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 자 : 2002년 4월 19일~21일(1박 3일)
2. 장 소 :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재 ~ 육십령
3. 준비물 : 스틱,장갑,여벌 옷,오버복(上),우모복,행동식,지도,나침반,소주1,맥주1,식수(6L),
건전지(3set),텐트(2인용),cd-player,책-태백산맥은 없다
4. 비 용 : 영등포~남원역(무궁화호 16,400)
남원~함양(버스 3,500)
함양~운산리(1,300)
문경~동서울터미널(13,300)
4/20 조식(된장찌개 - 4,000),
4/21 중식(불고기덮밥 - 3,500)
뇌물? - 맥주(9)&마른안주 (21,800)
음료수(1,000)
계 : 64,800

5. 일 정
23:40 영등포역
24:00~4/20 04:27 영등포역~ 남원역
06:50~07:40 남원시외버스터미널~함양시외버스터미널
08:00~08:27 함양시내버스터미널~백전면 운산리
08:56 중기마을
10:00 산행시작
10:40 중고개재(755M) - 16℃
12:50 백운산(1,115M)
14:05 암봉
15:00 1,066봉
15:20 영취산(1,075.6M)
17:05 942봉
17:10 저녁식사
19:00 취침

4월 21일
06:30~07:50 기상 및 아침식사
08:34 977.1봉
09:38 철탑
10:20 깃대봉
10:35 약수터
11:20 육십령휴게소(4구간 종료)
12:35~15:40 육십령~문경
17:50~21:00 문경~동서울터미널

6. 산행기

나는 왜 백두대간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알기 위해? 무엇을 행하기 위해?
쥬신다물 양승현이의 진정한 대간찾기와 국토사랑의 시작은 오늘부터였다.

4월 19일 - 영등포역
이번달은 정말 마의 4월이다. 비가온 하루만 빼놓구선(노가다꾼도 아닌데 말야...) 정신 없이 바뻣다. 오늘도... 학원을 다녀와 급히 짐을 챙겨 나와 영등포에 도착하니 23:40분 부랴부랴 매표소에 쫓아가서 예매해둔 표를 찾았다. 철도회원에 가입이 되어있으니 상당히 편하다.(원래 목적은 나를 위한게 아니었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내일 중식을 위해서 몸을 바삐 움직여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이라도 사려고하니 아무것도 없다. 순간적으로 성질이 팍! 난다. 괜시리 오늘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도록 만든 쌍용건설을 욕하며 투덜거리고 있노라니 개표를 시작한다. 일주일의 피곤함과 오늘의 스트레스가 몰리면서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지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베낭 맨 내 모습을 힐끗 보고는 그냥 외면한다. 내 인상이 드러운가? 시작부터 어째 꼬이는 것 같아 화가 많이 난다.

◇기차안 - 앎의 시작◇
어째 이번엔 배낭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짐은 왜일까? 체력이 떨어져서인가? 아니면 저녁을 너무 과식해서인가? '이번엔 내 배낭을 무사히 짐칸에 올릴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을 가지며 짐칸을 향해 내 배낭을 불끈 들어올렸다. 짐칸에 쏘옥~하고 들어가는 나의 사랑스런 배낭!
새로이 준비한 책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저, 사람과 山)' 아직 토지를 다 읽지 못했지만 대간을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 새로이 준비한 책이다. 아마도 백두대간에 대해서, 마루금에 대해서, 산맥에 대해서 지리적인 그런 머리 아픈 책이겠지? 좀 졸립기야 하겠지만 대간하는데 필요할듯하여 구입한 책. 책을 처음 여니 졸리려한다. 산경표가 뭐야? 아무래도 책을 잘못산 것 같군. 몇 년만에 책을 잘못 샀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려고 할 무렵 나의 가슴과 온몸에서는 깨달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울컥하고 치켜 올라오는 뜨거운 그 무언가... 나의 피부들은 그 뜨거움을 방출하기 위해서인지 온 몸이 닭살이 되었다. 운명인 것일까?
어린 시절... 어느 날 내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내손에 들어왔다. 대동여지도의 훌륭함을 극구 칭찬하는 위인전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그날 저녁 대동여지도를 펴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 무늬 같은 우리나라의 산맥들(아마도 육당 최남선 선생께서도 이걸 보고 우리나라를 호랑이로 표현했으리라)... 신기했다. 비교적 우등생에 속했던 나(믿거나 말거나)! 이건 태백산맥, 이건 소백산맥... 어 이건 뭐지? 하며 펼쳐본 사회과부도엔 나와있지 않은 산맥이 있었다. 다음날 선생님한테 물어봤을 때 어색한 침묵뿐... 그날의 그 기억은 곧 잊혀졌고, 최근에 와서는 백두대간의 모습이 내가 배운 산맥의 방향과 상이함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으나 딱히 무어라 그 궁금함을 설명할 수가 없어 그냥 있었고, 그 궁금증은 내가 왜 백두대간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목적성의 회의감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운 우리의 지리는 일제강점기에 교육했던 그 방식이 그대로 전해져온것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도 체계적인 지리학과 관련하여 지도 및 그 외적인 사항을 기록하고 있었다한다. 허나 일제는 현대적인 지리학을 한답시고(원래 목적은 자원 채취와 전쟁을 위해서) 14개월여 동안에 우리나라 지리의 결론을 도출했다고한다. 누천년 전해온 우리의 지리서는 모두 버린 채로... 그런 엉성한 노력의 결과가 지금까지 교육으로 이어 오고 있다한다. 역사분야만 그에 해당하는줄 알았는데 지리분야도 마찬가지였던거다. 최근에 와서 민간차원의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일반인들에게 백두대간이란 말이 알려지게 되었고, 백두대간을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인해 작은 결실들이 이루어지면서 미흡하나마 우리의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아직 이 책을 다 못 읽었고, 워낙에 머리도 안좋은지라 100% 인지와 숙지는 불가능하다. 허나, 내가 왜 백두대간을 해야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백두대간은 이 나라의 중추다. 그 중추에 묻혀 살고 있는 우리민족.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이 새겨진 이 땅. 쥬신다물이란 아이디를 쓰고 있는 양승현. 말로는 무어라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내 나라를 더욱 더 알고 더욱 더 사랑하는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대간찾기는 내 인생의 목적에 대한 첫 걸음마의 시작이였던 것이다. 이제야 난 비로소 백두대간의 참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4월 20일

