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신선주정단맥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충주

 

 백두신선지맥이 백두대간 마패봉에서 분기하여 흐르다 장연터널 북동측 충주시 수안보면, 괴산군 연풍면, 장연면의 삼면봉인 등고선상670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시종일관 장연면과 수안보면의 경계를 따라 아홉사리고개(490, 1.1)-안탑골고개(430, 0.4/1.5)-석장골고개도로(390, 2.5/4)-597번지방도로 기룡목재(290, 1.2/5.2)-周井산(오산, △440.2, 1/6.2)-바람재 임도(290, 1.7/7.9)-탁영대(250, 2.2/9.6)-괴산수안보간 자동차전용도로(170, 0.6/10.2)-19번국도(130, 0.7/10.9)를 지나 괴산군 장연면 광진리 석문천과 오가천이 만나는 곳(130, 0.5/11.4)에서 끝나는 약11.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는 처음에 발표할 때 도면상 산이름이 하나도 없어 망설이다가 영진5만지도상에 △440.2봉이 오산으로 표기가 되어있어 신선지맥에서 분기하였으므로 백두신선오산단맥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현지답사 결과 그 봉우리 이름이 주정산으로 밝혀져 산줄기 이름을 “백두신선주정단맥”이라고 수정을 하게 된다

 

산경표따르기 카페 개설에 따른 부탁의 말씀 

 

<카페명 : 산경표따르기,  부제명 : 우리산줄기 바로 세우기>


다음(daum)에 카페를 개설했습니다. 산행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닙니다.

백두대간보전법이 생긴지도 어언 11년째입니다

법만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태백산맥 등이

지금도 각종 지리교과서나 방송 기업 정부와 단체 등 사회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누천년간 사용해오던 우리고유의 산줄기 이름과 흐름을 

1769년 여암 신경준 선생께서 영조의 명을 받아

족보형식으로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정보 집합서인

산경표에 기초한 백두대간 낙동정맥 등 1대간 1정간 13정맥 산줄기를

바로 알고 바로 잡아보자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 주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입하시고 간단한 힘 실어주는 가입인사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구체적인 사업도 아직은 확정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모든 회원님들과 숙의 과정을 거쳐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시작이라 가입인원이 적습니다. 

내용도 아직은 빈약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뜻을 같이 하는 님들의 열정에 힘입어 

알찬 내용으로 채워지고 빛을 낼 것입니다  

 

일반인, 산악인 관계 없이 주변에 가입 홍보도 부탁드리며,
힘있는 카페가 되도록 가지고 계신 자료들도 공유하였으면 합니다

 

앞으로 우리산줄기 이름이 널리 실생활과 인문지리 등 학문에도 쓰일수 있도록

다같이 힘을 합쳐 주십시요.

카페명: 산경표따르기
http://cafe.daum.net/woori.sanjulgi ← 클릭

 

고맙습니다! 꾸뻑~  

 

신경수, 다올, 현오 배상

 

 

 

사진이 안보이시면 아래를 클릭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http://blog.daum.net/shinks32/3583



 

백두신선주정단맥종주제1-1구간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충주

 

언제 : 2014. 11. 29(토) 맑음

 

누가 : 신경수

 

어디를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탑골에서 아홉사리를 거쳐 백두신선주정단맥으로 올라 백두신선지맥 분기점을 확인하고 빽해서  백두신선주정단맥을 따라 597번지방도로 기룡목재로 내려와 수안보면 버스정류장까지   

 

구간거리 : 11.7km   접근거리 : 3.5km   단맥거리 :  5.2km    하산거리 : 3km

 

구간시간 8:40  접근시간 1:50   단맥시간 3:20   하산시간 0:50   휴식시간 2:20  헤맨시간 0:20

 

 

 

프롤로그

 

밀린 답사기도 조금 손보면서

산에갈 준비를 하다가 3시쯤 눈을 붙입니다

4시에 깨우라하였으나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4시20분에 깨웁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수안보 가는 버스는 6시40분이 첫차라 첫버스를 안타도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빤하고 내리 금요일까지 눈이나 비가 온다는 예보에 어거지로 가는 산행이라

제대로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결혼 35주년 되는 날인데 뭐라고 했으면 안가려고 했지만

겉으로라도 흔쾌히 갔다 오라고 하니 웃어야될지 울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너만 결혼기념일이냐 나도 결혼기념일이다 뭐 그런 배짱으로 집을 나섭니다

 

2시간만인 8시40분에 수안보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탑골마을로 갑니다 그런데 가다말고 서더니 이후는 길이 엉망이라 더는 못간다고 내리랍니다

참 어이가 없습니다 비포장도 아니고 상태좋은 포장길인데 못간다고 하니 내릴수밖에 없습니다

 

수안보면 탑골 연립주택 앞 : 9:00

 

좋은 포장도로를 따라 계곡으로 빨려들어가는데 멋드러진 전원주택같은 탑골1길 127집 앞을 지나갑니다

 

좌측 계곡변으로 연두색 철담장이 쳐진 길로 갑니다

 

삼거리에 이르고 아마도 이곳이 안탑골마을인 것 같습니다

우측길로 가면 안탑골안부로 가는 길일 것이고 좌측 일지암 걸이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안탑골마을 삼거리 : 9:10

 

삼거리에 이르고 직진하는 길은 비포장도로입니다

 

좌측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계곡을 건너면 한창 중창불사를 하고 있는 일지암이라는 암자가 있는 곳입니다

가시 많은 가로수는 엄나무가 아니라 두릅나무입니다

 

암튼 여기까지는 너무나 상태가 좋은 포장도로입니다

하여간 웃기는 기사를 다만난 것입니다 그것도 내복이지요^^

 

일지암삼거리 : 9:13

 

비포장길로 협곡안으로 빨려들어가는데 역시나 상태가 좋아 길이 끝나는 아홉살이마을까지 승용차로도 너끈히 들어갈수 있는 길이 계속되며

동네집들도 있고 사람들도 기거하는 집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좌측 계곡으로 사방댐이라는 표석이 있는 곳을 지나갑니다

좌측 산비탈은 그냥 수직직벽 수준의 급경사 산사면입니다 사진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곳에 만드는 것이 보이자 댐인 것입니다

 

한참을 오르다가 보면 좌측으로 또 사방댐 표석이 나옵니다

 

9:25

 

우측으로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커다란 축사를 지나

 

탑골1길286 민가를 지나

 

9:30

 

폐가 옆으로 올라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출입금지 팻말이 있어 못가고 우측 비포장으로 오릅니다

그러나 나중에 결과는 바로 그 좌측으로 가는 길따라 간 곳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기거를 하고 있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흙집

 

좌측 끝으로 적당히 올라

 

좌측으로 작은 계울을 건너 우측 계곡으로 방향을 잡으면 바로 아홉사리고개로 올라가는 길이고

나는 산줄기 좌측 사면으로 난 길 흔적을 따라 진행을 합니다

 

잡초들이 무성한 너은 평토작업을 한곳으로 올라 그 평지를 가로질러 가면 삼거리길이 나옵니다

좌측에서 올라온 길은 바로 좀전에 출입급지 팻말이 있는 바로 그길을 따라 올라온 곳이 바로 이곳이고

직진 왼쪽 사면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곳도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우측으로 몇M 오르면 다시

 

너른 평토작업을 한 곳이 나옵니다 

 

계곡 사이로 난 길 흔적을 따라 올라가야합니다

 

너른 평지 삼거리 : 9:40   9:50출발(10분 휴식)

 

가시 풀 무성한 묵은 길로 남남서쪽 계곡으로 난 흔적을 따라 오릅니다

 

그 길을 잘 살펴보면 그 옛날에는 경운기길이었던 모양입니

 

얼마 안가 그 길 흔적은 없어지고 잘 찾아보면 우측 사면으로 트레버스하는 길 흔적을 잘 찾아 오릅니다

작은 능선에 이르고 능선을 가늠하며 오르다가 길 흔적마저 없어져 버리고

빨래판같은 급경사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10:30   10:35출발(5분 휴식)

