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 7일차 : 艅航山群 <2003. 3. 8(토), 찌푸림>

◈ 구간개요 <한치재 - 서북산 - 여항산 - 미산령 - 오곡재 - 발산재>
봄을 재촉하는 비가 주중부터 주말까지 계속된다. 2월 중순 이후 개인적인 일도 있었지만 주말마다 찾아오는 비 소식에 한동안 산행을 접어야 했다. 빗줄기는 끊길라치면 다시 이어져 산행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다행히 낙남은 비 소식이 없다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마산까지 버스, 기차 등 교통편이 원활하나 한치재로 진입하는 함안은 기차가 편리하다.

서북산에서 오곡재 지나 523봉까지 고도를 느끼게 하는 전망 좋은 산줄기가 계속되다 523봉 이후부터 300미터 내외의 특징 없는 산줄기가 발산재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의 산행미는 서북산에서 여항산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한 구간으로 잡기에 다소 길다면 미산령에서 끊고 미산저수지 쪽으로 하산하여 가야읍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차량지원이 가능하다면 여양리에서 미산재까지 상태 양호한 비포장 도로가 있으므로 대정으로 진입하여 여양리 하산도 고려할 수 있겠다.

◈ 운행기록
▶ 한치재(진고개 휴게소) 4:20
서울발 22시 진주행 열차가 함안 역에 도착하니 4시다. 역사에서 세면이라도 하며 일출까지의 시간을 좁혀볼까 망설이는데 승차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것 같은 택시기사의 위세에 밀려 한치재로 향한다. 스스로 미안했던지 병원 화장실에 따뜻한 물이 나온다며 들려 가기를 권하지만 이미 포기했던 터라 사양한다. 진고개 휴게소 왼쪽 건축자재 집하장 옆으로 난 진입로를 따라 어둠이 짙게 깔린 한치재를 출발한다.

▶ 첫 번째 철탑(봉화산 능선) 5:50
첫 번째 봉우리를 넘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해발 300여 미터부터 잔설이 보이더만 고도를 더 할수록 눈밭이 되고 이내 발목을 덮더니만 무릎을 넘본다. 길은 사람의 흔적이 없고 동물 발자국만 나 있다. 랜턴을 두개씩 차고 오직 표지기를 따라 길을 찾는다. 어둠에 아이젠과 스패츠를 찰 엄두도 못 내고 러쎌을 하며 가파른 오르막 끝에 첫 번째 철탑이 나온다.

핸드폰이 통화권을 벗어났다는 신호음을 보내 전원을 끈다. 숨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살피니 여명에 비친 산정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주중에 내린 비가 지대에 따라 눈으로 쌓여 있는 것 같다. 봄기운이 완연할 남녘을 생각하며 준비물을 챙겼는데 복병을 만났다. 무사 산행을 기원한다. 동이 트는 것을 보며 철탑 못 미쳐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향한다.

▶ 서북산 7:30
마루금으로 임도가 나고 그 끝에 어지러운 발자국이 여항면으로 이어진다. 비록 발자국을 만났을지라도 반갑기만 하다. 서북산까지 가파른 경사를 힘들게 오르지만 동행하는 발자국이 있어 마음 든든하다. 뒤돌아본 봉화산과 광려산이 하얀 덧옷을 입고 다가온다.

정상에는 6.25때 이 곳을 방어하다 전사한 아버지 티몬스 대위를 추모하며 장성하여 미 8군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한 아들 티몬스 중장과 한국군 주둔부대장 인근주민이 건립한 전적비에 얽힌 사연이 지나는 이를 숙연하게 하며 낯선 이방인의 대를 이은 우리와의 끈질긴 인연을 생각하게 한다.

▶ 여항산 10:00
눈이 시리도록 장쾌한 능선이 여항산으로 이어진다. 눈 속 깊이 패인 발자국이 오로지 그 발자국만을 따라 밟고 가도록 유도한다. 발걸음은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 비비꼬고 넘어지며 헛 짚고 그래도 퍼석거리며 무릎을 덮는 눈밭을 러썰해 가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목 짧은 등산화와 숏스패츠에 벌써 물기가 스민다. 허기를 느껴 적당한 곳에서 아침을 먹는다.

