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 4구간
(산줄기 137일째)

일 자 : 2002년 10월 2일
구 간 : 승주고개 ∼ 보현산 ∼ 큰산 ∼ 행테고개(36번 국도)
날 씨 : 비, 오후 맑음

참석자
김종국, 나종학, 장성인, 류민형, 조삼국, 유정홍,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한용수, 김수남, 최경섭, 우종수, 이영주, 김호택, 김종범, 선종한(18명)

도상거리 : 9.8km
승주고개(340) - 1.0 - 보현산(×484m) - 3.5 - 돌고개(290) - 1.6 - 삼실고개 - 2.6 - 큰산(△509.9m) - 1.1 - 행테고개(195)

종주일정
09:25/감우리마을 -- 09:35/승주고개 -- 09:49/478봉(산불초소) -- 10:01/보현산 -- 10:10/임도 -- 10:30/임도 -- 10:45/2차선아스팔트도로 -- 11:22/임도 -- 11:35(11:55)/묘지군락(중식) -- 12:02/돌고개 -- 12:23/351.7봉 -- 12:40/344봉 -- 13:00/능선분기점 -- 12:08/삼실고개 -- 13:21/능선분기점 -- 14:05분/517.2봉 -- 14:15/임도 -- 14:23/큰산 -- 15:00/행테고개(36번 국도)

산행시간 : 5시간 35분(휴식시간 포함)

후 기
10월은 상달이라고 한다. 봄과 여름철에 걸쳐서 가꾼 오곡백과의 풍성한 결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맑은 하늘과 상쾌한 기온 및 알맞은 습도며, 강수일수가 5일 정도로 적어서 야외작업과 활동에 가장 지장을 덜 주게 됨으로 자연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달이기도 하다. 또한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는 중간 달이어서 푸르렀던 나무는 낙엽 질 준비를 철새들은 계절에 따른 서식지를 정맥꾼들은 발걸음이 빨라진다.

09시 35분 감우리마을 큰곰식당 오른쪽으로 난 소로길로 한동안 비포장길을 따르다보면 전원주택 단지가 끝이 난다. 가파른 언덕길을 10여분 더 올라선 승주고개에서 왼쪽으로 능선에 붙으면서 정맥의 숲길은 밤새 내린 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옷깃을 스친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숲길이 되고 이어 하늘을 치솟은 낙옆송군락이 눈길을 끈다. 우측으로 키 작을 도토리나무들이 거치적거리는 오름길이 가팔라지다가 누그러지고 이렇게 반복되더니 묘지를 통과하며 키를 넘는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면 산불초소가 있는 478봉이다.

09시 49분 억새풀이 바람에 날리는 능선분기점인 478봉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는 장송숲길은 산안개가 가득하다. 시야가 가려 답답하지만 예보와는 달리 비가 내리지 않으니 다행이다. 우측으로 우회길이 있는 밋밋한 봉을 올랐다가 내려서고 키 큰 참나무 숲 사이로 한차례 정상이겠지 하고 올라선 봉, 여기서 1분 거리에 있는 보현산 정상에 오른다.

10시 01분 높이 483m의 보현산은 6.25 전란시 최초의 승전지로 소여리전투에서 적 1개 소대 40명을 사살한 곳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만생산으로 불리워 졌는데, 선인들의 말에 의하면 "만생산하 가활 만인지지(萬生山下 可活 萬人之地)"라 하여 예로부터 수많은 난을 피하여 목숨을 유지한 사람의 수가 만 명은 된다 하여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정설에 의하면 만생산이란 더 깊은 뜻은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흐르다 머무른 산이며 금강의 발원지로서 만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 분포되어 자연과 함께 숨쉬고 있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 같다나...

시야가 가려있는 특징 없는 좁은 날등의 보현산을 뒤로 정맥길은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다가 오른쪽(남서)으로 틀며 나아가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면서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10시 10분 깬 자갈이 깔린 임도에 내려선다. 좌측 조금 떨어진 곳에 1998년 11월 16일 임도 준공기념으로 세운 소지명유래비(小地名由來碑)가 서있고, 조금 더 밑으로 약수터를 가리키는 안내판을 볼 수가 있다. 임도를 뒤로 묘 5기를 통과하며 올라서는 정맥길, 가팔라지더니 능선분기점인 390봉 오른다.