◇ 남원 시내◇
저번 3구간때 역을 지나쳐버릴뻔한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 다시는 없게하기 위해 시계도 맞추어놓고 잠이 들었는데 긴장한 탓인지 쉬이 잠이 깨었다. 책을 들쳐보다보니 어느새 남원. 기분이 좋다. 대간의 깊은 의미가 내 가슴속에 잔잔하게 느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새벽 4시 30분. 상당히 이른 시간이다. 어쩔수 없지 뭐 내가 갑부라면 일찍 와서 여관방이라도 들어가 시간을 죽이고 있겠지만... 하긴 내가 그 정도의 재력이 있었더라면 산을 좋아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도 보고 오늘 실행한 산길을 꼼꼼히 다시 봐본다. 어차피 가게 될 길 머리가 않좋고 게으른 나로선 지속적으로 봐야 대략적인 지형이 머릿속에 넣어진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저번 3구간을 하면서 봤던 시외버스터미널의 기사식당을 떠올리고 시외버스터미널을 향해 이동했다. 내가 길눈이 좋은 건가? 그때 어르신께서 가르쳐주신 길을 쉬이 찾아 이동할 수가 있었다. 05:10분에 도착하여 버스시간표를 알아보니 06:50분에 버스가 있다한다. 이런! 완전히 시간이 남아도는군... 확실히 도시라해도 서울에 비하면 시골인지라 유동인구가 적은 모양이다. 어쨌든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터미널 옆의 기사식당으로 들어갔다.
터미널 옆에는 두 개의 기사식당이 있는데 우선은 왼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곳은 다음 구간에도 와야하는곳이니까... 두 개여서 좋다. 식당안의 모습은 20여년전의 식당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푸른색의 타일을 붙인 벽과 바닥, 일정한 모양이 되풀이 되는 장식의 합판을 댄 천장, 그리고 그 벽에 붙은 파리똥들... 그런데 그 모습들이 지져분하지 않고 정감 어리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좁은 식당내를 차지하고 있는 크고 세련된 현대식 냉장고. 디지털시대임에 걸맞게 푸르스름한 형광색 불빛이 부지런히 바뀌고 있어 지금이 21세기임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전라도에 와서는 백반을 시키는게 최고인지라 된장백반을 주문했다. 어차피 시간도 남기도해 천천히 하시라고 일러두고 또다시 책을 펴본다. 아주머님이(할머님이라 해야 옳을려나?) 부지런히 오가며 달그락 거리신다. 아침에 너무 일찍왔나하는 미안함이 생긴다. 생각보다 음식이 늦게 나왔다. 좀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날라오는 반찬의 종류가 테이블 위에 가득찬다. 알고 있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반찬의 가짓수가 많으면 괜시리 부담되는건 여전하다. 테이블 위에 가득한 반찬을 보니 절로 배가 불러온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음식이 짜다. 비교적 싱겁게 음식을 먹는 나로서는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래도 산에서 땀을 빼면 소금을 먹어야하는데 음식덕분에 괜찮을것같다. 어쩌면 미리 알아서 좀 짜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어쨌든 다소 지저분하더라도 조금 짠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적극 추천하고 싶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 기분 좋은 식당이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후(반찬이 너무 많이 남아서 미안하기 하지만...) 아주머니껜 다음번에 또 온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나왔다.

◇함양 시내◇
터미널에서 몇 분 기다리고 있노라니 함양과 몇 개의 도시를 거쳐 진주로 향하는 버스가 왔다. 배도 불러서인지 슬슬 졸립다. 기사아저씨에게 함양에서 내려달라 부탁을 하고 맨 앞자리에서 방아를 찧으며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한다. 사고가 났나 싶어 눈을 떠보니 왠 똥개 한 마리가 깨갱거리며 저 멀리 달아난다. 차 밑으로 들어갔다하는데 그 똥개 그날 집으로 잘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괜히 오늘 산행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해보지만 쓰잘데기 없는 생각임을 깨닫고 주위 경치에 빠져든다. 지리산 영향권에 속하는 곳인지라 산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물 맑고, 공기도 맑다. 아! 날씨가 참 좋구나~
50여분만에 도착한 함양. 변한게 없다. 하긴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예전에 나를 중기 마을에서 이곳까지 바래다준 아저씨가 가르쳐준 시내버스터미널로 가보니 학생들이 바삐 움직인다. 내가 일찍 움직였음을 깨닫지 못하고 시골 얘들이 더 게으르다고 투덜대다가 내가 문제임을 깨닫는다. 그것도 토요일인데...
시내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조금 있다가 버스를 탔다. 어렸을 적에는 내가 전라도 놈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경상도 사투리를 싫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곳의 사투리가 참 정겹다. 산만 넘으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그 언어의 이상함이 재밋기도 하다. 대간을 하면서 사람 사는곳은 똑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간에 오가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들. 언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섬기는게 다르며, 풍습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 사랑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아니, 똑같다고 나는 단언한다. 다만, 그놈의 돈과 권력이란게 우리 서로를 병들게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내 자신도 속세에서는 그와 똑같은 사람이란게 나를 화나게 한다. 어쨌든 시내버스를 타고 운산리로 향했다.

