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종주기 11(최종회)


 

              *정맥구간:연석산-보룡고개-565봉(3정맥 분기점)

              *산행일자:2007. 4. 2일

              *소재지  :전북완주/진안

              *산높이  :입봉 637미터

              *산행코스:연동마을-연석산-황새목재-보룡고개(26번국도)

                              -입봉 -565봉(3정맥분기점)-모래재

              *산행시간:8시48분-17시22분(8시간34분)

              *동행    :나홀로  

 



 

  금남/호남/금남호남의 3정맥 분기점인 전북진안의 565봉에서 전장 129Km의 금남정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 1월 부여의 구드래나루를 출발하여 두 달 한 주 만에 565봉의 3정맥분기점에 다다르기까지 총 11회를 출산했습니다. 어제는 그동안 건강과 건각을 지켜주신 주님께서 예상치 못한 일로 당혹해하는 제게 용기를 북돋아주셔서 마지막 구간종주를 무사히 해냈습니다. 3정맥분기점에 도착해 표지봉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리고 나자 비로소 금남정맥의 종주산행이 모두 끝났음이 실감됐습니다.


 

  전주시 산정동의 한 찜질 방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서 연석산 정상에 올라 정맥종주를 이어가기까지 몇 가지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겨 당혹스러웠습니다. 첫째 아침 7시부터 식사가 가능하다던 찜질방의 부속식당이 8시 반이 넘어야 문을 연다고 해 인근 편의점에 가서 빵 2개를 사 아침식사로 가름했습니다. 둘째 아침 7시50분에 모래내를 출발하는 화심경유 동상행 첫 버스가 찜질방 바로 옆의 주유소를 8시 쯤 지난다고 해 일찌감치 나와 기다렸는데 8시반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아 버스로 2천원이면 갈 수 있는 연동마을을 별 수 없이 만 5천원을 들여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셋째 연동마을을 출발하여 거의 2시간 만에 주 능선에 오른 후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다가 반대방향으로 잘 못가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채고 되돌아와서 연석산에 오르느라 십 수분 늦었습니다.


 

  앞서 일들은 그렁저렁 잘 해결됐는데 이번에는 길잡이의 필수품인 산행기와 지도를 찜질방에다 놓고 와 연석산에서 산행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한참동안 고심했습니다. 아침부터 뭔가 계속 뒤틀리는 것이 무리해서 종주를 하다가는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경고메시지인 듯싶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냥 하산하자고 마음먹었다가도, 연동마을에서 7백m나 수직고도를 높여 연석산에 오르느라 2시간 여 흘린 땀과 이틀 연속 산행을 하겠다고 하룻밤을 묵은 시간, 그리고 택시비가 아까워서도 강행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한참동안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하나하나 따져 보았습니다. 보룡고개를 지나 입봉에서 직진하지 않도록 주의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산행기의 한 구절이 생각났고 쾌청한 날씨로 마루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길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설사 한 두 번 길을 잃는다 해도 시간이 충분해 제 길을 찾아 종주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고 5번째 정맥의 마지막 구간에 들어선 그동안의 저의 경험과 능력으로 자신이 섰기에 눈 딱 감고 한번 해보기로 최종 결심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나침판은 놓고 오지 않아 정 안되면 중간에 적당한 지점에서 방향을 잡아 탈출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연석산을 출발했습니다.


 

  아침 8시48분 연동마을 차도에서 마지막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피암목재-서봉-연석산 구간의 종주산행을 마치고 전주시 산정동의 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택시를 타고 연동마을로 되돌아왔습니다. 연석가든에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하차해 오른쪽으로 난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대웅전만 달랑 보이는 계곡 건너 연석사가 황사가 가시자 전날 내려올 때 보다 훨씬 산뜻하게 보였습니다. 조선조 영조 때 산경표를 펴낸 실학자 신경준 님이 말씀하신 대로 길은 따로 주인이 없고 길 위를 걷는 사람이 바로 주인이라면 저를 앞질러 내닫는 한 젊은이가 이 임도의 주인임에 틀림없기에 부지런히 걷는 그의 뒷모습을 임도와 함께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저 만치 보이는 연석산에 이끌려 점점 산 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가 계곡을 만나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아름답기로야 미라보다리 등 세에느강을 가로지르는 파리의 다리들이 최고이겠지만 이러한 다리들은 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기에 물속에 일정간격으로 돌덩이를 놓아, 건너는 사람들과 다리 그리고 흐르는 물이 다툼 없이 한데 어우러지는 정겨움은 징검다리가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10시50분 해발925미터의 연석산을 다시 올랐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합수점에 다다르기까지는 크고 작은 폭포 등 모든 것이 눈에 익었는데 합수점 바로 위의 너덜 길을 지나서 얼마 후부터는 표지기는 걸려있어도 마치 처음 걷는 길처럼 오름 길이 낯설어 고개가 갸우뚱해졌습니다. 연동계곡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가 연동마을출발 1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계곡을 벗어나 산등성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흐르는 물에 길이 젖은 암반 길을 몇 곳 오르고 또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도 지나 운장산이 시원스럽게 조망되는 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이 지점이 하산 길에서 만난 연동마을로 갈리는 분기점으로 알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을 하던 중 뭔가 이상해 가던 길을 멈추고 한번 둘러보며 갈 길을 점검했습니다. 점검결과 반대방향으로 잘못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눈에 익은 표지봉이 보이는 방향으로 되돌아가 연석산에 다다랐는데 계곡 깊숙이 너무 들어가 먼 길로 돌아오느라 시간 반이면 충분한 것을 2시간 남짓 걸려 반시간은 족히 늦어졌습니다.