 

미끄러지며 뒤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박박기어서

천신만고 끝에 등고선상590m 지점 백두신선주정단맥 본능선에 이릅니다

 

본능선 :  10:45

 

좌측으로 분기점을 확인하기 위해 오릅니다

등고선상670봉 어깨인 분기점으로 올라 섰습니다

 

혹시나 670봉 정상에 이르면 무슨 산이름등 자료를 얻을 수 있을가하고 우측으로 약간 휘어서 잠시 오르면

펑퍼짐한 운동장 같은 등고선상670봉 정상입니다

 

김해김씨 묘가 있습니

대단하신 우리네 조상님들입니다

코 명당자리는 아닌데 왜 무엇 때문에 이곳에다 묘를 썼을까

아무리 궁금해도 답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잠깐 빽을 해 백두신선지맥상 백두신선주정단맥 분기점에 이릅니다

 

분기점 : 11:05  11:25출발(20분 휴식)

 

이제부터 백두신선주정단맥길입니다

 

신선이 주정하면서 가는 산길이라 운치가 절로 나는 산길입니다 

  

능선으로 길은 없으나 가시 잡목 등이 없어 지나가는데는 더없이 좋으며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그대로 살아있어 푹신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듯한 기분입니다

 

살짝 오른 등고선상610m 지점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능선은 여맥능선이며

단맥은 좌측 북북서쪽으로 내려갑니다

 

11:30

 

가야할 산줄기를 나뭇가지 사이로 보면서 내려갑니다 

길 흔적을 따라 내려가다가 빽을 합니다 좌측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입니다 

본능선에 이르고 보니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흔적도 없어 무심코 가다보면 그리 갈 확률100% 지점입니다

등고선상570M 지점입니다 

 

11:35  11:55출발(20분 헤맴)

 

급경사를 내려가다     

   

충주시청산악회에서 "충주시경계트레킹"을 하면서 붙여놓은 표시기 한개를 포착합니다

끝까지 시경계능선으로 가는 산줄기이므로 도움을 좀 받을까 했는데 몇개 없고

아리송한 곳에는 그들도 아리송했는지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면서 표시기로 표시를 하면서 진행을 하게 됩니다

 

펑퍼짐한 낙엽송 길로 내려가 등고선상490M ㅏ자안부에 이릅니다

우측 아홉사리쪽으로만 길 흔적이 있는 고개라 아홉사리고개라고 표기하기로 합니다

 

아홉사리고개 : 12:05

 

등고선상530봉으로 올라서면 T자능선이 나오고 길은 좌측 서쪽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가는데

얼마안가 급경사로 꼬꾸라지는데 흡사 무저갱속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 같지만 얼마안가

    

우측 사면이 벌목이 된 곳이 나오고 산판길이 우측 아래로 올라와 있습니다

 

펑퍼짐한 등고선상410m ㅏ자안부에 이릅니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안탑골마을이 나오므로 안탑골고개라고 표기하기로 합니다

 

안탑골고개 : 12:30   12:32출발(2분 휴식)

 

장송숲길로 좋은 길을 따라 오릅니다

잘 살펴보면 아마도 포크레인이 무슨  목적으로 한번 올라간 흔적이 있는 산판길 수준입니다

 

우측 계곡 사이로 백두계명지맥 꼬부랑재에서 분기한 여맥산줄기인 높은 첩푸산(적보산)(△698.5)의 쌍봉이

이산줄기가 끝날때까지 따라오며 보입니다

 

살짝 오른곳 : 12:40

 

우측으로 거대한 암봉을 당겨 보았습니다

월악산 영봉이 그 특유한 모습으로 역시 가는내내 따라오며 미소를 짓습니다

함 오라구요^^

 

장송숲길로 오르면서 뒤돌아본 능선입니다 

 

백두계명지맥 산줄기와 백두대간이 월악산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망부석이 됩니다

이러니 신선인들 대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등고선상530봉어깨에서 조망이 기가 막혀 우측으로 돌면서

 

첩푸산 쌍봉

 

월악산 만수봉 영봉

 

그리고 백두신선지맥 신선봉과 백두대간 마역봉

 

조령산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능선

 

그리고 박달산

 

수안보 인근 마을

 

한번 더 당겨봅니다 월악산의 암릉들을........

 

조금 가면 등고선상530봉 정상에 이릅니다

 

등고선상530봉 : 13:00  13:10출발(10분 휴식)

 

우측 두릅밭으로 내려가 안부에 이릅니다

 

13:15

 

바위 사이로 올라

 

바위들이 널린 능선으로 올라 살작 오른곳에 이릅니다

 

13:20

 

우측으로 펑퍼짐한 능선으로 가시 잡목 넝쿨 등을 조심히며 내려가 두릅밭인 안부에 이릅니다

이곳은 두릅철 이른 봄에 오면 따봉일 것입니다 두릅의 그 알싸한 향이 그립습니다

 

13:25

 

펑퍼짐한 그런 능선으로 오릅니다

등고선상550m 지점에서 우측으로 평지길을 가 등고선상550봉 정상으로 추정이 되는 곳에 이릅니다

 

등고선상550봉 : 13:40

 

펑퍼짐한 능선으로 내려가면서 좌측으로 바라보이는

 

백두신선지맥상 박달산의 위용도 대단합니다

그 박달산 정상에는 단군조선의 세보가 있습니다

 

7년전 백두신산지맥을 종주할 당시 쓴

나의 "백두신선지맥종주기"에서 박달산 정상에 올라 느낀 소회를 잠시 여기에 실어 그때를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천천히 오르니 조망 엄청 좋은 박달산 정상은 산불자동감시카메라 밑 오석정상석에 “박달산825m 충북 괴산 느릅재2.5km 추점리3.4km”라고 합니다 언젠가는 느릅재에서 올라 주월단맥을 이어갈 것이다

 

“대한민국국기게양대 33대 단군00왕국 진산으로 구구절절”이라 씌인 스텐국기게양대엔 망가진 국기가 비를 맞아 휘감겨있는 모양새와 임금의 이름을 누군가 훼손하여 알아 볼 수가 없게 만들어 놓아 영 보기가 안좋았으며 진한 비구름속이라 주변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나쁜 짓을 누가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라 집에 와 찾아보니 어럅셔 “단군 감물”이며 지금의 괴산군 감물면의 한자인 甘勿과 같은 글자인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러면 그 임금글자를 훼손한 사람은 추측이 되지만 반듯이 그런 것은 아니므로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누가 훼손했든지 간에 하루 속히 글자를 복구해야 우리 고대사의 일부라도 후손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단군조선에 대해 몇글자 적어보고 지나가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시조를 단군이라 알고 있으며 일제의 날조된 역사관에 의해서 그나마도 신화로서만 단군임금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역사의 도적행위나 마찬가지인 일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켜 우수한 자기들이 우매한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시키기 위해 그리 만들었을 뿐이다

 

더구나 불과 2천여년밖에 안되는 고주몽 박혁거세 온조마저도 신화로 여기거나 아득한 원시시대처럼 느끼게 만들었으면서 같은 연대의 중국사나 서양사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존인물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금의 우리 국사교육이 이런 사고를 고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제1의 숙명적인 과제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의 단군에 대한 글은 단기 4319년(서기1986년) 11월 고동영이 우리의 고대서인 "단기고사, 한단고기, 규원사화" 등을 토대로 "단군조선47대"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바 그 중에 일부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여기에 옮겨 본 것이다

 

우리나라는 나라명이 桓國(한국)이며 파내류산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파미르고원이나 천산을 말한다 바로 그 산아래서 천해의 동쪽까지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천해는 바이칼호이며 그 동쪽이라함은 만주와 지금의 우리나라를 말한다

 

