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11낙동정맥2구간

오전에 강의를 하고 점심도 거른채 2시부터 서울시에서 설계중인 건물의 설계 심의를 받는 등 바쁘게 지났다. 그리고 설계 심의 과정에서 위원들이 설계 의도가 깨뜨려 질 수 있는 예기들을 하여서 불안했다. 협회 세미나에 늦게 참석했다 돌아와 낙동정맥 2구간을 걸을 생각으로 산행을 준비했다. 심난한 기분을 산길을 걸으며 달래고 싶었다. 지난번 1구간을 강남건축사 등산동호회 일행과 함께 했는데 마치고 돌아오면서 가급적 혼자 걸어볼 생각을 했다. 그 일행 대부분이 술을 좋아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여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는 내가 미안한 기분이 든다.

평소 산행은 가급적 혼자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함께 걷다보면 일행의 보조에 맞추게 되고 앞장서 걷는 사람을 따라 가는 꼴이 되기 쉽다. 그래서 산세 표정 등을 조용히 느끼며 내 생각의 흐름을 갖기 어렵다. 내가 생생히 기억하는 곳들은 대게 혼자 걸었던 곳들이다. 하지만 혼자 할 때는 차편 이용 등 어려움도 많아진다.

인터넷으로 태백으로 가는 차 시간을 알아보았다. 지방 도시들은 운행이 일찍 끝나 차가 있을지 확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태백은 다행히 차가 있었다. 9시 30분 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늦지 않으려고 바삐 챙기느라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나섰다. 웬만한 것은 터미널 등에서 구하려고 생각했다.

9시 24분경 동서울터미널역에 도착되어 9시 30분차를 탈 수 잇을 것 같았다. 표를 살 시간까지 감안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표를 사려고 창구로 가니 그 사이 10시, 10시 30분 차표는 다 매진이라고 하며 11시 차표를 팔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는 차표가 있었는데 금새 매진 된 것 같았다. 그 때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앞차의 빈 좌석이 생기면 타려고 승차장에 가서 줄을 섰으나 표를 산 손님이 다 와서 빈자리가 생기지 않았다. 직원이 입석을 팔았다. 앞의 운전보조석 외에는 차 통로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가도록 했다. 나도 입석을 타려다 포기하고 내려와 다시 줄을 섰다. 30분을 더 기다려 좌석을 얻었다.

12시 25분 충북 제천서 영월 가는 38번 국도상의 금봉이 휴게소에 정차했다. 계속 자려다 매점에서 물과 간식을 샀다. 차가 다시 출발하고 잠을 청했다. 승객들이 사북 고한을 지나며 거의 다 내렸다. 이 지역에 있는 카지노에 오는 사람들이 많은 듯 했다. 사북에 도착해 일부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출발하여 1시 30분 태백 터미널에 도착했다. 등산 복 차림을 한 부부도 내렸다. 그들은 태백산에 가기 위해 왔다고 했다.

택시 정류장에서 찜질방을 물어 보니 기사가 여기는 없다고 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는 있을 거라고 들었었다. 잠시 눈만 부치다 일찍 산행에 나서려는 판에 요금이 제대로 숙소를 잡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다시 뒤쪽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니 있기는 한데 수준이 낮다고 해서 괜찮으니 가자고 했다.

택시가 찜질방 앞에 내려 주었다. 짐을 옷장에 넣고 방으로 가 누웠다. 몇 명이 자고 있었다. 부시럭거림과 코 고는 소리에 신경이 쓰였지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을 깨니 시간이 적당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며 찜질방 주인에게 물으니 터미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했다. 걸어가다 보니 지난주 들렀던 황지 연못이 보였다. 터미널로 가면서 보니 주변에 식당이 보였다. 식사를 하고 갈까  생각하다 차를 놓치면 다시 한참을 기다리게 될 것 같아 바로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 매표소에서 통리 가는 차표를 사려고 줄을 서서 물어보니 통리는 표를 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6시에 차가 출발했다. 태백시를 빠져나오면 돌아 보이는 주변 산세가 아침 햇살에 밝게 빛났다. 손님이 나 혼자뿐이었다. 젊은 기사가 통리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배차 간격은 15분 정도라고 했다. 생각보다 차가 많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통리에서 식사를 하고 갈 생각을 했다.

