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0447  묵방산(538m)-전북 정읍시. 임실군  *  성옥산(387.9m), 왕자산(442.4m)-정읍시

 

산 행 일 : 2004년 9월 12일 일요일
산의날씨 : 비바람
산행횟수 : 墨防山, 聖玉山, 王子山 - 각각 초행
동 행 인 : 지리산악회 동참 산우 님들
산행시간 : 8시간 08분 (식사 휴식 40분포함)

 

초당골 <0:24> 수분점 <0:41> 묵방산 <0:20> 여우치 <0:50> 가는정이 <0:55> 성옥산 <0:30>
소리개재 <0:42> 방성골 <0:58> 왕자산 <0:48> 잠시 고갯마루 <0:57> 439봉 <0:23> 구절재

 

* 15.9km +α ⇒ 초당골 <2.3> 묵방산 <2.2> 가는정이 <3.0> 성옥산 <1.2> 소리개재 <3.0> 왕
자산 <4.2> 구절재

 

* 호남정맥 종주지도와 도상거리는 월간 '사람과 산' 2004년 5월호 별책부록을 이용하나 미심쩍은
부분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편집한 1:50,000 지형도를 참고함.

 

8시간의 산행이 정말 힘들었다.
주르르 미끄러지다 무심코 붙잡은 나무에 가시가 돋혔고, 길을 가로 막고 쓰러진 나무와 얼른 눈
에 띄지 않은 줄기에 발이 걸려 기우뚱거리고, 얼굴을 할퀴려드는 덤불을 피해 엎드려 걷다 될대
로 되라는 식으로 내 맡기기도 했으며 벌떼를 피해 삽십육계 줄행랑도 했으니 '아홉 수 산행이
(호남정맥 9회차) 평탄치 않다'는 일행들 푸념을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1회용 비옷이 가시덤불에 갈기갈기 찢겨 비바람에 펄럭이자 "땀에 젖느니 차라리 비에 젖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벗어버렸고 신발 속으로 타고 내린 물에 불은 발가락은 아우성이고 발톱에 탈
이 생긴 한 동호인이 탈출하기에 이르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초당골 원조어부집 식당 뒤편 야산을 덮어버린 무성한 덤불 지대에서부터 길 찾기에 진을 빼니
첫걸음이 순조롭지 못했고 여우치를 지나 능선 찾기에 또 한 번, 성옥산 삼각점도 확인하지 못하
고 진행하여 방성골 가시덤불에서 애를 먹었으며 아래보리밭 마을 뒷산 가시밭에서 산길을 못 찾
고 잠시골을 타고 올라야하는 우도 범하게 되었다.


예덕리에서 평사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걸터앉아 여수 부부동호인이 꺼낸 시루떡을 입에 넣으
니 "내가 지금 뭣을 하고 있는가?" 괜히 서글퍼졌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니고 두 세 차례 염려와 함께 격려 전화를 해 주신 한산협 선 후배 님들의 얼
굴을 떠올리며 흐믓한 마음으로 지친 몸을 끌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다.
        
지난 일요일 충남 태안읍에 있는 백화산(284m)을 오르긴 했지만 산행다운 산행을 한지 20여일이
넘었고 어제 귀가하다 보니 심신이 모두 지쳤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아침부터 억수비가 쏟아지길 바랬다.
그러나 새벽 하늘은 그런 바램을 비웃었고 이내 산행대장으로 부터 메시지가 날아든다.

나는 지난 7월 18일 이후 거의 두 달만에 정맥 길에 오르게 되었고, 반가운 얼굴들은 6월 27일
경각산 구간 이후 이제사 만나게 되었는데 오늘 지나야할 구간 사전정보도 살펴보지 못한 체 간
단한 먹거리만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 강우 확률이 60프로라고 하나 현재 날씨가 좋고 정맥을 따른지 너무 오래 돼 그냥 진행하
기로 했다"는 말에는 동감이고 홀로 산행 후 초당골 가게에 두고 온 지팡이를 물어보는 동호인들
이 있어 고마웠다.


그런데... 서순천 IC에서 호남고속도로로 진입 쌍암재를 넘어서니 비가 들리기 시작했고 주암휴게
소에 잠시 들어서자 빗줄기가 굵어진다.
비를 대비한 아무런 준비를 안했으니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비가 그치지 않으면 순창에서 비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걱정하자 한 분이 "비상용으로 갖
고 다닌다"는 1회용 비옷을 건네준다.