남북 오만리 동서 2만리에 걸쳐있었다 여기에는 모두 12나라 아홉족속 즉 九桓이 살았다 즉 이들이 모두 한국사람들인 것이다

 

그 때는 법과 명령이 없어도 모든 삶은 이치에 맞도록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공적인 일을 결정할 때 그를 대표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어 12나라 아홉족속이 다 모여 桓仁을 桓花로 둘러쌓인 곳에 앉히고 높이 임금으로 추대하여 드디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桓花는 槿花 즉 지금의 무궁화꽃을 말한다

 

그때가 BC7199년의 일이었으며 그후 桓仁시대가 열리며 BC3899년 까지 7세 역년 3301년을 이어왔다

 

혹자는 역년 63182년이라 하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 알수는 없는 일이다

 

제1세 安巴堅 桓仁

제2세 赫 胥 桓仁

제3세 古是利 桓仁

제4세 朱于襄 桓仁

제5세 釋提壬 桓仁

제6세 邱乙利 桓仁

제7세 智爲利 桓仁

 

이때에 “우주의원리”를 밝힌 天符經은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다음에 나라를 세우신 桓雄天皇이 배날나라를 세우면서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든 鹿圖文으로 옮겼으며 이 천부경은 伏羲씨가 지은 桓易의 모체이며 여와와 주양을 거쳐 주나라때 周易이 되었다

 

또한 녹도문은 현재 경남 남해군 낭하리 계곡과 만주 길림성 경박호 선춘령과 부오소리의 암석에 그 때 새겨놓은 것으로 보이는 글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桓國의 마지막 임금때 사람은 많아지고 물자가 부족해 삼위산과 태백산에서 인간을 널리 유익하게 할 수 있다고 여겨 지위리 한인의 아들인 환웅을 천거하여 “弘益人間”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天符印 3개를 주며 3천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고 무리들이 桓雄을 임금(天皇)으로 추대하고 나라이름을 倍達이라 하였다

 

이래서 배날나라는 BC3898년부터 BC2334년까지 18세 역년 1565년간이다

 

제1세 桓雄 居發桓 :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인간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360여가지 일을

風伯 雨師 雲師에게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였으며

역법을 만들어 일년을 365일로 정하였으며

곰족의 딸을 황후로 받으며 혼례법을 제정하고

그 외 여러 가지 복식 제도등을 만들었으며 공수와 두 열이라는 음악이 있었고 계산할 때 쓰는 算木이 있었다

제2세 桓雄 居佛理

제3세 桓雄 右耶古

제4세 桓雄 慕士羅

제5세 桓雄 太虞義 : 黙念 淸心 調息 保精의 장수법 터득

아들 12명중 막내아들 太皞가 바로 伏羲씨로 天河에서 卦圖를 얻었는데 이것이 바로 河圖이며 洛書와 함께 桓易의 이치가 되었으며 八卦도 여기서 이루어졌다

제6세 桓雄 多儀發

제7세 桓雄 居 連

제8세 桓雄 安夫蓮 : 우리의 시조인 高矢씨의 후손인 小典에게 지금의 중국 섬서성 기산현 서쪽에 있는 姜水에서 군사를 감독하였 고 그의 아들이 神農씨로 의약의 체계를 세웠으며 물 물교환 제도를 만들어 생활이 편리해졌다

제 9세 桓雄 養 雲

제10세 桓雄 葛 古

제11세 桓雄 居耶發

제12세 桓雄 州武愼

제13세 桓雄 斯瓦羅

제14세 桓雄 慈烏支 : 蚩尤天皇이라고도 하며 창과 투구등 쇠병기를 만들었 으며 12제후의 나라를 합병하였다

중국 軒轅과 전투를 하여 이겼으며 도읍을 지금의 중국 절강성 항주 근방에 있는 靑丘로 옮겼다

망나니인 헌원이 치우천황을 뵈러 가는 길에 사람이 되라는 말과 함께 자부선인에게 삼황내문경을 받았 으며 이것이 노자로 이어져 도교의 기초가 되었으며 헌원은 지금도 도교의 개조로 숭배받고 있다

제15세 桓雄 蚩額特

제16세 桓雄 祝多利

제17세 桓雄 赫多世

제18세 桓雄 居弗檀 : 檀雄이라고도 하며 그의 아들 단군 왕검이 단군조선 을 건국하였다 이때가 BC2333년의 일이다

 

단군왕검은 배달나라 18세 거불단 환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곰족의 왕녀이다 BC2370년 5월2일 寅時에 태어나 성장하여 河伯의 딸과 결혼하여 扶婁 扶蘇 扶虞 夫餘 이렇게 4아들을 두었다

 

九桓의 백성들이 BC2333년 10월3일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왕검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를 연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0월3일을 개천절로 정한 것이다

 

도읍을 새로운 땅이라는 뜻을 가진 지금의 중국 할빈의 완달산에 있는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이름을 “檀”이라 하였으며 이 아사달을 후세 사람들이 왕검성이라고 불렀다

 

이런 단군조선은 BC2333년부터 BC238년까지 47대 역년 2096년간이다

 

제1세 檀君 王儉 : BC2311년 도읍을 송화강가로 정하고 이름을 平壤이라 하였다

BC2283년 강화도 정족산에 삼랑성을 마리산에는 塹城 檀을 만들었다

BC2266년 도산회의에서 중국의 태평성대를 말하는 요 순시절의 순임금이 회대의 제후를 감독하게 하였다

BC2241년 3월15일 세상을 뜨다

제2세 檀君 扶婁 : BC2238년 도량형의 표준을 정했으며 물건 가격을 통 일시켜 모두 편리하였다

BC2231년 토지제도인 정전법 시행과 토지대장을 만들 어 세금의 기틀을 잡았다

BC2299년 신지 귀기가 七回歷과 邱井圖를 만들었다 칠회력이라 함은 일곱신에게 제사 지내는 주기로 천신 월신 화신 수신 목신 금신 토신을 말하며 요즘의 일주 일인 “일월화수목금토”요일을 말하는 것이며 구정도는 지금의 지적도를 말한다

제3세 檀君 嘉勒 : BC2181 을보륵이 국문정음인 지금의 한글의 모태가 되는 “加臨土” 38자를 제정하여 소통이 잘 되도록 하 였다

지금의 한글과 흡사하여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는 뜻은 이 가림토를 조금 변형하여 새로 정비하였음 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BC2180년 동양사학의 원조인 倍達留記를 편찬하였다

제4세 檀君 烏斯丘 : BC2137년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왕으로 봉했다 후에 그의 자손들이 몽고족이 되었다

10월 태백산에서 하느님께 제사 지내고 선약(인삼)을 얻었다

BC2133년 조개껍질로 만든 圓孔貝錢을 만들었다

제5세 檀君 丘乙 : BC2087년 감성관이 천체의 위치와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기를 만들어 천도와 맞게 하였다

제6세 檀君 達門

제7세 檀君 翰粟

제8세 檀君 于西翰

제9세 檀君 阿述 : BC1980년 매년 8월1일을 정기회의 날로 정하여 민권 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제10세 檀君 魯乙 : BC1950년 임금의 자문기관 설치

BC1949년 고시제도 도입

BC1946년 신원함 설치 민원해결

BC1893년 천문대 축조 감성관을 둠

제11세 檀君 道奚 : BC1891년 종교개혁을 실시 종교의 중흥시대를 열었음

BC1879년 곡식을 찧는 그릇과 띠풀로 지붕을 만들었으 며 배를 만들어 무역이 트였으며 농사를 절기에 맞추어 짓도록 하였음

BC1864년 만국박람회개최

BC1854년 기계를 만드는 작청을 설치해 현상을 걸어 발명을 한사람에게 상을 주었다

예를 들면 자명종 진천뢰 측우기 등 26점

제12세 檀君 阿漢

제13세 檀君 屹達 : BC1767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눈 지방자치제 실시

