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key의 나홀로 백두대간 종주기
제5차 구간종주

1.산행일정 : 2002. 2. 9 ~ 2.10(1박2일)
2.산행구간 : 백암봉-지봉-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23.1km)
3.산행친구 : donkey 홀로
4.산행일정
- 2/ 9(제9소구간 : 백암봉-지봉-대봉-갈미봉-빼재:9.2km)
05:30 울산출발(태화관광)
08:57 무주리조트 도착
09:54 삼공리매표소 도착
11:02 백련사
12:30 향적봉대피소
13:08 백암봉(백두대간)
14:35 횡경재
15:18 지봉(못봉)
16:34 대봉
17:11 갈미봉
18:22 빼재

- 2/10(제10소구간:빼재-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덕산재:13.9km)
07:00 빼재출발
08:25 수정봉안부
09:01 삼봉산
10:39 소사고개(아침겸 점심)
11:11 소사고개출발
12:50 삼도봉
13:39 대덕산
15:02 덕산재

5.산행기

- 가는 날이 장날

지난번 덕유산의 악천후로 백암봉에서 구간종주를 끊은 탓에 이번 주는 관광버스로 무주리조트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곤돌라를 이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버스 안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무주리조트엔 지난번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스키 타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곤돌라 탑승장으로 가니 곤돌라는 움직이지 않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관리요원에게 물어 보니 원래 아홉시 반부터 탑승하지만 오늘은 언제 운행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향적봉쪽에 강풍이 불기 때문이란다. 초속 15미터 이상의 강풍이 불고 있단다. 여기 하늘은 너무나 맑고 바람 한점 없는데 무슨 강풍이 분단 말인고! 바람이 자면 운행하겠지만 몇 시가 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일을 어찌할꼬! 설천하우스앞 매표소에 와서 매표원 아가씨에게 물어 보았다. 기계가 잘못됐는지 지금은 운행을 못하기 때문에 표를 팔 수가 없단다. 두 사람의 말이 석연치 않지만 시간을 끌 수가 없다. 일단 삼공리매표소로 가서 향적봉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겠다. 전화안내를 받아 택시를 불렀다. 20여분 뒤에 도착한 택시는 지난번 구간종주때 삼공리에서 함양까지 대절한 그 택시다.

지난 1월 27일 이틀간의 덕유구간을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악천후 때문에 백암봉에서 끊고 향적봉에서 이 곳으로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택시를 불렀다. 차가 많이 밀려 좀 늦을 수도 있다는 기사와의 통화가 끝나자 다른 택시 한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배도 고프고 급한 마음에 일단 여기 빈 택시를 탔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하자 삼공리로 따라 갈 테니 콜을 했으니 차비를 달라고 했다. 삼공리 주차장엔 이미 노선버스는 끊어졌고 곧 이어 도착한 콜택시에게 차비를 주려다 말고 함양까지 택시비를 흥정했다. 타기 싫은 택시를 타고 함양까지 갔었는데 여기서 또 만나다니...!

택시를 타자마자 "아! 그 때 그 택시네요." 하면서 인사를 했는데도 선그라스를 낀 채 본체 만체한다. 좀 미안했던 모양이다. 삼공리로 가면서 어제 서울서 온 대간꾼 3명을 태웠는데 열 여덟시간의 산행으로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한다. 안 그래도 오늘은 고생 꽤나 하게 생겼다.

- 향적봉 가는 길

삼공리매표소를 지나자 포장길은 이미 빙판으로 변해 있다. 앞에서 내려오던 아주머니 한 분이 엉덩방아를 찧고는 멋쩍었던지 옆 사람에게 한 마디 한다. "내가 이래서 스키장에 안 간다니깐!"

30여분을 오르자 상점이 나오고 백련사 2.8km 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백련사로 이어진 길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계곡은 구천동 계곡 답게 맑은 물이 흐른다. 계곡의 눈과 얼음과 검은 바위는 눈 덮힌 소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하늘은 너무나 맑고 햇볕은 눈(雪)위에 그대로 쏟아져 눈(目)이 정말 부시다.

길가의 나무에 이름표들이 붙어 있다. 나무 이름들이 재미있다. 다래,두릅,다릅나무가 있고 참나무가 있는가 하면 졸참나무도 있다. 박달나무, 까치박달나무, 물박달나무도 있고 거제수, 보리수나무도 있다. 동백이 있고 쪽동백도 있다. 단풍이 있는가 하면 당단풍나무가 있고, 물푸레나무와 쇠물푸레나무도 있다. 대팻집으로 쓰인다는 대팻집나무도 있고 아그배나무도 있다. 산철쭉, 산목련, 산뽕나무도 있다.

백련교와 이속대(離俗臺)를 지나자 백련사다. 고도를 높히며 향적봉으로 오르자 숨이 턱에까지 차 오른다. 검은 털모자에 회색 옷을 걸친 스님 인듯한 등산객이 어느새 따라 붙어 있다. 어디를 가냐고 물어 보았으나 알아 듣지도 못한 말만 하고 헹 하니 앞서 나간다.