가다보니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통리역 앞에 내렸다. 거리에 인기척이 없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아도 문 연 곳은 한 곳도 없을 것 같았다. 난감한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들머리를 찾아갔다. 구간 산행에서는 우선 들머리를 제대로 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냥 산길만 있는 곳은 차라리 찾기가 쉽다. 그런데  도시 가로가 가로지르는 곳이 어렵다.

산 쪽으로 다가가니 통의재라는 표지석이 보였다. 표고 720m 지점이다. 통리는 강릉으로 가는 태백선과 영동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렇지만 전형적인 강원도의 산골 마을 같았다. 태백에서도 떨어진 작은 고장으로 석탄 산업에 의해 동네가 형성되어온 것 같았다.

들머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우측 모서리에 리본이 보였다. 그 길로 올라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조금 올라서니 다시 리본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탄광 주변으로 둘러친 검은 망 옆으로 갔다. 산길을 지나 임도가 나왔다. 우측으로 통리 시내전체가 주변 산세와 함께 훤히 내려다 보였다. 아침 햇살에 비친 녹음이 싱그러운 빛깔을 띠고 기차 길은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산중에 위치한 통리전체도 평화로워 보였다.

산길을 가다 좌우 갈림길이 보여 좌측으로 가서 임도와 만났다. 길가에 벌목한 나무들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다. 그러나 리본이 보이지 않아서 정맥 길인지 아닌지 불안했다. 임도를 따라가다 보니 아래쪽에 건물이 보였다. 저층 아파트가 단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 회사의 사택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맥길을 알리는 리본이 없어 아무래도 길을 물어보고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건물쪽으로 다가가도 인기척이 없었다. 건물들이 사람이 살지 않고 다 비어 있는 듯 했다. 마침 저 아래 도로 옆에 차를 세워두고 서 있는 사람이 보여 그에게 불어보려고 내려갔다.

그에게 다가가서 물어보니 백병산으로 오르는 길을 알지 못했다. 그 때 아주머니 세분이 올라오고 있어 그들에게 다시 물어 보니 이 길로 가면 된다고 했다. 그분들은 산책하러 온 길인데 백병산은 올라가지 않고 입구까지 간다고 했다. 내 걸음이 빠른데 그들도 보조를 맞춰 함께 걸었다. 운동삼아 걷는 것 같았다. 식사는 했느냐고 해서 아침을 먹지 못했는데 준비한 토마토와 계란으로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그래서 날씬한가보다고 했다. 그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걷는다고 했다.

길옆에 보이는 건물들이 다 빈 것 같다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한보탄광 사원 아파트였는데 이제 주인이 바뀌고 쓰지 않아 곧 철거할 거라고 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걷다 체육시설이 있는 원통 체육공원에 도착했다. 그 곳 표지에 백병산까지 거리가 3.82km로 나타나 있었다

백병산을 행해 난 길을 걷다보니 제트엔진 같은 소리가 났다. 길 따라 놓인 고압 호스가 터져서 바람이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이 부근 안내서에 포장길이 끝나는 곳에서 산길을 오르면 된다고 씌여 있었는데 그 길이 맞는 것 같았다. 가다 뒤돌아보니 멀리 함백산이 보였다.

길을 걷다보니 다리 건너 큰 나무 주위로 줄을 쳐 놓고 기원문이 달린 곳이 보였다. 그 옆으로 길이 보였다. 그 곳으로 갈까 하다 리본이 없이 아닌 것 같아 계속 가던 길을 올라갔다. 한참 올라 산길에 접어들었다. 그 입구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삼거리 좌측으로 백병산 가는 길을 표시한 표지가 보였다. 길옆에 버들강아지가 허물을 벗고 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누에고치 같았다. 우측 건너에는 갈아 놓은 밭이 보였다. 그리고 뒤로 그 계곡으로 멀리 시선이 트여 나갔다. 그 끝을 함백산이 막아서고 있었다.

가다보니 계곡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저수시설 같았다. 개울 건너 길이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개울을 좌측에 두고 난 완만한 오름길을 걷다보니 백병산이 1.8km 남은 표지가 보였다. 계곡에 높이가 3m 정도 되는 폭포가 보였다. 다시 백병산이 1,59km 남은 이정표가 나타났다. 거기서 지나온 원통골 체육공원이 2.03km로 더 멀어져 있었다.