능선분기점인 390봉에서 정맥은 왼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있는 400.2봉이 있다. 삼각점을 확인하려 했는데 지금까지 참아주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제발 조금만 내리다가 끝나주렴 그러나 하늘은 비구름으로 가득하다. 호남정맥 종주는 늘 이틀 중 하루는 비와 싸웠지만 한남정맥을 시작한 이래 비 한번 맞지 않고 여기까지 잘 왔는데, 정맥꾼들은 우의며 배낭커버를 씌우고 서둘러 내려선다.

10시 30분 잡목 숲을 가르며 가파르게 떨어지다 만나는 절개지, 붙잡을 것도 시원치 않은데 비에 젖은 사면길이 한바탕 소란을 떨고서야 내려설 수가 있다. 임도를 건너 다시 가팔라지는 정맥길, 이번엔 칡넝쿨과 잔돌들이 걸음을 더디게 한다. 묘지군락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니 다시 임도가 기다리고 있다. 잠시 임도를 따르며 우측으로 흐르는 정맥능선을 확인하고 왼쪽으로 능선에 붙으며 길을 열어 주지 않는 잡목과의 한판 승부, 여기저기 베어진 나무들이 더욱 진행을 방해한다.

10시 39분 260봉 정도되는 봉에 오른다. 처음으로 보는 자색이 도는 버섯군락지가 나타난다. 희미한 정맥길, 낙엽송군락지를 통과한다. 우측으로 인삼밭이 내려다보이고 낙엽송군락을 따라 간다. 절개지를 만나면서 오른쪽으로 칡넝쿨을 헤치며 내려선 곳이 아스팔트 2차선도로다. 마침 차를 가지고 올라온 이곳주민은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간다는 말에 빙그레 웃고 만다. 우리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겠지...

10시 45분 2차선 아스팔트를 가로지르며 녹색의 산마루측구를 따라 오른다. 대단한 잡목들을 헤치며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선명한 능선길을 따라 중키의 소나무 숲을 가르며 간다. 6분 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평탄한 능선길은 소나무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어 애처롭다. 내림길이 다시 평탄하더니 묘지 1기를 통과하며 또다시 잡목 숲이 가로막는다. 이번 구간부터는 좀 나아질거라 기대했는데 역시 못 믿을 정맥길, 정맥길은 마치 속고 속는 인생길과 흡사하다.

10시 58분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고 1분 뒤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2분 뒤 고도가 290m 정도되는 봉에 오른다. 좌측으로 희미한 내림길을 볼 수가 있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약간 틀며 간다. 다시 잡초로 가득한 묘지를 지나고 능선마루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으며 간다. 좌우로 희미하게 이어가는 정맥능선, 누가 이곳을 한강과 금강을 가르는 분수령이라 말할 수 있을까?

11시 08분 낙엽송이 눈에 띄는 작은 오름 끝에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시야에 송전탑이 가깝게 나타난다. 칡넝쿨을 헤치며 간다. 희미한 십자로 안부, 이제 비는 완전히 멎었고 어느새 숲을 비집고 햇볕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3분 뒤 NO,27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그리고 올라선 314봉, 정맥은 방향을 왼쪽(동)으로 틀며간다. 다시 바닥에 흰 차돌들이 박혀있는 봉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선다. 역시 희미한 정맥길은 십자로 안부에 이어 순흥안씨 묘를 내려서며 만나는 임도...

11시 22분 임도를 뒤로 5분 뒤 높이 300m 정도 되는 봉에 올라 오른쪽(남동)으로 팍 꺾으며 내려선다. 숲 사이로 큰산인 듯한 높은 봉이 얼굴을 드러내고 우측으로 공장이 들어서 있는지 기계의 소음소리가 고요한 정맥의 허공을 가른다. 임도를 가로지른다. 시야가 트이며 시야에 들어오는 음성읍의 마을들...

