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금남정맥
▶일 시 : 2002년 11월 10일(일요일)
▶산행지 : 금남정맥 (싸리재~피암목재)
▶코 스 : 작은싸리재~750봉(702고지 갈림길)~큰싸리재~640봉~
△724.5봉~장군봉~×787봉~+자안부~675.5봉~피암목재
▶소재시 : 전북 완주군 운주면, 동상면 / 진안군 주천면
▶지 도 : 2만 5천분의 1(대아) / 5만분의 1(진안)

▷총산행시간 : 6시간 00분
▷정맥산행 : 4시간 09분
▷정맥휴식 : 1시간 51분

▶도상거리 : 8.27km
▶구간별 소요시간 : 작은싸리재(08:45)--(20분 산행/0분 휴식)--
(09:05)750봉(702고지 갈림길)(09:10)--(10분/5분)--
(09:20)큰싸리재~(30분/0분)--(09:50)640봉(10:00)--
(30분/10분)--(10:30)×717봉--(14분/0분)--(10:44)
△725.5봉--(50분/10분)--(11:44)장군봉(13:00)--
(35분/1시간 16분)--(13:35)×787봉--(42분/10분)--
(14:27)△675.5봉--(18분/0분)--(14:45)피암목재

▷날 씨 : 흐 림
▷동행자 : 대전(김홍주, 최성일, 강산에), 전주(임노욱, 전종신외 2인)
서울(월간"산"안중국기자외 2인) 등 총 10인
▷교 통 : 각자 이동
대전TG(07:05) →(08:35) : 1시간 30분
피암목재(16:00) →(17:50) : 1시간 50분


산 행 일 지

11월 8일, 한국 51 명산(1,2권), 아름다운 산,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1,2권), 금산의 산들, 조망의 즐거움등 산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집필하신 소산 김홍주선생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월간"산"지 안중국기자의 금남정맥 취재산행에 함께 산행해 줄 것을 부탁받고 지금껏 한번도 뵌적이 없는 김홍주선생님을 뵙기 위해 흔쾌히 수락을 한다.

11월 10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김선생님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신다. 인사를 드리니 집필하신 "조망의 즐거움"책자에 직접 싸인을 하셔서 건네 주신다.
함께 하기로 한 최성일님을 만나 대전톨게이트를 출발하여 금산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운일암반일암길을 지나 피암목재에 차량을 주차시켜 놓고 김선생님의 차량으로 옮겨 타고 싸리재로 이동한다.

08시 35분, 사리재에 도착한다. 고개에 도착하니 엊저녁 이곳에서 하루를 쉬고 이틀째 산행에 나선 일행들이 산행준비에 한창이다. 잠시 한분한분 인사를 나눈다.

08시 45분, 작은사리재를 출발한다. 싸리재는 비포장임도로서 4륜구동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다. 임도에서 절개지를 올라 낙엽송이 많은 지역을 통과하여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가끔씩 부딪치는 잡목과 약간의 물기를 먹은 오름길이 발목을 붙잡는다.

09시 05분, 750분 능선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은 1대간 9정맥을 완주하시고 기타 기맥을 긑내신 박성태님의 산행기에 "산경표가 버린 산줄기", 또 전북산사랑산악회에서 "실질적인 금남정맥"이라 표기하며 왕사봉으로해서 702고지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다음은 전북산사랑산악회의 자료를 일부 인용한다.

『전북산사랑회에서는 산경표 체험과 일제가 왜곡시킨 우리나라 지리를 바로잡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낙남정맥, 산경표상의 금남정맥, 그리고 실질적인 금남정맥을 종주하였고, 전북구간의 백두대간 및 명산과 전북에서 발원하는 5대강들을 답사한바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산줄기와 강줄기들이 산경표(山經表, 1769년 신경준 편찬)의 우리전통지리서와 실제 지형도가 신비스럽게도 일치함을 체험하였다.
다만 한가지, 금남정맥만은 산경표상의 산줄기 체계와 실제 지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히 금강의 입해처(入海處)는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가 아닌 군산의 금강하구둑이었다.
산경표에 근거하여 분석해 보면, 모든 정맥 산줄기 체계는 분명히 입해처(바다 입구)에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정맥들은 산줄기가 모두 입해처에 이르고 있으나, 유독 금남정맥만은 부여의 백마강의 조룡대에서 함몰되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산경표의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산경표 상의 금남정맥인 ①[주화산-연석산-주줄산 서봉-피암목재-장군봉-분기점]까지는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금강의 남쪽 울타리가 옳았다. 그러나, ②[분기점-803봉-백암산-이치-대둔산-바랑산-계룡산-금성산-부여 부소산-조룡대] 구간의 산줄기는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 아니고, 모두가 금강유역의 물줄기를 가르는 산줄기였다.