◇ 운산리 ◇
운산리로 가는 눈에 익은 길. 다시 보는 길이지만 정말 맘에 든다. 연녹색의 봄옷을 입은 산의 모습에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진다. 거기에 시원하고 깨끗해 보이는 물. 정겨워 보이는 논과 밭. 백전면사무소를 지나 운산리 입구에서 내렸다. 봄 햇살이 제법 따갑다. 이제 곧 있으면 여름이겠구나. 시원한 시내물에서 노인 한분이 무언가를 닦고 계시길래 자세히 보니 황동색 철제 도시락이다. 히야~ 저게 몇 년만에 보는거야? 요즘 도시락은 죄다 플라스틱인데... 저런 도시락을 알아볼줄 아는 내 자신도 문제가 있다. 분명히 나는 7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80년대에 세상을 알기 시작한 이제 26인 아이인데 말야...
운산리에서 중재까지는 약 3km의 거리. 회색빛의 콘크리트길은 무릎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썩 내키지가 않는다. 예전에 무릎 때문에 고생을 했기 때문에 무릎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맑은 물에 심취해서 급히 걷다보니 어느덧 중기 마을을 지나 농로다. 여기서부터는 비포장길이라서 좋기는 한데 계속 오르막이다. 땀을 슬슬 흘리면서 올라가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며 남자분 한명이 내려온다. 왜그러냐고하니 3구간에서 다리를 다쳐서 동료들과 떨어져 하산하는 길이라 한다. 베낭이 조그만걸 보니 비상약도 없을듯하여 맨소래담이라도 발라주려고하니 말이라도 고맙다하며 괜찮다한다. 보아하니 다리가 아퍼서라기 보다는 산행이 힘들어서 심리적으로 더 약해진듯하다. 베낭에는 백두대간 종주라며 요란하게 꾸며 놓은게 뭣 모르고 산행에 따라나선 사람 같다. 굳이 그렇게 대간 종주를 티내며 다녀야하나? 나도 베낭 한가운데 백두대간 종주라며 붙이고 다닐까? 이왕이면 회사로고를 달아볼까? 아니면 우리 유니텔 산사랑을? 후후.대간 종주가 어디 쉽나? 대간계획과 실행에 있어 1년 이상을 소모한 나도 아직도 자신이 없는데 말야.
좀 오르다고 전에 봐둔 자리에서 식수를 받았다. 졸졸 흐르는 시내물이 무척 시원하여 좋다. 수낭에 5.4L정도 채우고 600ml의 물병에 가득 채워 넣었다. 물 무게만 6kg인 넘는 거다. 무겁긴 하지만, 목마른 것보단 나을테니까... 식수를 보충하고 나서 스틱을 꺼내어 준비를 하는데 이놈의 스틱이 말썽이다. 한쪽이 고장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하긴 이 스틱을 마련한지 5년이 넘었으니까 맛이 갈만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내 장비중 5년이 넘은게 꽤 많다. 이번에 수낭만도 새로 준비를 한거니까... 버릴까하다가 잔머리를 굴리면 더 튼튼하게 사용할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그냥 구겨넣었다. 어쩔수 없이 이번 산행은 세발 산행이 되었다.

◇ 중재 - 백운산 ◇
이제야 산행이 시작된다. 대간 4구간 거의 한달여 만이다. 자주 오고 싶은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은 왜일까? 나의 게으름 때문인가? 다음달부터는 야영할 수 있는 시간마져 없다. 한달이 지나서 시작될지 아니면 몇 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실행할수 있을지 지금의 나로선 예측할 수 없다. 결국 지금하고 있는 것중에 한가지는 포기를 해야하는데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올해엔 세 마리의 토끼를 잡고싶다. 동시에 잡지는 못하더라도 한 마리씩이라도 잡아야하는데 이도 저도 아닌게 되버리는건 아닌지... 그건 다 내 노력의 결과가 될테지?
한달여가 지났지만 중재의 모습은 내 기억속의 모습과 여전히 일치한다. 우선은 산행이 가볍게 시작된다. 한동안 탄 자전거의 영향인가? 발걸음이 가볍다. 게다가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대간종주를 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누가 뭐라하든간에... 예전에 누가 그러더군. 우리나라의 산들을 타다보면 백두대간이고 정맥일텐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냐고... 그때 한참 대간을 준비중이던 내게 섭섭하기도 하고 망설이게도 만드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간 종주를 하다보니 우리가 그냥 봉우리 하나만 지나치고 마는 그런 산들이 대간일수가 없고, 대간 종주의 참 의미를 평생이 가도 못깨달을거란 생각이든다. 우리 인간은 우매한 동물인지라 결코 그럴수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번 4구간은 비교적 쉼도 많이 가지면서 주위의 모든 것들도 좀더 많이 둘러보고 사진도 많이 찍어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가벼이 오르다보니 중고개재이다. 좌측으로 멋진 능선한줄기가 뻣어 나가고 있다. '금남호남정맥'이다. 승현이가 두 번째로 접하게 되는 정맥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첫 번째라 함이 옳을듯하다. 처음 접한 남남정맥은 있는지도 모르고 그져 빨리 종주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가진채 행한 산행이었으니까...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정맥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이 대간구간은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훨씬 멋지고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는 장소가 많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더 힘이 난다. 어서 가세~
중고개재까지는 비교적 쉽게 올수 있었지만 백운산까지는 거리도 거리려니와 해발 750여미터에서 1200에 이르는 가파른 길이다. 힘들다. 아무리 체력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은 했다 하지만, 그래도 힘든건 어쩔수가 없나보다. 고행... 내가 왜 이런 고행을 택한지 내가 직접 행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백운산 정상을 오른다 하더라도 또 다른 봉우리가 날 기다릴것이요 계획한 대간을 다 한다 하더라도 반쪽자리 일것이요. 어떻게 운이 좋아 대간 종주를 남북으로 다하더라도 정맥과 정간이 남아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도 한낱 보잘 것 없는 양승현이란 인간의 욕심이겠지... 특벽한 종교가 있다고 할수 없는 나로서는 내가 행할수 있는 내 죄에 대한 사함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부지런히 걷다보니 어느새 12시다. 점심시간... 허나 점심이라고 특별하게 준비한게 없다. 어제의 시간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물론, 그에 대한 대비로 찰떡과 약과등의 식량 대처용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 밥만 할까? 밥생각을 하니 배가 고파진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털썩 주저앉아 베낭을 이리저리 뒤져서 먹을 것을 꺼내 먹는다. 입을 벌리고 산행을 해서인지 입안이 바짝 말라붙어서 무슨 맛인지 모르고 그냥 입속에 집어넣는다. 가끔 물도 집어넣어주고... 물을 집어넣을땐 반드시 물을 조금 삼켜서 입안을 헹구다가 조금씩 마신다. 올 여름 산행을 대비해서 미리부터 준비하는 거다. 그때는 분명히 물이 많이 먹히겠지? 지금부터 버릇을 다시 들이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산 속에서 큰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 허기를 달래고 체크를 해보니 온도는 17℃, 고도는 1115미터, 현재 기압은 987mmbar 생각했던 것보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기온이 낮아서 그냥 정지해있으면 춥겠지만 산행하기에는 적당한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도비에 비해 기압이 낮다. 아무래도 저기압권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인데, 하늘은 청명할뿐이다. 이상하다? 비싼 돈 주고 산 시계가 영 이상하네그랴~ 아무튼 앞으로 100여미터만 수직으로 오르면 된다. 많이 남기는 했지만 그래도 해발 500여미터를 그동안 올라왔으니까 남은 100미터를 못올라갈까? 내 자신을 자꾸만 독려하며 오르니 어느새 해발 1278.6고지의 백운산 정상이다.
1구간 이후로 최고로 높은 곳인다. 물론 높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는 성격은 못되지만 저 멀리 보이는 1구간의 지리산의 모습에서 시작해서 구비구비 흐르는 산을 따라 내가 이곳까지 왔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몇km나 왔을까? 이런생각에 오늘 걸은 구간을 재보니 도로가 3km 산길 5km정도하여 토탈 8km를 걸었다. 비교적 느린 속도는 아닌것같다. 어차피 빨리 갈 생각도 없고 말야. 천천히 많은걸 느껴보며 가슴의 눈을 뜬채 가고 싶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점점 혼자가 편해진다는 것이다. 걸리적 거림도 없고, 남을 배려할 필요도 없어서 좋다. 허나, 혼자 있다보니 외로울때도 있고 괜한거에 말을 걸어보게 되기도 한다.