계곡물 소리가 그치고 새소리만 들렸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도 들렸다. 뻐꾸기 소리는 언제나 고향 앞산을 떠올리게 한다. 조용하던 산골에 뻐꾸기 울음소리가 차분하고 그윽하게 했었다. 길 주변 숲속의 자작나무가 높이 솟아 보였다. 나무 표면에 나무 껍질이 비늘 벗듯 얇게 벗겨지고 있었다. 완만한 오름길을 걸어가다 마주오는 사람과 마주쳐 백병산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니 1km 정도 남았다고 했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그 곳만 통과해도 마음 부담이 적어질 듯 했다.

좌로 비스듬한 경사지에 완만히 난 길을 가다 너른 공터의 헬기장에 닿았다. 이정표로 다가가며 주변을 보니 두릅이 있었다. 앙상한 가지에 끝부분만 새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드룹을 좋아해서 새 순이 재대로 피어보지도 못할 것 같아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이정표에 다가가 보니 뜻밖에 피재 방행 이정표가 보였다. 그 곳은 고비덕재인데 좌측을 가리키는  낙동정맥 피재라고 쓰여 있었다. 우측 방향으로 가는 백병산은 0.92km였다. 표지를 보면서 지금까지 길을 잘못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리재 입구에서 리본이 걸린 모서리로 올라온 것이 잘 못 된 것 같았다. 처음 만난 임도에서 능성으로 올라왔어야 했던 것 같았다.

제대로 길을 들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져 다시 피재 방향으로 걸어갔다. 완만하고 평온한 길이었다. 그 뒤로 산세가 그윽했다. 먼 산세와 대기가 푸르게 보였다. 능선을 넘으며 펼쳐보인 하늘이 파랗다. 맑은 햇살을 받은 철쭉꽃이 길을 환하고 신록의 계절의 신선한 느낌을 띠게 하였다. 그 분위기에 걷는 길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다만 거미줄이 얼굴에 닿는 것이 불편했다. 어느새 날것들의 소리가 윙윙거렸다.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냄새를 맡고 달려들어 성가시게 되었다. 봄에는 신록만 무성해지는 게 아니다. 내림길을 걸어 산죽길을 지났다. 아까 지날 때 보인 철탑이 보였다. 시작지점까지 가고 싶었지만 오늘 갈 길을 생각하며 위치만 가늠하고 되돌아섰다.

다시 이정표가 있는 고비덕재 삼거리로 돌아와 백병산을 행해 올랐다. 완만한 길을 오르다 보니 평평한 곳에 이정표가 나타났다. 백병산 정상부가 우측으로 0.36km 지점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번에는 백병산 위치가 좌측으로 보였다. 거리가 멀지 않으니 금방 다녀 올 생각을 하며 그리로 갔다. 그런데 지형이 점차 더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표지석에 올라와 확인하니 백병산 방향 화살표 표지가 위에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어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었다. 식량 등 준비가 부족한채로 왔기 때문에 산에 머무는 시간을 오래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나서 9시 5분 백병산을 올랐다. 높은 산이라 주변이 다 내려 보였다. 주변을 돌아보다 바로 내려와 다시 표지석을 지나 되돌아왔던 내림길을 걸었다. 이제 방향 감각에 착오 없이 앞으로만 계속 가면 될 것 같았다. 낙동정맥은 대간에서 갈라져 태백시를 양편에서 감싸며 줄기를 뻗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의 줄기를 펼쳐가는 느낌이었다.

지도상에 나타난 지나는 부근이 휘어지다 펴지는 듯 했다. 봉우리를 올라 조금 지난 곳에서 쉬면서 먹을 것을 조금 먹었다. 식사 게란 두 개 물 한 모금에 오이 반토막과 백반석 오징어를 먹었다. 짭짤한 오징어는 물만 더 먹힐 것 같아 조금 먹다 그만두었다.

계속되는 능선길을 걸었다. 지대는 높지만 완만한 편이어서 능선이나 봉우리들을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리며 지나갔다. 주변의 숲은 햇살에 반짝이고 산을 수 놓은 꽃들이 분위기를 명랑하게 했다. 그러나 오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능선이 부드럽게 솟아 보였다. 주변을 지나는 푸르고 희멀건 능선이 깊이감을 자아냈다. 초여름 길에 기온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지만 신록이 한창 자라나는 숲은 싱그러움이 넘치고 있었다. 갈 가에는 드문드문 가로수처럼 철쭉이 피어 있었다. 전국에 철쭉 군락지로 된 유명한 산들이 있지만 아직 제대로 찾아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산길을 지나면서 보이는 철쭉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같았다.  

