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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가족 산행기




--- 97세 가족 백두대간을 호흡하다---


 


일시 : 2002년 2월13일(수) - 설날 다음날


가족 : 한백(10세-만 8년 7개월) 한동(8세-만 6년 5개월) 그리고 아내와 나


전체 운행 경로와 구간별 거리


유일사 입구(해발 950m) - 2.3km - 유일사 쉼터(해발 1,300m) - 1.4km  -
장군봉(해발 1,566.7m) - 0.3km -  천제단(해발 1560.6m) - 0.5km - 망경사
- 1.7km - 반재 - 0.5km -문수봉 삼거리 - 1.7km -당골

[하루 운행 거리 8.4km]


구간별 고도

유일사 입구 : 해발 950m

유일사 쉼터 : 해발 1,300m

장군봉 : 해발1,566.7m

천제단 : 해발1560.6m


시간대별 상황 정리

2월13일(수)

11:30 유일사 매표소 출발

14:30 장군봉 도착

15:00 천제단 도착 [3시간 30분 소요]

15:30 망경사 도착 [30분 소요] (컵라면)

16:00 망경사 출발

17:00 반재 도착 [1시간 소요]

18:30 당골 도착 [1시간 30분 소요]

[전체 운행 시간 총 7시간 (운행: 천천히 자주 쉬면서 6시간 30분, 점심(컵라면):
30분)]


 


산행기록---




2002년 2월 12일 (화요일) - 설날


해마다 겪는 고행의 귀성행렬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부산에서 설날을 맞고 차례를 지낸 뒤 12시 30분에 귀경길에 올랐다.

고속도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체증에 몸살을 앓으며 벌써 주차장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뭔가 설레임에 들떠 있었다.


97세의 가족 태백산 눈꽃산행!

97세는 아내와 나 그리고 두 아들의 나이를 합친 우리가족 전체의 나이다. [정확하게
만 91년 10개월]

너무 잘 먹어 약간 비만이 걱정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될 한백이와

상대적으로 잘 먹지 않아서 살보다 뼈가 많고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로 되어있는
한동이.

그리고 여고시절 한때 산악부에 몸담고 북한산과 수락산을 넘었었다지만

지금은 산에 오른지가 언제인지 잘 생각나지도 않는다는 아내

그리고 산에 다니기 시작한지 4개월밖에 안된 초보 산꾼인 나.


얼마 전 1월 27일 태백산 눈꽃축제의 마지막날 대설 주의보속에 태백산에 올랐다가

겨울 주목들의 가지가지에 맺힌 그 영롱한 아름다움에 반하여

가족들에게도 태백산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번 설 연휴를 이용해서 함께 태백산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경주를 지나 금호분기점의 지옥같은 체증을 피하기위해

영천IC로 빠져 나와 중앙고속도로로 향했다.

국도에서 간간히 체증을 겪으면서 겨우 군위IC로 들어섰는데 비교적 시원하게 뚫려있다.

군위휴게소에서 부산의 작은 형수님이 싸주신 도시락으로 든든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영주IC를 나와서 봉화를 거쳐 21시경에 태백에 들어서는데

도로 주변에 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산행때의 그 황홀한 눈꽃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산 위에는 기온이 낮으니까 눈이 남아있으리라 기대하며

당골 얼음 축제 광장 바로 옆의 '한밝뫼'에 민박을 정했다.

얼음 축제 광장의 눈 조각들은 부분부분 녹아있었지만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2002년 2월 13일 (수요일)


9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 식당에서 육개장과 된장찌개로 아침식사를 하고

민박집의 승용차로 유일사입구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어있었다.

지난번 산행때 탔던 오궁썰매를 두 개 빌려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매어주고

드디어 산으로 들어서니 11시 30분이다.

걷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하지 않고 출발했다.


태백산 계획을 세울 때부터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신발이었는데

아내는 이번기회에  내것과 셋트를 이루는 고어텍스 등산화를 큰 맘 먹고 하나
장만하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애들은 고가의 등산화를 사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평소 신던 가죽 운동화로 일단 산행을 시작하고 운동화가 젖어들 경우를 대비하여

양말도 서너켤레씩 더 준비하고

눈 올 때 신던 방수장화를 여분으로 가져 가지로 했다.

