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종주 7구간
(산줄기 143일째)

일 자 : 2002년 11월 6일
구 간 : 밤티재 ∼ 구녀산 ∼ 상당산 ∼ 산성고개
날 씨 : 맑음

참석자
김종국, 나종학, 장성인, 류민형, 조삼국, 박덕주, 김태웅, 구용회, 허문선, 한용수, 김수남, 최경섭, 우종수, 이영주, 김호택, 김재정, 최향숙, 선종한(18명)

도상거리 : 14.7km
밤티재 - 2.4 - 분젓치 - 1.8 - 구녀산 - 1.0 - 이티고개 - 1.0 - 486.6봉 - 6.3 - 상당산 - 2.2 - 산성고개

종주일정
10:10/밤티재 -- 10:29/510봉 -- 10:48/491봉 -- 11:06/분젓치 -- 11:40/구녀산 -- 11:45(12:05)/중식 -- 12:18/이티재 -- 12:40/486.8봉 -- 13:00/임도 -- 13:24/인경산 갈림길 -- 14:00/470봉 능선분기점 -- 14:42/등산로 안내판 -- 15:04/상당산 -- 15:40/암문 -- 15:50/산성고개

산행시간 : 5시간 40분(휴식시간 포함)

후 기
입동을 하루 앞두고 대학 수능시험을 보는 날, 한차례 몰려왔던 매서운 추위가 슬며시 물러간다. 따뜻한 커피 한 장에 마음 한결 가벼워지는 아침, 잠시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시간이란 처음부터 낯설고 새로운 것이어서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는 것,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이 물밀 듯이 몰려온다.

10시 10분 굽이굽이 돌고 돌아 올라선 고도 370m의 밤티재 고갯마루, 남서방향으로 시작되는 정맥의 숲은 어느새 겨울의 길목에 서서 정맥꾼들을 맞아준다. 수북히 쌓인 낙엽, 옛 묘지 터에 올라섰다가 잠시 내려서는 듯하더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 좋은 오름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10시 29분 산악행군로를 따라 코가 닿을 듯한 오름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경사가 누그러지면서 510봉에 올라선다. 아침까지만 해도 먹구름에 덮였던 하늘이 눈부시도록 파랗다. 연이어 올라선 날등의 봉을 넘으면서 만나는 하얀 눈밭의 북 사면, 정맥길엔 진달래나무가 옷깃을 붙잡는다.

10시 37분 세 번째 봉인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오른쪽(서북)으로 완만한 내림길로 이어지면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난다. 탁 트인 능선에서 보는 좌구산과 이어온 정맥능선, 안부에서 오름길은 싸리나무와 억새풀이 어우러진 완만한 참나무 숲길, 6분 뒤 다시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왼쪽(북서)으로 유난히 단풍나무가 눈에 많이 띄는 미끄러운 낙엽길로 내려선다.

10시 48분 커다란 참호를 통과하며 올라선 491봉에 서니 좌측으로 용소골이 내려다보이고, 평탄하던 능선길이 2분 뒤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팍 꺾으며 한차례 뚝 떨어지다 봉에 오른다. 다시 산악행군로 안내판이 있는 능선분기점에서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팍 꺾이는 정맥길은 연이어 왼쪽길이 선택되면서 소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11시 06분 증평저수지의 수면이 아침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틈이 갈라져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절개지 상단을 타고 내려선 분젓치는 청원군 미원면 종암리의 용소골, 소란, 무주리마을에서 우측의 증평읍 율리를 넘나들던 고개로 공사가 중단된 채 잠시 불어대는 바람의 통로가 되어 있다. 무주리는 마을 뒷산형이 선인이 춤을 추는 형상이라나, 그리고 용소가 있는 마을, 급경사의 높은 절개지를 뒤돌아보며 올라서는 완만한 오름길이 경사길이 되더니 푸른 소나무 숲에 둘려 쌓인 묘지가 주인인 봉에 올랐다가 왼쪽으로 내려선다.