◇ 백운산 ~ 영취산◇
백운산 정상에서 배낭에 카메라를 얹어 알람에 맞추어 후다닥 뛰어가 사진을 찍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기를 쓰는것도 중요하지만 사진을 남겨놓는것도 중요한듯하다. 이제부터는 아름답고 좋은곳을 발견할때마다 꼭 사진을 찍으면서 가야겠다.
암봉을 지나면서 금남호남정맥의 모습이 눈에 확연히 들어난다. 무령고개와 장안산등의 기타 산줄기의 모습이... 금남호남 정맥은 이후 팔공산 - 마이산 - 주화산으로 가는 타 정맥에 비해 비교적 짧은 코스인듯하다. 언젠가 이곳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와봐야겠다. 마루금을 계속 밞아가며 아무 생각없이 그냥 걷다보니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선바위고개가 나온다. 철제로 제법 폼나게 만들어놓은 이정표다. 아무래도 대간꾼들이 이곳에 이런 이정표를 만들어 놓은듯하다. 이정표엔 영취산 0.3km, 대간 남반구 종점인 진부령이 1,105.9km, 오늘 지난 백운산이 3.5km, 대간 시점인 지리산 천왕봉이 134.1km라 표기되어 있다. 일시 종주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온 거리가 134km라니... 내 자신이 이렇게 많이 걸었나? 허나 아직도 남은길이 예상은 했지만 1,100여 km라니... 갑자기 주눅이 확 든다. 아직도 갈길이 멀구나. 우뜨 왜 이런걸 세워서 사람 기를 죽이는거야? 그래도 역종주를 하는 사람이 이곳에 오면 기분이 다르겠지? 나도 언젠가는 반대편에서 이런 표지판을 보고 기분좋은 미소를 지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취산이 0.3km 남았다는 거에 가파른 오르막길이긴 하지만 발동을 걸어 올라본다. 300m 이거 못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드냐? 300m가 아니고 600m는 되는거 같은 기분이 든다. 조금씩 천천히 오르면서 오르니 눈에 어렷을적 당산나무에 걸린 색색의 당줄을 연상케하는 봉우리가 보인다. 영취산이다. 이곳은 상당히 영험한 산인 모양인지 돌들을 쌓아올린 석탑이 2개 있고 장수군에서 마련한 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을 안내한 표지판이 있다. 구경도 많이 해볼겸해서 짐을 풀고 사진도 찍어보고 말라 비틀어질 것 같은 목속에 물도 집어 넣어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노라니 기분탓일수도 있겠지만 이곳의 기운이 제법 센곳인 것 같다. 예전 당줄이 어떤 의미에서 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대간꾼들의 여러 가지 색깔의 표지기들이 예전 당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결국 이땅에 사는 우리의 운명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간에 결국은 저 모습처럼 되는 모양이다. 어렸을적에는 미신이라 하여 보기 흉하고 상당히 무서워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에 대해 무시할 수가 없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꽤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베낭을 둘러매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영취산 - 논개◇
영취산을 지나 다시 시작되는 대간 걷기. 고도가 높아서인지 기온은 15℃ 안팎이다. 아직 이곧은 푸릇한 봄의 기운을 느끼기에 아직은 느린듯한다. 몇몇 성질급한 철쭉과 진달래가 먼저 고개를 드러 내밀고 자신을 봐달라고 하는듯하다. 인위적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해 꽃을 피운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아름다울까? 극히 아름다우면 꺽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적당히 때를 묻혀 자신의 미를 숨기는 것 같다. 녀석 그런다고 내가 너의 아름다움을 못 알아볼까? 나는 남들과 보는 시각이 조금 다르단말야! 내식대로 표현하자면 '꼴통시각 또는 삐닥이 시각' 그렇다고 움츠려들거나 겁내지는 말렴. 네 아름다움은 내 가슴속에 그대로 떠서 가져갈테니깐... 그게 더 무서운건가? 후후
걷고 또 걷고 내가 봐도 가냘픈 어깨는 자꾸만 쳐지고... 그래도 난 외소하긴 해도 튼튼한 내 몸이 무척 맘에 든다. 다리도 짧고, 볼것이라고 아무데도 없는... 하지만 나의 두발은 내 몸무게를 포함하여 80여㎏을 버티고 나의 양 어깨는 20여㎏의 무게를 짊어지며 허리는 이 모든 것을 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장시간동안... 과연 이정도의 힘을 가진 몸은 몇이나 될까? 그래서 난 내몸이 좋다. 크후후
도면상 표기된 암릉을 지나니 좌측으로 오동제가 보인다. 그 건너편으론 그보다 작은 벽남제도 보이고... 저수지 치고는 제법 큰 크기인듯하다. 오동제의 상류쪽으로는 큰 기와집이 보이는데 아마도 거기가 논개생가인 모양이다. 도면상으로는 오동제 중간쯤에 있는 걸로 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논개 생가를 옮긴건가? 이상하군... 4구간 준비하면서 논개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적어본다.