BC1763년 독서 활쏘기 등을 가르키는 법정학교를 설립 해 학생인 國子郞을 뽑았으며 사람들은 이를 天指花郞 이라 불렀다

제14세 檀君 古弗 : BC1680년 쇠로 子母錢이라는 돈을 주조했다

BC1670년 국립대학 설치

BC1666년 인구조사를 하니 1억8천만명이었다

제15세 檀君 伐音

제16대 檀君 尉那

제17세 檀君 余乙 : BC1535년 고수노가 政法原論 38질을 바침

BC1533년 日蝕이 있었음

제18세 檀君 冬奄 : BC1480년 고수노에게 國史 18권을 편찬하게 함

제19세 檀君 縱年 : BC1433년 국문서당을 세움

BC1426년 조개로 貝葉錢을 주조함

BC1420년 공창을 설립 종이와 옷감을 생산하였음

BC1410년 송화강가에 조선소를 설치했음

BC1391년 황운갑이 지남차와 목행마를 발명하였음

BC1385년 목아득이 우주원리론을 저술하였음

BC1382년 지이숙이 주천력과 팔괘상중론을 저술했음

제20세 檀君 古忽 : BC1341년 共工 을홀이 九桓의 지도를 만듬

제21세 檀君 蘇台

제22세 檀君 索弗婁

제23세 檀君 阿忽 : BC1206년 군관학교를 설립해 병학을 가르쳤다

BC1183년 토지제도인 井田法을 가르침

제24세 檀君 延那 : BC1152년 조대원이 정치원론 10권을 바쳤음

제25세 檀君 率那

제26세 檀君 鄒魯 : BC1024년 의학원을 세워 백성들에게 가르침

BC1005년 위문국이 정치론 28권을 저술함

제27세 檀君 豆密

제28세 檀君 奚牟

제29세 檀君 摩休 : BC925년 왕문이 예부터 있어온 神篆이 번거로워 새로 운 글을 지었음

제30세 檀君 奈休 : BC880년 부분석이 정법원리론을 저술하였음

제31세 檀君 登屹

제32세 檀君 鄒密 : BC837년 3월 日蝕이 있었음

제33세 檀君 甘勿 : BC816년 황선문이 유황발사총을 발명하였음

BC813년 감물산 아래에 삼성사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지냈음

BC812년 순길이 장생불로단을 만듬

BC804년 고삼도에게 현인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물 으니 그 방법은

가까이 하여 그 겸손함을 보고

멀리하여 그 신용을 보며

갑자기 물어 그 말재주를 보며

급히 주어 어떻게 처리하는 가를 보며

난을 말하여 그 용맹을 보며

술에 취하게 하여 그 태도를 보며

색을 시험하여 그 몸가짐을 보며

재물로써 시험하여 그 청렴함을 보며

글을 통하여 그 학문을 보며

말로 물어 그 변론을 보며

잡사람과 같이 있게 하여 그 절개를 관찰하는

11가지가 구비되면 비로서 현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박달산에 있는 감물왕국이 바로 이 단군님께서 치세를 하였던 것이며 안타깝게도 지워져 있으니 다시 글자를 새겨야 할 것이다

 

제34세 檀君 奧婁門

제35세 檀君 沙伐 : BC765년 日蝕이 있었음

제36세 檀君 買勒 : BC699년 초나라사람 오자도가 목면종자를 가지고 입국

BC687년 채저명이 정치형법서를 전하였음

BC680년 오경박사 우문충이 토지를 측량하여 지도를 만들고 遊星說을 저술했음

BC675년 우세숙이 성리학과 심리학을 저술함

BC650년 손숙문이 의학과 화학을 저술함

제37세 檀君 麻勿 : BC642년 쇠로 方孔錢을 주조함

제38세 檀君 多勿

제39세 檀君 豆忽 : BC525년 8월에 日蝕이 있었음

제40세 檀君 達音 : BC507년 윤복지가 도덕경을 저술함

BC500년 진개가 치국요람을 저술함

제41세 檀君 音次 : BC488년 공상의가 종교론을 저술함

제42세 檀君 乙于支 : BC469년 철인 이일선이 천리경을 저술함

BC467년 백호돈이 지리학과 광물학을 저술함

제43세 檀君 勿理 : BC454년 장자학이 논리학을 저술함

제44세 檀君 丘勿 : BC423년 日蝕이 있었음

BC421년 최화덕이 동물학과 식물학을 저술함

BC416년 서백원이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사상의학을 저술함

BC410년 국학박사 황운원이 백과서를 저술함

BC408년 유종득이 理財學을 저술함

BC405년 적우순이 심리학을 저술함

제45세 檀君 余婁 : BC393년 법률을 개정하여 대동률령 공포

BC385년 곽태원이 양생론을 저술함

BC382년 마자은이 이기일원론을 저술함

BC369년 장소부가 의학대방을 저술함

BC367년 홍문선이 태학조문을 저술함

BC357년 조문휴가 자본론을 저술함

제46세 檀君 普乙

제47세 檀君 高列加 : BC274년 소정국이 건축학을 저술함

BC271년 구노선이 種樹學을 저술함

BC265년 신원함 설치 민원해결

BC248년 10월1일에 日蝕이 있었음

BC239년 해모수가 군사를 일으켜 북부여를 세움

BC238년 임금이 유약하여 제후들의 난을 이기지 못 하고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는 단군 조선을 넘어 기원전 약7199년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며 바이칼호 동쪽 드넓은 지역을 다스리며 용맹을 떨쳤으며 갖가지 법과 학문 등이 꽃을 피웠으며 갖가지 기술들이 발전하여 국민들이 편리하게 살만한 그런 태평성대가 47세 단군때에 이르러 급격히 쇠약해져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워 BC239년에서 BC58년까지 6대 역년 180년을 이어갔으며

 

그 사이 부여임금의 딸인 동신성모 파소의 아들인 박혁거세가 13살 때 왕으로 뽑혀 신라를 건국했으며

 

이후 고주몽이 북부여를 이어받아 단군조선의 북쪽에 고구려를 세웠으며 뒤를 이어 온조가 단군조선의 땅인 황하와 회하를 중심으로 한 중국대륙 동쪽에다 백제라는 나라를 세워 삼국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7천 누백년의 역사를 없애고 작금 우리의 교육은 여기서부터 역사라 하였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상으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았으니 이 글을 보시는 산님들 우리 역사의 허구성을 잠시나마 한번쯤 뒤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슴 속에서 불덩어리 같은 것이 치밀어 오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 높게 보이는 등고선상550봉은 펑퍼짐한 정상에 납작한 폐묘가 있습니다

 

13:50   13:55출발(5분 휴식)

 

살짝 오른 곳에서 첩푸산을 보며 내려갑니다

 

14:00

 

원시적인 길로 내려가 등고선상430m 살작 내려간 안부에 이릅니다

 

14:12

 

좌측으로 휘어서 큰 바위들이 널린 곳으로 진행해서 등고선상450m 펑퍼짐한 봉우리에 이릅니다

 

14:17

 

우측 나뭇가지 사이러 수안보를 내려다보며 진행합니다

 

등고선상410m 살작 내려간 안부에 이릅니다

 

14:25

 

살짝 오른 곳에서 좌측 낙엽송길로 멧돼지운동장으로 내려가  

 

비포장도로 등고선상390m 십자안부에 이릅니다

 

자가용 1대가 올라오다 내 앞에 서더니 이것저것 캐묻습니다

기분이 영 떨떠름합니다

"약초캐슈, 뭐 좀 좋은 것 있슈, 뭘 찾으러 다니슈, 길도 없는데 공연히 다닌다는 것이 말이나 되유?" 등 등 

"아니요"를 연발합니다  

"그저 산줄기따라 왔다 산줄기 따라 가는 사람이 손에 쥘 것이 무엇있겠습니까 

다만 마음으로 영혼으로 무상으로 무한히 주는 산의 혜택을 듬뿍 받고서 가는 것 뿐입니다"

