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산줄기 환주50

                                              (낙남금오지맥 2구간)

 

                         *지맥구간:2번국도 청솔주유소-구영고개-12번도로변 금오산 입구

                         *산행일자:2010. 5. 28일(금)

                         *소재지  :경남 하동

                         *산높이  :이명산 계봉548m

                         *산행코스:2번국도청솔주유소-이명산계봉-구영고개-남해고속도로안심마을입구

                                        -12번도로변 금오산입구-약수랜드금오산입구-진교버스정류장

                         *산행시간:8시15분-18시10분(11시간355분)

                         *동행    :나홀로

 

 

   길이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산줄기를 따라 걷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수도권을 지나는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에서 분기된 지맥들은 수많은 산객들이 이미 종주를 마친 터여서 길이 잘 나있는 편이지만 저 아래 남해안 가까이에 자리한 낙남금오지맥의 산줄기에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곳도 있어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청솔주유소를 출발할 때만 해도 조금 서둘러 금오산을 넘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계봉을 지나서부터 몇 곳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나자 무리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금오산 산자락을 지나는 12번 도로에서 2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방송대 기말고사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아 웬만하면 이틀간 나들이로 섬진강산줄기환주를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금오산을 넘지 못해 다음 날 하동의 두우산까지 진출해 환주산행을 마무리 짓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목표했던 만큼 나가지는 못했지만 결정적인 알바로 중간에 산행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지 않은 것만도 제게는 적지 않은 기쁨이었습니다. 두 해전 용화산에서 사고를 당한 후 주력이 많이 떨어지고 길을 찾아 이어가는 감각 또한 많이 무뎌져 고생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여기 금오지맥 종주 길에 오른 것인데 이번 산행으로 길을 이어가는 동물적 감각은 제 궤도에 올라온 것 같아 가슴 뿌듯했습니다. 주력마저 되찾았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고 보면 길을 찾아 가는 감각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올 가을쯤 낙남정맥 종주를 끝내고 나면 떨어진 주력도 종전만큼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리되면 내년 봄 하나 남는 낙동정맥 종주 길에 마음 편히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8시15분 청솔주유소가 자리한 2번국도의 고개 마루에서 낙남금오지맥의 두 번째 구간 종주 길에 올랐습니다. 흐린 날씨에 기온이 생각보다 낮아 선선한 느낌이 들 정도여서 산행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人心좋은 마음의 고향 北川”의 표지석이 세워진 고개 마루에서 동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가다 만난 두 곳의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진행해 330봉을 우회했습니다. “고사리재배단지 외인출입금지 변상조치”라고 써 넣은 나무판 떼기를 보고 재배농민들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출입금지에 더하여 변상조치를 하겠다는 경고문을 써놓았을까 싶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진행해 “황토재1.4Km/시루봉정상2.2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나지막한 봉우리에 다다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선 깊숙한 안부 아래로 경전선이 지나는 터널이 나있는 것 같은데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해발고도 340m대의 무명봉에 올라서자 아랫마을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조금 내려갔다가 완만한 길을 따라 한참동안 걸어 올라 만난 짧은 비알 길을 숨 가쁘게 올라 477봉에 올라서자 삼각점과 "황토재2.8Km/시루봉0.8Km"의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9시53분 계봉에 다다랐습니다. 긴 의자에 편히 앉아 10분 가까이 머무른 477봉을 떠나 계봉에 이르기까지 18분이 걸렸습니다. 평평한 길을 따라 진행하다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고스락이 평평한 이정표 상의 시루봉으로 올라가 “달구봉(鷄峰)”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이봉우리가 1/5만 지형도에 나와 있는 계봉임을 확인했습니다. 계봉에서 동쪽으로 1.7Km 떨어져있는 해발570m의 이명산은 운무에 에워싸여 주봉인 상사봉의 상체만 보였고 북서쪽의 지리산도 주능선 바로 아래까지 안개가 꽉 차 능선 길이 직선으로 보였습니다. 잠시 안개가 바람에 밀린 사이 상반신을 내보여준 남쪽의 금오산을 넘어가려면 서둘러야겠다 싶어 곧바로 표지목의 “개고개(양보)”가 가리키는 남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소원성취탑을 지나 내려선 안부에서 꼭 계곡길만 같은 왼쪽 길로 내려가다 “편백휴양림 100m”의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를 지나 표지기가 몇 개 걸려있는 공터에 이르렀는데 길 찾기 좋은 길은 이곳에서 끝났습니다.

 

 