※ '논개' 이야기
모두가 다 아는 얘기이겠지만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적장과 함께 남강으로 뛰어든 여인이다. 성명은 주논개. 1574년 영취산 북쪽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최경회라는 임진왜란당시 진주성 경상우부사의 아내가 된다. 임진왜란 발발과 패전끝에 진주성의 장졸들은 진주성의 촉석루에서 남강물에 자결을 하고 이후 왜군들의 전쟁 축하연 틈에 기생으로 변장하여 끼어든 논개는 적장 '게다니무라 루쿠스케'와 자결을 하게된다. 이로써 논개가 살아있을적 생은 이렇게 마감을 하게된다. 이번에 일본갔을 때 논개에 대한 가이드의 얘기가 있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이 사건이 큰 충격이었다한다. 파죽지세의 승전소식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고 한 여인의 당참에 놀람을 금하지 않을수 없었고 전쟁이 쉽지만은 않을거란걸 예감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최경회와 논개 부부의 시신은 남강하류에서 발견되어 고향으로 옮겨 주씨 문중에서 장사지낼려고 했으나 왜적의 보복이 두려워 거절했다고한다. 또는 기생이어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한다. 그로서 그들의 충절은 그대로 묻혀 마치 동화속 얘기처럼 의병의 후손들에 의해 전해져 오다가 1975년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알려졌다한다. 순절후 382년만에....
국가란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어떤 의미해서 그토록 소중한 목숨을 바칠수가? 아니, 버릴수가 있었을까? 내가 요즘 읽고 있는 토지에서도 일제 점령기에 대한 인간들의 고뇌가 나타나고 있더군... 나는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다할수 있을까? 태어나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언제나 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 너무 자주해서 그 의미는 퇴색해버린 맹세를 지킬수 있을까?
거의 400여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자랑스런 논개의 충절. 그녀의 그 살신성인은 생은 짧았으되 그녀의 마음은 지금에서도 잊혀지지가 않았고 자랑스럽게 제각이 지어져있게 된 것이다. 부디 두분 부부께서는 극락왕생하시길... 논개의 충절을 가슴속에 새기고 나 역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맹세를 해보며 발걸음을 띄어본다.

◇ 숙영 ◇
17시 942봉에 도착했다. 그런데 일기가 심상치 않다. 기압도 미세하지만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해도 점점 가려지고... 18시까지는 산행을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자리를 펴야할 것 같다. 마침 942봉우리를 내려서니 산이 애워싸서 바람의 양이 적을 자리가 보인다. 비가 올것에 대비하여 잠잘 때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약간 경사진 곳에 오늘의 숙영지를 정했다. 아직까지 확실한 비구름이 생성되지도 않았고 비가 올거라는 기상예보도 없었지만 내가 아는 상식으론 내가 있는곳은 저기압권이다. 비는 온다.
급히 자리를 펴고 식사준비도 했다. 물을 끓이면서 다시 대기압을 체크해보니 915mmbar. 물을 끓이고 있을때는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딱히 할 일이 있는것도 아니기에 모든 것이 멈춘채 코펠만 바라보고 있어야만 한다. 문든 외로움이 내 가슴속에 밀려 들어온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산에 들어선뒤로 사람구경을 못했다. 언젠가 만약 이세상에 나 혼자만 살아남게 되냐면 어떻하겠냐는 질문에 나는 그냥 같이 죽어버릴거라고 했었다. 이런 외로움을 느낄때는 술이 최고지! 무거웠지만 준비한 맥주와 소주를 꺼냈다. 안주는 밥먹을 때 김치대신 준비한 김치참치. 준비한 맥주와 소주를 다 마시고 나니 밥이 다 되었다. 여기에 인스턴트 국인 육개장을 같이 끓여 먹으려고 하는데 이 오뚜기사의 육개장은 맘에 안든다. 저번에 준비한건 어디건지는 모르겠지만 1인분씩 구분이 되어있어 한번씩 끓여 먹을수 있었는데 이건 2인분 통째로 끓여야한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맛도 모르겠고 그냥 또다시 입에 퍽퍽 집어넣고 나니 배가 무척 부르다. 배가 부르니 기분도 좋고... 남은 소주도 홀짝홀짝 마신다. 예전에 야영을 하면 밤이 무서워서 술을 마셨는데 이제는 외로워서 마시게 된다. 함께 산을 오를수 있는 산을 적당히 좋아하고 나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 이런 곳에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술이 올라서일까? 한 여인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다시 끄기를 몇번 되풀이하다가 그냥 관두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산짐승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날이 저무면서 바뀌는 바람의 소리도... 이제 나도 잘 시간이 되는 모양이다. 산에 오니 짐승들의 생활과 똑같아 지는 모양이다. 오늘 내가 걸은 양을 체크해보니 14km정도 걸은 것 같다. 적지 않은 양이군... 그나저나 내일 비가 오지 말아야할텐데 걱정이다. 나의 예상이 빗나가길 바랄뿐... 그래도 하늘은 아직도 비구름이 없는걸 보면 비는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나는 잠이 들었다.
술기운에 한참 자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시계를 보려고 하는데 푸르스름한 불빛이 내 눈앞에 들어온다. 깜짝놀라 눈이 번쩍 뜨인다. 알고보니 시계다. 사람이 시계를 보는 각도가 되면 램프가 켜지게끔 셋팅을 해놓은게 나를 놀라게 한거다. 20시 30분. 잠든지 한시간여밖에 되지 않았군... 그런데 이게 뭔 소리야? 천장을 두드리는 이 소리는? 바깥에 나가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무시못할 양이기도 하다. 예상대로 비가 오는구나. 내일 아침까지도 비가오면 영 곤란한데... 어차피 비에 대한 대비는 철저하게 해놓았으니 텐트안으로 물이 들어올리는 없고, 에라 모르겠다! 자던 잠이나 더 자자!

