)

종주일정
09/30 행테고개-- 09:53/262.5봉 -- 10:04/도로 -- 10:45/378.5봉(능선분기점) -- 11:01/보천고개 -- 10:30/420봉 -- 12:04/내동고개 -- 12:12/능선분기점(백미산) -- 12:23/십자로안부 -- 12:38(13:00)/중식 -- 13:03/고리터고개 -- 13:39/능선분기점 -- 13:41/보광산 -- 13:57/봉학사터 출발 -- 14:05/임도 -- 14:40/모래재(34번 국도)

산행시간 : 5시간 10분(휴식시간 포함)

후 기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늘 생각해 보는 두 가지가 있다. '이제 한 해가 다 가는 구나' 하는 생각과 또 하나는 '내가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이다. 물 흐르듯이 흐르는 세월, 정맥길을 향하며 지나간 인생길을 뒤돌아본다. 봄의 유년기, 여름의 장년기를 그리고...

09시 30분 4차선 고속화 도로인 36번 국도가 지나는 행테 고갯마루에 자리잡고 있는 행치재휴게소와 윗행치마을 표지석 사이로 나있는 지하굴다리를 들어서면서 5구간 종주가 시작된다. 지하굴다리를 빠져나오며 만나는 석재공장, 정맥은 석재공장을 뒤로 옛길을 따라 오르다가 왼쪽으로 잡목숲을 헤치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이슬이 많이 맺히면 맑다는 옛말이 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축축이 옷깃을 스치고 오늘따라 수많은 거미집에 맺어있는 물방울이 을씨년스럽다. 이슬이 풀잎에 맺히는 것은 가을이 되어 주야의 기온 차가 커져서 주간에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발산하기 힘들어져 이슬이 되는 경우와 식물자체에서 분비되는 수분이 증발하기 힘들어서 그대로 풀잎 위에 이슬이 된다고 한다.

첫봉에 올랐다가 내려서며 오랜만에 보는 친구 박성태의 리본, 안개 가득한 좁은 날등의 오름길에는 어지럽게 목장 철선들이 널려있어 넘나들며 혹시나 땅이나 사지 않을까 조심하며 간다. 길목에 유난히 많은 밤송이들은 정맥꾼들을 유혹하고, 지난번 처음 보았던 자주 빛의 버섯은 오늘도 여전히 지천을 이루며 저마다 이름도 가지가지, 우측으로 공터가 보이는 안부에서 오름길은 웅덩이를 만나면서 오른쪽으로 올라서며 여기가 263.5봉이겠지 하지만 다시 한번 속은 후에야 262.5봉에 오른다.

09시 53분 능선분기점인 262.5봉에서 정맥은 오른쪽이다. 곧이어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 여기서는 왼쪽길이다.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그런데 소나무들은 참나무에 치어 솔잎이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다. 3분 뒤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서는데 몇 분 사이에 몇 번을 선택을 해야하는가...

09시 57분 시야가 트이며 벌목지대에 올라서면서 참나무에 매달려있는 끊어진 그넷줄, 우측으로 구름 위에 모습을 들어내는 백마산, 제법 넓은 내리막길, 4분 뒤 선명한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내려선다. 평탄한 내리막길, 여기저기 가지버섯 때문에 정맥꾼들의 걸음이 늦어지고 다시 만나는 능선분긴점에서 왼쪽으로 좌측으로 인삼밭을 보며 억새풀을 헤치는 조금은 여유로운 산판길...

10시 04분 정맥길에서 보는 광주반씨 합동제단, 콘크리트소로를 따르다가 1차선 아스팔트도로를 만나는 삼거리다. 우측에 있는 가정자마을과 이웃하고 있다. 잡목을 헤치며 능선에 붙으며 오른 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다시 오름길이 완만해 진다. 10분도 안돼서 다시 만나는 콘크리트소로에서 인삼밭을 들어서면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능선에 붙는다. 잡목숲이 대단하다.