따라서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분수령인 실질적인 금남정맥은 ①[주화산-연석산-주줄산 서봉-피암목재-장군봉-분기점]과 ②[분기점-왕사봉-칠백이고지-시루봉-남당산-작봉산-까치봉-함박봉-천호산-용화산-미륵산-함라산-봉화산-망해산-용천산-대명산-오성산어깨-돌산-요동산(금강하구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실질적인 금남정맥도 논란의 여지는 있었다. 예컨대 금강하구둑 건설로 인하여, 군산시 성산면 대명산 옆 망경산(望景山)어깨부터 요동산(금강하구둑)까지는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산줄기가 아닌 모두가 금강을 나누는 줄기이다. 만약 금강하구둑이 건설되지 않았다면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산줄기는 대명산과 망경산을 지나 발산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왜? 여암 신경준선생은 서해의 입해처가 아닌 충남 부여의 백마강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금남정맥이라고 했을까? 돌아가신 분에게 여쭈어 볼 수도 없고, 궁금증을 풀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전북산사랑회원들과 협의한 끝에 두 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첫째, 백제의 도읍지였던 사비성인 부여, 즉 백제의 역사와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고도(古都)를 따라 마루금을 그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둘째, 부여 부소산 조룡대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대둔산, 계룡산 등 유명산이 많아 산세와 분수령이 뚜렸하게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금강하구둑으로 가는 산줄기는 미륵산을 지나면, 대부분 평야지의 도로(道路)와 농수로(農水路)이고, 함라산 어깨에서 금강하구둑까지는 산세가 미미하여, 당시의 기술력과 여건상 마루금을 잇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본회에서는 2000.2.12-2002.3.1까지 비정기산행(매월 2.4주의 정기산행 제외)으로, 산경표상의 '금남정맥(126km)'과 실질적인 '금남정맥(107.3km)'을 각각 8구간으로 나누어 종주를 완료하였다.
다만, 주화산에서 분기점까지는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의 종주기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라는 뜻으로 '금만정맥(錦萬正脈)'으로 새로이 명명하자는 회원들의 의견도 있었으나, 산경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실질적인 금남정맥(錦南正脈)'으로 부르기로 했다.

실질적인 금남정맥이 시작되는 주화산은 구슬주(珠), 빚날화(華)를 써서 구슬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산이라는 의미이다. 이산은 비록 565m의 낮은 산이나 금남호남정맥을 통하여 충남과 전.남북의 산줄기들을 백두대간에 연결시켜 주는 요충지이다.
특히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을 종주하려면 이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금남호남정맥 종주는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출발하여 이곳에서 끝을 맺게 된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전북산사랑회에서는 전북지역의 60대 명산과 5대강에 이정표를 설치하면서, 제일 먼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과 주화산에 이정표를 설치한바 있다.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은 북쪽으로 126km를 뻗어가면서 전북지역과 충남의경계지역에 산행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연석산과 주줄산(운장산) 서봉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장군봉을 지나면, 싸리재위 분기점에서 동북으로 뻗어가며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의 연봉들을 한바퀴 휘돌아서 나간다.
충남지역에는 백암산, 인대산, 바랑산, 월성봉, 바랑산, 계룡산을 지나게 되며, 정맥이 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 부여의 부소산성과 낙화암옆 조룡대에서 여맥을 다하게 되며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은 또 각종도로와 임도개설, 토.석채취, 통신시설 등으로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대표적인 예로 제1구간의 보룡고개와 피암목재, 제3구간의 역평임도와 이치, 제4구간의 호남고속도로, 제5구간의 황룡재와 1번국도, 제6구간의 널티, 제7구간의 697번지방도로와 진고개, 제8구간의 4번국도 등의 개설로 인하여 정맥이 갈기갈기 찢기고 절개되었다.
특히 제5구간의 1번 국도에서 음사리 음절마을까지의 1.4km구간은 정맥 위에 도로와 주택, 그리고 아파트 등에 의해, 그 모습이 아예 깡그리 뭉개져서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또 정맥을 개간하여 채소나 인삼 등을 경작하고 있는 곳도 많았다. 전북지역보다, 정맥의 고도가 낮은 충남지역이 훼손상태가 더 욱 심각하였다.