11시 15분 넓은 하산길이 보이는 안부에는 산악행군로 안내판을 볼 수가 있고 3분만에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남) 방향이 된다. 소나무숲이 누렇게 말라버려 음침한데, 또 한차례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직선길을 버리는 정맥길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중키의 소나무터널 숲이 겨울의 문턱에서 짙은 초록의 물결을 펼쳐 보여 한결 싱그러워 보인다.

11시 31분 장송 숲의 넓은 등산로 삼거리를 통과하는 정맥꾼들 앞에는 운동기구들이 갖추어진 쉼터가 나타나고, 연이어 님과 함께라면 가을을 보내기가 정말 아쉬울 것 같은 호젓한 산책로가 되어버린 정맥길, 우측으로 가을걷이가 끝난 청원군의 들녘이 숲 사이로 내려다보인다.

11시 40분 교통호가 나타난다. 그리고 잠시 작은 돌탑을 보며 올라선 곳이 검은 표지석이 서있는 높이 484m의 구녀산 정상이다. 지난밤 누군가의 제물이 된 돼지머리가 볼썽사납다. 구녀산은 충북 청원군에 위치한 구녀성으로 알려진 산으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또는 삼년산성)과 대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구녀산은 원래 구라산이라고 불렀으며 전망이 좋아 서북쪽 미호평야와 청주의 상당산성이 건너다 보인다. 산의 내부는 성터로써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가나 빠질 수 없는 묘지, 이곳 축성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한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하나와 딸 아홉에게 각각 한양을 다녀오고 성을 쌓도록 하여 늦은 사람이 죽도록 하는 내기를 하였다. 그런데 딸이 성을 먼저 쌓자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딸에게 고깃국을 먹여 늦도록 하여 아들을 살렸다나..."

12시 05분 조금 내려선 곳엔 정자와 구녀성의 유래가 쓰여진 안내판, 오늘 정맥꾼들의 식탁이 되어준 정자를 뒤로 정맥길은 산성을 따르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눈이 녹아 미끄럽다. 넓게 나있는 경사길의 내리막길은 뻔뻔하게 이어나간다. 경사길이 평탄해지는 솔밭길이 되더니 구녀산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통과하면서 좌측으로 작은 연못이 있는 민가? 작은 언덕을 넘는다.

12시 18분 이티재에 내려선다. 미현면과 내수면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갯마루에는 주유소와 등산로가든이 자리잡고 있고,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절개지를 오른다. 등산로 안내판을 만나면서 잣나무 단지를 끼고 넓은 등산로를 따른다. 8분 뒤 넓은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진달래군락을 헤치며 오른다. 참나무 숲의 억새가 보기 좋은 정맥길, 중키에 터널 숲이 되면서 한차례 가팔라진다.

12시 30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잠시 가파르게 2분 정도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남동)으로 평탄한 낙엽과 솔잎이 어우러진 제법 선명한 등산로로 변하면서 오르내림이 이어지고, 참호와 교통호를 만날 수가 있다. 그리고 몇 군데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

12시 40분 삼각점이 있는 486.8봉에 오른다. 조금 벗어난 전망이 트이는 공터에서 내려다보는 청원군의 들녘과 푸른 저수지가 있는 농촌마을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이어지는 평탄한 작은 오르내림 길의 교통호와 작은 군 시설물, 규모는 작지만 보기 좋은 바위지대를 지나며 한차례 뚝 떨어진다. 낙엽이 수북하여 자칫하면 몇 평의 땅을 장만할 수 있는 곳, 그렇지만 누그러지는 정맥길에는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가 운치가 있다.

