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갈길은 아직도 먼데...... , 이를 어찌해야하나!! (26회차 31구간. 진고개-구룡령)

● 일시 : 2003년 7월 26일 ~ 7월 27일
● 날씨 : 비
● 동행 : 이찬영
● 구간 : 백두대간31구간(진고개 - 동대산 - 두로봉 - 만월봉 - 응복산 - 약수산 - 구룡령)

● 산행시간
- 7월 26일 토요일
20:50 = 집 출발
21:40 = 동대문 도착
22:03 = 동대문 출발
23:40 = 문막휴게소

- 7월 27일 일요일 (총 산행시간 : 10시간 20분 도상거리 22.5km)
01:55 = 진고개 도착
02:03 = 산행시작
02:50 = 동대산(1,433.5m)
04:00 = 차돌배기(1,230m)
05:15 = 두로봉 이정표
05:20 = 두로봉(1,421.9m)
05:40 = 신배령 이정표
06:45 = 신배령
08:45 = 응복산(1,359m)
10:10 = 1261봉
11:40 = 약수산(1,306.2m)
12:25 = 구룡령. 산행 끝.

15:05 = 구룡령 출발
20:08 = 강남역
20:55 = 집 도착

● 산행기

지난주엔 조카 결혼이 있어 한주 거르고 3주만에 대간 종주에 나선다.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하니 깜깜 절벽이다. 그리고 "흐리고 한때 비"라는 예보가 있기는 하였으나 밤부터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는데 가랑비가 부실부실 내리고 있다. 스패츠를 꺼내 착용하곤 우의를 꺼내 입을까 하다가 배낭 커버만 씌우곤 그냥 산행을 하기로 한다. 비를 많이 맞으면 저체온증의 우려가 있어 착용하는 것이지 옷을 적시지 않으려 우의를 착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의 착용은 더위만을 더욱 증가시킬 뿐이다.

이런 날씨면 멋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포기해야 한다. 대간 한구간 메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동안 무릎도 많이 추스려 놓았으니 오늘의 산행은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자위하며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시를 지나면서 출발. 자~~~!! 가보자!!!

어둠에 쌓여 있는 관리공단 사무실을 맞은편에 두고 나무 계단길을 올라 산행을 동대산으로 진입한다.
"백두 대간의 심장부 평창입니다" 라고 씌여진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나무계단을 올라서면서부터 본격적인 숲이다. 숲속에 들면서부터 발아래 풀섶에 맺혀있는 빗방울이 무릎아래를 스친다.

적멸보궁이 자리한 오대산(五臺山)은 연화부수의 연꽃잎 형상이라 한다. 그래서 연꽃잎에 해당하는 혈처에 보살을 모시는 대(암자)를 지었다 하는데 동대(관음암-관세음보살), 서대(수정암- 대세지보살), 남대(지장암-지장보살), 북대(미륵암-오백나한), 중대(사자암-문수보살 )이다. 이 다섯대의 이름 때문에 유래한 동대산을 오늘 새벽에 공략한다. 가장 지혜로운 보살인 관세음보살.

계속되는 된비알. 처음으로 맞이하는 이정표에는 동대산 정상(1433m)라고 표시되어 있고 "진고개산장 1.1km, 동대골야영장 4km, 동대산 0.1km" 표시되어 있다. 여기가 정상인가? 5분여를 더 진행하니 헬기장인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엔 아무런 표식도 없다. 계속되는 가랑비 때문에 웃옷이 젖어들기 시작하여 우의를 꺼내 입는다. 밋밋하게 오대산 정상을 통과한다.

