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8차 구간종주 산행기


1. 산행일정 : 2002. 11. 16-17
2. 산행구간 : 추풍령-신의터재
3. 산행동지 : 오영동, 정영찬, 김용순, 노선임
4. 산행여정
2002. 11. 16
05:00 부산 출발-07:40 추풍령 도착

2002. 11. 16 (제10소구간 : 추풍령-큰재)
07:50 추풍령 출발(산행시작) - 08:12 금산 - 08:47 502봉 - 09:32 435봉
- 09:50 사기점고개(10:04 출발) - 10:45 납골당 - 11:05 작점고개 -
11:51 갈현 - 12:04 기도터바위 - 12:47 687봉 - 12:58 용문산(13:51 출발
) - 14:43 국수봉(14:58 출발) - 15:25 전망대 - 15:57 큰재 도착

2002. 11. 17 (제11소구간 : 큰재-신의터재)
07:45 큰재 출발(산행시작) - 07:45 이영도목장 - 08:28 회룡재 - 09:03
개터재 - 09:35 505봉 - 10:23 윗왕실(10:33 출발) - 11:29 백학산 -
11:47 임도 - 12:35-12:55 중식 - 13:13 개머리재 - 14:10 지기재 -
15:39 신의터재 도착

5. 산행기

※ 2002.11.16(제10소구간 : 추풍령-큰재) 날씨 : 맑음
추풍령 고개비(88년 9월 5일 영동군에서 설치) 앞에 차를 세우고, 기념촬영
을 하고는 가수 남상규씨의 노래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대간 길은 고개비 맞은편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도로 공사로 파헤쳐진 곳 좌측 포도밭 둑의 잡목을 통과하면
서 부터 시작된다.

경사진 능선을 오르고, 넓고 비스듬한 바위를 지나면 좌측으로 분쇄기 소리
가 들려온다. 수백 길 낭떠러지를 이룬 채석장이 내려보이는 곳위로 올라서
면 금산(384m) 이다. 분쇄기 소리는 귀청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돌가루가
날려 숨쉬기조차도 불가능해 도저히 머무를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린 그곳
정상이 잘려져 나가고, 대간 길조차도 옆으로 비켜서 나 있는 곳이며, 정말
무참히 훼손된 그곳이다. 얼마 전 우연히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대야산 채석장(아산광업) 설치저지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반
드시 채석장 설치는 저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금산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502봉 까지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다. 좌측으로
는 추풍령 저수지가 바라보이고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 양탄
자를 깔아 놓은 듯 솔 갈비가 떨어져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계속 능선을 타
다 435봉에서 좌측으로 꺾이면 몇 해 전 산불에 그을린 키 큰 참나무가 낙
엽을 떨구고 있다. 다행히 나무가 산불에 타버리지는 않았다. 오른쪽 멀리
목장이 보이는가 싶더니 임도가 뚫린 사기점고개에 닿는다. 감과 사과 한 개
를 깎아 나눠 먹고는 묘함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임도를 따라 10여분 정도 가다, 오른쪽 능선에 붙어 억새가 얼굴을 할키
는 가파른 길에 올라서면 묘함산 통신 중계소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보이지 않고, 아래쪽 포장도로 옆에
드문드문 리본이 매달려 있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 오는데 군데군데
제15호 태풍『루사』의 영향으로 잘려 나갔다. 한참을 내려서니 거름 냄새가
솔솔 풍긴다. 신애원 농장의 퇴비 냄새이나 별로 역겹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멘트 포장길 끝부분 왼쪽에는 묘지 2기와 석물로 치장된 가족 납골당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조그만 밭 사이로 들어선다.
여러 기의 묘지를 지나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벗어나면 작점 고개에 닿는다.
이곳 작점 고개에는 용문산 쪽 잘린 산허리 아래로 폐아스팔트와 폐시멘트 골조들이 대간 길을 막고 널브러진 곳을 조심해서 통과해야 한다. 아마도 지
난 태풍의 부산물 이라고 느껴지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 까지 방치되고 있
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얕은 능선 길에 올라서니 곰솔향이 콧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작점고개에
서의 상한 마음이 금방 갈아 안는다. 30여분 후 473봉에 닿는다. 간식을 꺼
내 한점 하고, 달리듯 내려서면 갈현에 도착된다. 추풍령면의 죽전리와 김천
시의 능치리를 잇는 짤록한 고개로 되어있다. 이곳에서 15분쯤에 도착되는
바위 위에 움막을 지어 기도를 올리는 기도터 바위가 있는데 대간 길 옆의
움막이 눈에 거슬린다. 이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펼칠까 했는데 영 내키지 않
아 발길을 움직인다.