  11시1분 오른쪽 위로 보리밭이 펼쳐지는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표지기가 걸려있는 공터를 지나자 길이 희미해지는 가 싶더니 이내 없어져 일단 직진해 묘지에 이르렀습니다.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해 바로 아래 시멘트 길로 내려서고자 하였으나 관목이 우거진 숲을 뚫고 나갈 수가 없어 다시 묘지로 되돌아와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오른쪽이 안됐으니 왼쪽을 쑤셔볼 수밖에 없겠다 싶어 그 방향으로 5-6분을 뚫고 나가자 시멘트 길이 나타났습니다. 마침 트랙터 위에 앉아 쉬고 있는 한 분이 보리밭 옆으로 똑바로 올라가면 된다고 말씀해줘 초록의 보리들로 꽉 찬 보리밭 왼쪽 길로 올라갔습니다. 보리밭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사라져버려 지형도를 보고 방향을 잡은 후 왼쪽으로 꺾어 나지막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이곳에서 길을 찾느라 십 분 가까이 매다가 다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해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12시 정각에 도착한 임도사거리에서 나지막한 무명봉에 올라 여기쯤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야 주영고개에 이를 것 같은데 그 쪽 방향으로 길이 나있지 않아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12시53분 구영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무명봉에서 그대로 직진해 왼쪽 사면에 들어선 목축지에서 세월을 낚는 듯 한가롭게 쉬고 고 있는 한 우 몇 마리를 보고나자 능선에 전기가 흐르니 조심하라는 전기줄 펜스만 없었다면 더없이 평화로울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지와 송전탑을 차례로 지난 지 얼마 후 직진 길이 사라져 오른쪽으로 꺾어 시멘트 길로 내려섰습니다. 길을 건너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 것 같아 일단 시멘트길로 되돌아와 지도를 자세히 본 즉, 이 시멘트 길을 따라 서쪽으로 옮기면 십 수 분 안에 아스팔트 차도가 지나는 주영고개에 이를 것 같았습니다. 제 판단이 맞아 시멘트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 지 7분만에 구영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고개 마루에 “영산식육식당”입간판이 세워진 주영고개에서 차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들어서며 나뭇가지에 걸린 “섬진강 환종주/감마로드”라는 표지기를 보고 저보다 먼저 섬진강산줄기환주를 마친 사람이 있음을 알게되자 맥이 좀 풀렸지만 감마로드 분의 표지기가 끝점인 하동의 두우강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먼저 이 길을 걸으신 신경수님이 보았다는 217봉의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이어갔습니다. 오른쪽 아래로 길이 나있는 능선 삼거리에서 점심을 든 후 5분 간 걸어 과수원 윗길에 이른 시각이 13시53분이었습니다.

 

 

  15시8분 안심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과수원 윗길로 들어서자 남쪽으로 군사기지가 들어선 금오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과수원 윗길이 끝나자 한동안 흐릿한 길이 이어지다가 얼마 후 경운기가 다녀도 될 만한 넓은 임도길이 나타나 안도했습니다.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능선삼거리에서 왼 쪽으로 확 꺾여 3-4분간 임도 따라 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기까지 길이 좋아 모처럼 산행이 편안했습니다. 초록색 이끼가 낀 임도 길을 따라 걸어 송전탑 2개를 지나 아스팔트길로 내려선 후 이 길을 따라 왼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SK이동통신탑과 (주)자연의 블록제품 생산 현장을 차례로 지나 1003번 도로와 만나는 안심삼거리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1003번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남해고속도로 밑으로 낸 지하도를 통과했습니다.

 

 

  16시13분 12번 도로가 지나는 금오산 들머리에 도착해 지맥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지하도를 건너 들어선 밤나무 밭에 난 길을 따라 오른 쪽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왼쪽으로 꺾어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가자 시멘트 길이 나타났습니다. 과수원 왼쪽의 능선을 따라 꼭대기로 올라서자 오른 쪽으로 웅장한 지리산의 주능선이 선명하게 보였고 지금 걷고 있는 낙남금오지맥을 분기한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지리산 영신봉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과수원 꼭대기에서 다시 숲길로 들어가 길이 희미한 마루금을 이어가느라 얼마간 마음 졸이다가 안심삼거리를 지난 지 1시간이 다되어 건너편에 “I'm 허브”가 보이는 12번 도로를 건넜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이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옮겨 고개마루에 도착하자 금오산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길이 보였습니다.  

 

  18시10분 진교 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금오산 들머리에서 12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으로 난 산악자전거도로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언제 닫은 지 알 수 없는 썰렁한 약수골랜드에 도착해 왼쪽 계곡을 건너자 금오산 등산로가 자세히 나와 있는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정상까지 4Km라면 오르는 데만 2시간이 족히 걸릴 것이고 이산을 넘어 가려면 야간산행이 불가피할 것 같아 더 이상의 산 오름을 포기하고 다시 고개마루 들머리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떡을 마저 꺼내 든 후 그다지 멀 것 같지 않은 진교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12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비록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를 따라 걷는 것이기는 했지만 저녁 무렵 시골 풍경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막 모를 내어 흙탕물이 흥건한 논배미를 카메라에 옮겨 담는 동안 아버지를 따라 모를 내러 다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시골에 남아 농사짓기가 싫어 죽어라고 공부했던 저는 아직도 귀향해서 살 생각이 없습니다만, 나이가 들수록 시골 풍경이 점점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제 본바탕이 시골 촌놈이기때문일 것입니다. 진교에서 4-5분을 기다렸다 진주 가는 버스에 몸을 실고나자 아스팔트 길을 오래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많이 후끈거렸습니다.  

 

  여암 신경준 선생께서 길은 걷는 사람이 임자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숲속 한 가운데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길을 찾거나 새로 내어 진행할 때마다 이 순간만은 이 길의 주인이 바로 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기쁨도 없다면 누가 힘들여 길을 내려하겠습니까? 제가 낸 길도 지나고 나면 새 주인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번 산행에서도 표지기를 걸어놓은 몇 분들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보다 먼저 이 길의 주인이 되었던 분들입니다. 그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