11시 35분 묘지군락 푸른 잔디밭에서 허기를 메꾸는 20여분의 시간, 비 온 끝이라 그런지 한기를 느낄 수 있다. 더위에 지쳐 고생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가을이 깊어가다니, 갈림길에서 선명한 길을 버린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밤송이들,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2시 01분 밋밋한 묘지를 지나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보는 하늘은 언제 비가 왔나싶을 정도로 파란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숲을 헤매고 있을 때 바람이 몽땅 몰고 가 벼렸나 보다. 절개지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내려선 곳이 개통 기념비로 세운 표지석이 있는 돌고개다. 그리고 지나오면서 우측에서 심한 소음을 내던 공장이 돌고개 200m 지점에 하영특수유리 였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돌고개는 신천리 주막거리에서 초천리 풋내로 넘나들던 고개로 잠깐 신천리 냇말부락의 유래비에 새겨진 증재록 향토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넘어가자.

보현산(普賢山) 줄기는 북쪽으로 향하고 / 신천(新泉)내 냇물은 남쪽으로 흐르니 / 음양의 조화이룬 경이로운 풍치로고 / 되벵기터 금방아는 풍요를 찧는다. / 옥녀(玉女)가 분(紛)을 바른 돌고개 석현(石峴) 분티(紛티)는 / 남한수(南漢水)와 금수(錦水)의 분수령 고갯길 / 만남과 이별의 인생사 엮으며 / 애틋한 연정을 전설로 익힌다. / 선진의 인삼영농 신기의 바람은 / 땅을 일깨워 행복을 안기고 / 정성과 인내의 유장세월 흔적은 / 새천년 청정무구 냇말 번영 기린다.

12시 08분 돌고개에서 6분 뒤 원남 ∼ 음성을 잇는 새로 확, 포장된 신도로를 만나고 묘지대를 통과하며 한차례 오름길은 잡목들로 가득하다. 시야가 트이며 우측으로 가설건물들이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 틀며 올라서는 정맥길엔 폐타이어 하나가 참나무에 매달려있다.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서니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앞을 막는 버려진 나무들 길이 험한 벌목지대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산과 평화스러운 마을들을 보노라니 행복이 잔잔하게 밀려오고 있다.

12시 23분 잠시 내려섰다가 가파르게 올라선 봉우리가 삼각점(419 재설 76.9 건설부)351.7봉이다. 잠깐이지만 무심코 리본을 확인하고 내려서다 보니 방향이 엉뚱하다. 다시 되돌아 올라와 우측으로 벌목지대를 끼고 간다. 능선 우측으로 온통 나무를 베어버려 어스선 하다. 가시나무가 여기저기에서 진행을 방해하는 내리막길, 오르내림으로 이어지면서 능선 좌측으로 가섭산과 평화롭게 자리잡은 음성읍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높이 709.9m의 가섭산은 음성읍 읍내리에서 북쪽으로 약 2km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충주시 신니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옛날에는 봉화대가 있었던 곳이지만 현재는 송신소가 설치되어 있다. 가섭산의 전례를 보면 고려초기에는 이곳에 초라한 암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의 암자에 거쳐하고 있는 행자승이 그의 불도 방법이 청결 다정하여 찾는 사람이 많았었는데, 날이 더우면 선의 심정을 냉으로 감하고 차고 시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엄동설한의 추운 날씨에 눈 위에 앉아 있어도 심정의 열을 가함으로써 언제나 따스함을 유지할 수가 있어 마음의 평온함을 누릴 수가 있었다나....

12시 37분 산초나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산불지역을 통과한다. 우측을 보니 오전에 내려섰던 보현산이 넉넉한 모습으로 정맥꾼들을 보내고 있고, 가마득하게 송전탑위로 지난번 올랐던 소속리산이 정겹게 다가온다. 밋밋한 봉에 오른다. 좌우로 벌목을 해버려 확 트인 능선길은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날아 갈 것 같다. 멀지 감치서 큰산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12시 40분 344봉을 뒤로 왼쪽(남동)으로 틀며 내려서는 능선길, 역시 좌우로 온통 옷을 벗어버려 삭막하기만 하다. 5분 뒤 풋내고개를 가로지른다. 오르는 길 또한 벌목하고 쌓아둔 나무들이 애를 먹이고, 벌목지대가 끝나는 330봉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내려서야 하는데 잠시 한눈을 팔다 잠시지만 과외공부를 하고 말았다.

13시 330봉인 능선분기점으로 돌아와 남서쪽으로 간다. 내려섰다 오르는 길이 잡목으로 꽉 들어차 있다. 잣나무단지를 지나 넓은 잔디밭의 가족묘지를 내려서서 만나는 농로, 좌측에는 아직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우측으로 젖소농장이 보인다.