12시 52분 등산로 산불조심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르고 잡목으로 가득한 봉을 오르기 직전 정맥길은 등산로 안내판이 가리키는 왼쪽(남동)으로 내리막길이 뻔뻔하게 나있다. 흙무더기 2기, 가깝게 좌측 아래로 전답이 보인다. 그리고 내려선 곳에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앞을 막는데 아래쪽이 몽땅 속이 거의 비어 있다. 여기도 제상의 흔적이 보인다.

13시 '99 임도 표지석이 서있는 임도를 가로지른다. 낙엽송군락을 통과하며 코가 닿을 듯한 긴 오름막, 10분 정도 올라선 430봉, 정맥길은 평탄하게 이어지면서 시야에 가로막는 산, 가파르게 내려서는 정맥길, 안부에서 오름길은 홈통길이 되더니 등산로 안내판을 만나고 역시 완만한 정맥길엔 우측으로 수직의 가까운 사면 아래로 넓은 들녘이 보기 좋다. 길고 긴 오름길,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 속에는 겨울의 복병이 숨어 더욱 미끄럽다.

13시 24분 인경산 갈림길이다. 정맥은 오름길을 버리고 오른쪽(서북)이다. 잠시 다리 쉼을 하고 내려서는 안부에는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소똥냄새?. 정맥은 완만한 오름길이 되더니 갈림길에서 3분 거리의 능서분기점에서 왼쪽을 선택한다. 평탄한 정맥길, 낙엽은 수북하고, 좌측 아래로 조금 전 냄새의 근원지인 축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13시 35분 정맥길은 우회길을 버리고 잡목을 헤치며 올라선 능선마루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조금 전에 헤어졌던 우회길과 합치더니 우측으로 선명한 갈림길을 만나면서 잠시 확인하기 위해 몇 분간의 시간을 허비한다. 이건 알바가 아닙니다. 그리고 만나는 등산로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정맥은 이어간다.

13시 51분 정맥에서 오랜만의 만나는 젊은 두 쌍의 남과 여, 영화 '남과 여'가 아닙니다. 아래쪽으로 '숲속의 둥지' 라는 좋은 곳이 있는지, 즐거운 시간 되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숲 사이로 사라진다. 평탄하던 정맥길이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긴 오르막...

14시 고도 470m를 가리키는 봉에 오른다. 노송 한 그루가 지키고 있는 공터에는 보리둥나무다 지천을 이루고 있다. 잠시 다리 쉼을 하며 허기를 메꾸는 정맥꾼들, 여기서 오른쪽(서북)으로 낙엽과 솔잎이 가득한 넓고 평탄한 정맥길이 내리막길로 바뀌면서 여름철 같으면 생각지도 못하는 전경들이 숲 사이로 정겹게 다가온다.

작은 오르내림 뒤에 자작나무 두 그루가 눈길을 끄는 정맥길은, 좌측으로 갈림길을 확인하며 올라서다가 잠시 우회길을 버리고 올라선 좁은 공터가 있는 봉에는 예전엔 무언가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생은 빚을 벗으면서 산다고 했다. 자기가 진 빚을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사회에 공헌하며 갚아 가는 것...

14시 23분 다시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서는 봉에는 한기가 느낄 정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더니 내려서는 길엔 마을길이 내려다보이는 계곡에서 불어오는 골바람, 참호가 있는 봉이다. 정맥은 여기서 왼쪽으로 팍 꺾이면서 참나무와 소나무 숲의 내리막길에는 억새가 바람에 날리는 벌목지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만나는 옛 성황당 터였던 곳으로 생각이드는 십자로 안부를 가로지른다. 여전히 정맥 바람은 시원한 오름길을 만들어주고, 추수를 끝낸 들녘과 마을길이 한가로와 보인다. 건너편 능선에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는 묘지들, 머지않아 하얀 이불을 덮어쓰겠지...

