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4년 5월 9일(일요 당일) 날 씨: 하루종일 비 내림 참 석 자: 산행대장 포함 21명 산행코스: 피재-천의봉-피재-작은피재-구봉산-대박등-자작목이-귀나무목이- 서미촌재-유령산-느릅령-우보산-통리역-통리(약 8.1㎞) 산행시간: 4시간소요 산행내용: 오늘(5/9)은 작년에 진행하다 중단했던 낙동정맥의 마루금을 다시 밟기 위하여 출발하는 날이다. 민족의 등줄기로써 웅장한 기상을 품은 백두대간의 맥을 따라 이어지는 1정간 13개 정맥 그리고 그 정맥에서 이어지는 기맥, 지맥, 분맥, 단맥 등의 거룩한 혈맥들중 남한의 9정맥을 탐사하기 위한 대장정에 나서는 것이다.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북정맥을 명산산행과 낙동정맥 그리고 한북정맥으로 나눠 주일별 휴일로 분담 진행하리라 새로운 각오로 다짐해 본다. 산을 찾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도 산행 경험이 부족하여 몸이 따라 주지 않는 초행자들이 많이 있으니 그 산우님들을 위하여 일조를 해달라는 어느 岳友님의 전화를 받고 잠시 머물렀던 어느 사이버 공간의 산방에서의 시간! 견제와 시기가 난무한 몇몇 사람들의 인기몰이식 번개팅에 현혹돼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정리하고서 이제 종주산행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많이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새벽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우산을 받쳐들고 신도림역으로 향한다. 신도림역은 내가 아내와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며 2번의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끝마치게 해줬던 추억의 출발장소 이기에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 아침 6시 30분에 도착된다. 버스는 사당역과 양재역을 경유하여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서제천을 빠져나와 국도 35번의 피재에 11시 50분에 도착된다. 비옷으로 중무장을 하고서 분수령 목장길을 따라 매봉산 자락의 1145봉에 도착하여 옛 흔적과 기역을 찾고자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건 운무속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는 고랭지 채소밭뿐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1145봉을 회귀하여 낙동정맥의 분기점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막걸리 한잔을 따라 올려놓고 무사기원의 제를 약식으로 올린 후 동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서 잡목지대에 설치된 철조망을 우측으로 끼고 피재를 내려서 작은피재에 도착하니 13시 05분이다. 운무속에서 굉음을 토하며 무섭게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의 경주를 피해 붉은 색이 칠해진 차단기 속으로 빠져들 듯 들어선다. 경운기가 다닐만한 임도의 풀밭을 널널하게 걷는데 대원 한사람이 임도 한 복판에서 횡재를 잡는다. 많은 정맥꾼들이 지나간 그 길 한복판에 엄지손가락 굴기의 더덕이 하늘을 치솟듯 올라와 있는데 그것도 쌍더덕이다. 더덕 한 뿌리에서 2개의 더덕을 땡 잡은 것이다. 다시금 숲으로 들어서 진행하다보니 삼각점이다. 13시 30분에 삼각점을 통과하여 잠시 진행하다가 멈춰서 비에 밥 말아먹듯 양주와 오가피 술을 곁들여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진행하니 고압선 철탑이 나온다. 13시 55분에 철탑을 통과하여 잠목지대를 빠져나와 임도를 횡단하여 왼쪽의 숲으로 다시 들어서 능선길을 걷다보니 묘지 3기가 나온다. 축축해진 등산화를 터덕거리며 능선의 경사면을 내려서니 묘지 2기가 나오는데 보통의 묘와는 색다른 묘다. 통상 부부묘는 양 옆으로 쓰는데 안동권씨로 보이는 이 부부묘는 돌로 석축하여 만든 봉분이 앞과 뒤로 쓰여있는 것이 특색이었다. 14시 25분에 이곳을 지나 조금 내려서니 채석장인지 아니면 도로 공사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국유림사용지경계란 표시목이 설치된 공사장이 나온다. 질퍽한 공사장을 조심조심 지나서 숲으로 들어서니 잡목들이 옷깃을 붙잡는데 혹시나 비옷이 찢겨질까봐 조바심이 발걸음을 조심조심하게 만든다. 15시 정각에 또 하나의 철탑을 지나 능선길을 올려치니 유령산이다. 누군가 붉은 철봉으로 길을 막아 진입을 금지시킨 직선거리의 등산로를 버리고 방향을 동쪽으로 약간 틀어 유령산을 내려서니 산당이 있는 느릅령이다. 15시 15분에 느릅령에 도착한 우리는 이곳에서 또다시 단체사진을 찍고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숲으로 들어서는데 급사면과 같은 경사길이 모처럼 산행의 느낌을 전해준다. 비에 미끄러운 급오름길을 헉헉거리며 오르다보니 정상 근처의 좌측에 멋진 전망대가 나온다. 15시 30분에 뭔가를 확인해보고자 전망대를 찾았건만 보이는 건 발 아래로 운무만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 어쩜 내가 손오공이 돼 신선의 장도를 걷는 느낌이다. 조망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운무에 전해주고서 우보산 정상을 텃치하듯 급경사면을 내려서니 십자로의 갈림길이 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우측의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좌측의 급내리막길의 리본을 주시하다가 앞 능선길을 올려치니 통리역에서 울려퍼지는 열차의 신호음이 감지된다. 능선을 널널하게 내려서 밭 가장자리를 돌아 내려서니 16시 정각에 통리역 앞에 도착된다. 낙동 1구간을 이렇게 우중에서 무사히 마치고 여벌옷으로 갈아입은 후 태현사 입구로 이동하여 식순에 따라 경건하게 산제를 올린 후 집에 돌아오니 다음 날 새벽 1시가 다 되어간다. 우중에서 함께 고생한 동지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렇게 졸필의 산행기로 1구간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