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란 속담처럼 어느덧 절반진행한 금북정맥
  
제8차 <학당고개-스무재>
  
제20080150013호       2008-04-05(토)

자리한 곳 : 충남 청양군, 보령시

지나온 길 : 학당고개(29번국도)-여주재-천마봉-큰골고개-오봉산-공덕재-백월산-스무재(36번국도)

거리및시간 : 도상거리: 약17.5km(10:01 ~18:26) 08시간 25분 실제거리(알바포한), 만보기: 36,882보 실제거리 약 20km

날 씨 : 맑음 (시계는 불량하고 후텁지근)

함께한 이 : 단독  

◀임도에서 내려다본 시구치마을과 청양읍내▶

어제저녁에 금북정맥 교통편을 알아보던 중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정에 따라 첫차 시간을 확인하고 5시에 기상해 배낭을 꾸려 5시30분에 집을 나서 전철을 이용 6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여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06:40)

청양행 차표를 사들고 장거리 여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하고 버스에 올라 지정석보다는 뒤에 빈자리가 많아 편안하게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사이에 예산을 경유하여 청양터미널에 도착했다.(09:39)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버스시간표를 확인해보았지만 배차간격이 길어서 택시를 타기로 하고 가까운 마트에 들어가 식수(2리터)1통과 구운 계란 3개를 준비하여 배낭에 밀어 넣고 택시를 잡아타고 지난주에 산행을 끝냈던 학당고개 주유소 앞에서 내렸다.(09:54)

주유소 모퉁이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복장을 꾸리고 충분한 준비운동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포장도로를 따라 청양정비공장방향으로 힘차게 산행을 시작하며 계란2개와 밀감2개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걷는다.(10:01)  

 

◀매일유업 공장 철망으로 이어간 마루금, 뒤 돌아본 송전탑 들▶

정비공장 옆으로나 있는 묘지진입로에서 짧은 알바 후 마루금에 올라서니 희미하게 등로가 이어지고 가시잡목의 방해를 받으며 벌목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자 나무를 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조상님의 묘지에 정성들여 손질하는 후손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한식날이다.

寒食을 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4대 명절의 하나로 청명절(淸明節)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계절적으로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철이기도

하며, 겨우내 무너져 내린 무덤을 보수하는 때이기도 하다. 한식은 원래 한국의 풍습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절기였으나 한국에 토착화되었다. 지역적으로는 한반도 북쪽지역이 남쪽지역에 비해 한식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들은 한식을 냉절 또는 숙식이라고도 불렀다. 한식의 유래는 중국 옛 풍속에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왔다"는 〈개자추전설 介子推傳說〉이 전해진다. 중국 춘추시대에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망명·유랑하다가 진나라 문공(文公)이 되어 전날의 충신들을 포상했다. 이때 과거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던 충신 개자추가 이 포상자들 중에 들지 못하자 개자추는 부끄럽게 여기고 산중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서로 껴안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을 지내고 관공리들에게 공가(公暇)를 주어 성묘하도록 했다. 민간에서는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낸다. 농가에서는 이날 농작물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曺)에서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구멍을 뚫고 삼으로 꼰 줄을 꿰어 양쪽에서 톱질하듯이 잡아당겨 불을 만들어 임금께 올린다. 임금은 그 불을 홰에 붙여 관아와 대신들의 집에 나누어주었는데, 이는 불의 주력을 이용하기 위해 불을 소중히 여기는 숭배사상의 전승이기도 하다 』

좌측 매일유업공장 철망을 따라가다 철조망과 작별하고 2번 송전탑에 이르러 넓은 임도로 무심코 직진하는 바람에 하산로로 내려가다 묘지를 돌보고 있던 주민의 도움말을 듣고서야 알바를 끝내고 송전탑으로 돌아왔으나 15분여의 발품을 대가로 치르고 우측으로 급하게 꺾이는 마루금을 따른다.(10:39)

붉은 황토위의 임도를 네거리에서 직진하여 송전탑을 건설하느라 질서정연하게 돌담을 쌓아올리고 철망과 나무를 심어 마감한 우측으로 올라서 지나온 마루금을 돌아보고 드물게 붙어있는 표지기를 따라 진행한다.

박정4거리를 지나자 벌목잡업으로 어지럽게 널려있는 잡목들과 바위봉우리를 뒤로하고 호젓한 솔밭 길을 진행하자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며 서서히 고도는 높아가지만 야산지대라 호젓하고 푹신푹신한 솔밭의 완만한 오름을 올라서자 334봉에 이른다.(11:59)

 

 

◀334.0봉을 오르기 전 고갯마루 봉우리 전경 해맞이가 소박하다 ▶

다른 봉우리들과 같이 정상표시판과 삼각점을 확인하고 특이한 것은 지난 1월1일 해맞이 장소였던지 “방한 용천주민 해맞이”이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이색적인 현장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급하게 꺾인 내리막길을 내려서 유순한 등로를 따르는데 이번에도 특이한 플래카드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금북정맥 중간지점” 절반을 끝냈다는 현실감이 가볍게 떨려온다.(12:22)

                                             ◀시작하면 절반은 끝낸거나 마찬가지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

박무의 영향으로 건너편 산마루가 희미하게 아른거림을 가슴에 담고 절개지로 가파른 내리막으로 진행하니 차량통행이 빈번한 여주재(36번국도)에 내려선다.(12:36)

 

◀여주재와 천마봉으로 넘어가는 능선에 서서▶

청양과 보령을 잇는 국도 고갯마루에는 구봉 휴게소와 SK 주유소가 내려다보이는 절개지 좌측 사면에 올라서 개나리꽃이 만개한 안부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경사로는 잡목들을 깔끔하게 벌목하여 소나무가 돋보이고 멀리 여주재를 넘나드는 자동차 행렬이 내려다보이고 사유지 울타리로 설치한 철사 줄을 따라 오르다 철사울타리를 넘어서 된비알의 오름을 올라서 천마봉에 선다.(13:05)