별 미친놈 다 보았다는 듯이 차량은 수안보쪽으로 가고 나는 에너지보충을 합니다

    

오늘의 점심 고구마와 과일

 

좌측으로 내려가면 석장골로 가는 길이니 석장골고개라고 표기하기로 합니다

 

석장골고개 도로 : 14:30   15:00 출발(30분 휴식)

 

길은 없습니다

가시 잡목 넝쿨 들을 제키며 능선을 가늠하다보면 우측에서 올라오는  

 

좋은 포장도로를 만납니다

 

15:05

 

시나브로 올라 너른 공터가 있는 곳에 이르고

 

우측으로 수안보스키장 스로프 종점이 있습니다

그 앞으로 보이는 산은 첩푸산입니다

 

그리로도 좋은 길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가야할 등고선상470봉 정상에도 송신탑인지? 뭐가 있습니다

 

우측으로 SK상모기지국 송신탑이 있습니다

 

억새밭에서 도로는 끝나고 좋은 산길로 오릅니다

 

15:10   15:15출발(5분 휴식)

  

조망이 좋아 우측으로 월악산 바위봉이 다시 보입니다

 

바로 아래로 수안보면 전체가 내려다보입니다

 

근육질의 신선봉도 매혹적입니다

 

조령산 인근 산줄기입니다

 

지나온 산줄기입니다

 

신선봉을 한가운데에 두고 찍어본 백두대간과 좌측 백계명지맥 우측 백두신선지맥입니다

양날개를 편 근육질의 암릉들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립니다

 

수안보 일대를 당겨 보았습니다

 

수안보스키장 시설물들이 있는 곳을 당겨 보았습니다

 

오르면서 잔돌길로 바뀌며 너무 급경사라 길이 우측 사면으로 가서 다시 좌측 사면으로 이어집니다

 

억새밭 너른 평지에 있는 철탑은 산불무인감시카메라 철탑입니다

 

억새밭을 우측으로 가로질러 살짝 오르면 등고선상470봉 정상입니다

 

조망이 좋아 우측으로 월악산 바위 연봉들이 보입니다

언제 보아도 신비롭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靈봉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온 산줄기입니다

 

수안보일대 손바닥만합니다

 

첩푸산입니다

 

다시 바라본 월악산입니다

 

수안보를 당겨 보았습니다 깨끗한 이미지가 좋아보입니다

 

조령산쪽입니다

 

주흘산쪽인 것 같습니다

 

박달산까지 조망이 됩니다

 

지나온 산줄기입니다

 

조령산쪽을 당겨보니 실루엣으로 그저 형체만 보입니다

  

 

등고선상470봉 : 15:25   15:37출발(12분 휴식)

 

성긴길이 이어집니다

 

등고선상410m 안부에 이릅니다

 

우측으로 스키스로프 시설 종점이 보입니다 정말 밉상입니다

 

등고선상410m 안부 : 15:45

 

바위 몇개 있는 등고선상430봉 : 15:50

 

빨래판같은 능선으로 내려가는데 길이 없어져버려 조심스럽게 방향을 잘 가늠하며 내려갑니다  

 

펑퍼짐한 운동장 같은 등고선상350m 안부에 이릅니다

 

16:00  16:03출발(3분 휴식)

 

살짝 올라

 

관리된 무명묘에서 생각에 잠깁니다

 

시간상으로 너무 이르지만 앞으로 갈 시간은 최대한 2시간에 나머지 구간을 완주할 수는 없습니다

길이 좋다면 야간산행을 할지는 몰라도 그걸 알수가 없으니 일단은 이곳에서 산행을 접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느긋하게 퍼집니다

 

16:05   16:25출발(20분 휴식)

 

철책을 만나서 철책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CCTV시설과 괴산군장연면 안내판과 한국전력공사 안내판과

기룡목재 정상석이 있는 597번지방도로 고갯마루에 이릅니다

 

길건너 길룡목재320m" 교통안내판은 또 뭐냐 이름이 틀립니다

 

다음번에 이어갈때는 철난간 콘크리트 계단으로 오르면 될 것 같습니다

 

좌측으로 조금 안쪽으로  한전장연변전소 건물이 있습니다

 

방범용차량번호판독시스템인 CCTV철탑이 있습니다

차량들 요주의 구간인 셈이네요^^

 

우측 수안보쪽으로 2km라는 작은 팻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3km정도라고 생긱이 듭니다

어디가 종점인지 그것이 표기가 안되어 있으니 누가 맞고 틀리고 할 사항은 아닙니다

 

다음에 진행할 콘크리트 계단길입니다

 

기룡목재 전체 모습입니다 작은 소공원이 갖추어져 있으며 먹거리를 파는 휴게실도 있어 쉬어가기 좋습니다

 

수안보쪽 모습입니다

 

기룡목재 : 16:30   16:50출발(20분 휴식)

 

시간도 널널한데

 

우측 수안보쪽으로 걸어서 내려갑니다

 

길 좌측으로 500m만 더 가면 주정산등산로가 있다는 이정목을 만납니다 이 무시기 소리냐?

 

첩푸산이 석양에 물들었습니다

 

신선봉도 물들었습니다

 

눈썰매장에 온 것 같습니다

 

우측으로 엄청나게 너른 비포장공터가 있는데 아마도 제철에는 주차장 구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표소는 눈썰매장매표소입니다

 

즉 내가 마지막으로 내려온 산줄기 우측 사면이 눈썰매장인 것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주정산 등산로 안내판이 있습니다 오산마을을 관통해서 폐쇠곡선을 그리며 환종주가 가능한 모습입니다

 

길 좌측으로 오르는 좋은 등산로가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곳에 안내판을 세웠을까 기룡목재 정상에다 세우면 훨 더 알기 쉬운데 말입니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요 ^^

 

수안보스키리조트를 지나

 

호텔들도 지나고

 

스키스로프도 당겨보고

 

너른 주차장에 이릅니다

 

능선에서 보았던 스키스로프를 이번에는 아래서 봅니다

 

도로가 우측으로 유턴을 하고 있는 곳에 수안보1km남았다고 합니다

 

우측으로 조그만 저수지가 있습니다 용도가 무엇일까 궁금~~~

 

수안보스키장 전경입니다

 

스로프입니다

 

가까이 당겨 보았습니다

설마 스로프가 한개?

 

좌측으로 작은 넘 한개 또 있습니다

 

고갯마루에 이릅니다

좌측 산이 황산(270)입니다

 

고개를 넘어갑니다

 

도로 좌측으로 스키용품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즐비합니다

 

황산육교에서 좌측으로 신3번국도 자동차전용도로 쌍굴이 보입니다 

우측으로 죽가면 이화령터널로 연결되어 문경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수안보면소재지 현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없습니다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 전기만 낭비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이곳뿐이 아닙니다 계속됩니다

 

 

 

우측으로 재래시장이 즐비하지만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안스럽습니다

 

수안보교를 건너가는데 휘황찬란합니다

 

대단한 수안보 야경입니다

 

 

로얄호텔 사거리서 우측으로 가면 슈퍼앞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되고 마침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수안보 시외버스정류장 : 17:35  17:40출발(5분 휴식)

 

에필로그

 

시간이 일러 수안보까지 살살 걸어가며

좌측으로 주정산을 오르는 입구를 지나 우측 산사면으로는 전부 스키관련 리프트 시설 콘도 호텔 눈썰매장 등 등

관련 시설들이 온산하를 덮어버렸습니다

황산을 오르는 고개를 넘어 휘황찬란한 수안보면 시가지를 관통해서 버스정류장에 이르니

서울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떠나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매표를 한후 5시40분 곧 바로 떠났는데