14시 34분 십자로 안부를 지나 오름길이 완만하게 이어지면서 어디에 군 사격장이 있는지 총소리가 유난을 떤다. 오름과 내림 길, 참호가 있는 십자로안부에서 만나는 등산로 안내판, 역시 안내판만 잘 따르면 과외비는 필요 없다. 인생은 남의 것을 얻어 오면서 간다. 며느리도, 지식도 기술도, 물질도, 그리고 인생은 남에게 나누어주면서 간다. 딸 키워서 시집보내고, 지식, 지혜, 기술을 배워서 나우어 주고 사회에 보답하며 사는 것...

14시 42분 청원군에서 세운 등산로 안내판(이티재: 8km, 산행시간:5시간)을 만난다. 넓은 등산로, 정맥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3분 뒤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이다. 키다리 참나무 숲의 오름길, 언덕을 넘어서면서 규모는 적지만 보기 좋은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좁은 날 등의 평탄한 정맥길, 한차례 오름길 뒤에 마치 옛 토성 같은 정맥의 날 등에는 커다란 웅덩이들이 나타난다. 삼국시대 때 군사들의 진지였을 것 같은 생각을 하며 간다.

15시 04분 전위봉에서 잠시 내려섰다 올라서면서 앞을 가로막는 산성, 산성을 올라서며 만나는 사람들, 밧줄이 매달려있는 가파른 작은 오름 뒤에 올라선 높이 491.5m의 정상에는 조그만 표지기만 정상임을 말해줄 뿐 그저 평범한 봉에 지나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그리고 정맥길이 되어버린 산성길, 조금 위로 능선길이 선명하게 나있지만 산성길을 밟아보는 것도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상당산성은 높이 6∼13m, 둘레 4.4km, 면적 54,700평에 이르는 매우 거대한 포곡식 화강암 석축산성으로 사적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상당'은 백제시대에 청주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상당산성도 백제의 상당현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삼국사기 열기열전'에 적힌 김유신 셋째 아들 원정공이 쌓았다는 서원술성(西原述城)이 바로 이곳이라는 학설 등 두 가지 있다.

최초의 축성년대는 정확히 알기는 힘드나, 김유신의 세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 고금사적기'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이,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 고적조에는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뒤)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 7,773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이었던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까지 3년간, 청주병사 유성추의 감독 하에 대대적으로 성벽을 개축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듬해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 후에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산성 내의 여러 시설 등이 완성되었고,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 서문(미호문), 남문(공남문) 등 3개 문과 동암문, 남암문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뤄진 정비공사로 동, 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예전에는 성안에 다섯 개 연못과 여러 개의 샘이 있었고, 사찰도 세 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다섯 개의 연못이 모두 합쳐져 큰 저수지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곳은 산간 벽촌으로 남아 있었던 마을을 지난 1982년과 1983년에 청주시가 산성을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마을 전체를 한국 재래 한옥기와집으로 개량하여, 보기 드문 전통 한옥마을로 바꾸어 보존하고 있다.

15시 20분 산성길은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만나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에 오르는 많은 시민들, 서문인 미호문을 통과한다. 다시 산불감시초소, 항상 잡목과 가시넝쿨로 이어온 정맥꾼들이 오늘은 호강하는 날 같다. 세상에 이런 정맥길도 있다니...

15시 40분 산성길은 암문을 만나면서 암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잠시 내려섰다가 올라서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통신중계탑, 완만한 정맥길은 억새풀과 키 작은 잡목 숲으로 이어간다. 통신중계탑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서는 길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보기 좋고, 한차례 올라선 곳엔 철조망으로 둘러 쌓인 시설물, 그리고 절개지, 이어 내려선 곳이 산성고개다.

15시 50분 해발 343m의 산성고개는 급커브와 급경사가 계속 되고 있어 스릴과 운치가 그만인 드라이브 코스중의 코스라나, 특히 모래함이 많을 것으로 보아 겨울철에 초보 운전자들은 조심해야지, 산성 인근의 명암약수는 초정약수와 부강약수 등과 함께 충북의 3대 명천(名泉)으로 꼽혀오는 곳이라나,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종주 사진첩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