 

  11시1분 연석산을 출발해 금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종주에 나섰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신 후 종주 길에 들기 전에 산행기와 지도를 챙겼으나 아무리 뒤져보아도 찾지를 못해 난감했습니다. 찜질방에 두고 온 것이 분명하기에 지도 없이 산행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는데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얼마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숙고 끝에 그대로 강행하기로 최종 결심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대간과 정맥 길을 1,600Km 이상 종주해온 저의 경험과 능력, 그리고 의지를 믿어서였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쾌청해 남쪽으로 내 뻗은 정맥 길이 한 눈에 잡혀 적지 아니 안심됐습니다. 정상 출발 3-4분 후 오른쪽으로 연동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직진해 경사가 급한 산죽 길을 따라 평평한 안부로 내려서자 완만한 능선 길이 이어졌습니다.  키를 넘는 산죽들이 얼굴만 찌르지 않았다면 더 할 수없이  편했을 능선 길을 따라 걸어 소나무가 자리한 전망바위에 다다르자 왼쪽 아래로 아담한 규모의 궁항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2시2분 664봉(?)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연석산 출발 반시간이 지나 다다른 좌사면이 낭떠러지인 전망바위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봉우리삼거리를 지나고 날등을 따라 걸어 밧줄을 잡고 바위를 내려섰습니다. 봉우리 한 개를 넘어 또다시 봉우리에 올라선 후 경사가 가파른 길로 내려가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안부에서 된비알의 짧은 오름길을 올라 빙 둘러 참호를 파놓은 664봉(?)에 오른 다음 왼쪽 아래로 임도가 보이고 벌목을 한 능선을 따라 걸어 무명봉에 다다른 시각이 12시31분이었습니다.


 

  13시20분 삼거리안부를 지났습니다.

무명봉에서 내려섰다가 황토 흙이 속살을 내보여주는 구릉에 오르자 운장산-서봉-연석산의 능선 길이 말끔하게 보였습니다.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 길에 떡갈나무 낙엽이 쌓여 있어 걷기에는 편했지만 가슴팍을 파고드는 냉랭한 꽃샘바람이 점점 드세게 불어  윈드쟈켓을 꺼내 입고 장갑도 꼈습니다. 능선 길 나지막한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바람을 피할 만한 곳에서 점심을 들면서 10분을 쉬었습니다. 따끈한 커피로 입가심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몇 분을 걷자 경사가 급한 내림 길이 이어졌습니다. 참나무 숲길로 내려와 삼거리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바로 아래에 민가가 있고 더 내려가면 궁항리 차도를 만나는 갈림길이 왼쪽으로 나있는 삼거리안부는 연석산과 보룡고개 사이의 안부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비상시에 탈출지로 최적지일 듯싶었습니다.  


 

  14시44분 진안과 완주를 넘나드는 보룡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삼거리안부에서 17분 간 치받이 길을 따라 봉우리에 오르고 나자 경사가 완만해져 걸을 만 했습니다. 꽤 높은 700봉에서 사과를 까먹으며 5-6분을 쉰 후 40-50미터를 급하게 내려서 십자안부인 황새목재(?)로 내려섰다가 산죽 길을 다시 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675.4봉에 다다랐습니다. 이번 산행 중 최장의 산죽 길과 낙엽 길을 지나 구릉 같은 700봉에 이르렀고 왼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보룡고개로 향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장해 봉분이 없어진 옛 묘지를 지나자 검은 차양막으로 가려놓은 꽤 넓은 표고버섯 재배지가 나타났습니다. 버섯재배지를 지나 만난 배수로를 따라 오른 쪽으로 내려가 닿은 26번 국도에서 왼쪽의 고개 마루로 올라가 중앙분리대를 넘었습니다. 보룡고개 휴게소에 들러 맥주 1캔을 사 마신 후 3정맥분기점으로 향했습니다.