백병산을 지날 때 헤맨 다음부터 지도를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지나가는 부분에 송전 철탑이 표시되어 철탑을 찾아 앞쪽을 두리번거리며 보니 저 너머 산봉우리에 철탑이 보였다. 지도상에서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은 듯 한데 그곳까지 거리가 제법 멀어 보였다.

앞 봉우리에 오르니 철탑 위 봉우리가 조금 더 가까이 보였다. 그리고 좌측 멀리 대간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변절한 애인처럼 희미해 보였다. 멀리 들리는 새소리만 들렸다. 지나는 길은 우측의 철암과 좌측의 삼척시 도계읍의 경계 지점이었다.  

낙동정맥을 임하면서 대간이 아닌 정백길이라는 선입관에 그렇게 깊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내가 지나는 주변은 그야말로 첩첩 산중이었다. 정선이나 영월등을 첩첩 산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 가운데 깊은 산중의 의미한다. 이 곳에서는 아예 주변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국토 상으로 좌측 그 첩첩한 능선이 벗겨진 곳에 훤출한 동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해 쪽도 강릉이나 울진 같은 곳이 아니면 대개가 한적한 마을들이다.

10시 31분 휴양림 삼거리에 도착해 이정표를 확인하고 잠시 쉬었다. 뭘 좀 먹고 싶었지만 남은 거리를 생각해 물 한모금만 마시고 10시 39분 출발했다. 봉우리를 넘은 내림길에서 앞 봉우리가 건너 보였다. 그 곳이 이름이 특이한 구랄산일 것 같았다. 11시경 다시 능선을 모르며 뒤돌아보니 우측 뒤로 백병산이 보였다. 다시 내림길을 걸었다.

11시 8분 토신령(950m)에 도착했다. 거기서 면산 3.3km 백병산 5.2km 였다. 우측으로 철암으로 통하는 버들골인데 거기서 1.5km정도 떨어진 곳에 호석총이 나타나 있었다. 그 곳에는 호랑이의 전설이 깃들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가곡자연휴양임으로 연결되는 곳이다.  

길옆에 산죽이 빽빽한 오름길을 걸었다. 오늘 지나는 곳은 군데군데 산죽 군락지가 많았다. 오름길에 백병산으로부터 지나온 능선이 우측 뒤로 뻗쳐보였다. 능선오름길에 좌에서 우로 바람이 불었다. 좌측멀리 위로 뻗친 능선이 대간 줄기일 것 같았지만 먼 거리에 평범하게 느껴졌다.

봉우리를 오르며 잠시 멈춰서서 뒤돌아보니 토신령이 내려 보였다. 그리고 멀리 매봉산 풍력발전기 다시 희미하게 보였다. 점차 기온이 오르고 땀이 흐르는 상태에서 불어온 산바람이 기분을 시원하게 했다.

완만한 능선길을 가다가 산양의 것으로 보지는 배설물을 보았다. 아직 마르지 않아 인근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뉴스로 듣던 희귀한 동물의 배설물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 서식처인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구랄봉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앞 봉우리에 닿았으나 아무런  표지도 없었다. 그리고 앞쪽 너머로 다시 봉우리가 보였다. 다시 그 봉우리를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오르내리는 길은 완만한 편이었다.

11시 38분 구랄봉(1,071.6m)에 도착했다. 오늘 걸을 전체 거리 중 반을 넘겼다. 이제 앞으로 나타날 면산까지만 가면 마치는데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구랄봉을 조금 넘어선 내림 길에서 휴식을 가졌다. 점차 기온이 올라 걷옷을 벗고 귤 2개 오이 반토막을 먹은다음 11시 50분 출발했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다 보니 안부 너머 앞 봉우리가 크게 가로 막아 보였다.

안부를 지나 오름 능선을 지나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낯에 부는 골바람이다. 맑은 날 햇살을 많이 받은 산 능성이가 빨리 데워져 시원한 계곡에서 기류가 올라오면서 생긴 바람이다. 지나는 곳이 경사가 가파라서 덥고 땀도 많이 흘렀다. 12시 10분 오름길을 오르다 능선에 서서 바람을 한참 쏘이고 갔다.

