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차 구간종주 산행기


1. 산행일정 : 2002. 12. 14-15
2. 산행구간 : 신의터재-늘재
3. 산행동지 : 오영동, 정영찬, 김용순
4. 산행여정
2002. 12. 14
04:35 부산 출발-07:19 신의터재 도착

2002. 12. 14 (제12소구간 : 신의터재-갈령)
07:25 신의터재 출발(산행시작) - 08:43 무지개산옆구리 - 09:50 437봉 -
10:07 윤지미산(10:17 출발) - 11:03 화령재(11:17 출발) - 12:20 산불감시
초소 - 13:08 봉황산(13:43 출발) - 15:03 비재(15:15 출발) - 15:33 510
봉 - 16:30 못재 - 17:15 갈령삼거리 - 17:46 갈령 도착

2002. 12. 15 (제13소구간 : 갈령-늘재)
07:00 갈령 출발(산행시작) - 07:48 갈령삼거리(08:00 출발) - 08:21 형제
봉(08:27 출발) - 08:40 803봉 - 09:03 피앗재(09:12 출발) - 09:41 667봉
10:08 725봉 - 10:30 703봉(10:40 출발) - 10:55 전망바위 - 12:03 천황봉
(12:13 출발) - 12:33 천황석문 - 12:59 입석대 - 13:17 신선대(13:45 출
발) - 14:08 문장대(14:20 출발) - 14:32 첫개구멍 - 15:58 입석바위 -
16:37 밤티재(16:45 출발) - 17:15 696봉(17:20 출발) - 18:15 늘재 도착

5. 산행기

※ 2002.12.14(제12소구간 : 신의터재-갈령) 날씨 : 맑음
오늘 중부내륙 고속도로의 상주IC에서 빠져나와 이곳 신의터재 까지 찾아오
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이른 새벽에 생소한 길로 이동 한다는 게 쉽지 않으
니까. 신의터재에 도착하니 서리가 내려 도로가 뽀얗다. 농로를 따라 3분여
오르나 길이 보이지 않아 되돌아와 다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대간길은
농로를 따라 10m가량 진행하다 오른쪽 능선으로 열려 있었다. 능선 길에 접
어든지 10여분 후 붉은 태양이 오른쪽 저편 산에서 이글거리며 솟아오른다.
새날이 밝아 온다. 군데군데 지난 태풍에 낙엽송이 쓰러져 있다. 낙엽송은 키가 큰 반면에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하는 수종으로 지난여름 산사태의 주
역 노릇을 하였다는게 흠 이라고들 하였다. 산행 시작후 40여분 뒤 첫 번째
농로에 이어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곰터골로 밭이 보이면서 두 번째 농로가
나타난다. 이곳 대간길은 왜 이리도 묘지가 많은지? 아마도 주변 마을에서
내노라는 지관들이 명당자리임을 지칭하였음이리라. 높낮이가 거의 없는 마
을 뒷산 같은 눈길에 산토끼등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산 행로를 따라 나있다.

무지개산 정상 못 미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무지개산 옆구리를 돌
아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밤원 휴게소 뒤편인 437.⁷m봉을 지나 제법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른다. 능선 길의 음지쪽에는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게 여간 힘
들지 않다. 왼편 저쪽 에는 판곡 저수지가 눈 속에 덮여 있고, 오른편으로는
중부내륙 고속도로 건설 현장이 눈에 펼쳐진다.

윤지미산(538m) 정상에는 돌에다 정상석이 아닌 “백두대간 2002. 5. 31
김진상“ 이라고 써놓은게 눈에 뜨인다. 잠시 휴식한 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과 과수원이 나타나고, 농로와 솔 숲길을 지나 오른쪽
능선으로 붙으면 화령재(해발 320m)에 닿는다.