◇ 산속의 아침 ◇
시계의 알람이 울어댄다. 으, 듣기 싫어... 알람을 끄고 침낭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에라 모르겠다. 더 자자 어차피 비오고 있을건데... 새 소리가 들린다. 뾰로롱~ 뾰로롱~ 휘익휘익, 휘익휘익. 빼~~, 딱따구리의 나무 두들기는 소리 등등... 벌써 아침을 시작한 모양이구나. 어라? 그런데 비 소리는 안들리네? 급히 텐트 바깥을 보니 날이 환하고 멀리서 햇살이 점점 이곳을 향해서 오고 있다. 와~! 비가 멈췄구나. 구름층이 엷어서 비가 많이 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덕분에 아침공기가 아주 맑고 상쾌하다. 하늘은 가을하늘 같이 파랗다. 아~ 좋아라!
바깥에 나와 구부러진 나의 몸들을 풀고, 물에 젖은 플라이를 걷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 나무에 얹어 놓고 물을 끓인다. 기압계는 1031mmbar를 가리키고 있다. 확실히 틀리군... 비싸기는 하지만, 시계를 사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술 기운에 뭣 모르고 먹은 육개장의 맛이 영 느끼하다. 한번 더 끓여서 그러나? 담부터는 절대 오뚜기껀 안살란다.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기는 하지만 느끼한 건 정말 질색이다.

◇ 깃대봉까지 ◇
다시 산행시작! 날씨가 청명해서 기분이 좋다. 어제 백운산에서 날씨가 이랬으면 사진을 많이 찍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조그마한 박새 한 마리가 자꾸만 내 앞에서 머라하며 말을 거는거 같다. 먹을게 없어서 그러니? 내가 어제 잠잔 자리에 먹을걸 놓아두었으니 거기 가서 먹으렴 네 식구는 충분하게 아침은 해결할수 있을거다. 내 말을 알아들었나? 갑자기 휘익~하고 날아가더니 소식이 없다. 크크 많이 먹고 이쁜 새끼들 많이 나으렴... 977.1봉우리를 지나니 논개생가와 옥산리로 빠지는 표지판이 있다. 갑자기 혼란을 느낀다. 지도상에 표시된 논개생가로 가는 길이라면 민령까지 가야하고 옥산리가 아닌 금당리나 중남리로 빠져야하는데 옥산리라니... 내가 독도를 잘못한건가? 멀리 보이는 도로의 모습도 종 이상하다. 도면상 표기된 26번국도는 육십령으로 빠져 나와야하고 내가 독도한 것에 비하면 육십령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다. 뭔가 이상하다. 내가 독도를 잘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치파악은 어느정도 할줄 아는데 정말 이상하다. 그럼 내가 어제 잔곳은 어디였지? 도면을 펴고 아무리 따져봐도 여기가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독도를 잘못 한거라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육십령에 도달하기야 하겠지만 독도를 잘못했음에 기분이 영 찜찜하다. 그런데 산새를 보면 각도가 틀리단 말야! 내가 도대체 지금 어디 있는거지? 독도를 잘 못했다고 생각하니 슬슬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자기가 어디서 잔 줄도 모르고 현 위치도 파악을 못하는 바보라니... 니가 그러고도 대간한다고 달라드는거냐! 에이! 화상아~~!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산새가 완만하게 이어진다. 여긴 분명히 민령이다. 깃대봉을 지난 코스에는 이런 완만한 코스가 없다. 그래 이곳은 민령이다. 나는 어제 오늘 철탑도 지나지 않았고 해발 1000미터를 넘어간 적이 없다. 다시 지도를 펴들고 왜 착각을 했는지 살펴보니 보이는 도로는 26번 국도가 아니고 최근에 새로 뚫린 고속도로다. 도면상 우측의 도천리에서 민령에 터널을 뚫어 오동제 앞을 지나는 고속도로가 도면상 표기되지 않아 내가 착각을 한 것이다. 어쩐지 국도치고 상당히 거창하단 생각을 했었는데... 내 독도가 틀리지 않았음에 다행이단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갈길이 멀다고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빠진다. 5구간 일부 지점까지 향할수 있을꺼란 나의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민령을 지나니 슬슬 고도가 올라가면서 숨이 턱에 차오르기 시작한다. 깃대봉을 향해 오르는길. 역시 힘들다. 갑자기 내 귀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사람 소리다. 이 아침에 왠 사람소리지? 대간꾼들인 모양이다. 여기까지 온거라면 상당히 이른 시간에 가벼운 산행차림으로 오른것임에 틀림없다. 4구간 중간에는 딱히 오르내릴 코스가 없으니까... 사람이 그립고, 가파른 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철탑에서 짐을 풀어 물과 기타 음식들을 섭취하며 뒷사람들이 오르길 기다려보는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올라오지도 않는다. 허허 내가 사람소리가 듣고싶어 환청이 울린건가? 다시 짐을 꾸려 오르려고 하니 사람소리가 또 들린다. 대낮에 누가 날 놀리려고 하나? 베낭을 둘러멘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쉬면 쉴수록 더욱 더 힘들어질테니까... 쫓기는 느낌도 들고 물이 줄어들어서인지 확실히 베낭이 가볍다. 역시 물의 무게는 무시할수 없는 모양이다. 40여분을 소요하며 헥헥 거리며 겨우 깃대봉에 올랐다. 도면상으로는 1시간 코스인데 20분정도를 단축시켰다. 항상 도면상에 표시된 시간보다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었는데 어찌된 일이지? 산행시간을 표시하던 분이 아무래도 어디가 아펐던 모양이다. 어떤때는 30분 코스를 50여분만에 오르는가 하면 1시간 코스를 40여분만에 오르기도 하니... 내 체력이 좋아진게 한 몫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대간 준비한답시고 자전거 좀 탔더니 다리가 제법 탄탄해졌다. 베낭을 풀고 물 한모금 마시고 있노라니 철탑에서 내 귀를 놀리던 주인공들이 올라온다. 얼굴들이 하나같이 새빨개져서... 크흐흐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베낭도 가벼운거 같은데 뭐 저리 힘들까? 그래도 하루만에 보는 사람들의 모습인지라 영 반갑지 않을수가 없다. 모두들 내 베낭을 보고 놀랜다. 체구는 조금마한데 자기 등치보다 두배는 된 짐할 짐을 지고 다닌다며 머라 한다. 그렇게 다니면 나중에 산행 못할거라고 겁아닌 겁도 주신다. 모두들 50대정도 됨직하다. 새벽 세시에 조그만 전세버스를 빌려 중재에서 시작했다한다. 정말 대단한 체력들이다. 물론 베낭이 가벼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나이에도 이렇게 산행을 하다니... 하지만, 대간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미친 듯이 왔을 그들을 생각하니 별로 좋아 보이진 않는다. 좋은 산을 어두컴컴한데서 아무 생각 없이 오르고 내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노인네들에게 설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먼저 쉬고 있던 참인지라 먼저 육십령을 향해 출발했다. 이제 1시간여만 가면 4구간이 끝나는구나.