13시 08분 삼실고개를 가로지른다. 삼실고개를 뒤로 뒤돌아보는 351.7봉에서 330봉까지 이어지는 삭막한 정맥능선, 정맥능선 너머로는 시설물이 들어서 있는 가섭산이 또한 눈에 거슬린다. 6분 뒤 참호가 있는 안부에 잠시 내려섰다가 금북정맥에서 늘 보아왔던 흰색의 푸른글씨가 쓰여진 '청산록수' 리본이 있는 봉에서 왼쪽으로 들어선다. 잡목 숲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13시 21분 벌목지대가 나타나는 고도 290m 정도 되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남)으로 꺾으며 벌목지대를 끼고 간다. 우측으로 인삼밭이 내려다보이고 한차례 코가 닿을 듯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잠시 누그러지는 듯하다 올라선 봉우리에서 보는 어서 오라 재촉하는 듯 우뚝 서있는 517.2봉, 우측 아래로 초천리의 마을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13시 41분 벌목지대를 벗어나며 시작되는 완만한 오름길이 이제 제법 산길다운 산길이 나타나고 긴 오름과 짧은 내림이 반복되는 정맥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오름길이 가팔라지고 이어 바위지대가 앞을 막는다. 정맥길은 왼쪽으로 우회길이 나있다. 10여분의 사투라고 할까? 붙잡을 나무가 없다면 아마 포기할 정도로 수직에 가깝다. 좁은 공터에 517.2봉에 오른다. 잠시 허기를 메꾸며 다리 쉼을 하고 있자니 허문선씨가 올라오며 애 낳는 것 보다 더 힘이 든다고 푸념을 한다.

14시 05분 517.2봉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남)이다. 다시 1분 정도 내려서다 희미한 갈림길을 만나고 이어 소나무 숲에 여유로운 내리막길은 517.2봉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임도에 내려서면 음성군에서 세운 '낙석주의' 안전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정맥은 임도를 뒤로 밋밋한 묘지를 연이어 통과하면서 통나무계단을 따라 정맥은 가파르게 오른다.

14시 22분 능선마루에 올라서며 만나는 뼈대만 세워진 통나무집, 오른쪽으로 조금 더 올라선 곳이 통신시설과 산불초소가 있는 높이 509.9m의 큰산 정상이다. 국방부 지리연구소가 설치한 대삼각점가 있다. 모처럼 시야가 트이는 정상, 휘둘러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우리가 가야할 정맥에 능선이 굽이쳐 흐르고 있고 멀리 월악산일까? 하늘금을 긋고있는 우리의 산줄기와 들녘이 너무나 아름답다. 물 흐르듯이 흐르는 36번 국도 그리고 집들, 억새가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휘날리는 정상에 서있노라니 이 순간 한 폭의 그림으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정상을 뒤로 왼쪽으로 키 작은 참나무 숲으로 잠시 내려서다가 바위지대가 끝나는 지점에서 직선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들어서야 한다. 자칫 한눈을 팔다보면 다시 과외공부를 치를 수 있는 곳, 가파르게 15분 정도 떨어지다 보면 안부가 되고 다시 한차례 잠시 올라선 봉을 넘으면서 좌우에 늘어져있는 가시철조망과 철선을 조심해야 한다. 다시 잠시 가파른 내림길이다.

14시 46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연이어 묘지를 통과하고 내림길이 완만해지면서 광주반씨 묘지를 확인할 수가 있다. 질자헌대부 동 중추부사란 벼슬을 지난 분이다. 안부에내려섰다 오르는 길은 깻잎 내음이 향긋한 정맥길, 완만한 능선길은 왼쪽으로 통신탑이 나타난다. 절개지 직전 왼쪽으로 급사면으로 내려선 곳이 36번 국도가 지나는 행테고개다.

15시 행테고개에는 행치재휴게소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도로변에 윗행치마을 표지석과 광주반씨 묘비, 36번 국도는 윗행치마을 표지석 옆으로 굴다리로 안전하게 건널 수가 있다. 한 구간의 끝내면서 "행복은 마음의 만족에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사실 행복이란 마음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에 만족이 없다면 불행한 것이다. 우리의 산줄기가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종주 사진첩 = http://okmountain.com/okcafe/travel/read.html?cafe_code=twkim42&idx=156&page=&sColumn=&s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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