이곳 火嶺재는 조선시대 때 화남면 소재지가 화령 현이었는데, 이 화령현을
넘나들던 고개로, 1990. 6월 상주군에서 팔각정의 정자를 세워 놓았는데 정
자명을 火嶺亭으로 하였다고 한다. 정자 위에 앉아서 간식과 간단히 목을
축인 뒤 기념 촬영까지 끝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고갯마루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5분정도 내려가면, 문장대를 가리키는 49번
지방도로를 지나 외딴 가옥 한 채 옆에 상주시에서 제작하여 세워놓은 백두
대간 등산로 입간판을 뒤로 하고, 잡목이 우거진 완만한 능선에 올라서면서
부터 고행의 길은 시작된다. 키 큰 소나무 숲과 곰솔 향을 맡으면서, 산짐승
발자국과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의 발자국을 뒤 따라 오르니 강아지 두 마
리가 꼬리를 흔들면서 우리를 반긴다. 산불을 감시하는 이곳 부락의 노인이
망루 안에서 얼굴을 내민다. “수고 많으십니다” 라고 인사를 드리니 화답이
왔다. “눈길에 고생이 많네”라고. 그리고 짐승 발자국에 관한 몇 가지 의심
이 가는 사항 들을 여쭤 보고서야 궁금증이 해결 되었다. 토끼며 또 다른 짐
승의 발자국에 관한것 까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노인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鳳凰山(740.8m)을 향한다. 안타깝게도 능선
왼편으로 비닐 노끈으로 묶은 자국과 “입찰지역 출입금지”라고 송판에 페인
트로 적은 글을 소나무에 못질하여 메달아 놓았다. 아마 가을철에 송이 채취
를 하기위해 여타의 등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함이라 여겨지지만 못질
까지는 너무나 가혹한게 아닌가 싶다. 봉황산 정상에 오르니 상주시청산악회
에서 1997년6월1일 세운 정상석이 우리를 반긴다. 산불감시초소 이후 처음
으로 전망이 트이는 곳이다. 이곳의 눈위에 식탁을 펼치기로 하였다. 오늘
처럼 바람이 없는 날이면, 이곳도 괜찮을듯 했기 때문이다.

정상을 벗어나면 가파른 내리 막길에는 눈이 무릎을 시리게 한다. 멀리 갈
령이 눈에 들어온다. 암릉구간을 지나면서 비재까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내려설 수 있다. 비재는 나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이름 지어 졌다고 한다.
아직 두시간 반가량의 산행길이 남아 있는터라 이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어 길을 재촉한다. 비재의 철계단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 길가에는 전나무
며, 참나무등으로 이루어져 전망은 괜찮은 편이다. 등 뒤로는 두어시간 전에
머물렀던 봉황산이 저멀리 보인다. 정말로 사람의 발걸음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있다고 느껴진다.

510봉을 지나면서 오른쪽 저편에는 또 하나의 능선이 대간길과 나란히 어
깨를 겨루다 갈령에서 만나는 듯 하다. 그 능선이 바로 상주의 대궐터산이
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낙엽송에 붙은 딱따구리 한 쌍이 먹이를 찾
으려고 열심히 나무를 쪼으고 있다. 높낮이가 고만고만하나 100여m 정도를
오르내리는 게 여간 힘들지가 않아 허벅지에 근육통을 느낀다. 산행시 가끔
씩 격은 일이기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 다시 길을 재촉한다.

다행히 못재를 향한 오르막길이 양지바른 곳이라 눈이 녹았기에 별 어려움
없이 진행이 가능했으나, 전망대를 지나자 다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
메어야만 했다. 마실 물까지 바닥이 보인다. 백두대간상의 유일한 습지인 못
재에 도착하면 식수를 구할 수 있으려니 했지만 허사다. 지도상에는 샘터로
표시 되어 있건만.....

못재를 지나 암봉들을 오르내리다 큰 암봉을 왼쪽으로 돌아 가파른 오르막
을 오르니 갈령 삼거리다. 갈령 삼거리를 지나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숨도 크게 쉬지 못했는데 이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서산마루 형
제봉에 걸린 해는 곧 오늘의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다.