◇ 깃대봉 ~ 육십령 ◇
도면에 비해서 내리막길이 심해진다. 그러다 갑자기 우측으로 휘익하고 꺽어진다. 내가 잘온건가 싶어 다시 독도를 해보니 맡다. 눈으로는 안보이지만 이 상태로 직진하면 결국 물을 만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여기까지와서 수맥을 만날수는 없지. 우측으로 꺽이니 계속 내리막길이다. 내리막이 심해진다면 그만큼 올라야한다는것인데 과연 내가 다음구간에서 이만큼 오를수 있을까? 조금 더 가니 약수터가 있다. 깃대봉에서 충분히 쉰만큼 목이 타는건 아니지만 물맛을 맛보고 싶어 옆에 준비된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맛을 보니 캬~! 청량음료보다 훨씬 더 시원하다. 살아있는 물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은 하루가 지나서 죽은물이 되어 물에 힘아리가 하나도 없었는데 살아있는 물을 마시니 배속이 아른아른 시원한게 기분이 좋아진다. 별도의 휴식없이 바로 출발한다. 조금 가다보니 산행복장이 아닌 일반인이 올라오고 있다. 방금전에 만난 사람들의 운전기사란다. 신발에 흙이 별로 안묻은 걸로 보아 육십령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수가 있다. 아! 이제 다 왔구나. 정말 기쁘다. 어찌됐건 4구간은 완료되는구나. 계속되는 내리막길. 이놈의 내리막은 멈출줄 모른다. 앞으로 5구간은 살인구간이 될듯하다. 예전에 듣기로는 덕유산종주를 하면서 지숙이가 그 지겨움과 힘듬에 울었다고 하는데 언제 이만큼 올라 오르내림을 할수 있을는지... 이생각 저생각 하다보니 쿵짝쿵짝하는 소리가 들린다. 좌측으로 빠지는 길에 광장이 있어, 노인네들의 관광차가 온 모양인지 꽤나 떠들썩하다. 뭐 볼게 있다고 이런곳에 와서 저리도 떠드시나?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이쪽이 길인가 싶어 보다가 대간길이 아니길래 바로 전진한다. 비록 돌아서 간다고 할지라도 우선은 대간길은 밟아야하니까... 3분여를 더 내려가니 진짜 육십령휴게소가 나온다. 큰 버스 한 대가 서있다. 버스 넘버가 경기소속 버스다. 특정 산행회사에서 대간4구간이라햐여 사람들을 모집해서 온 모양이다. 대간의 의미도 모른채 저렇게 이른 새벽에 와서 대간의 모습을 그냥 휘익~하고 둘러보고선 자신들이 대간종주를 했다고 뽐내겠지? 대간이 영리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뭣 모르는 산행. 대간의 의미를 모르는 산행이 되는 것 같아 섭섭하다. 기분이 좋았다면 여행사 버스에 빌붙어 몇마디만 하면 충분히 집에까지 편히 올수 있을텐데 굳이 그렇게 아쉬운 소릴하며 가고싶지가 않다. 어차피 계획된 예산 쓰는거지 뭐.