실질적인 금남정맥은 완주와 진안군의 경계지역인 주화산(565m)에서 싸리재 위의 정맥 분기점(740m)까지는 21.7km이며, 산경표상의 금남정맥과 동일하였다. 이곳에서 산경표상의 금남정맥과 나뉘어 서북쪽으로 85.6km를 뻗어가며, 암봉과 아름다운 비경으로 어우러진 왕사봉, 6.25사변 당시의 처절한 격전지였던 칠백이고지와 농기구처럼 뾰쬭뾰쬭한 암봉의 써래봉과 산세가 아름다운 선녀봉 어깨를 지나면 천년고찰 화암사를 품에 안은 불명산 시루봉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17번 국도를 지나면, 전북과 충남의 경계지역에 올망졸망한 해발 400m급의 남당산. 작봉산. 까치봉. 옥녀봉. 함박봉을 솟구쳐 놓고, 호남에서 유일한 천호동굴(천연기념물 제177호)를 간직한 천호산에서는 500m로 고도를 올리게 된다. 그러나 741번 지방도로, 호남고속도로, 1번국도를 지나면서 고도가 90m까지 낮아지다가, 용화산에서는 342m, 백제 무왕때 창건되어 수많은 보물을 간직한 미륵사지와 기준성이 있는 미륵산에서는 430.2m로 고도를 높인다.

미륵산을 지나면 산세가 형체를 겨우 알아볼 수 있도록 고도가 낮아져 정맥이 평야지의 농수로(農水路)와 마을의 도로와 들녘을 달리게 된다. 그리고 정맥을 깔고 있는 함라초교, 함라우체국, 마을들을 지나면 서쪽의 함라산 어깨에서 서해와 금강을 바라보며 산줄기가 이어지며, 잡목과 가시덤풀을 헤치게 된다. 해발도 점점 낮아져 망해산(230.3m), 취성산(205m), 용천산(141m)을 지나, 706번 도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고, 오성산(227.7) 어깨, 709번도로, 돌산. 요동산(금강하구둑)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요동산은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실시된 금강하구둑과 도로공사때 토석채취로 인하여 나무 한그루 없는 흉칙한 몰골로 인간들을 원망하며 오늘도 금강변에 쓸쓸히 서 있다. 어쩌면 머지않은 장래에 토석채취 업자에 의해 그 자취를 감추게될 운명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잠깐동안 서로의 의견이 오간다. 그러나 의견은 의견일뿐 그에 대한 해답을 그 누구도 쉽사리 내릴 수 없다.

싸리재를 향해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선다. 내리막의 경사도가 심하다.
안부에 닿으니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오간 흔적으로 안부는 깊게 파여 있다.

09시 50분, 620봉에 오른다. 조망이 좋다. 북쪽으로 왕사봉과 702고지, 그리고 멀리로 대둔산능선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가깝게 중수골산으로부터 운암산, 동성산, 안수산이 조망되고 발 아래로 대아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연석산에서 운장산, 복두봉, 구봉산으로 펼쳐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 명덕봉과 명도봉이 뾰족히 솟아 있다.
정상에서 내려서 안부를 지나면 군데군데 산죽이 자리를 하며 진행하는 산꾼에 훼방을 놓는다.