 

빗속을 달린 버스가 초당골에 도착하자 호반상회로 들어가 잘 보관하고 있는 지팡이를 찾아 진심
으로 감사드리고 비옷을 걸치는 동호인들 옆에서 비닐 비옷을 배낭위로 뒤집어쓰니 부끄럽다.

 

* 산행수첩은 아예 꺼낼 수 없었고 산행대장이 건네 준 지도 뒤에 메모를 하여 1회용 우의를 담
았던 작은 비닐 봉지로 싸지만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었으며 명함 크기 만한 메모용지도 이용하
여 집에 돌아와서 물기에 젖어 글씨가 번진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쳐 방바닥에서 말려 다시 정리
하느라 많은 신경을 써야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봐도 산행기가 부실하다.

 

09 : 50 원조어부집 뒤 낮은 언덕으로 올라서자 수풀이 키를 넘게 자란데다 리본도 안 보여 길
찾기가 어려운 가운데 현역 경찰인 젊은이가 앞장서 애를 썼고 18분 후 가파른 봉우리에 이르자
길이 뚜렷해졌으며 느슨한 안부를 지난다.


10 : 14 수분점. '분기점 350m. 묵방산 1.3km * 모악산 15.8km * 초당골 1.0km' 전북 산사랑회서
세운 스텐레스 표지가 있는 이곳 삼거리가 섬진강과 동진강, 만경강을 가르는 수분점이 된다.

 

                        

 

                                         전북 산사랑회서 세워 놓은 표지

 

            

 

                                  잠시 숨을 고르고 묵방산을 향하는 일행들

 

10 : 19 출발
10 : 43 왼쪽 마근댐 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꺾어 봉우리를 오르는데 묵
방산까지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진다.
남동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높이 솟은 봉우리를 보고 가다 안부에서 철떡거리며 힘들게 오른다.

 

11 : 00 마루금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나 있는 묵방산 갈림길에 올랐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고 미끄러운 바위 길을 조심스럽게 따르다 잠시 후 왼쪽으로 90도 꺾어 지독
한 경사를 줄줄 미끄러 내린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대답이 없다.
송이를 찾는지 빗속을 헤매는 한 사람이 비닐 봉지를 들고 일행을 찾아 계속 소리를 지른다.
솔밭을 지나 칡넝쿨을 헤치면서 오른쪽 물웅덩이를 발견하고 조금 나아가자 집들이 보인다.


11 : 20 여우치 마을이다.
빗줄기가 소강상태인 틈을 타 금방 내려온 곳을 얼른 카메라에 담고 풀밭에 떨어진 홍시를 주워
먹느라 여념이 없는 일행과 합류하여 맛을 보니 진짜 꿀맛이다.
간식 먹을 겨를도 없었으니 홍시야말로 귀한 먹거리가 되었고 모처럼 웃음꽃이 핀다.

 

            

 

                                   여우치에서 본 지나온 산마루-왼쪽

 

감나무 길을 돌아서면 벌통이 즐비하고 샛길들이 있으나 리본이 안 보인다.
넓은 묘역 벌초를 하는 이들에게 길을 묻자 묘지를 거스르는 것이 못마땅한지 퉁명스럽다.


11 : 45 또 다시 잡목 넝쿨을 헤집고 길을 찾아야 했으며 능선으로 오르자 왼쪽으로 꺾이는 곳에
리본이 보이고 이제는 강한 바람까지 한 몫 거든다.
283.4봉 삼각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체 역시 덤불을 헤치며 가는정이 앞 도로와 버스
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뜨거운 매운탕에 막걸리나 한 잔 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오늘은 여기
서 산행을 접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들리나 10회차는 구절재에서 추령까지 20여km를 내달아야
하니 중도 하차는 있을 수 없다.

 

            

 

                 가는정이 삼거리와 버스정류장-섬진강 산장 간판쪽으로 올라야 한다

12 : 10 가는정이. 도로를 건너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랭이를 떨치며 정두지 않고 그냥 간다.
12 : 21 무덤봉으로 오른 후 3분쯤 가자 와이어가 바닥에 보여 이상하게 여겼는데 가까운 곳에
전봇대 하나가 쓰러졌으며 오른쪽으로 백양목 조림지가 전개된다.

12 : 35 능선 봉우리로 올라 비바람 속을 급히 내닫지만 비옷이 거추장스럽다.


