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풍령과 덕산재와 우두령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능선의 산하는 경북 거창
지역이다. 요즈음 고을고을마다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도로나 농로의
한 귀는 그들에게 점령당하여 있다. 빨간 망사의 양파 망 때문에 멀리서
보면 빨간 벽돌로 담을 쌓는 것처럼 보인다.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

우두령 고개 못미처 마산 쉼터라는 도로 옆 공원에 차를 주차시켰다.
아직 시간이 있는데 해가 능선에 걸렸다. 밥을 해서 저녁을 때웠다.
올라가며 본 우두령 바로 밑의 마산리 마을의 계곡엔 물이 넘쳤었다.
빨래도 하도 설거지도 하고 그 마을에서 자고 일찍 올라 가기로 하였다.

마을 어르신이 어차피 마찬가지이니 차를 이곳에 두란다. 버스가 마을까지
밖에 오지 않으니 등산을 마치고 우두령 고갯마루까지 1시간여를 걸어가야
한다. 마을에서 고개에 이르는 지름길을 가르쳐 준단다. 밤에 손짓으로
가르쳐 준 길을 이튿날 새벽 대간 길에 나선 나는 엄청난 고초를 당하였다.

05:00 발걸음도 가볍게 나섰다. 계곡을 따라 마산리 윗동네 맨 윗집은
외지인이 집을 짓는 듯 별장 같았다. 산길을 따라가니 물을 얻는 담수조가
있었고 길은 보이지를 않았다. 가늠을 하여 길을 찾아 나섰다. 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산길을 발자국 찾아 계속 위로 올랐다.

우두령 바로 밑의 매일 유업 농장 진입로로 통하는 길이 나와야 하는데
도통 나올 기미가 아니 보였다. 한참 오르니 오른쪽 아래에 나무 사이로
언뜻 길이 보였는데 도로 내려가긴 싫었다. 정상을 향해 길도 없는 급한
능선을 기어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보이는 것이 없었다. 06:30이었다.

지도를 꺼내고 나침반을 꺼내본들 무용지물이었다. 대체 여기가 어딘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난감한 일이었다. 도로 내려갈까 생각도 하였으나
내려간다면 오늘 일정도 앞으로의 백두대간 종주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를 가늠하여 길을 찾기로 하였다.

바로 봉우리를 내려서며 오른쪽을 보니 길이 보였고 대간 표식이 보였다.
반가움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길은 그 봉우리 후사면 9부 능선으로 이어진
모양이었다. [대간 사랑 나라 사랑 나 홀로 용용이]란 노란 작은 표식이었다.
고갯마루에서 출발을 아니 한 죄를 톡톡히 치른 백두대간의 첫 시련이었다.

헬기장 너른 공터를 지나니 나무에 걸린 수많은 표식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온 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바삐 걸으니 곧 화주봉
정상에 당도 하였다. [우두령 천천히 한 시간 아주 편안한 길입니다.] 어느
교수의 연녹색 코팅된 문구가 걸려있다. 앞으로의 길은 험하다는 이야기?

코스를 거꾸로 가니 그렇게 이해를 해야 한다. 저 멀리 왼쪽에 어제 지나온
덕유 삼봉산 삼도봉 대덕산이 아스라이 보였고 중앙 저 건너에 진짜 삼도봉
그 옆에 석기봉 민주지산 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였다. 활처럼 휘어진
능선이 대간 길이었다. 지나온 길도 만만치 않았으니 멀게는 안 느꼈다.

가느다란 밧줄을 잡으니 왼쪽은 절벽이다. 전망이 깨끗하였다. 잠시 쉬었다.
다시 밧줄이 있어 오르니 비록 이름은 없었으나 그곳이 정상이었다. 에이
이곳에서 쉴 것 하였으나 다시 뜸을 들였다. 혼자 하는 산행은 내 마음대로
가고 내 마음대로 쉬는 맛이 있다. 시간이 바빠도 보는 맛을 놓칠 수는 없다.