향적봉대피소엔 정적만 감돈다. 파란 하늘에 하얀 산봉우리는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살아 있는 주목과 죽어 고사목이 된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의 세월의 이면을 보는 듯 하다.
오늘 백두대간의 이음새를 위하여 10.1km를 돌아 왔다. 구간종주 시작도 하기 전에 기진맥진이다.
나홀로 백암봉에 섰다.

- 헷갈리는 지도들

지봉으로 향하는 길은 눈이 장난이 아니다. 응달의 눈은 딱딱하게 굳어 발을 옮겨 놓을 때마다 구들장처럼 널찍하게 들고 일어난다. 눈이 많다는 말을 실감하겠다. 요 며칠간 눈이 오지 않았는데도 전진하는데 애를 먹는다.

횡경재에 도착하니 이정표가 두 개나 있다. 고도표시가 너무 틀린다. 하나는 해발 1,260m로 표시되어 있고 하나는 1,350m로 표시되어 있다. 조금 가니 지봉안부에 도착한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설치했을 법한 이정표엔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방향만 표시된 이정표는 거리표시용 팻말이 제거된 상태로 흉측하게 서 있다. 지봉으로 향하는 등산로엔 등산로 아님(NO TRAIL)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아무런 생각없이 막아 놓은 것 같다. 이정표대로라면 이 곳까지 온 등산객은 여기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있다. 어디로 가는 길목인지 알 수도 없고 지봉으로 향하는 길목은 등산로가 아니라고 되어 있으니...

지봉안부에서 20여분 오르면 지봉이다. 정상엔 못봉(1,342.7m)으로 표시되어 있다. 연못池를 쓰서 지봉(池峰)이고 우리말로 못봉으로 해 놓은 것이리라. 그런데 1996.4월에 인쇄된 국립지리원 1:5만 지도엔 더 북쪽에 있는 1,274.7고지를 池峰으로 표시해 놓고 있으며, 이 봉우리를 조선일보사가 발행한 실전백두대간종주산행에서는 투구봉으로 기술해 놓고 있다. 또한 덕산재를 내려 서면 산행안내표시판엔 대덕산을 투구봉으로 표시해 놓고 있어 산행객을 어리둥절케 한다.

지봉에서 월음령을 지나 오르막을 오르면 키 큰 싸리나무가 배낭도 끌고 심지어 스틱도 잡아 끈다. 싸리나무와 한참을 싸우고 나면 대봉에 오르게 된다. 정상에서 오르던 방향으로 앞을 보면 빼재가 보이고 신풍령휴게소 건물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이 보인다. 30여분 거리에 있는 갈미봉을 돌아 미끄러운 눈길을 1시간여 내려서면 빼재다. 신작로를 닦느라 재를 깊게 파헤쳐 대간이 뚝 잘린 꼴이 되어 버렸다.

'빼재'라는 이름에는 그 험난한 고갯길만큼이나 많은 내력이 담겨 있단다. 전하는 이야기로 고개에는 산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고갯마루에 산적들이 잡아먹은 산짐승 뼈가 쌓여 있어 ‘뼈재’라고 부른 것이 고개 이름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뼈재가 경상도 사투리와 만나 빼재로 되었단다. 경상도와 갱상도의 차이쯤 될런지... 고개를 내려서면 큰 돌에 '경치가 아름다운 고개'라는 뜻의 수령(秀嶺)이라고 새겨져 있다. 요즈음 지도들은 빼재를 곧잘 '신풍령'으로 적기도 하는데 이는 자동차 길로 바뀔 때 고갯마루에 생긴 휴게소 이름 '신풍령'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신풍령휴게소 안의 젊은 부부는 난로가에서 인기척에 놀라 이쪽으로 쳐다 본다.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청해 보지만 밥은 안 된단다. 우동으로 간신히 허기를 면하고 잠잘 곳을 찾아 본다. 민박집은 3킬로 정도 내려가야 있다고 해서 여기서 잘 수있도록 간청을 하니 기름이 없어 방에는 불을 지피지 않는다고 한다. 괜찮다고 하니 화장실에서 자라고 한다. 냄새가 좀 나서 그렇지 따뜻할 거라고 한다. 물이 얼지 않도록 보일러를 켜 둔다고 한다. 짐을 꾸려 화장실에 가니 생각보다 깨끗하고 방열기가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매트를 깔고 침낭을 펼치니 부러울 게 없이 아늑하다.

- 파출소에서 커피를

간밤에 바람이 심하게 부는 소리가 들렸다. 6시20분이다. 누운 채로 새벽하늘을 보니 구름이 많이 끼여 있다. 6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일어나기가 싫다.