10시 23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하던 오름길이 한차례 가파른 듯하며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3분 뒤 다시 만나는 능선분기점, 여기선 왼쪽으로 다시 1분도 채 안 돼 오른쪽을 선택한다. 마송터널을 빠져나오는 열차의 기적소리가 허허한 공간에 울려 퍼진다.

인생은 왼쪽 오른쪽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고 하는데 수시로 선택을 요구하는 정맥길, 솔잎이 누렇게 변해 가는 세 그루의 소나무가 눈길을 끄는 완만한 내리막길, 좌측 아래로 인삼밭이 우측으로는 묘3기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좁은 날등을 타고 내려서면은 십자로안부가 된다.

10시 40분 오름길이 가팔라지다가 좁은 날등이 완만해지고 다시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서면서 벌목지대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앞서가는 김수남씨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모습을 보며 산불에 그슬린 흔적이 역력한 뒹구는 나무토막들을 확인 할 수 있다. 억새밭을 헤치고 올라선 봉이 삼각점에 있는 378.5봉이다.

10시 47분 다시 삼각점을 뒤로 조금 더 올라선 능선분기점, 정맥은 오른쪽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오대산(397m)으로 넘을 수가 있고, 이제부터 정맥꾼들은 괴산 땅을 밟고 간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만났던 괴산의 명산들, 여기서 잠깐 괴산의 유래를 집고 넘어가자.

괴산은 삼국시대 3국의 접경지대로서 백제와 신라와 고구려 사이에 충돌이 잦았던 곳으로 신라 진평왕(眞平王) 28년(606) 신라장수 찬덕(讚德)이 가잠성( 岑城)을 지키고 있을 때 백제의 대군이 쳐들어와 백여 일을 포위 공격하여 성은 완전히 고립되어 바람 앞에 등불, 신라군은 여러 번 원군을 보냈으나 그 때마다 패하여 달아났고, 이제 성안은 식량과 물마저 바닥이 나 군사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성주인 찬덕이 의롭게 싸우다 죽을 것을 역설하였으나 군사들은 항복하여 목숨을 보존하길 원했다.

찬덕은 운명이 가까워 온 것을 깨닫고 "너희들은 내가 죽은 후에 항복하라. 나는 죽어 귀신이 되어 백제 놈들을 잡아갈 것이다."라고 외친 뒤 앞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장렬하게 죽었다고 한다. 후에 이 소문을 들은 김춘추는 찬덕장군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서 가잠성을 '괴산(槐山)'이라 부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괴산이라 부른 유래라고 한다.

정맥길은 곧이어 만나는 좌측으로 층층이 들어서 있는 묘지, 연이어 묘지, 흙무더기 1기를 뒤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서 가파른 경사길이 시작된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들어서 있는 희미한 정맥길, 보천고개를 지나는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한참 떨어지다 만나는 밀양박씨 합장묘, 여기서부터 제법 넓은 길이 정맥길이다. 그리고 정맥꾼들의 간식거리가 되어주는 감나무 몇 그루, 잠시동안이지만 달콤한 홍시 맛에 떠날 줄을 모른다.

10시 01분 수 백년, 그러다 보니 조금 전 찬덕장군이 생각나네, 하여튼 고목이 지키고 있는 음성군 원남면과 괴산군 소수면을 가르는 보천고개, 5분 뒤 정맥은 괴산군 소수면 경계표지판을 확인하며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언덕에 오르고 이어 왼쪽으로 능선에 붙으면서 뚜렷한 길이지만 잡목들이 꽉 들어차 있다. 잔디밭에 자리잡고있는 묘지 3기,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다가오는 설우산...