13 : 05 성옥산. 거센 바람이 모자를 벗겨 버리고 어깨 등에 구멍이 난 비옷을 흔들어 댄다.
머리띠를 둘러 물이 눈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하고 아예 비를 맞기로 작정하니 오히려 시원하다. 

13 : 27 등로에 있는 밀양 박씨 묘를 지난 내리막은 미끄러지던 말던 빠르게 걷는다.

13 : 35 소리개재. 흙 범벅이 된 신발을 고랑 물에 대충 닦고 요즘 보기 힘든 기장이 심어진 밭
옆집 하우스로 다가가 "밥 좀 먹고 가겠다"고 하자 주인 왈 "예. 5만원입니다" 농담도 잘 하신다.


14 : 05 고추, 참깨 등을 말리는 하우스인지라 물밥을 먹지 않게 되었으며 후드득거리는 빗소리가
움츠러들게 하지만 다시 빗속으로 나가야 한다.

고추, 고구마, 콩들이 심어진 밭 가장자리를 지나 앞만 보고 가다 가시덤불 속에 빠지고 말았다.
왼쪽 위에 콘크리트 포장 소로가 보이나 그곳으로 치고 나아가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고 한참 실
갱이를 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있다.
 
14 : 47 방성골 뒷산에서 길을 잘 못 들어 고생을 하고 작물이 심어진 밭길을 이용하다 보니 주
인으로부터 욕께나 먹게 생겼으며 커다란 고추밭 왼쪽으로 빙 돌아 된비알 숲속으로 들어섰다.

 

15 : 19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어, 잠시후 무덤 한 기를 지나고 십자 안부를 통과한다.


15 : 45 왕자산. 최고봉에 올랐는데 아무런 특징이 없고 쉬어가기 좋은 독립된 작은 바위를 지난
길에 '갈담 453. 1991 복구' 삼각점이 왕자산임을 가늠케 할 뿐 王子답지 못하다.
 
            

 

                                                       왕자산 삼각점

 

비바람 속이라 그런지 날 파리나 모기, 거미줄 등은 없고 뱀에 대한 두려움도 잊어 버렸으며 오
로지 진로를 방해하는 잡목, 넝쿨, 가시덤불 그 중에서도 바늘같이 날카로운 가시나무 따위에 신
경을 곤두세웠고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주변을 맴돈다.

 

16 : 14 그런 가운데 아래보리밭 마을 뒷산 넓은 가시밭에서 헤매다 길을 잘 못 들어 결국은 예
덕1리로 내려서고 말았지만 어쩌겠는가.
악천후로 인하여 수시로 메모를 할 수가 없고 사진 촬영도 포기하다시피 하니 뒤쳐질 염려가 없
어 맥이 빠지고 다리도 풀리나 고목이 있는 고갯마루를 향해 앞서 걸었다.
두 젊은이는 뒤따르는 우리를 보고 이미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으나 그들을 탓할 처지가
아니며 몸을 아끼지 않고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

 

16 : 38 고갯마루 돌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5분 휴식을 취하고 출발.
지형도에 고도 표시가 안된 봉우리, 나는 '마의 봉'이라 이름 짓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는데 뒤에서
자꾸 잡아당기는 것 같고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한없이 굴러 떨어질 그런 경사다.

16 : 52 마의 봉에 오르자 털썩 주저앉아 버렸는데 이미 걸레가 돼 버린 비옷을 벗어버린지 오래
여서 물에 빠진 생쥐가 영락없으니 옷 걱정할 단계가 아니다.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가 아닌 '니 멋대로 해라'다.

 

17 : 02 구절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는 봉우리에 이르렀으나 왼쪽 멀리 우뚝 솟은 439봉이 '그
래. 잘 왔다. 어서 와 봐!' 약을 올리는 것 같다.
물에 불은 발이 고통을 호소하지만 참으며 걷고 또 걷는다.

 

17 : 35 439봉. '저 봉우리만 넘으면 도로로 뚝 떨어지겠지' 희망사항이었다.
내 몸무게 보다 갑절은 더 무거워져 버린 비에 젖은 껍데기를 두르고 이제는 용을 쓴다.

 

17 : 58 '구절재 입니다. 눈 비 올 때는 거북이처럼'
바람은 물론 비도 그친 구절재 포장도로로 내려서 금방 내려온 곳을 바라보니 꼭 꿈속을 헤메다
잠을 깬 기분이다.
 
            

 

                               구절재. 다음 산행 들머리에 리본들이 보인다.

 

            


                                                오른쪽에서 내려왔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0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