아이젠과 스패츠는 온가족이 하나씩 장만하여 네벌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추울때를 대비하여 옷도 좀 더 꾸리고

아이들 방수장화 두 개, 스패츠 네 개, 아이젠 네 개, 그리고 먹을 것 등등을 두
배낭에 나누어 넣고

아내와 하나씩 둘러매었다.


완만한 경사의 넓은 등로에는 간간이 눈이 남아있는데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나무의 눈꽃은 남아있지 않다.

온 가족이 함께 산행에 나서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

설레기도 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데,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느냐는 둘째 녀석의 잦은 질문에

고개를 들어 멀리 태백산의 능선을 올려다보니 까마득하고, 하얀 눈이 덮여있다.


아내는 그렇다 하더라도

분당의 아파트 숲 속에서만 자란 아이들이

과연 저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부디 아무 탈없이 산행을 끝내기만을 바라면서 한 발 한 발 오른다.

어린 시절 첫 산행에서 호연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백두대간의 능선에 올라 가슴으로 산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게된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10여분만에 도달한 태백사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두 아들녀석과 아내가 헉헉대며
오고있다.

순서를 바꾸어 아내를 앞세우고

그 뒤로 아이들이 따르고 내가 맨 뒤에서 올랐다.

길 위로 넘쳐흘러 온통 얼어 붙어있는 옹달샘을 보고 아이들이 신기해한다.

유일사 입구 쉼터까지는 그래도 완만하고 넓은 등로가 나 있어서

천천히 오르는데 처음에 걱정한 것보다는 아이들과 아내가 잘 올라가는 것 같다.


카메라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일회용을 하나사서 중간중간 찍으면서 가는데

과연 사진이 잘 나올지 의문이다.

나중에 현상하고서야 알았지만 일회용 카메라는 인물(피사체)을 화면에 꽉 채워서
찍어야겠다.

미리 고려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변의 여백이 주어지는지라

의도한 것보다 사람이 너무 작게 나온다.

내가 사용한 것은 후지필름제품으로 혹시 급하게 일회용을 사용하게 되면 참고하시길...


드디어 백두대간의 자락인 해발 1300m의 유일사 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아래쪽 유일사 까지는 화물운반용 삭도(rope way, cable car)가 설치되어있다.

비록 천제단까지의 짧은 거리지만 우리 가족이 백두대간을 걷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주목군락지가 나타나고 등로도 험해지므로

잠시 쉬면서 스패츠는 생략하고 아이젠만 착용했다.

아이들 둘을 먼저 착용시키고 난 뒤 아내, 그리고 나도 아이젠을 착용했는데

총 8개의 아이젠을 벗겨질세라 탄탄히 매어주고 나니 손이 얼얼하다.


꽤 급한 경사에 미끄러져 넘어져가면서 네발로 기다시피 아이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니

대견스러운 마음이 든다.

힘들어서 엄마손을 잡으려는 둘째에게

산을 오를때는 혼자 힘으로 가야한다며 호통치고 손을 못 잡게 했는데

초등학교 입학도 안한 녀석이 애비의 마음을 알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키우고싶어 데리고 온 태백산이 아닌가.

스스로 힘들어 봐야 남이 힘든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테니...


장군봉 가지전에 나오는 망경사 갈림길에 올라서니 능선들이 장관이다.

지난 1월에 왔을때는 눈보라가 심해서 주변만 겨우 보이고 능선 조망은 하나도 못했는데

그때와는 달리 날씨가 좋아 백두대간의 구비구비가 한눈에 들어오니

눈꽃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는다.


드디어 태백산의 상징인 주목군락지에 이르렀다.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는 주목뒤로 아스라히 보이는 광활한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눈보라 칠때나 맑은 날씨나 태백산은 나름대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북쪽으로 누워있는 함백산능선도 언젠가는 내가 걸어가야 백두대간이다.


함백산은 큰녀석의 이름인 한백이와 비슷해서 정감이 있다.

한반도 남녘의 최고봉인 한라산의 '한'과 북녘의 최고봉인 백두산의 '백'자를 따서
지은 이름인데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안타까워 지은 거창한 이름이라고 상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건강하게 자라서 산의 정기를 느끼고 맑은 정신으로 겸손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말이 나온 김에 둘째 녀석의 이름을 소개하자면

역시 한반도 남녘의 수도 서울을 흐르는 한강의 '한'과 북녘의 수도 평양을 흐르는
대동강의 '동'자를 따서 지은 이름인데

강물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냉철하고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처음 차본 아이젠이 답답한지 아이들이 발이 아프다고 한다.