동대산 정상을 지나 얼마 더 진행하니 잡초가 무성한 헬기장이다. 이후 헬기장 하나를 더 만나고 이정표(현위치 해발 1300m, 동대산 2km, 두로봉 5km)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길은 계속 밋밋하게 이어지고 길바닥에 흰색의 돌조각이 어둠 속에 하얗게 보인다. 눈이 부실 정도로 흰 커다란 차돌바위다. 길 오른편으로 커다랗게 차돌바위가 떨어져 있어 발길에 걸린다. 바로 옆에는 이정표(차돌배기 1,230m. 두로봉 3.9km, 동대산 2.7km)가 서있다. 이후 헬기장이 나타나고 다시 또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이정표가 서 있다.(현위치 1,267m, 두로봉 3km, 동대산 4km) 비오는 어둠 속에서 이정표만 비춰보고 지나친다. 비 때문에 메모하기가 불편하다.

두로봉 1.5km가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 급경사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이 두로봉인가 했더니 조금 더 지나 또 헬기장이 나타난다. 왠 헬기장이 이리 많은지. 평평한 능선길을
따라 진행하니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정표(북대사 2.7km, 동대산 5.7km, 두로봉 0.3km)가 서 있다. 여기가 북대사 갈림길로서 상왕봉(1491m)을 거쳐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1563.4m)으로 연결되는 곳이며, 따라서 탈출하기에 가장 용이하다는 설명을 듣는다.

두로봉이라고 씌여 있는 이정표(북대사 4km, 동대산 7km)에 도착하나 여기가 두로봉이 아니고 50여m를 더 올라가니 헬기장이 있는 두로봉 정상이 나타난다. 왜 정상에 표지판이나 이정표를 세우지 않고 정상 직전에 이정표를 세워 놓았는지 알 수 없다. 주변이 훤하게 밝아져 있긴 하나 가랑비로 하여 아무런 전망을 볼 수 없다. 날씨만 좋으면 참 멋진 시야가 터질텐데.......

두로봉을 지나면서 신배령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는 평탄한 능선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배령 표시 이정표가 나오는데 여기가 신배령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응복산까지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고 이정표는 가리키고 있다. 왜 엉뚱한 곳에 신배령을 표시하는 이정표를 세워 놓았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다. 신배령 이정표를 출발하여 1시간여를 진행하니 텐트가 쳐져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여기가 지형도상의 신배령이다.

신배령을 지나면서 산행시간이 5시간여에 이르고 양쪽 무릎에 서서히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아직도 구룡령까지는 갈 길이 먼데 이거 큰일이다. 보행을 각별히 조심하면서 진행을 한다.

약수산까지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계속 오르내려야 한다. 잡목숲을 헤치며 1200안팎의 고지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진행한다. 어찌된 일인지 아침 생각이 없다. 부실부실 내리는 비속에서 밥을 먹기도 그렇고 간단한 행동식으로 아침을 대용하면서 천천히 그리고 우보전략으로 쉬임없이 진행한다.

경사가 심한 된비알을 한참 오른 후에야 산의 높이와, 앞으로 가야할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있는 응복산에 도착한다. 정상 주변의 나무를 베어낸 듯 응복산의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아 좀 옹색한 편이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운해 속에 나타난 산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더니 금방 구름속에 가려져버리고 만다. 그나마 오늘의 수확이라면 이 모습이 아닐까?

서쪽으로 방향을 급선회 하여 이제는 약수산을 향하여 진행한다. 응복산을 지나면서부터 등산로 주변은 온통 땅을 파헤친 흔적이 많이 나타나는데 멧돼지의 소행인 듯 파헤쳐진 흙에 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새벽에 들쑤셔 놓은 듯 하다.

응복산을 지나 30분 정도의 거리에 평평한 지역이 나타나고 왼쪽으로는 텐트친 흔적이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왼쪽 아래로 내려서는 희미한 길이 보이고 비닐종이에 "샘터 200m"란 희미한 글씨가 보인다. 이 길로 5분 정도 내려가면 샘터가 있다고 한다.

1261봉을 오르기 위하여 급경사가 심한 짧은 오름 구간을 힘겹게 오른다. 아마 오늘의 구간 중에서 가장 땀을 많이 흘린 것 같다. 정상은 협소한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먼저 올라온 몇 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날씨만 협조해 준다면 대청봉, 점봉산도 조망된다 한다. 어쨌든 주변 전망이 최고일 것 같은 봉우리다. 간단한 휴식과 행동식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벌써 산행시간이 8시간여. 무릎에 계속 부담이 오고 있다. 특히 하산시가 더 고통스러워지는데 그래도 이를 악물고 가야한다.