문득 산길에서 홀로 듣는 바람소리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평소 도시에서 대할 수 없는 자연의 소리라 생각하니 더 소중히 여겨졌다. 그렇게 잠시 홀로 망중한의 시간을 가졌다. 깊은 곳을 지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싱그러운 신록이 살랑바람을 일으키고 철쭉꽃이 화사한 분위기를 띠었다.

다시 오름길을 오르며 뒤돌아보니 백병산이 능선 중에 솟아 보였다. 그런데 길이 더 가파라져서 오르기가 힘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험산을 만난 느낌이었다. 대간 산행 중 장군봉에서 추풍령으로 다가가는 사이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던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12시 45분 오름길에서 힘이 들어 다시 잠시 휴식을 가졌다. 신록 너머 멀리 지나온 능선이 보였다. 다시 길을 나서 정상부에 이르니 길이 완만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길 주변의 너른 지대를 온통 야생화가 덮고 있었다.

12시 58분 면산(1,245.2m)에 도착했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 지점이다. 도를 지난다는 의미에 벌써 진행이 많이 된 느낌이었다. 지나온 구랄봉에서 도착한 면산까지는 지도상의 거리에 비해 소요 시간이 2시간 10분으로 길게 나타나 있었다. 지나온 대로 지형이 험해 그런 것 같았다.

면산도 고도가 높았다. 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지점의 지형이 아직 큰 기세로 뻗혀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표지석이 있는 정상적 부근은 고원처럼 평온했다. 주변이 나무가 평평한 운동장의 가로수처럼 둘러쳐 보였다. 그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흰구름과 파란 하늘이 별천지의 세상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정오를 지난 한낮 햇살이 따가웠다. 힘겹게 정상에 오르면서는 정상에 닿으면 좀 쉬어갈 생각을 했으나 그늘이 없어 정상석만 확인하고 석계재를 행해 출발했다.

주변이 너르고 완만한 내림길이 나 있었다. 내려가면서 쉬기에 적당한 곳을 찾았다. 조금 가다 13시 10분 그늘진 곳에 멈췄다. 휴식을 하며 토마토 반절과 남은계란 1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이제 남은 것은 토마토 절반과 물 조금이었다. 그래도 남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그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일어나 걸었다. 걷는 길은 지도상에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였다. 우측이 경북, 좌측이 강원도였다. 인기척이 없어 대간 못지않은 깊이감을 느끼게 되었다. 길가에 도경계선 탐사 표시가 보였다.  

지도상의 석계재까지의 거리가 구랄산에서 면산까지 거리의 두배 정도 되어 보이는데 소요시간은 비슷하게 적혀 있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길은 더 완만할 것 같았다. 그래도 3시 석계재에서 택시기사와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주변이 깊은 산세로 둘러쳐 있었다. 길이 완만하여 아까보다 힘이 적게 들었다. 면산을 오를 때의 피로가 어느 정도 풀린 듯 했다. 가는 동안 우측 멀리서 텅텅소리가 들렸다. 나무껍질을 벗기는 소리나 공사용 말뚝을 박는 소리 같았다.

13시 41분 내림길을 걸었다. 갑자기 피로감과 졸음이 몰려왔다. 생각해보면 대간길을 걷던 모든 구간이 다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난 후에는 그 힘 듬은 별로 기억에 없다. 하루에 아주 먼 거리를 걸은 때도 주저앉을 정도는 아닌 상태로 참으며 걸을 수 있었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이 대개 다 그런 것 같다.

지도에 표시된 소요 시간으로 보아 빠르게 이동하는 편이라 시간이 조금 남을 것 같았다. 더 일찍 도착해 달라고 연락할까 생각하다 조금 쉬면서 기다리는 편이 낮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남으면 스케치를 하며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저 앞에 산을 옆으로 지나는 도로가 보였다. 그 부근이 오늘 구간을 마치는 지점일 것 같은데 그리 멀리 보이지지 않아서 잠시 쉬려고 앉으니 몸이 스르르 눞혀져 배낭을 당겨 깔고 누웠다. 시원한 바람결에 몸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잠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될 염려가 되었지만 우선 눈을 감고 피로를 달랬다.