◇ 육십령휴게소 ◇
시원한 맥주를 하나 사다가 주욱 들이켰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아주 샛노랗게 변한 배출물을 발산한다. 오늘도 어지간히 땀을 뺀 모양이다. 이러니 내가 살이 찔 새가 없지. 봄 햇살에 얼굴도 많이 탓다. 사실 내 피부는 비교적 흰편이다. 하지만, 이런 내 피부도 사계절 내내 산만 쫓아다니다 보니 봄, 여름, 가을뿐만이 아니고 겨울에도 눈에 빛이 반사되어 피부가 미쳐 희어질 기회가 없게 되어 이젠 까맣다. 내 원래 피부색을 아는 사람들은 건강해보여 좋다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내 피부가 원래 까만줄 안다. 내가 생각해도 깡마르고 피부까지 하야면 아마 병든 환자같이 보일것같아 별로 내키지 않는다.
맥주를 다 마시고 나니 아까 만났던 사람들이 내려오더니 자신들은 여기서 식사를 하고 문경으로 갈꺼라 한다. 문경에서 서울까지 3시간여밖에 소요되지 않으니까 문경을 통해 가는게 나을거라며 같이 식사를 하자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고, 모르는 사람과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같이 합류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막걸리 몇잔을 연거푸 마셨다. 그다지 과음을 하시는 분들 같지는 않다. 그러다가 아까 본 영리목적의 산악회 얘기가 나왔다. 저번 3구간에서도 그분들은 같이 온 모양이다. 그날 자기들끼리만 식사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의상 권해보지도 않는 그네들의 예의에 몹시 맘 상한 모양이다. 하긴 산에서는 모르는 사람도 물도 주고 음식도 주는게 산사랑의 한 방법인데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아무래도 누가 가르쳐주는것도 아니고 깨우칠만한 여유도 없을 테니 그런걸 알 리가 없지. 산사랑의 비껴진 모습일런지도 모르겠다. 하긴 나도 그런 여러 가지 점들이 마땅치 않아 빌붙지 않았으니까. 만약 빌붙었더라면 벌써 서울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막걸리 기운이 쓰윽하고 올라올 무렵 모두들 일어났다. 세상은 '+ - = 0'라는 양승현의 철칙상 공짜 버스는 탈수 없는지라 맥주와 안주를 샀다. 문제는 만원만 남겨놓고 객기를 부렸다는 것이다. 술기운의 탓도 없지않아 있었던듯하다. 어찌됐건 어르신들의 열열한 환영과 아우러 젊은 사람이 돈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는 훈계도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하는 훈계라서 어떻게 들으면 기분 나쁠수도 있겠지만 그런 훈계를 해주시는 어른들이 무척 고맙다. 그때부터 나의 넉살좋은 너스레는 시작되면서 기분 좋게 맥주를 마셨다.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보니 사위삼겠다며 나이, 직업, 학력등을 꼬치꼬치 캐묻고는 흡족해하더니 잠이 들어버린다. 뭐야? 결론은 내려줘야할거 아냐! 훗! 우연찮게 우리회사에 대해 소상히 알고 계시는 분이 있다. 알고보니 대성그룹에 몸담았던 분이랜다. 지금은 뭘 하시는지 말씀은 안하셨지만 이병섭차장님의 동기라 하시는 함일성씨. 눈속에서 왠지 모를 섭섭함이 느껴져서 자세한 것은 물어볼수가 없었다. 이름이 좀 특이해서 기억하기는 쉽더군. 그러고보면 난 대성그룹 서울도시가스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런곳까지 와서 지나간 과거일지라도 대성맨을 만나다니... 그 연이란게 참 재밋고 우습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하나, 둘 잠에 골아 떨어지신다. 나 역시 막걸리 기운이 올라오면서 여기에 부어넣은 맥주 때문에 무척 졸립다. 나도 모르게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문경시 ◇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서 깨운다. 다 왔다고 한다. 문경시청에서 일행의 반이 내리고 다시 문경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날 내려줬다. 연락처를 나누어 가지면서 시간이 닿으면 같이 대간산행을 하자 하신다. 나 역시 기분좋은 공약을 해본다. 자 이제 서울로 가야할때다. 지갑안에는 만원밖에 없는지라 CD기에서 돈을 찾으려고 하니 CD기가 없다. 이게 왠 날벼락이여~ 그때부터 나의 돈을 찾기 위한 여행은 시작되었다. 터미널내에 있던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여기근처에는 없을거라고 건너편의 대형 할인마트에 가보라한다. 급히 그곳으로 이동해서 물어보니 시내로 들어가야한댄다. 우라질! 시라고 하는데가 CD기 하나 제대로 보급되어 있지 않다니... 할인마트에 양해를 구해 베낭을 내려놓고 시내쪽으로 걸어갔다. 빠른걸음으로 10여분을 이동하니 중앙시장이던가? 아무튼 시장 앞에 대구은행이 있다. 카드가 인식이 안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인식이 된다. 다음부터는 충분한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겠다. 술이 슬슬 깨고 졸인 맘이 풀리면서 배가 고프다. 아마 술기운의 영향이 큰듯하다. 근처 분식점에 들러 불고기덮밥을 시켜 먹고 다시 마트로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정신없이 문경시내를 한바퀴 돈것이었다.

◇ 문경 ~ 서울 ◇
거의 두시간여를 문경시내에서 보내서 생각보다 늦은 17:50분차를 타게 되었다. 재수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산의 능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경시를 벗어나는 능선들이 상당히 아름다운 듯 하면서도 여타 산과 다른 무게가 있다. 조금 있다보니 이화령과 조령 터미널을 통과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본 능선들은 대간길이었다. 대간길이어서 다른 무게감이 느껴진거거나 아니면 대간꾼이 몸으로서 느끼는 본능이 아니었는지...? 13구간과 14구간에 해당하는길. 아직 그곳을 가려면 멀었지만 언젠가는 그 곳을 통과하겠지?
국도같은 길을 돌고 돌아 서울로 도착한 시각은 21시. 빨리 하산했되 나의 안일함으로 인해 늦게 집으로 오게 되었던 산행이었다. 그래도 대간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감에 기분이 무척 좋은 산행이었다. 대간 5구간은 언제 행할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미지수다. 허나 반드시 나는 해낼거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