뒤에 오던 어느 대원이 나의 보행을 보고는 안스러워 한다. 이럴 때 말동무가 있어 동행하여 주면 훨씬 수월하다고 동행하여 준다. 무릎통증에 대한 경험이 있어 그 심정을 잘 안다고 하면서 통증을 극복한 경험담을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일면식도 없는, 산에서 만난 그분은 올해 59세인데 5년 전에 통증이 와서 고생했다는 거였다. 동행의 마음을 정말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먼저 갈 것을 제의한다. 한참을 가니 그분이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고마우신 분. 잠시 서서 호흡만 고르는 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 바로 출발한다. 남들 쉬는 것 따라 다 쉬면 뒤처질 수 밖에 없어 계속 우보행진을 계속한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또 한번의 고도를 올려치니 어느덧 약수산 정상이다.(1306.2m) 정상 주변의 나무를 정리하여 전망이 확트인다. 그러나 가랑비와 박무에 쌓여 아무런 전망이 없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가히 엽기적인 정상 표지판이 서있다. 길이가 2m에 가로세로 5cm 정도의 사각형 각목 위쪽에 20cm 정도 길이의 각목을 양쪽으로 덧붙여 누군가 유성펜으로 약수산과 높이를 써 놓은 아주 조잡하기가 이를 데 없는 표지판이 약수산을 지키고 있다.

50m쯤 내려서니 백두대간 생태복원을 위하여 희귀수인 주목, 전나무, 분비나무, 구상나무 611본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 합동으로 식수했다는 조림지 안내판이 서있다. 그리고 얼마 더 내려오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내리막이다. 차량의 기계음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으로 보아 구룡령이 가까워 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내리막의 무릎통증은 너무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비에 젖어 눈길 보다 더 미끄러운 내리막길은 통증을 배가시킨다. 양손의 스틱을 최대한 길게하여 사력을 다하여 한걸음 한걸음 내려오니 저만치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차량의 통행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개설로 절개된 절개지의 복원과 고갯마루에 다리를 놓아 동물이동 통로를 만들어 놓은 구룡령.그래도 정책당국의 자연보호 의지를 보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대간상에서 큰재에서 신의터재로 넘어갈 때 윗왕실 임도에 설치된 동물 이동통로를 본 이후 구룡령에서 두번째로 본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가로등이 켜져있는 구룡령 휴게소에 당도한다. 스패츠를 착용하여 바지의 하단은 비교적 깨끗하나 신발 주위에는 흙이 범벅이 되어 있다. 휴게소 뒤의 청소용 물로 젖은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얼굴과 손발을 씻는 것으로 10시간 20분의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에필로오그

백두대간을 종주했다고 해서 세속적인 명예도, 재물도, 그리고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꾼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백두대간을 완주하기 위하여 산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는 도전과 극복이라는 자신만의 의지력을 함양 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예정된 계획에 따라 한번에 완주하리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게 왠일인지 고치령을 지나면서부터 무릎에 이상징후가 오면서 3개월이나 대간길에 오르지 못했고 몸을 추스려 재점화를 시도 했으나 나의 의지를 무릎이 따라 주질 않는다. 따라서 무릎이 완전해질 때까지 대간산행을 중단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20년은 더 다녀야 할 산을 여기서 중단해야 겠느냐는 자괴감과 함께 한·양방 의사 선생님들의 강력한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구간은 반드시 연결하여 한번의 완주보다야 도전과 극복이 주는 쾌감은 덜하겠지만 마무리를 꼭 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근교산행을 통하여 무릎을 다스리고, 산행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얼마 후면 진부령에 도착할 함께 했던 산우회 동지들의 완주를 미리 축하하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