이제는 크게 미끄러질 구간도 없는데다가

내려갈 때는 썰매를 타야하는데

아이젠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으므로

아이들의 아이젠을 벗겨주었다.

신발이 젖어 발이 시리다고 하는데

동상이 걱정되어 양말과 신발을 갈아 신기려 하다가

조금더 견디게 하고 망경사 까지 가기로 했다.

산에서 행동식으로 먹으려고 군위휴게소에서 사온 호도과자 한봉지를 나눠먹고

사진도 찍고 장군봉으로 향한다.


드디어 태백산 최고봉인 해발 1566.7m의 장군봉에 올랐다.

지난번에는 눈보라로 보이지 않았던 천제단이 장군단에서 매우 가깝게 서있다.

오전 11시 반경에 출발하여 2시 반경에 도착했으니 약 3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의 첫 산행치고는 만족스럽지만

어둡기 전에 내려가야 하므로 서둘러 천제단으로 향한다.


천제단의 태백산 표지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필름이 다되어버려서

하산할 때의 오궁썰매 장면은 찍지 못하게 되었다.

천제단에서 망경사까지는 급한 내리막이고 매우 미끄러운데

아이들이 오궁썰매를 타기에는 좀 위험할 것 같아서

단종비각을 지나 망경사까지는 양쪽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오도록 했다.


3시 반경에 망경사에 도착하여 쉬었다 가기로 하고 가져온 컵라면 두 개를 꺼내서
보온병의 물을 부으니

하나는 물이 넉넉한데 하나는 모자라서 매점에서 급히 온수를 얻어 부었다.

대충 불려서 넷이서 나눠먹고 가져온 떡과 쵸코렛으로 허기를 속인다음

아이들의 양말을 갈아 신기고 신발도 방수장화로 갈아 신겼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궁썰매를 타야하므로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아이들만 스패츠를 착용시키고

오후 4시경에 망경사를 출발한다.


조금 내려오니 본격적으로 오궁썰매를 탈수있도록 길이 나 있는데

내가 먼저 내려가서 밑에서 받을 준비를 하고 신호를 보내면 한 놈씩 출발하도록
했는데

썰매가 생각보다는 잘 나가지 않는지라 다시 썰매를 고쳐 매주니 잘 나간다.

아이들이 신나서 비명을 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눈밭에 쳐 박혀 눈 범벅이 되어도 마냥 즐겁다.

그 바람에 나도 신나서 먼저 내려가서 받느라고 뛰어다니는데 힘든 줄 모르겠다.


썰매 타느라 정신없이 소리지르고 뛰다보니 반재에 이르렀다.

시간은 벌써 5시를 지나고 있었고

여기서부터 첫 번째 계곡을 건너는 다리까지는 꽤 경사가 심하고

바위투성이라서 오궁썰매를 배낭으로 고쳐매고 조심조심 내려선다.

썰매 타던 즐거움이 채 가시지 않은 터라 힘든 길을 잘도 내려온다.


지난번에 무심코 지나쳤던 이상한 돌무더기가 있어 가까이 가 보았더니 호식총(호환을
당한 시신을 화장하고 돌을 쌓은 뒤 옹기를 뒤집어엎어서 표시함)이었다.

문수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니 이제부터는 완만한 하산길이다.

네 식구가 하늘도 바라보고, 눈 쌓인 계곡도 보고, 나무도 보고, 바위도보고...

사람도 없어서 온통 산속에 우리 가족만 있는 것 같았다.

타박타박 걸어서, 간간이 오궁썰매도 타면서 천천히 내려오니 단군성전이 보인다.

당골의 하늘에는 까마귀떼가 온통 뒤덮고 있었는데 그 또한 장관이었지만

까마귀가 주는 전통적인 느낌 때문인지 아내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당골광장에 내려서니 6시 반이 되었다.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이 고맙고 대견스럽기도 하여

마치 축구선수들이 하듯이 네 식구가 둘러서서 손을 모으고

어둠이 내리는 태백산 자락에서 힘차게 화이팅을 외쳤는데

그 소리에 놀랐는지 까마귀떼가 흩어져 멀리 사라진다...


우리 가족이 태백산의 정기를 안고 돌아오는 길은 설날 귀경정체가 모두 풀려있었고

옆자리에서 졸고있는 아내와

뒷자리에서 곤히 잠든 두 아들을 간간이 흐뭇하게 돌아보며 즐겁게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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