갈령으로 내려오는 도중 암릉의 전망대에 앉았다. 오늘 우리의 지친 육신을
편히 쉴 수 있는 상주시 화북면의 화북장여관을 전화로 알아 보았으나, 보일
러 수리 관계로 불가능하다나.... 다시 화북 개인택시(☏054-534-7447)로
연락하여 갈령까지 17:45분 까지 도착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주고받고 갈령
으로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길로 오늘 이곳에 몇몇 산 행객이 길을 닦아 놓
은 터에 별 어려움이 없이 하산 할 수가 있었다. 葛嶺에 도착하니 어둠이 깔
렸고, 신 발안엔 물이고여 질펀하다.

기다리는 택시가 너무나 반갑다. 택시에 올라 신의터재로 향할 때 기사분께
화북에서 하룻밤 머무를 곳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히 설명 하여 주시며,
그곳(화북면 시어동)에 전화 까지 하여 잘집을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신의
터재에서 화북까지 길을 잃을까봐 끝까지 안내 하여주신 기사분께 감사드리
며, 문장대 입구인 시어동 산수장에 짐을 풀고는 바로 옆 식당에서 송어회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부딪친다.

내일의 산행도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6. 돌아오는 길
2002. 12. 14
- 17:50 갈령 출발-18:15 신의터재 도착(택시비₩25,000)
- 18:20 신의터재 출발-17:10 화북면 시어동 도착(승용차)


※ 2002.12.15(제13소구간 : 갈령-늘재) 날씨 : 맑음
06:20 산수장 출발-06:30 늘재 도착(승용차)
06:40 늘재 출발-06:47 갈령 도착(택시비₩10,000)

아침에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늘재에 승용차를 두고 화북 개인택시를 이용
하여 갈령에 도착했다. 아직 하늘에는 별들이 너무나 밝다. 오늘 날씨가 우
리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 주는것 같아 기분이 상쾌하다. 아마 올 壬午年
에 백두대간 산행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예정하고 있으니까. 지난 8월24일
지리산 天王峰을 시작하여, 오늘 속리산 天皇峰을 끝으로 올해를 마무리 한
다고 생각하니 여간 가슴 벅찬게 아니다.

갈령표지석 옆 산불감시초소 뒤편에는 내일까지 입산통제를 알리는 안내판
이 걸려있으나 실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어제 어두울 무렵 하산했던 가파른
산길을 오늘 새벽 오른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지만, 풍광이 빼어나 걸음걸이
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든다.

갈령 삼거리 못 미쳐 암릉위에서 아침의 일출을 맞는다. 동쪽 대궐터산 북
쪽 암봉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이 눈빛에 반사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오
늘 산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일출을 맞는 동
안 산행동료들이 저쪽 갈령 삼거리에 거의 도착해가고 있다. 발걸음을 빨리
한다. 갈령 삼거리에서 부터는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을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군인들로 말하면 완전 군장을 갖추고 전쟁터에 임하듯, 우리들도 산
행에 무리가 없게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눈은 무릎 가까이 올라온다.

형제봉(828m)을 오르는 길목에는 소나무숲 사이로 군데군데 진달래 군락지로 형성되어 있으며, 가파른 오르막길로 한 발자국 옮기는데도 여간 힘들지
않다. 한발 옮기면 반발 미끄러져 내려온다. 체력 소모가 많아 걱정이 앞선
다. 20여분 고생끝에 형제봉(속리산 64번지점) 전망대에 서서 심호흡으로 다
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형제봉을 돌아 가파른 내리막길에는 빙판으로 조심조
심 또 조심이다. 803봉을 지나면서 음지쪽에 눈이 더 많이 쌓여 있다. 이럴
때 토끼 발자국을 따라 사냥이나 했으면. 바위 능선을 지나 두 시간 여만에
피앗재에 도착했다. 이곳 피앗재는 내속리면 만수동과 화북면 쉰섬마을 잇는
참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딱따구리가 우리들을 반긴다. 딱 딱 따아〜딱...
잠시 숨을 돌리며 지도를 펼쳐든다. 그러나 이제 시작인 걸. 그리고 목도 축
인다.