10시 30분, ×717봉에 도착한다. 정상은 약간의 공터가 있을 뿐 나무로 둘러쌓여 조망은 막힌 상태이고 "C코스"라 쓴 팻말이 땅바닥에 나딩굴고 한켠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동남쪽을 향해 내려선다.
밋밋한 능선을 지나 △724.5봉에 도착하니 삼각점(진안 403, 84년재설)과
헬기장이 있다. 바로 남쪽으로는 진행해야 할 장군봉의 암릉들이 자리하고 그 위로 운장산이 조망된다.

724.5봉을 내려서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무명봉을 넘어서면 암릉이 나타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든다.
급경사로 뚝 떨어졌다가 안부를 지나 올라가면 로프가 설치된 약 7~8미터 정도의 암벽지대가 이어지고 암봉을 올라섰다 경사길의 바위구간을 조심스럽게 내려섰다가 안부를 지나 다시 올라서면 조금전보다도 더 경사진 암벽지대로 로프에 의지해 힘겹게 올라서면 장군봉으로 오른쪽으로 약간 진행하면 "장군봉"이라 쓴 팻말이 나무에 걸려 있다.

이곳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끊여 김홍주선생님께서 특별히 싸 오신 찰밥에 식사를 하면서 반주가 한두잔씩 오간다.
긴 식사시간을 마치고 다시 출발하며 정상에 표지기를 하나 다는데 방금 올라온 타 산악회 한분이 "그 분을 아느냐"며 표지기의 주인에 대해 묻는다.
"제가 강산엔데요" 하자 반갑다며 덥석 악수를 청한다.
조룡대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잠시동안 함께 얘기를 나누다 다시 출발.
남동쪽으로 급경사를 내려서면 희미한 십자로 안부를 지나치며 산죽군락을 통과하자 갈참나무 숲길이 이어진 오름길이 계속된다.

13시 35분,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린 성터에 오른다. 국립지리원 2만5천분의 1의 지도에는 성터의 표기는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랫부분에는 성터를 쌓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함께 산행을 한 전북도청의 전종신님의 말에 의하면 "본인도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보았으나 이곳의 성터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약간 진행하니 헬기장이 있는 성봉(×787m)에 도착한다. 좀 더 내려서자 석문이 이어지고 정맥길은 건너편으로 보이는 675.5봉을 오른쪽으로 비켜 남서쪽으로 내려서 희미한 안부를 지나 밋밋한 봉우리를 넘어서면 길 흔적이 뚜렷한 십자로 안부를 만난다.
이곳에서 오른쪽길은 신월리로 내려서고 왼쪽길은 외사처동으로 내려가는 지름길로 김홍주선생님은 실버산행으로 장군봉을 연계하여 다음기회에 꼭 하시겠단다.
안부를 지나 잠시 올라서니 하늘처럼 올려다 보이는 675.5봉이 우뚝 앞을 가로 막으며 된비알 오름길이 시작된다.
한발한발 오르면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14시 27분, 프로펠라 모양의 헬기장이 있는 △675.5봉에 올라서니 한켠에 삼각점((1984재설, 진안410)이 있고 이곳에서 잠시 안기자님이 소개하는 GPS강의를 듣는다.
이제 앞으로 보이는 620봉을 하나 올라섰다 내려서면 오늘의 산행은 마감된다. 675.5봉을 급하게 내려서 안부를 지나며 중키의 솔밭지대를 올라서니 620봉이 된다.
봉우리에서 2,3분여 내려서면 큰 절개지가 가로막혀 있는 피암목재로 등로는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14시 45분, 피암목재에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과 콘테이너 매점이 있고 먼저 내려오신 전주일행분들이 막걸리를 놓고 하루의 산행을 마감짓고 있다.
거나하게 한잔을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잠시후 전주 전북산사랑산악회 김정길님이 오신다. 반갑게 악수를 한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면서 금남정맥 종주시 우연히 수분령에서 만난적이 있는데 또 다시 이곳에서 뵈니 너무 반갑다. 물론 감홍주님께서 약속을 하셔서 오시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만남이란 참으로 즐겁고 반가운일이다.

한시간여 이야기는 계속되고 장군봉에서 만났던 서울 유피산악회 일행 다섯분이 나를 찾는다. 또 다시 산꾼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이제 아쉬운 작별의 시간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서로의 갈 길을 향해 걸음을 뗀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하루를 접는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