칼날 능선에 우뚝한 암릉이 길을 막고 좌우로 아찔한 낭떠러지다. 두꺼운 밧줄과 쇠사슬이 양 갈래로 바위 틈새를 따라 내려 있다. 두 줄을 잡고 눈과 얼음이 덮힌 바위를 주춤거리며 행여 미끄러질라 잔뜩 긴장하여 조심스럽게 한발씩 딛고 정상에 선다. 조망이 거칠 것 없어 사위를 휘두르며 정상미를 만끽한다. 정상부 암릉의 모양새가 떠나는 배와 같은 형국이어서 여항산 인가?

▶ 미산령 11:15
여항산 정상너머 헬기장을 지나 좌촌←여항산→서북산 안내판에서 그나마 이어온 발자국이 좌촌으로 꺽인다. 일반 등산객이 좌촌에서 올라와 여항산, 서북산을 거쳐 버드내로 하산 길을 잡은 모양이다. 지금부터 길을 잃지 않고 러쎌을 하며 진행해야 한다. 동계 장비가 시원찮아 가능한 눈이 덜 쌓인 곳을 밟고 가려 애쓰지만 마음과 같지 않다. 얼마 되지 않아 다리가 무겁고 기운이 빠지며 발목 이하는 물에 젖는다.

겨우 미산령에 이르지만 강원도의 허리께 차는 눈에 견줄 바는 못되지만 이곳도 쌓인 눈에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맞은편 봉우리와 오곡재 지나 523봉까지도 꽤 많은 눈이 쌓여 지친 몸으로 홀로 가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도를 펴고 궁리 끝에 안전산행이 우선이다 싶어 마루금을 버리고 마루금과 평행을 긋는 도로를 따라 발산재까지 가기로 한다. 본의 아니게 반칙을 하게된다.

산허리께 이하는 능선과 달리 녹아 내린 물로 질척거린다. 봄을 맞는 들판을 따라 걷는 맛도 색다르다. 들녘엔 수로정비와 땅 갈이로 분주하다. 짚더미에서 먹이를 찾던 살이 통통한 꿩과 메추라기들이 인기척에 놀라 잽싸게 숲으로 피한다. 논두렁 밭두렁 따라 쑥이며 냉이며 달래며 봄나물이 지천이고 드물게 할머니들이 나물을 캐고 있다.

▶ 대정마을 16:00
발산재를 경유 마산에서 진주로 넘어가는 2번 국도가 지나며 마산 21-9 노선버스가 여양리↔대정↔진동↔마산역을 간간이 운행한다. 식육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도시락으로 준비하며 산행을 마감한다. 양촌에 온천욕과 24시간 찜질방을 겸하고 있는 호성찜질방이 잠자리로 적당하겠다. 대정에서 도보 20분 정도 걸리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온천개발에 따라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낙남 8일차 : 깃대봉군<2003. 3. 9(일), 쾌청)
◈ 구간개요 <발산재 - 깃대봉 - 남성치 - 용암산 - 새터재 - 배치고개>
몇 몇 조망 좋은 암릉을 지나 깃대봉에 이르러 전망이 확 트인다. 이 구간은 국도와 지방도, 농로와 임도를 수시로 지나게 된다. 전망도 특징도 없는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기에 힘겹고 밤 농원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마루금을 이어간다. 가끔 푹신 거리는 솔밭을 지나기도 하지만 잡목의 심한 저항을 받기도 한다. 배치고개에 도착하면 힘든 산행을 마감하였다는 안도감을 크게 느낄 것이다. 차량통행이 많아 진주까지 차를 얻어 타는데 별 문제는 없다.

◈ 운행기록
▶ 호성찜질방 4:40
피로를 풀기에는 미지근한 여관방보다는 따끈따끈한 찜질 방이 좋다. 또한 산행에 긴요한 비상식도 구할 수 있고 경비도 훨씬 저렴하다. 저녁 6시경부터 푹 자고 일어나 일찍 출발한다.