밀리고 밀려 3시간이 넘게 걸려 동서울에 도착해

주린배를 채우려 터미널2층 식당가로 올라갔습니다

중국집은 영업끝이라고 하고

기사식당이 보편적으로 맛이 있다고 해 제육볶음을 시켰는데 양은 양이지만

너무 맛이 없어서 어거지로 구겨넣고(사실 양이 너무 적어 구겨넣을 정도도 않됩니다) 집으로 와

생맥주 한잔으로 반타작 산행을 반추해 봅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로타리 걷고싶은 거리입니다

 

토요일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는 차없는 거리입니다

고로 차도에 있는 사람들은 도로교통을 위반하고 있는 모습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도로는 광장으로 변해 각종 콘써트나 거리공연이 이루어지는 곳이지요  

바로 제가 어릴적 뛰어놀던 현대백화점 후문 모습입니다

   

서울 신촌 걷고싶은 거리 야경입니다 

 

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길의 과거를 알려드립니다

신촌로타리부터 연세대학교 정문 안으로 이어지는 길 밑은 복개공사를 한 하천입니다 놀라셨죠^^

바로 봉원사 절이 있는 안산에서 발원한 창천이라는 개울이 연세대안으로 흘러내려 신촌로타리를 지나면서 창천동이라는 동명이 생겼고 창천초등학교 창천중등학교 이름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 창천초등학교 출신입니다^^  

 

적어도 이정도는 사람들이 이용을 해야 전기를 펑펑 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요? 

 

그나저나 그 자투리 남은 것  언제 다시 올지............

 

백두신선주정단맥종주제1-2구간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충주

언제 : 2015. 01. 02(쇠의날) 맑음

 

누가 : 신경수

 

어디를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장연면을 넘는 597번지방도로 고갯마루인 기룡목재에서 주정산으로 올라 산줄기 끝까지

 

구간거리 : 6.2km   단맥거리 :  6.2km   

 

구간시간 6:15   단맥시간 3:40   휴식시간 2:00    헤맨시간 0:35 

 

 

 

화상치료중인 오른쪽 발

붕대 때문에 씻지를 못해 엄청 지저분합니다^^

 

화상치료를 하고 있는 발을 가지고 과연 산행을 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견디어줄지 그것을 알기 위해 실험산행지를 물색하다가 당첨된 것이 몸이 멀쩡했으면 언제올지 모르는 구간인 백두신선주정단맥 자투리 남은 구간을 하기로 하고 예의 그 얼마전에 탓던 동서울에서 수안보가는 첫차를 6시40분에 타고 수안보에 도착하니 8시50분입니다 

이 버스는 월악산까지 가는 버스입니다 

 

택시로 기룡목재로 오르면서 보니 스키장과 썰매장을 개장해 이른 아침부터 몇몇 사람들이 서성입니다

기룡목재로 오르니 10분도 안걸려 9시에 도착했습니다 

답사하다가 자투리구간을 남겨놓은 것이 몇년이 지났어도 챙기질 못한 곳이 많은데 

이 단맥은 답사한지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자투리까지 깔끔하게 답사를 하는 행운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갯마루는 변전소가 있고 그 앞으로 작은 소공원이 마련되어 있으며

 

수안보쪽으로 본 고개 모습입니다

도면에는 기룡목재인데 안내판에는 길용목재입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

 

충주시에서 만든 고개 정상석엔 도면하고 같은 기룡목재로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라 둘다 맞다고 하자 까짓거 인심썼다^^

 

장연쪽으로는 칼국수집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묘지 오르는 콘크리트 계단으로 오릅니다

 

기룡목재 : 9:00   9:10출발(10분 휴식)

 

계단이 끝나면서 조금 오르면 잘 관리된 가족묘지가 나오는데

여느 다른 묘들과는 다르게 상석 비석 석등 문무인석 등 등 일제 석물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무래도 아이젠을 해야할 것 같아 앉아서

새로산 짚세기아이젠을 착용하는데 오늘은 다른때와는 달리 10분만에 착용을 하였습니다 한결 편해졌습니다

 

9:15    9:25출발(10분 휴식)

 

오름능선상 ㅏ자길을 지나 오르다가 돌탑2기가 있는 곳에서 다시 ㅏ자길이 나오고   

 

이정목이 있습니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오산마을1.5,  정자0.4km"라고 합니다

 

오산마을 갈림길 : 9:30  9:35출발(5분 휴식)

 

능선 좌우로 능선이고 사면이고 사람 손발이 갈수 있는 곳은 몽창 다  

 

작은 돌들을 쌓아만든 조그만 돌탑들이 마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토종벌통들을 연상 시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공께나 드렸을 것입니다 누구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위험한 벼랑끝에도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작은 돌탑들이 주정산 정상까지 계속됩니다  

 

살짝 오른 곳 : 9:40

 

작은 돌탑들 강한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은 것이 참 묘합니다

 

내려갔다가 난간줄을 붙잡고 오릅니다

 

수많은 돌탑들이 계속되고 등고선상430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 가기 직전 

 

이정목이 있습니다

온길 오산마을1.8, 갈길 봉수대0.6km"라고 합니다

 

팔각정 주위로 수많은 돌탑들이 있습니다

연이어진 돌탑도 있습니다

 

등고선상430봉 팔각정 : 9:45   9:50출발(5분 휴식)

 

우측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석문동천을 건너

특이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산이 있었으니

 

이름도 요상한 첩푸산(적보산)이라 백두계명지맥 꼬부랑재에서 분기한 여맥상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 특이한 모습 때문인지 북사면 끝자락에 중앙경찰학교가 있습니다

모든 경찰들은 임명되기 전에 이곳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살미면소재지인 세성리보다 이곳 수회리가 더 번화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텔은 물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고 택시도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서 있을 것입니다^^ 저녁나절^^   

 

난간줄로 내려가 등고선상370m ㅏ자안부로 내려섰습니다

 

9:55

 

식물이름표들이 간간히 나옵니다 공부도 좀 하면서 갑니다

 

살짝 오른곳 정상으로 안가고 좌측 사면길로 나갑니다

 

10:05

    

바로 좌측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박달산이 잘 보입니다

박달산 정상에는 철탑인지 게양대인지가 있는데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겨 보았더니 과연 정상 위로 쑥 올라온 철탑이 보입니다

옛기억을 아무리 떠올리려해도 잘 생각이 안납니다 다 세월과 나이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옛날 백두신선지맥종주기를 찾아보니 그 철탑은

산불자동감시카메라와 대한민국국기게양대 이렇게 2개가 다 있습니다 

 

커다란 돌길을 오르면

 

돌축대로 둘러쌓인 원형 봉수대안에 이르지만 삼각점은 눈속에 묻혔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고

 

제단 상석도 있고 봉수대 굴뚝도 5개나 됩니다 아마도 굴뚝 밑에 돌로만든 시설물은 아궁이(화덕)가 아닐까 합니다 

 

풀이름표도 있군요

그렇다면 이 봉수대 안은 봄이면 각종 꽃들이 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봉수대를 살짝 넘어가면

주정산봉수 안내판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쉬어가라고 장의자가 있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개인이 만든듯한 정상판이 나무에 달려 있는데 이곳은 봉수대일뿐 주정산 정상은 아닌데도

이런 정상판이 있다는 것은 잘못 설치된 것이니 후답자분들은 그리 아셔야 할 것입니다

 

옆에 설치된 이정목을 보면 답이 금방 나옵니다

온길 정자0.8, 갈길 정상0.3km"라고 합니다 즉 주정산 정상은 300m를 더 가야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곳은 도면상 삼각점이 있는 440.2m 지점일 뿐입니다

 

봉수대 : 10;10  10;15출발(5분 휴식) 

 

큰바위가 널린 능선으로 진행하다가 정상 오르기전에 좌측 사면으로 가는 길이 있으나 절대로 가서는 안됩니다

주정산 정상을 밟아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만약 그리로 따라갔다면 잠간 가다

좌측 서쪽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정상으로 오르면 몇봉하시는 분들 표시기 몇개가 있고 쉬어가라 장의자가 있습니다

직진으로 몇m 내려가면   

 

이정목이 있습니다

이곳은 잠깐 내려온곳 정상  직진으로 가면 오산마을1.5, 온길 봉수대0.3km"라고 합니다

 

주정산 : 10:25   10:30출발(5분 휴식)

 

몇m 내려가다

 

발자국이 길을 만들어놓고 있는 좋은 길은 우측으로 휘어서 오산마을로 내려가버리고

좌측으로 서북진하는 능선을 가늠하며 운동장 같은 너른 능선을 내려가야합니다

 

길은없다가  흔적이 있다가 눈 때문에 없어지길 반복합니다

 

하얀 눈위에 짐승 발자국 새끼들과 같이간 짐승발자국 누가 누가 새벽길 왔다갔나 .............^^ 멧톳? 고라니? 너구리?...