설우산(雪雨山)은 마을주민들은 '눈비산'이라고 하는데 이 일대에서는 제일 높아 눈도 먼저 오고 비도 먼저 내린다고 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산 중턱에 '빨래 바우'라고 부르는 바위는 직경 60㎝ 정도 되는 틈에 물이 가물거나 홍수가 져도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고여있어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예전에 선녀들이 빨래를 하러 내려왔던 곳이라나...

10시 18분 가파른 오름길이 잠시 누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서면서 만나는 벌목지대, 정맥길은 키 작은 잡목지대를 끼고 올라선 봉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지나온 능선들, 그리고 잠시 전 뒤로했던 515번 도로, 여전히 벌목지대를 끼고 오르다가 왼쪽으로 잡목을 헤치며 들어서면 완만한 능선길이 기다린다. 묘지 2기, 어느새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잎, 다시 쌍묘를 통과하며 만나는 묵은 묘지는 자손들과 인연을 끊은 지 얼마나 됐을까...

10시 30분 돌무더기가 있는 420봉에 오른다. 다시 바위지대를 오른쪽으로 우회하며 5분 뒤 가파르게 올라선 곳이 밋밋한 440봉이다. 내림길의 정맥은 1분 뒤 방향을 왼쪽으로 틀면서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길, 이어 만나는 밋밋한 묘지와 고사목, 쓰러진 나무들...

10시 42분 능선분기점이다. 정맥은 오른쪽이다. 자칫하면 그냥 곧바로 진행하다보면 과외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곳, 정맥의 이름모를 보라색 꽃이 아름답다. 좌우로 급사면을 이루고 있는 좁은 능선을 오른다. 좌측으로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몽촌리의 농촌풍경도 아름답다.

우리말로는 '꾸미'라고 하는 몽촌리는 문화재 국보인 유서경(柳西烱)선생 사당이 있는데 이조시대 유서경 선생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좋은 묘 터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마땅한 터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성을 지나 도슬기고개를 넘어오다가 느티나무 밑에서 잠시 잠들었을 때 만난 백발의 노인으로부터 묘 자리를 얻었고, 노인이 꿈을 꾸고 나를 찾아 왔으니. 자네가 이 동네를 지키며 잘 살라고 '꾸미(한문으로는 夢村)'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나, 그래서 유씨네는 여기서 계속 번성했다고 한다.

10시 50분 연이어 봉에 오르고 키에 가까운 진달래 군락이 이어지는 완만한 정맥길,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서 능선에 울려 퍼지는 산까치의 울음소리, 다시 1분 뒤 우측의 능선을 확인하며 곧바로 오르는 오름길은 소나무 숲 아래 잡목들이 키를 넘는다. 밋밋한 봉을 지나 바위군을 만나고 내림길 뒤에 예전에 묘지자리가 있었던지 잡목으로 들어차 있지만 제법 펑퍼짐한 봉, 경사길의 내림길은 다시 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좌우로 역시 급사면의 좁은 날등으로 오르내림 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내려선 곳이 내동고개다.

12시 04분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 안골마을과 괴산군 소수면 몽촌리 내곡마을을 넘나들던 고개, 옛 성황당터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고갯마루에서 뒤돌아 섰을 때 나지막한 고목아래 쌓여있다. 잠시 다리쉼을 하며 숨을 돌린다. 3분 정도 다리 쉼을 하고 가파르게 올라서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간다. 바위도 보이는 좁은 날등 경주김씨 묘지가 을씨년스럽다.

12시 12분 능선분기점이다. 정맥은 왼쪽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백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백마산은 백마와 장수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있다., 백마가 굴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 굴을 '백마굴'이라 하고 백마굴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백마산이라 한다나...

조금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있는 379.2봉이 있다. 그리고 한동안 함께 했던 음성군과 작별할 시간, 정맥꾼들은 유혹을 뿌리치고 내려서는 길에 만나는 억새풀로 가득한 묘지와 망부석, 정맥길은 왼쪽으로 희미한 잡목 숲을 헤치며 들어서야 한다. 시야가 트이며 좌측으로 황금벌판, 여기저기 끌어당기고 트집을 잡는 방해꾼들, 정맥의 잡목숲이 지겨울 정도다.