오른쪽의 능치리는 수십 가구로 이루어진 농촌 부락으로 붉고 푸른 스레트
지붕들이 유난 스럽게 눈에 띈다. 조금 뒤 충북과 경북을 잇는 농로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휘감아 돌때는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이어 687봉에서 오른쪽으로 완경사의 내리막과 급경사 구간을 10여분 오르
면 용문산 정상 바로 못미처 헬기장이 나타난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로 멀리 황악산과 북으로는 국수봉까지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어 너무나 시원스럽다. 그러나 용문산(710m) 정상에는 정상석
이 없는 게 못내 아쉽다. 기도터 바위에서 미룬 게 정말 다행으로, 식사 한
끼 장소로써는 더말 할 나위없는 곳이다. 오늘 처음 우리들 산행에 동참하신
노선임씨가 갖고 오신 자연산 오미자술을 반주삼아 오랜만에 한 시간 가까
이 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따뜻한 햇살이 식곤증을 불러오는지 나른해진
다.

용문산을 내려서서 안부에 닿으면 오른쪽으로 잘 나 있는 길이 보이는데,
이곳이 용문산 기도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용문산 기도원은 1950년에 세워
진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하나의 부락으로 착각할 정도로 여러 채의 집들
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안부에서 10여분 가파른 돌길을 오르면 왼쪽에 전망
대 하나가 나타나는데 누군가가 시멘트로 계단까지 만들어 놓을 만큼 여유
를 부린 흔적이 보인다.

오늘 산행에서 제일 높은 掬水峰(763m)에 도착한다.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1999년 3월 7일에 세운 정상석이 외롭게 서있다. 국수봉 조금 비켜나면 상
주의 너른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수년간 모 방송에서 방영한 태조 왕건
에서 상주 고을의 주인 이었던 아자개 노인이 아들 견훤을 속 타게 만들 수
있었던 저력도 저 넓디넓은 벌판에서 비롯된 게 아닐는지?

국수봉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면, 왼편에 과수원이 보이고, 아
카시아 잡목으로 이루어진 완만한 능선을 지나면 민가와 폐교가 보인다.
이곳이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큰재다. 이곳은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라
고 표기된 팻말이 폐교 앞쪽에 서있다.

큰 재에 위치한 폐교를 둘러보니 아래와 같이 교적비가 세워져 있다.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장 1949년 11월 9일 개교하여 졸업생 597명을 배출
하고 1997년 3월 1일 폐교되었음. 1997년 3월 1일 경상북도 교육감“이라고
적혀 있으니 내가 태어나기 3년 전 세워진 오랜 전통의 학교 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6. 돌아오는 길
2002. 11. 16
- 16:00 큰재 출발-16:20 추풍령 도착(택시비₩30,000)

※ 2002.11.17(제11소구간 : 큰재-신의터재) 날씨 : 맑은뒤 비
06:50 추풍령 출발-07:08 큰재 도착(승용차)

아침에 정영찬씨가 새로 구입한 휘발유 버너를 켜서 라면을 끓여 밥을 말
아 먹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하였지만 허사로 끝나 오늘 산행에 차질을
빚을까봐 내심 초초하다. 근처 새벽에 문을 여는 식당을 찾아보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다는 판단에 무작정 배낭을 꾸려 나섰다. 마침 식당 에서 아침
일찍 부근 공사장의 식사를 제공 한다는 우리식당이 있어, 보온 도시락에 밥
을 담고 시원한 만두국에 배를 든든히 채울수 있었다.

큰재에 승용차로 이동하여 폐 교가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 옛 관사 옆을
지나면서 부터 산길이 열린다. 옛 관사 안쪽 부엌에는 몇 개 남은 연탄이 부
스러져 가루가 다되어 버린 것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능선에 들어서면
완경사 능선길로, 이른 아침의 곰솔 향과 붉은 솔 갈비가 떨어진 산길 저편
동쪽 하늘에는 붉은 햇살이 눈이 부시게 솟아오른다.

30여분 산행후 목장 진입로인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백두대간의 주능선
은 포장도로를 버리고 543봉으로 올랐다, 내려서야 하나 산길도 또렷하지 않
아 이영도목장 길을 따라 80m 정도 지나면, 오른쪽에 리본이 여럿 매달린
나무 사이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아카시아 나무 및 잡목이 어우러져 배낭을
잡아채기도 한다. 산행길 오른편 마을에서 들려오는 확성기를 통하여 “동민
여러분 이달은 ₩세 납부를 .... “ 독려하는 마을 이장의 목소리인 듯 하다.