피앗재에서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오르면 온통 참나무로 뒤덮여 있다. 이곳에
는 겨우내 양식을 장만하는 다람쥐들이 가을철엔 많았겠지만, 허나 지금 눈
덮인 겨울 산 돌 틈에서 겨울잠에 빠져 있겠지? “다람쥐야 다람쥐야 산속의
다람쥐야 겨울이 오며는 무얼먹고 사느냐....“ 639봉을 지나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다 다시 667봉을 앞에 두고는 다시금 땀을 솟게 만든다.

667봉을 지나 왼쪽으로 크게 돌아 완만한 능선을 지나 제법 가파르게 오르
니 725봉이다. 이곳의 왼쪽으로는 보은군 내속리면의 산자락들이 흰옷을 곱
게 차려 입고, 오른쪽으로는 천황봉에서 흘러내린 옥수로 만들어 지는 6m정
도의 정각폭포와 폭포 위에는 금란정이 있다는 화북면 장각동의 푸른 지붕
을 이고 있는 몇 채의 건물이 보인다.

헬기장을 지나서 왼쪽으로 꺾이니 눈을 잔뜩 이고 있는 산죽 군락을 오랫
만에 만날 수 있다. 윤선도의 五友歌 중의 竹편을 읊조린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는 그 절개
며, 고상함이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천황봉이 가까워져 온것인지 멀리서
“야호”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부터 산에서는 사람 구경을 못한 터라 무
척이나 반갑다.

묘지를 지나 703봉과 바위능선을 돌아 전망바위에 서니 멀리 천황봉이 손
에 잡힐 듯 하다. 천황봉 아래 암벽에는 거인의 코에서 흐르는 콧물 같은 거
대한 고드름이 두어개 메 달려 있다. 나의 코에도 연신 콧물이 흐른다. 옛날
어린시절 같았으면 팔소매로 닦아 버리고 말았으련만... 이정표가 속리
04-05인 대목리 갈림길에는 굴참나무 아래로 키 작은 산죽들이 삐죽이 고개
를 내밀고 있다. 허기를 느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새벽에 찬밥 한 덩이에
라면 두개로 세 명이 나눠 먹고 다섯 시간 가까이 눈 속을 헤맸으니 말이다.

이제는 저곳 천황봉을 올라야 한다. 급경사로 이루어진 곳으로 처음엔 나무
계단으로 눈길에 미끄러질 염려가 없어 조금은 다행이다 싶었지만, 천국의
계단인지? 극락의 계단인지?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쉰다. 갈증과 허기로
눈을 한줌 입에 문다. 바로 옆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돌아보니 햇살에
눈이 녹아 흐르는 소리다. 이마엔 팥죽 같은 땀이 흐르지만, 발은 눈에 젖어
시려온다. 산죽이 무성하다. 산죽밭을 지나니 드디어 천황봉(1,057.7m)이다.

이곳은 한남 금북정맥의 시발지이며, 한강과 금강, 낙동강의 발원지로 三派
水로 불리기도 한다. 천황봉 표지석 뒷면에는 “이곳은 조선의 삼대 명수 삼
파수, 달천수, 우통수중 삼파수의 발원지 입니다. 삼파수란 東으로 낙동강,
南으로 금강, 西로 남한강으로 흐르는 물을 말하며 이곳 천황봉에서 나누어
진다. 1994. 10월 속리산번영회“ 라고 쓰여져 있다. 힘이들게 오른만큼 주변
경치가 정말 멋지다. 기기묘묘하게 솟아 있는 바위들, 끝없이 펼쳐지는 산
그리고 날씨 또한 쾌청하여 모든것이 좋을 따름이다.