12시 23분 고리터고개도 아닌데 십자로안부에는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여기도 예전에는 많은 왕래가 있었던 고개였나 보다. 좌측으로 유난히 푸른 숲의 능선이 아래로 흐르고 있다. 하긴 잡목 숲으로 한동안 헤치다 보니 푸른 소나무 숲이 보기만 해도 반가울 수밖에, 쓰러진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길을 막는다.

참나무 숲 사이로 진달래와 싸리나무를 헤치면 올라선 봉우리 여기가 370봉, 정맥은 계속되는 잡목 숲을 헤치다가 능선을 버리고 왼쪽으로 팍 꺾이면서 잠시 내려섰다가 오르는 길도 여전히 잡목 숲이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해뜰 날이 있듯이 잡목 숲이 슬며시 살아지면서 평탄한 소나무숲길 하산길을 보며 간다.

12시 38분 쌍묘가 있는 넓은 공터에서 보천고개표 홍시 땜시 지금까지 미루어 오던 점심시간, 사실은 중간에 잡목지대라 먹을 만한 장소가 없었다. 20여분의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내려선 곳이 고리터고개다.

13시 03분 돌무더기가 있는 옛 성황당고개, 소매리와 소암리를 잇는 옛 고갯길,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그리고 밋밋한 봉을 넘고 다시 9분 뒤 임도를 가로지른다. 절개지를 올라 평탄한 능선길로 한차례 올라선 봉, 다시 1분 뒤 삼각점이 있는 395.4봉이다. 무심코 우회 길을 따르다보면 삼각점을 놓칠 수 있는 곳이다.

정맥은 곧이어 올라선 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소나무숲길이다. 좌측 아래로는 임도가 따르고 있고, 솔잎과 낙엽이 한데 어루러진 능선길, 강산에 리본이 반갑다. 싸리나무 군락을 헤치며 간다. 앞에 보이는 우뚝 가로막는 저 봉이 보광산이겠지 우측으로 괴산의 넓은 황금벌판도 보기 좋고 아름드리 소나무 숲도 보기 좋다.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봉이 379.6봉이다.

정맥길은 이제 잡목숲이 언제 있었나 할 정도로 호젓한 능선길로 이어간다. 좌우로 급경사의 좁은 날등은 역시 우리의 산줄기답다. 다시 한차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수남씨 이야기 한마디할까요? 보광산에 가면 큰 바우가 있는데, 거기에 샘이 있답니다. 주민들이 비가 안 오면 거기 가서 개를 잡아먹으면 소내기를 뿌린대요...

13시 27분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바위틈에 자란 참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좁은 날등의 오르내림, 어느새 슬며시 물들어오는 단풍잎, 오름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 소내기는 보광산 산신령이 "내가 사는 곳에 인간들이 개를 잡아 더럽혔으니 이거 청소를 해야겠다." 하고 청소하는 비라는 거여.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산신령 약점을 이용하는 거랍니다. 하긴 귀신도 속이는데 사람이야...

13시 39분 능선분기점이다. 조그마한 안내판이 우측 100m 거리에 보광산 정상을 가리킨다. 2분 거리의 보광산 정상에 선다. 시야도 막혀있는 그저 특징이 없이 밋밋한 봉우리, 노란색 표지판에 괴산의 명산 보광산이라 쓰여있다. 백두대간에서 늘 보아왔던 초라한 괴산의 명산 정상표지판들, 빨간색의 산불조심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그리고 5분 거리에 헬기장 전망대를 가리키는 안내판,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에 위치한 보광산(普光山, 539m)은 나지막한 육산에 불과하다.