▶ 발산재휴게소 5:40
원천마을에서 도보로 대정까지 25분 대정에서 발산재휴게소까지 35분 정도 걸린다. 어제 반칙을 범한지라 휴게소 건물 뒤편으로 내려오는 정맥의 마루금을 확인하고 표지기가 달린 도로 건너편 높은 계단을 오른다. 어느 집안의 현양비가 우뚝하고 그 옆 대리석에 박은 자치단체장의 기념식수 표석이 눈에 거슬린다.

몇 발자국 지나 마루금은 온데간데없고 골재 채취? 도로확장? 낭떠러지에 돌무더기로 어수선하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좌측으로 공사용 목재 방책을 따르니 그 끝은 가파른 시멘트포장 도로가 이어지고 도로 옆에 표지기가 달려 있다. 다시 말하면 ?공사로 인해 마루금은 요란한 표지기가 유혹하는 발산재 휴게소 맞은 편 계단을 오르지 않고 도로에서 좌측으로 100여 미터 내려가 공사용 목재 방책을 따라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 깃대봉 7:25
공동묘지 정면을 향하여 올라간다. 동이 트고 가끔 조망이 터진다. 전망 바위 몇 군데를 지나고 깃대봉 못 미쳐 일출을 보며 진해만을 굽어보는 정상에 선다. 오늘 구간 중 가장 높고 조망이 좋은 곳이다. 지나온 서북산, 여항산이 하얀 눈에 쌓여 우뚝하고 좌측으로 햇빛에 반사되는 진해만이 엿보인다. 마루금은 우로 휘며 내리막을 걷는다.

▶ 용암산 10:30
별밭들에서 남성치로 200여 미터 고도를 낮추다 잡목이 무성한 정상까지 힘겹게 오른다. 별 밭들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 탐티재 11:10
고성군 구만면에서 진주시 개천면으로 넘어가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고개다. 마루금은 구만면을 감싸고 남진한다.

▶ 새터재 13:57
작은 봉우리들을 지겹게 오르내리고 밤 농원 경계를 서너번 넘나들며 새터재에 이른다.

▶ 배치고개 16:10
탕근재와 신고개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친다. 철탑따라 임도가 이어지고 매봉산 인 듯 가파른 경사를 오른다. 배치고개인 듯 차량통행이 많은 고개마루에 내려선다. 버스 정거장이 있고 건너편 우측에 성베네딕도 수도원 좌측에 축사인 듯한 구조물이 있고 가운데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깃대봉 이후 특징 있는 지형이 없고 차량이 지나는 포장도로만이 확인 가능하여 독도와 지형지물을 확인할 엄두도 못 내고 표지기만을 따라간다.

지도상으로 탐티재에서 새터재보다 새터재에서 배치고개까지의 소요시간이 더 길어야 하나 그렇지 않고, 국립지리원 발행 1/50,000 지형도에 그어놓은 마루금을 잘 못 그은 것 같아 독도를 포기한 상태에서 배치고개에 도착하니 무엇에 홀린 것 같이 얼떨떨하다. 지나는 지프를 세워 진주까지 태워 줄 것을 부탁하니 고속터미날 앞까지 바래다준다. 진주에서 가업을 돌보며 취미 겸 부업으로 주말에는 행사비디오 촬영을 다니는 건실한 청년이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교통 및 숙식
▶ 교통
♠ 하행 : 22:00 서울역발 → 4:00 함안역착(입석-16,500, 좌석-23,000)
♠ 들머리 및 날머리
* 함안역 →한치재 : 택시 14,000원
* 발산재→대정(도보 30분)→양촌(도보 20분)
* 양촌→발산재(도보 50분)
* 배치고개→진주 : 히치하이킹
♠ 상행
* 진주→서울 경부터미날 : 우등고속 21,300원
▶ 숙식 :
* 양천 : 호성찜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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