인간으로선 등산화 발자국 남기면서 내가 처음가는 것입니다

워낙 펑퍼짐해서 어디가 능선인지 구분도 어렵습니다

 

벌목지가 나오고

 

꼭 좌측 능선이 마루금 같지만 아닙니다

그런데 국립지리원에서 2014년도 인쇄한 5만지형도 도엽을 보면

바로 그 좌측 능선으로 경계능선이 표기가 되어있어 엄청 헷갈리지만

등고선의 생긴 모양새를 엄청 심사숙해보면 얼마안가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펑퍼짐한 살작 내려간 안부에 이릅니다

 

10:40   10:50출발(10분 휴식)

 

살짝 오른 곳 : 10:55

 

좌측 서쪽으로 내려가는데 길은 없습니다

 

좌측으로 벡두신선지맥 박달산 능선이 잘 보입니다

우측 멀리 보이는 산은 주월산 같습니다

 

조망이 좋습니다

박달산의 위용이 날카로우며 저멀리 주월산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좌측 옥답산 우측 수주팔봉입니다

 

우측으로 가야할 능선입니다

수주팔봉 앞 나즈막한 산이 앞으로 갈 능선인데 생긴 모양으로 보아 산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 도면상 무명봉입니다

  

물탱크가 있는 곳에 이릅니다

 

등고선상170m 지점으로

 

낮은 절개지를 내려가는 철사다리가 있습니다

 

도로 수준의 임도가 좌우로 계속됩니다

 

우측 사면이나 능선으로 그 임도가 계속됩니다  

 

내림능선상 십자임도길 : 11:05   11:15출발(10분 휴식)

 

우측 사면으로 난 임도길을 따릅니다

 

주목나무와 비슷한 나무들이 사방에 심어져 있습니다 

그 모습으로 보아 오래전에 파종을 해서 인위적으로 심은 모습입니다

 

삼거리 지나

 

바로 좌측 조금 높은 곳이 능선 등고선상310m 안부입니다

 

우측 사면길로 그 임도는 계속되니 일단은 따라가야합니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짧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채종원이랍니다

주목같은 그 나무들은 전나무라고 합니다

1995년도에 씨앗을 뿌렸으니 여기 있는 모든 전나무들은 20살인 셈이지요

 

멋진 소나무 한그루 있는 곳에 안내판걸이가 있지만 안내판은 어디로 사라진 것 같습니다

빽해서 임도따라 내려갑니다

 

등고선상310m 안부 : 11: 18   11:23출발(5분 휴식)

 

진행을 하면서 보니 능선 우측은 전부 채종원입니다

전나무 한종이 아니라 소나무 잣나무 등 여러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등고선상290m 안부인 바람재에 이릅니다

 

바람재 : 11:25

 

이후 능선이 임도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통나무들이 쌓여있는 능선으로 시나브로 아니 오른듯 오르면

 

통나무를 쌓아놓은 등고선상310봉입니다

 

11:30

 

계속되는 임도길을 따릅니다

 

수주팔봉과 대림산 산줄기를 바라보며 임도길을 따릅니다

 

우측 사면길로 내려가 등고선상270m 안부에서 다시 임도가 능선으로 이어집니다

 

11:35

 

우측 사면으로 잠간 내려갔다가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능선 삼거리가 나오며

그 좋은 임도는 등고선상290m 안부를 넘어가버리고 성긴임도는 우측 사면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좌측으로 깎아놓은 그리스 조각상 같은

짙은 내음이 나는듯한 예쁘게 보이는 절제미가 있는 박달산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우측으로 비켜서 수주팔봉 능선이 여기서 보니 듬직합니다

 

등고선상290m 안부 : 11:43   11:48출발(5분 휴식)

 

철탑있는 곳으로 오릅니다

78번 철탑 밑 억새밭을 지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옛날에는 방화선이거나 산판길이었을 키를 넘는 잡목 가시 억새 등이 빼곡한 곳으로 길 흔적을 잘 찾아 오릅니다

영하의 기온이 바랍이 안부니 그야말로 봄날씨입니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능선 뒤로 신선지맥과 백두대간 조령산 구간이 흐르고

 

우측으로 박달산이 그 절제된 아름다움을 뽑내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조령산 구간을 당겨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암릉의 파노라마가 보이는듯 합니다

 

백두신선지맥 산줄기입니다

 

당겨 보았습니다 신선봉(?) 영 자신이 없습니다 ^^

 

절제미의 아름다운 박달산 언제 보아도 시원합니다

 

등고선상350m 지점 살작 오른 곳에 이릅니다

우측 아래로 문강리 도로가 잘 보이고

한 가운데 산으로 오르는 도로는 구19번국도 백두계명수주팔봉단맥 윤갈미고개를 넘는 길입니다

사진 좌측 봉우리가 수주팔봉이며 중간 그 넘어 산줄기는 백두계명대림단맥산줄기 대림산입니다

맨 뒤로 제일 높은 산이 바로 백두계명지맥 계명산이구요^^

 

문강리 마을 전경과 윤갈미고개 그 넘어로 철탑들이 있는 봉우리가 대림산입니다 

 

등고선상350m 살작 오른곳 철탑 : 12:15   12:20출발(5분 휴식)

 

좌측 서쪽으로 길 흔적을 따라가다 과산군경계능선 표시기 1개를 발견합니다 반갑습니다

잃어버릴만 하면 나옵니다

   

작은 돌담장을 올라섭니다 아마도 작은 성곽인 듯합니다

 

등고선상410봉 정상으로 올라섰습니다

 

몇봉 하시는 분들 표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산이름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으니 봉우리 이름이 뭔지 궁금합니다

제발 혼자만 알고 다니시지말고 표시를 해 주시면 후답자들이 엄청 반가워할텐데 앞으로는 이름 부탁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수주팔봉 박달산을 바라보며 이제서야 에너지보충을 좀 합니다

 

등고선상410봉 : 12:40   12:55출발(15분 휴식)

 

도면상으로는 전혀 헷갈릴 곳이 없는데

이제부터 미세한 곳에서 헷갈리는 즉 도면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진짜 어려운 산줄기가 시작됩니다

 

앞에 보이는 백두신선주월단맥상 거대한 옥답산을 나뭇가지 사이로 보며 내림짓을 합니다  

급경사를 내려가 완만해지는 곳에 이릅니다

 

13:05

 

펑퍼짐한 등고선상370m 지점에 이르면 T자능선이 됩니다

 

13:10

 

우측 븍으로 내려가며 우측으로 휘어서 북동방향으로 장연면과 수안보면의 경계를 따라 끝까지 내려가야합니다

 

등고선상310m 지점에 이르면 Y자능선이 됩니다 우측 북동방향으로 내려갑니다

 

13:15   13:20출발(5분 휴식)

 

묵은 등고선상270m 십자안부 : 13:25

 

가시 잡목 능선을 올라 등고선상290봉 : 13:30

 

고요하던 공간으로 강풍이 불어재키니 엄청 춥습니다

 