덤불숲을 무한정 헤치고 지나가니 왼쪽에 움푹 함몰된 웅덩이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폐광지역이라 언제 땅이 꺼질지 모르니 간격을 5m 이상
두고 산행을 하라는 김천시장의 푯말이다. 상식 밖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1,000m 고지가 넘는 지대인데 혼자가다 언제 땅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09:30에 영동 459 삼각점 정상에 올랐다. 근 한 시간여를 잡목 숲을 헤치고
온 모양이다. 삼마골재 이르자 방금 헬기에서 내린 인부들이 표시목을 설치
한다고 땅을 파고 있었다. 산림청에서 발주한 공사란다. 그러보니 지나온
능선에도 은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어서 의아했는데 그들이 뿌려 놓았단다.

뿌려진 곳에 표시목을 설치한단다. 바로 157개의 나무 계단을 밟고 올랐고
이어 133개의 나무 계단 그리고 또 나무 계단을 밟고 삼도봉 정상에 섰다.
인부가 막 내려가기에 급히 불러 사진을 부탁하였다. 정상에서 사진 찍기가
그리 쉽지 않기에 흐뭇하였다. 여하튼 내 삶의 소중한 흔적이 기록되었다.

빵으로 요기를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공사로 인한 헬리곱터 소리가
요란하다. 정상에서 헬기를 보면 골짜기 위를 나는 것이 꼭 잠자리 같다.
물이 부족할 것 같았다. 초반부터 고생(?)을 하느라 땀을 많이 흘린 탓이다.
900ml 용량의 수통 두 개와 비상용으로 500ml 용량의 작은 식수를 갖고 다닌다.

이미 두 개째 수통의 물이 얼마 안 남았다. 삼도봉을 내려오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힘들어 하는 50대 중반의 부부를 만났다. 남편이 앞서며 힘찬
목소리로 진부령까지 갈겁니다 하는데 아내는 아니었다. 저들도 지난 번 덕유
정상에서 만난 오00씨도 예정대로라면 비슷한 시기에 진부령 도착 할 것이다.

언덕을 힘겹게 올라 눈을 드니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길에서 비껴 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생각 없이 오르막을 오르다 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반가움에 앞서 우선 놀란다. 원주에서 온 아줌마와 서울 노원에서 온 관계
불명의 중늙은이 약초 캐는 사람이었다. 김밥도 얻어 먹었고 물도 얻었다.

구깃대라는 약초를 캐는데 뿌리는 예전에 사약으로 썼다고 한다. 익모초와
비슷한 잎사귀이며 하얀 꽃이 여러 개 불꽃놀이 하는 양 피는 약초이다.
그들과 반갑게 헤어지고 능선을 몇 번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힘겨운 오르막
이고 더 힘겨운 내리막이다. 임도를 지나 이상한 황무지 언덕을 지나간다.

무풍 304 삼각점 정상에 섰다. 아직 삼도봉 근처를 맴도는 헬리콥터 소리가
힘겹고 뜨겁게 들리나 바람이 제법 부니 힘이 솟는 기분이 든다. 이젠
오르막도 지겹고 내리막도 지겹다. 부항령 고개가 눈앞에 보이고 다 온 것
같기도 한데 오르면 아직 저 건너에 봉우리가 있고 그것도 가보아야 안다.

아스팔트길은 보이나 지나가는 차들은 보이지 않는다. 저 밑 팔각정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왁자지껄이다. 동네 사람들이 놀러온 모양으로 길 옆에
경운기가 몇 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빨리 가려고 바삐 서둔다고
가지는 것은 아님을 안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목적지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물로 입을 적신다. 이제 다 온 것 같다. 혀로 입술을 핥으니 꺼칠하다.
헬기장 공터도 지난다. 큰 오르막은 없다. 어찌되었든 내리막 길 뿐이다.
우두령에서 삼도봉까지는 비록 덤불 숲이 길었지만 그래도 쉽게 오른 것
같다. 삼도봉을 지나 덕산재까지는 대간길을 다시 생각하며 걸은 것 같다.

지례 면사무소에서 마산리가는 마지막 버스가 17:30에 있는 줄 알았는데
불행 중 다행인지 18:10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하마터면 놓칠 뻔하였다.
그래도 면사무소 정류장이니 으례 서려니 하였는데 그냥 휑하니 간다.
시골 버스는 정류장 표시가 있건 없건 손을 들고 서 있어야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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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2-20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