완만한 능선 길을 지나니 농로인 회룡재가 나오고, 잡목 숲과 폐뽕밭을 지
나면 우회로가 나온다. 이곳의 우회로는 산허리를 감아 도는 곳으로 너덜겅
에 칡넝쿨이 우거져 있다. 조그마한 능선을 내려가면 개터재다. 이곳 개터재
는 부근 개터골에 왕실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하여 넘나들던 고개라
고 한다. 개터재의 동쪽으로는 계곡이 깊으나, 왼편 모동면 효곡리쪽은 논밭
이 제법 보이는 서고동저 형태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개터재에서 앞으로 이어진 능선으로 올라 30여분 후면 505봉에 도달한다.
505봉에서 왼쪽으로 돌아 463봉을 지나면 내려서면 윗왕실 임도에 닿는다.
이곳에서 대구에 서온 산행 객을 만났다. 시끌벅적 하다. 반가움 보다는 시
끄러움이 싫어 그곳을 피해 임도 건너편 양지바른 묘지 옆에 잠시 배낭을
내려 놓고서 간식을 꺼내 허기를 면한다.
윗왕실에서 아카시아 잡목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길을 올라 능선에 닿으면
키큰 진달래 나무며, 소나무가 반겨준다. 477봉을 돌아 약간의 내리막과 가
파른 솔숲을 지나니 가랑잎이 바람에 나뒹군다. 하늘이 또 무슨 조화를 부리
려나보다. 이곳 능선은 육산으로 3개의 봉우리가 엇비슷하게 솟아 있으나,
마지막 봉우리에 백학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백학산(615m)은 오늘 산행구간중 최고의 높이다. 이곳 정상석은 98.5.10일
국수봉과 마찬가지로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세워 놓았다. 진눈개비가 날린다.
이틀 연속 산 행중 모두 맑은 날이 한번도 없다는 게 정말 무심하게 느껴진
다. 비가 많은 계절도 아닌데!
백학산에서 주능에서 살짝 벗어나 오른쪽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백두대간
이 잘려나간 임도에 닿는다. 인간이 자연을 무참하게 훼손 시켜놓은게 정말
안타깝기 만하다. 임도를 벗어나 짤린 능선으로 다시 오른다. 마을 뒷산을
산행하듯 걷기 좋은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별로 무리가 없다. 50여분 완만
한 능선을 지나 농로에 도착 했을 때는 잔득 찌푸렸던 하늘에 가랑비가 내
리기 시작한다. 더 많은 비가 솓아 지기전에 식당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꺼낸
다. 따뜻한 밥을 지어주신 추풍령 우리식당 주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빗길 산행에 이력이 생긴 터라 문제가 될게 없다. 우의를 걸치고 키큰 솔숲
과 칡넝쿨 우거진 길을 지나니, 넓은 배나무 과수원으로 이루어진 개머리재
다. 이 재는 지형이 개의 머리형태를 닮았다고 하여 개머리재라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한다. 이곳 과수원 한 복판에 농가주택이 평화롭다. 이화가 만발한
봄철에는 한 폭의 동양화가 아닐까? 지난여름 태풍에 피해가 없는 듯 싶어
다행이다.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 진다. 농가 주택을 좌로 하고 산길로 접어
던다. 개머리재를 출발한지 40여분, 가파른 내리막길에는 키가 큰 소나무로
잡을 곳도 마땅치 않고, 땅이 젖어 미끄러워 꾀 힘이 드는 곳이 나타난다.
꼭 계곡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곳이다. 또 다시 빗줄기가 굵어져
조금전 벗었던 우의를 다시 꺼내 입는다.

멀리 빗속에 마을이 보이고, 차량의 소음도 들려온다. 미끄러운 농로 옆에
밭에는 인삼을 재배하는 곳인 듯 햇빛을 차단하려고 검은 천으로 덮어 놓았
다. 농로를 따라 내려서 2차로 포장 도로인 지기재에 도착했다. 이곳 지기재
에서 대간길이 어느 곳인지 잠시 길을 잃었다. 진행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포
장도로를 따라 약200m 지나면,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 팻말이 보이는 지점이 나온다. 이곳의 왼쪽에 잘 가꿔진 묘지 뒤쪽으로 아직 수확 않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과수원이 있다. 까치밥은 아닐 듯 싶어 한 알 입에 넣고 싶
은 충동을 억누르고 마을길로 들어선다.

마을 입구에서 오른편 대나무숲 사이로 나있는 능선 길로 접어든다. 신발에
진흙이 한 짐올라 붙는다. 무겁기도 하고, 젖었다. 아직도 갈 길은 먼데....
능선으로 올라가면 금은골 뒷산에 이르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
어 내려가면, 너럭 바위에 붙어있는 푸른 이끼가 경이롭다. 아무 곳에서 쉽
게 볼수 있는 이끼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내려오면 안숙밭골 논이 펼쳐진다. 추수를 끝낸 논에는 벼 그루터
기만 덩그렇게 남아있고, 첫 서리에 말라버린 호박 넝쿨이 바람에 날린다.
여기서 논둑길을 통과한 다음 완만한 능선 길을 돌고 또 도니 신의터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도 분수령 팻말이 보인다. 오늘 이 팻말을 큰재, 지기재,
이곳 신의터재(280m)까지 세 번씩이나 만날 수 있었다.

비가 세차다. 어디서 비를 좀 피하려고 화동면 방향의 포도밭 농막 안에서
웃비를 피한다. 이 보다 상거지가 어디 있을까?

6. 돌아오는 길
2002. 11. 17
- 16:05 신의터재 출발-16:25 큰재 도착(택시비₩30,000)
- 16:30 큰재 출발-22:10 부산 도착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