뒤돌아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옛 봉학사지와 5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봉학사지에 얽힌 전설 같은 현실에 인간의 욕심이 무상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절터에 홀로 남은 5층 석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지방유형 문화제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탑 위쪽으로 큰 묘가 두 개 있는데 이것이 봉학사와 관련있는 묘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묘 자리는 봉학사의 대웅전이 있던 자리로 이 터가 "금계포란형"으로 천하에 드문 명당자리라 김아무개의 자손들이 세도를 등에 업고 절을 허물어 이 명당 자리에 묘를 썼다 한다. 봉학사가 철거된지 여러 해 지난 후 괴승이 나타나 앞산의 물길을 둑을 쌓아 돌리도록 하여 후손을 잇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리고 김아무개 묘를 쓸 때 그 아들이 석공에게 상석이 너무 작다고 하니 석공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상석은 점점 커집니다 했다나, 이 말은 김아무개네 집이 앞으로 기울 테니 제물이 점점 줄어들어 이 상석에 제물을 다 차리지 못할 만큼 집안이 기운다는 말인데 이 말을 뒤집어서 상석이 점점 커진다고 했다니...

잠깐 떠나기 전에 이야기 한마디 더, 황산에서 오랑캐 고개로 가는 길에 '부처댕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부처댕이란 예전에 어떤 스님이 거기다가 절을 지으려고 터를 잡고 목재를 구하고 목수를 불러 일을 하는데, 어느 날 봉학새가 날라 와 무엇을 물고 날라 가더란다. 날마다 날아와 물고 가는 봉학새가 이상해 쫓아가 보니 바로 보광산 이었고 중은 이곳이구나 하고 절은 지은 곳이 지금에 봉학사터, 이야기 거리도 많은 보광산, 묘 바로 뒤로 정맥이 야트막하게 이어간다.

13시 57분 정맥길은 봉학사터를 우측으로 끼고 봉을 우회하면 오른쪽으로 틀며 간다.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자동차의 소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항상 그때쯤 되면 이제 해냈구나 하는 안도에 숨을 돌리는 정맥꾼들, 3분 뒤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솔잎이 가득한 호젓한 길이다.

14시 05분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를 따르다가 만나는 보광사 500m지점에 삼거리, 정맥은 곧바로 전봇대를 뒤로 절개지로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괴산의 명산답게 뚜렷한 등산로가 연결된다. 군데군데 장송 숲이 보기 좋은 경사길...

14시 20분 경사길이 누그러지면서 역시 아름드리 장송 숲 1분 뒤 정맥은 조금 더 높은 봉을 오르기 직전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내려서는데 좌측으로 조금 더 높은 능선이 있어 선답자들이 아마 과외공부를 좀 했을 것 같다. 우측으로 굉음소리에 확인해 보니 대단위 석산이 개발되고 있는데 제발 정맥만큼을 그대로 나두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4시 27분 송전탑을 통과한다. 그리고 만나는 절개지를 내려선 곳이 신설도로 현장이다. 바로 아래 34번 국도의 지남을 볼 수가 있다. 정맥을 차지하고 있는 왕릉 같은 묘지, '관어모 장군행선전관' 구례손씨 합장묘 그리고 내려선 곳이 '모래재 해발 228m' 안내표지판이 서있는 34번 국도다.

14시 40분 보광산 관광농원휴게소 아래쪽에 있는 모래재 의병격전지 유적비는 일본의 1905년 강압적 을사보호조약과 1907년 한국군대해산 등 일제 제국주의의 국권찬탈에 항의하는 전국 의병이 궐기하였는데 여기서도 의봉장 한봉수가 이정구 등 9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이들을 사살하고 총기, 탄약, 우편물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린 것을 기리기 위하여 1984년 11월 세운 것이다. 정강이에 수많은 훈장,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묻어둔 채 모래재를 출발한다.

종주 사진첩
http://okmountain.com/okcafe/travel/read.html?cafe_code=twkim42&idx=157&page=&sColumn=&s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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