 

◀천마산의 원형삼각점, 몇시간 앞서간 반가운 님의 시그널▶

조망이 양호한 정상은 날씨관계로 시계가 불량하지만 산불감시탑과 통신중계탑은 책무에 중실하고 국방부 지리연구소의 삼각점은 흐리게 그림자가 발생한 정상까지 임도가 나있어 차량으로 정상진입이 가능하다 표지판과 나란히 철망에 붙어 있는 ‘무원마을’님의 시그널을 발견하고 발목 부상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앞서가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하는데 다정한 무공도(부부산객)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과정에서 2시간쯤 앞서가고 있는 ’무원마을‘님으로 추정되는 산객의 소식을 전해준다.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정맥을 벗어나지 않으려면 독도에 주의가 요청되는 지점이라 생각하며 마루금을 이어가다 안부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절개지에 이르니 포장도로인 큰골재에 내려선다.(13:23)

◀큰골재▶

건너편 콘크리트옹벽을 올라서 구시치 마을을 내려다보이는 능선을 지나 진행하다 벌목지에 관상수 재배지에 이르러 청양읍내 아파트단지가 아른거린다.(14:13)   

  
◀관상수 재배단를 내려서면 임도가 이어지고 청양읍내가 아른거린다▶

관상수 재배지와 숲의 경계를 따라가다 농로의 절개지를 내려서 농로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임도를 따르는 동안 우측에서 좌측으로 자리가 바뀐 주목과 구상나무 재배지와 함께하니 걷기가 편하고 진행에 속도가 붙었지만 임도를 버릴 때가 됐는지 표지기가 우측으로 인도하는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는 잡목가지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매산저수지를 내려다보며 능선에 올라선다.(14:33)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헬기장을 지나자 나무푯말에 “이곳은 정상입니다” 와 나무허리에는 ‘준,희’님께서 설치해주신 오봉산498m 정상표지가 신뢰감을 준다.(14:52)  

 

◀오봉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송림지역▶

소나무 숲길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능선을 따라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너덜지대 벌목된 잡목들이 널려있는 능선을 지나 화사하게 피어나기 시작한 진달래꽃의 응원을 받으며 공덕재(2차선 610지방도)에 내려선다.(15:45)

 

 

◀매산저수지를 내려다보며 너덜지대를 지나 공적재에 이른다▶

차량통행이 한산한 도로를 횡단 백월산(3.0km)안내판을 따라 넓게 정비된 소나무 숲의 부드러운 오름을 오르니 아담한 바위봉우리에 이르고 장송 사이로 내다보이는 건너편 산 벌목지가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바위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그림같은 풍경과 봉우리 부분▶

전망 좋은 곳에 친절하게 벤치를 설치해 편안하게 쉬어가기 좋은 곳에서 한북정맥의 최고봉 오소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능선을 따르는 동안 여러 곳에 벤치와 평상이 놓여있고 적당한 간격마다 정상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진행하기 편한구간으로 60~70년대에 송진채취 흔적이 수십 년이 흘러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소나무를 미안한 마음으로 지나 잡목을 땅에 눕히고 고정시킨 계단에 올라서 배문과 줄 바위를 넘어서 백월산 정상에 서기까지는 상당한 고도차를 극복하느라 땀 흘린 결과여서 기분이 상쾌하다.(17:02)  

 

 

◀안내판과 편의시설이 양호하여 산행이 편하다. 송진 채취의 상처▶

정상석이 2개와 산행안내도 평상과 멋스러운 소나무가 어우러지고 조망도 양호한 금북정맥에서 가장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를 내려서 너덜지대 내리막의 험로를 진행하지만 표시기가 보이지 않아 마루금을 놓쳤다고 착각하여 줄 바위까지 뒤돌아 가봤지만 빠져나갈 능선은 발견하지 못하고 정상에 설치된 평상에서 호흡을 고르며 지도를 꼼꼼히 읽어보지만 전혀 잘못됨이 없어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되돌아왔던 바로 아래에 표지기들이 붙어 있었는데 보지 못함은 안경을 착용하지 않은 댓가였나 보다 생각하며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비스틈한 내리막을 따르지만 소심한 대가로 불필요한 시간을 30여분 허비했다.(17:49)

 

 

◀백월산 정상 풍경과 너덜지대 아래로 이어진 마루금▶

소나무 숲의 호젓한 능선 길을 따라 내려서니 마을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 어린시절 저녁풍경을 떠올리며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목 묘지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운무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 동네 뒷산의 대나무 숲을 뚫고 나아가 농로에 내려서 좌우 밭 사이 맞은편 언덕을 넘으니 과수원에 꽃들도 제철을 노래하는 꽃길과 능선을 올라 내리막을 내려서니 스무고개에 도착했다.(18:26) 

 

 

 

◀연기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안무로 인해 태양은 빛을 잃고, 스무재 한산하다▶

해가 노루꼬리만큼 남아있어 계속진행 할까? 아니면 여기서 멈출까? 상당시간을 고민하다 내일의 원활한 산행을 위해 마감하기로 결정 하고 히치를 시도 단 한번시도로 청양까지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던 행운은 친절한 중년(40대중반)이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나를 내려주기 위해 방향을 바꿔가며 터미널에 내려준 아량에 감사드리고 터미널에 들어가 내일 아침 스무재가는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니 첫차가 너무 늦은 시간에 배차되어있어 택시로 이동하기로 하고 여관에 들어가 마음씨 곱게 생기신 아주머니께 5,000원 깎아 달라 졸라서 20,000원에 유숙했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08-04-14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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