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백두대간 3회 1차 산행을 하는 날이다. 버스에 올라보니 그 열기는 바로 피부로 와 닿았고 몇분은 자리가 없어서 돌아간 분도 있을 정도로 자리가 모두 메워졌으니 말이다.
승용차까지 가동된 이날 진부령에 도착된 시간은 새벽3시20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산행은 시작되었다.

백두대간 대장정 돌입!!!
진부령에서 알프스스키장까지는 마루금을 탈수가 없다. 중간에 군사보호구역이 존재하므로 도로를 따라 산행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 대낮이라면 행여 마루금을 탈수 있겠지만 새벽엔 곤란하다. 스키장콘도 옆을 지나서 일행은 불빛을 길게 늘이며 마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별이 총총한데도 바람이 몹시 심한것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 산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나는 선두에 서서 속도조절에 안간힘을 다했다. "너무 빨리가지 맙소? 뒹굴며 가도 11시 전후면 도착할 틴데 뭐할라꼬 그리 기를 쓰고 갑니꺼?" 1,2회때 대간을 산행한 분들께는 매우 갑갑한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 겨가도 후미와는 30분 차이가 나는 것을....

4시56분 마산(1,051.9m)에 올라 종을 땡땡 울리니 지난 3월 25일 이곳에서 대간이 마지막이라며 환호성 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그 겨울의 눈밭이 생생한 것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왜이리 바람이 심술을 부리는지 갈수록 몸이 비틀비틀....
오늘 산행하다보니 지난번에 눈이 있어서 길이 아닌 곳으로 갔었는데 이제는 길이 확연하게 보인다. 작은 봉우리들을 지나칠 때마다 주변을 조망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희뿌연 운무와 이제는 사람을 나자빠지게 할 정도의 바람....일행은 대간령(6시35분)에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으나 이곳에서도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몇몇 분이 앞서나가고 난 오늘 대간이 초행인분을 위주로 다시 신선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고 급한 경사를 오르기 때문에 속도를 최대한 줄였다. 자칫 먹은 것이 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능선 옆에는 야생화가 제법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고 연분홍의 철쭉도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사람들 발길을 멈칫거리게 한다.
8시35분 신선봉(1,204m)에 도착하니 바람에 몸을 가눌수가 없다. 그런데 신선봉 아래 헬기장을 지나서 내려가던 분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웬일인가 싶어서 가보니 몇몇 분이 벌써 두바퀴째 돌고 돌아 계속 그 자리란다. 앞서간 사람들을 뒤따르다가 일행을 놓치고 옆으로 빠진 것이다. 그곳의 길은 아주 희미하여 초행인 분들께는 곤란을 겪는 수가 많다. 그래서 표시기를 여러개 매달아 놓았다.

화암재(9시25분)를 지나서 상봉 바로 아래에는 바위지대가 있어서 지나온 산줄기와 동해바다를 볼 수가 있어서 좋은 휴식처가 된다. 다만 오늘처럼 희뿌연 날은 볼 수 없지만...
용아릉 산행이후 첨 나오신 아주머니는 오는 산행에 매우 만족하신 듯 연신 기뻐하신다.
또 어떤 분들은 피치 못할 사정만 없다면 반드시 백두대간을 완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그때 아까부터 후미 무전기 교신내용이 심상찮다고 느꼈는데 기어코 한 분이 실종....
우짜 이런 일이....
후미 이동원 선수는 뒤에서 그분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사이에 그 앞분들이 걱정이 되었다. 하는 수없이 배낭을 옆에 내려놓고 작전상 후퇴....내가 언제 이런 길을 올라왔나 싶은 가파른 지대를 뛰어 화암재에 다다르니 실종된 분과 같이 오신 분을 만났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더니 밑으로 내려가는 중이란다. 도무지 그분의 위치를 감잡을 수 없었다. 그분은 신선봉 아래에서 로프가 달려 있는 바위까지 오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 뒤로 보질 못했단다. (그분이 설마 오던길을 다시 내려가리란 상상은 도저히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그분을 예서 기다리라 하고 신선봉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잠시후 갈림길에 다다르니 여긴가 저긴가 기우기웃 대며 이규형 선수가 느릿느릿.... "꽁지에서 뭐하노?"
오늘 처음온 중학교 1학년생 안재성군 마치 김승택군을 연상시킨다. 중학생 보호자 되시는 분을 포함한 세분께 먼저 가라 일러 놓고 다시 대간령 방향으로 행했다.
'이러다 진부령까지 가는거 아녀?' 무전기로 이동원 선수와 교신을 하니 아직도 술래잡기중... 머리카락도 안보인단다. 다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니 아침 식사하던 곳까지 내려갔다가 지금 그리로 다시 올라오고 있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갈 수가 없다 하신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찾았습니다" 하는 무전교신...(정보통신의 승리)
대간령과 신선봉 중간지점에서 그분은 몹시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사건의 얘기인즉슨, 휴게소에서 먹은 햄버거에 체해서 여러번의 구토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신선봉을 올라가고 있는데 갈림길에서 그만 옆으로 들어섰는데 조금가다보니 내려가기 시작하더란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겠거니 하고 계속 가려니 앞의 일행이 안보이는지라 소리를 질러봐도 대답은 없고 들려오는건 바람소리뿐....본인생각에 아이쿠 많이 떨어졌구나 생각하고 내려뛰기 시작했단다. 설마 그곳이 오던 길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앞에 누가 있으니 이게 길이려니 하고 암생각없이 뒤따른 것이 화근이리라....
그래도 기억난 것이 아침을 먹던 대간령이었으니 내려가기도 참 많이 내려갔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다 잘못하면 진부령까지 왕복산행의 진기록을 세울 뻔하지 않았는가?
그분께는 악몽같은 하루였으리라...

부대장 창수형은 무전과 핸드폰으로 그분의 상태를 감안하여 대간령에서 소간령 방향으로 중간탈출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신다. 당사자 생각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식량이 없어서 걱정이었다. 나역시 상봉아래에 배낭을 내려놓고 왔으니....
이동원 선수에게 지도를 펼쳐놓고 자세히 설명한 후 난 다시 신선봉으로...얼마나 갔을까 하늘이 노래지는 것이 밧데리 방전 신호가 온다. 좀전까지만해도 대전에서 오신 분들까지 바글바글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안보인다. 아! 이제는 내가.....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땅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지 아니면 내가 멍해지는 건지.....
'기냥 여기서 산이나 지킬까?'

다시 신선봉(11시35분)을 지나 어기적어기적 상봉(1,239m)에 도착한 시간은 12시13분.
멀리 미시령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차가 꾸불꾸불 도로를 따라 기어가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인다.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는지...
아주 오래 전에... 저 도로가 포장도 하기 전에 저 도로를 따라서 100km 행군을 한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난 신병이었는데 땀을 너무 흘린 탓에 짬밥을 먹지 않았더니 배가 너무 고파서 저 미시령에서 건빵을 입에 오물거리며 지나던 일이 생각난다.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이런 건조기에도 샘터에는 물이 쫄쫄 흐르고 있었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안재성군과 보호자 분을 다시 만났다. 다리를 절고 있는 모습이 발목을 접질린 듯....스프레이 파스로 응급처치를 한후 걸을 만하냐고 물었더니 "안가면 고아 되잖아요."
"어잉............."
"앞으로 백두대간 계속 할 수 있겠냐?" 했더니, "안하면 저 쫓겨나요?" 각오가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많이 힘들어하는 그 모습이.....

오후 1시 20분 미시령 도착. (총10시간 산행)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