등고선상250m 지점에 이르니 Y자능선이 나옵니다

영진5만지도에는 이곳을 탁영대"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럴만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하고 고 고합니다

우측으로 내려가다보니 급경사로 쳐박히면서

석문동천이 강진마을에서 U자로 유턴을 하는 지형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빽을 합니다

 

도면상 탁영대 : 13:40   14:05(25분 헤맴) 

 

Y자능선에서 좌측 큰바위들이 널린 능선으로 내려갑니다

암릉을 넘어서  등고선상210m 지점에서 경계능선을 떠나 좌측 서북방향으로 내려갑니다

 

14:10   14:15출발(5분 휴식)

 

천길만길 4차선도로 괴산수안보간 신19번국도 자동차전용도로 변에 이릅니다

이곳에서 길은 없지만 좌측으로 내려가 앞에 있는 도로를 건너 등고선상150봉을 넘어

논두렁을 진행 오가천이 석문동천을 만나는 곳으로 가느냐

빽을 해서 경계능선을 끝까지 가서 제방을 따라  오가천이 석문동천을 만나는 곳으로 가느냐 기로에 섭니다

  

우측 도로를 보면 생태통로가 있는데 그곳으로 넘어가는 것은 마루금이 아닙니다

 

여기서 어차피 내려가도 높은 중앙분리대가 있어 넘어가기도 어렵고 결국 150봉을 넘으면 물길을 여러번 건너야합니다

물론 농사를 짓기 위한 수로 형태지만 말입니다

그대신 경계능선을 끝까지 가서 현실적으로 물기름을 하는 제방을 따라가도 됩니다

그 선택은 답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므로 어느 것이 마루금이다라고 딱히 결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진행상 편리하게 후자를 택하고 빽을 합니다

 

14시10분에 도착한 등고선상210m 지점 가기 전 등고선상190m Y자능선이 있는 곳으로 가

우측으로 경계능선을 따라 내려갑니다

 

14:27출발(10분 헤맴)

 

비닐그물담장을 만나서 따라 내려가면 잘 관리된 

  

납골묘지에 이르고 정면으로 좌측 신19번국도가 백두계명수주팔봉단맥을 살미터널로 연결된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우측으로 커다란 건물 2채가 보이는데 둘다 문강온천 건물입니다

  

그 묘는 통정대부남양홍종한 납골묘인데 자손들이 대단합니다

조선시대 묘를 지금도 이렇게 관리하는 것을 보면 자손들이 번성한 모양입니다

 

밤나무 과수원 한가운데로 내려갑니다

 

14:40   14:45출발(5분 휴식)

 

과수원내 도로따라 내려가

 

이게 뭡니까 ^^

크고 작은 2개의 양물(남근석)이 하늘을 향해 고추서 있다가 작은넘이 귀두를 돌려 나를 쳐다봅니다

이 노인네 더러 어떡하라고 .......^^

그러고 보니 2마리의 크고 작은 거북이가 고개를 쭉 빼 하늘을 쳐다보는 그림도 그려집니다

보이는 모습도 본 사람의 판단에 따르면 될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귀여운 남근석으로 보입니다

 

그 뒤로 전화기까지 비치되어 있는 사무실 앞을 지나가는데

마침 사람이 없어 다행입니다

 

이렇게 철대문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나갈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좌측 밭을 둘러싼 비닐담장을 넘어 밭두렁으,로 진행해 망가진 곳으로 나가 석문동천변 도로에 이릅니다

 

내려온곳은 마루농원이었습니다

 

신19번국도 밑으로 나가야합니다

 

석문동천변 신19번고가국도 밑 도로 : 14:45   14:53출발(8분 휴식)

 

이곳이 바로 그 신19번국도 문강 IC입니다

 

제방길을 따라 석문동천변을 걷습니다

석문동천을 건너 이어지는 산줄기는 백두계명수주팔봉단맥 산줄기입니다

 

구19번국도 문강교에 이릅니다

 

15:00   15:03출발(3분 휴식)

 

여기서 제방을 따라 오가천과 합수지점까지 1km를 생략하고

 

문강교를 건너

 

사거리에 이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이 버스정류장은 아닌데 장연 근방에서 오는 버스들이 세워준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렸어야했는데 나는 온천앞이 더 교통이 좋을줄 알고 우측으로 도로따라갑니다 

 

수주팔봉 가는 길을 알려주는 갈색 문화재명승고적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우측으로 가면 수안보 경찰학교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문강사거리 모습입니다

 

문강사거리 : 15:04   15:06출발(2분 휴식)

 

우측으로 도로따라가 

 

신19국도 문강IC 앞에 이릅니다

 

좌측으로 살미터널 가는 신19번국도를 바라봅니다

 

관광버스 기타 차들이 많이 주차되어있는 문강유황온천사우나 건물 앞에 이릅니다

 

강진시내버스정류장 부스가 있습니다

 

살미 수안보가는 버스편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택시도 얼마 안나오는 거리지만 시간도 이르고 남는 것은 시간뿐이니 넉넉잡아 30분이면 버스가 올 것 같습니다

 

문강유황온천사우나 강진마을 갈림길 버스정류장 : 15:15

 

에필로그

 

주정산 정상에서 좋은 길은 우측 오산마을로 내려가버리고 길 흔적을 잘 찾아 내려가야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국립지리원에서 펴낸 5만지형도에서 충주시와 괴산군의 경계를 따라가면 계곡으로 쳐박혔다가 올라와야하니 

능선으로 가려면 잠시 경계능선을 떠나 충주시 관내로 들어와 진행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영진5만지도를 보니 경계능선이 제대로 마루금대로 작성이 되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국가에서 펴낸 지형도를 따르는 것이 무난하지만 이번 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계는 마루금을 따르고 있고

가물에 콩나듯이 있는 괴산군경계능선종주 표시기와 충주시경계종주 표시기도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영진지도에 한표를 던지겠습니다 

즉 국가에서 발행한 지형도가 잘못된 것입니다 

무심코 따라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얼마나 헷갈렸는지 모른답니다 

 

잘못됀 지도 때문에 어려운 곳을 무난히 지나고 한없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

등고선상410봉도 산이름이 있는지 봉우리만 전문적으로 다니시는 분들 표시기가 몇개 달랑거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이름이 있는 것이 확실한데 지도에는 무명봉입니다

그 분들 정상 인증 표시기를 달려면 산이름이라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후답자들이 엄청 도움을 받을 것은 뻔하고 고마움을 가질 것입니다 

 

그후 지형도에는 그냥 죽 일직선으로 경계능선을 끝까지 따라가면 되는데

현지에 가보면 잔능선들이 많아 상당히 헷갈리기 쉬워 알바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대형 알바는 안하니 다행입니다 

마지막 남의 농장안으로 들어가 뺑뺑두른 담장을 적당히 넘어 이후 제방따라 가다 문강교를 건너 

무강유황온천까지 걸어가니 오후3시15분 밖에 안되었습니다 

거리가 얼마 안되니 수안보택시를 부르면되는데 공연히 오기가 생깁니다

버스도 많이 다닐 것 같아 기다리다보니 30분이 지나고 나중에는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또 기다리고 

결국은 2시간을 기다림끝에 소원대로 시내버스를 타고 충주로 나가 

고양가는 19시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22시도 안되었습니다 

수제비와 하산주를 합니다  

 

발 딘곳을 싸매고 하는 산행이라 연습용으로 얼마나 할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할만합니다 단 딘곳을 힘이 들어가게 어디에 닿을 경우 엄청난 통증에 신음소리 절로 나옵니다

그 점만 조심하면 큰 무리는 없습니다  

의사는 걷지도 말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무리는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실행을 한 것입니다

그럭저럭 할만하니 다음번에는 시간내서 온전한 하루 코스를 잡아 다시 연습을 해 볼 것입니다  

     

백두신선주정단맥종주 完

 

일산버스터미널 앞 야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