 

  15시42분 보룡고개 출발 45분 만에 해발637.4미터의 입봉을 올랐습니다.

보룡고개 휴게소에서 다시 정맥 길로 복귀해 편백나무(?) 숲과  SK통신 시설물을 차례로 지났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정맥 길은 철망울타리가 정맥 길에서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곳에서 끝났고 이내 가파른 오름 길이 시작됐습니다. 500미터 안팎의 무명봉을 오르자 앞을 가리는 높은 봉우리가 가까이 있었는데 그 봉우리가 바로 입봉이었습니다. 무명봉에서 얼마고 내려섰다가 몇 봉우리를 넘어 입봉에 이르는 오름길이 된비알 길이어서 힘들었습니다. 헬기장이 꽤 넓은 억새풀 공터 한 가운데에 삼각점이 세워진 이 봉우리에 표지석은 없었지만 나뭇가지에 표지물이 걸려있어 입봉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광란의 바람이 멈추어 입봉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머무르는 잠깐 동안은 평화로웠습니다. 입봉에서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비탈길을 가파르게 내려가야 하는데 발이 푹푹 빠질 만큼 낙엽이 깊게 쌓여 길을 놓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산죽이 군락을 이룬 깊숙한 안부에서 바로 앞의 봉우리에 올라 완만한 능선 길을 걷는 동안 잠잠했던 바람이 오른 쪽 26번 도로방향에서 다시 불어와 기승을 부렸습니다. 된비알 길을 올라 다다른 645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길은 참나무와 철쭉이 빽빽하게 들어섰고 경사가 가팔랐습니다.


 

  16시48분 3정맥분기점인 565봉에 올라 금남정맥 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안부에서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 내리막길로 내려서자 왼쪽 바로 아래로 임도가 구불구불 나있었고 같은 방향으로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선 꽤 높은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저 정도로 높은 봉우리라면 3정맥분기점이 틀림없을 것이고 눈앞의 봉우리만 돌아가면 이제 다 왔다 싶어지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꽤 높은 봉우리가 3정맥 분기점인 565봉이 아니고 눈앞의 봉우리가 바로 565봉이었습니다. 맞은편의 꽤 높은 봉우리는 금남호남정맥 길의 조약치임을 확인한 것은 집에 돌아와 지도를 보고나서였습니다. 오른 쪽으로 호남정맥이 왼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이 갈리는 분기점에 부산의 한 산악회에서 세운 표지봉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완주를 기념하는 사진 한 컷을 찍었습니다. 그런 후 무릎 꿇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17시30분 모래재를 넘는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어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침부터 뭔가가 뒤틀려 모래재에서 산행을 끝내기까지 혹시라도 사고가 나는 것이 아닌 가  해서 산행시간 내내 긴장을 풀지 못했습니다. 연석산에서 565봉까지 거의 외길이어서 지도와 산행기가 없어도 표지기만으로 정맥 길을 이어가는데 이렇다할 어려움은 없었지만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산행이 끝나자 멍해진 기분이었습니다.


 

  금남정맥 종주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자세한 산행기와 지도를 올려주신 성봉현님과 천자봉님에 감사드립니다. 댓글로 격려해주신 여러분들도 고맙고 대둔산 구간을 같이 뛴 친구도 고맙습니다. 손님도 별로 없는 시골 길을 제 시간에 빠짐없이 달리는 버스 기사 분들에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정맥종주를 끝내고 여러분들에 감사인사를 드릴 때마다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무수한 산봉우리들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두 다리가 튼튼한 것이 첫 번째 복이고 산행 중 산속의 식구들과 이런저런 묵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슴을 갖고 있는 것이 두 번째 복입니다. 산에 다녀온 것을 후기로 남길 수 있도록 좌뇌와 우뇌가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은 세 번째 복입니다. 정녕 이 셋들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복은 한 정맥을 다 밟고 나면 또 다시 새로운 정맥종주를 꿈꾼다는 것입니다. 꿈을 이어가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가장 확실한 실존의 증거일 것입니다. 정맥이 끝나면 지맥을, 지맥을 마치면 분맥을, 그리고 단맥을 종주할 뜻이기에 저의 꿈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껏 가보지 못한 먼 곳에의 동경이 끊임없는 제 꿈의 원천입니다. 멀지 않은 날에 호남정맥의 연봉들을 오르내리는 저를 그려보며 마지막 종주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