짐을 꾸려 아스팔트 길로 나선다. 바람이 심상치 않다. 하늘도 구름으로 잔뜩 찌푸리고 있다. 깊은 빼재 절개지 만큼이나 급경사를 올라 대간 마루금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수정봉 안부까지는 잡목 숲으로 산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수정봉 안부에 도착하니 드디어 눈을 뿌리고 만다. 앞에 있을 삼봉산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이 모양이면 오늘도 종주구간을 앞당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제도 좀 무리를 한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삼봉산을 오르는 길은 어느새 은세계로 변한다. 구름이 몰려와 지나가면서 나뭇가지에 솜털로 치장을 해 놓고 간다. 삼봉산 정상엔 조그만 돌에 '덕유삼봉산'이라고 쓰여 있다. 빼재를 지나면서 덕유산이 끝난줄 알았는데... 여기도 덕유산인가? 삼봉산 바위틈에 조그만 금속판하나가 붙어 있다. 사연이 있어 보이는 시(詩)하나가 지은이 이름도 없이 새겨져 있다.

진달래

진달래 밭에서
너만 생각하였다.

연 초록빛 새 순이 돋아나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는
眞眞이

이젠 너만 그리워하기로
사나이 눈감고 맹세를 하고

죽어서도 못 잊을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우리는 간다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랴

온 산에 불이 났네
진달래는 왜 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지천으로 피어서

그래 맞아! 조금 있으면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겠지. 봄도 얼마 남지 않았어!
아침을 거르고 와서 인지 허기가 진다. 삼봉산 내리막길을 내려 갈려면 아이젠도 필요할 것 같다. 눈내리는 길섶에 배낭을 내려 집사람이 싸 준 떡으로 요기를 한다. 떡은 딱딱하게 굳어 고무같다. 아이젠을 차고 내리막을 내려서자 뭐가 갑자기 달아 난다. 토끼다. 지도 놀라고 나도 놀란다.

삼봉산 급경사를 타고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 오니 큰 밭들이 펼쳐져 있다. 아마 고랭지 채소밭인지 여기 저기 배추들이 얼어 넘어져 있다. 소사고개 양지 바른 논에서 햇반과 김치로 국밥을 만들어 맛있게 먹는다. 삼봉산의 날씨와는 딴판으로 햇살이 따뜻하다.

소사고개를 지나 삼도봉 안부까지는 이런 저런 구릉과 밭으로 대간마루금을 의심케 한다. 시야가 좋아 지나온 삼봉산과 삼도봉, 대덕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삼도봉 된비알을 오르니 다리에 힘이 많이 든다. 숨도 가쁘다. 어제 무리한 탓도 있거니와 길이 예사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삼도봉과 앞에 있는 대덕산은 차이가 약 40미터 밖에 안되지만 멀리서 봐도 대덕산은 이름 값을 하는 것 같다. 육중한 풍채를 자랑하며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점잖아 보인다. 대덕산 안부에 도착하니 또 그 눈이다. 대덕산오르는 길은 산죽으로 이어져 있다. 산죽잎에 눈이 하얗게 내려 앉아 있다. 스틱으로 산죽 잎의 눈을 털면서 올라간다. 대덕산 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고만고만한 키의 싸리나무 밭이다. 싸리나무며 선 채로 말라 버린 엉컹키 꽃잎에 하얀 눈꽃이 피어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

대덕산을 지나면 갑자기 고도를 600미터 이상을 낮추어야 한다. 이 또한 만만한 것이 못 된다. 얼어 있는 길 위에 살짝 뿌려진 눈으로 인하여 무심코 밟았다간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어야 한다. 대덕산 정상에서 30여분을 내려오면 얼음골 약수터에 닿는다. '얼음골 약수터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라는 팻말 하나가 나그네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로부터 덕산재에 닿는 데는 미끄러운 눈길로 한 시간쯤 걸린다.

덕산재에 내려서니 문을 닫은 주유소와 매점 건물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텅빈 주유소에 서있던 경찰 순찰차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산에서 내려오는 나에게 다가온다. 무풍까지 태워 주겠단다. 정말 고맙다. 나는 울산 살고 거창까지 가야 하는데 무풍에서의 차편을 물어 보았으나 전주에서 이 곳으로 온지 며칠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차편도 알아 볼 겸 파출소에서 커피 한잔 하고 가랜다. 갈수록 고마운 분이다. 파출소에 들어서니 따뜻한 난로가에 의자를 하나 내어 놓는다. 커피에다 택시까지 불러주며 차에까지 마중을 해준다. 정말 고마운 경찰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무풍파출소 이치형 경장님.(終)

6.접근로 및 복귀로
- 접근로 : 울산-무주리조트(관광버스 @15,000), 무주리조트-삼공매표소(콜택시 @16,000)
- 복귀로 : 덕산재-무풍(경찰순찰차), 무풍-거창(택시 @35,000), 거창-울산(버스 @10,000)

7.제6차 구간종주 계획
- 일정 : 2002. 2.14(목)
- 구간 : 중재-백운산-깃대봉-육십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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