이곳부터 가끔 등산객을 만날 수 있었다. 잠시 시름을 잃고 속리산 비경에
젖는다. 천황석문(속리 04-07)을 지나 전설에 의하면 임경업 장군이 7년간
수도 끝에 세웠다는 입석대를 지난다. 내일이면 헐릴 입산을 통제 나무울타
리 아래를 통과하니 법주사로 내릴 수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속리 02-05라
는 표지목과 법주사 5.2km 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서 5분 정도면 신선
대(1,026m)에 도착한다.

신선대에는 신선대 휴게소가 있어 당귀와 칡으로 담근 막걸리 한잔씩과 라
면 두개 및 어묵 한 그릇씩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여기서 문장대로 향하
는 길 군데군데에서 바위를 통채로 깍아만든 계단도 만날 수 있다. 문장대
(1,054m)에 도착하니 산행객들로 넘친다. 문장대휴게소 처마에는 눈이 녹아
흘러 내리는데....

문장대를 벗어나 바로아래 헬기장에 도착하니 어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 혼자 외롭게 추위에 떨고 있다. 지금 부터 마음 가짐을 더욱 새롭게
해야만 암릉구간을 무사히 통과 할수 있으리라. 헬기장을 거쳐 묘를 지나면
산죽밭이 나오고 바위가 앞을 가로 막는다. 암릉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바위 틈새를 빠지면 아래쪽 시어동 및 속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기 좋은 널
찍한 바위가 나오며, 5분여 더 내려가면 바위 틈새로 2개의 밧줄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묶여 있다. 두 번째 밧줄을 잡고 내려와, 배낭을 메고 통과
하기 어려워 배낭을 앞장세워 개구멍을 통과한다. 눈 쌓인 바위틈을 조심조
심 하여 20여분 더 가면 또 다른 개구멍이 나온다. 리본과 빨간 페인트의
화살표시 및 앞선 선행자의 발자국이 없었다면 길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
으리. 무조건 리본을 따라 내려가다 큰 소나무에 매달린 밧줄을 잡고 바위
사이로 내려설 수 있다. 한 시간 가까운 사투 끝에 끝나는 암릉 구간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산죽도 보이지 않고, 진달래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입석바위를 지나 삼거리 길에 닿으면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쌓은 석성인
견훤산성으로 내려설 수 있으나, 우리들은 밤티재로 향한다. 이곳에서 밤티
재 까지는 곰솔 향을 마시면서, 사각사각 소리 나는 솔 갈비를 밟으며 완만
한 능선 길을 달린다. 20여m나 대간길을 잘라 놓은 밤티재다.

밤티재에 도착하니 오후4시 40분이다. 갈등이 생긴다. 이곳에서 늘재 까지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 터라 계속 진행을 할 것인지를!
가자!
오늘 계획은 오늘 마무리 하자고 동료들을 달랜다. 완주를 결정한 뒤 솔숲으
로 형성된 완만한 능선을 지나 암릉 구간을 지나니 길이 끓어졌다. 암봉사이
의 개구멍이 보인다. 여길 통과하여 널찍한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저 멀리
문장대 너머로 우리들만 바위에 남겨둔 체로 태양은 숨어 버렸다. 오늘 하루
종일 우리와 동행을 하였는데.

전망바위 뒷편이 바로 696봉이다. 이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크게 꺽어 완만
한 능선을 지나니 629봉 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어둠이 깔린 눈길을 손전등
으로 불을 밝힌다.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하지만 다시 조그마한 봉우리를
하나 더 넘고서야 우리들을 늘재에 내려 놓는다.

이곳 늘재(해발 380m)는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으로 여태껏 보아왔던 금
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아닌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마지막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신 대원들께
감사드린다.

6. 돌아오는 길
2002. 12. 15
- 18:20 늘재 출발-22:15 부산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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