14시 23분 큰 벌이 얼굴 부근에서 윙윙거려 손 사례를 치다 일어나 걸었다. 내림길 경사가 급하게 되었다. 앞에 끝날 지점이 가까이 느껴져 안심하고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간이 끝날때마다 예상 밖에 오르내리거나 길이 에둘러져서 시간이 많이 걸리곤 했었다. 우측으로 작은 봉우리 하나를 지나 내림길을 걷다보니 앞이 훤히 트여 보였다.

14시 47분 석계재에 도착했다. 좌우로 강원도와 경상도를 알리는 표지가 되어 있었다. 좌측으로는 강원도의 가곡면, 우측으로는 경북의 석포면이다. 도로가 시원스레 나 있었지만 첩첩 산중인 지역이다.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우측으로 보이는 정자에 사람들이 보였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일 것 같은데 물 한모금은 얻어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자에 다가가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땀이 많이 흘리고 힘들어 보인 듯 했다. 정자 위에 있던 분들이 낙동 정맥을 하는 중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렇다고 하니 어디서 출발했느냐고 했다. 통리에서 6시 에 출발했다고 하니 빨리 왔다고 했다. 정자 아래 주위에 둘러 앉아 있던 분들이 맛있게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먹다 밥과 고기를 취나물에 싸 주었다. 대구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하는데 연배 든 아주머니들이 집에 찾아온 사위 맞이하듯 챙겨 주었다. 한 남자 분은 큰 막걸리 통에 담긴 술을 빨간 프라스틱 바가지에 가득 채워 권했다.

내가 택시를 불렀다고 하자 정자에 잇던 사람들이 바로 그 택시를 타고 왔는데 시간이 일러 다시 내려갔다고 했다. 그것도 인연이라며 막 산행을 시작하려고 했다. 택시기사에게 더 일찍 내려온다고 할 것을 그랬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스케치를 하다 보니 택시가 도착했다. 대구서 오신 분들께 인사를 하고 차에 탔다. 연세 많은 기사분이 그 곳이 너베이제라고 했다. 내려가는 곳이 경북지역이었다. 이 길이 태백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뒤로 돌아서도 갈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거리가 더 멀다고 했다.

석포면이 있는 봉화군은 태백시에 비해 자립도가 낮다고 했다. 그래도 봉화군 중 아연 등이 생산되는 석포면이 자립도가 높은 편이어서 군 재정의 40% 정도를 충당한다고 했다. 가다보니 길 옆으로 낙동강 상류가 흐르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곳에 있는 자연굴로 된 구문소를 지났다. 그리고 자연석 박물관 앞을 지났다. 그 건물은 거의 다 완공되어 곧 문을 열거라고 했다.

기사님이 이곳 지리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내가 서울에서 버스로 올 때 사북, 고한에서 내려 카지노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 하자 기사분이 자기가 본 일들을 이야기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잘 먹지 않고 2-3천만원, 근근이 모은 것을 카지노에서 홀랑 다 까먹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방 운영해서 번 돈을 일시에 날린 사람도 있고 택시가사가 손님을 태우고 갔다가 그곳에 머물러 돈을 잃기도 한다고 했다.  

당성 삼거리를 지났다. 좌측이 당성, 우측은 철암으로 가는 길이다. 당성에는 대한 석탄 공사가 있다. 좌측에 보이는 태백중앙병원을 지났다. 그 병원은 폐환자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석탄공사는 적자인데  문 닫으려 해도 지역에서 반대해서 세금으로 지탱되는 형편이라고 했다. 장성은 과거 삼척군이었는데 지금은 태백시 장성동이다. 태백 교육청이 장성에 있다. 장성은 기차가 없고 철암으로 들어오는데 석탄을 케는 것은 주로 장성이라고 했다.

가다보니 기차가 물길을 건너고 있었다. 좌로 태백, 우측으로 강릉으로 이어진다. 황지에서 내려오는 낙동강 상류인데 제대로 낙동강 줄기가 뻗쳐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3시 50분 태백 터미널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물어보니 4시차는 매진되었다고 해서 다음 차표를 사고 쉬면서 기다렸다. 오늘 지난 곳을 떠올려 보니 앞으로 지날 정맥 길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깊은 산길을 걸어야 될 것 같았다. 4시 50분 서울행 버스를 탔다. 곧 곤함 잠에 빠져들었다.
(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