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화악지맥 5구간

         

          *지맥구간:가일고개-물안산-가평교

          *산행일자:2009. 9. 20일(일)

          *소재지  :경기가평/강원춘천

          *산높이  :물안산438m, 보납산330m, 월두봉453m 

          *산행코스:달개지-가일고개-월두봉-주을길고개-물안산-보납산-가평교

          *산행시간:9시50분-18시5분(8시간1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12명

          (24기이규성, 서중원, 김주홍, 이기후, 우명길, 29기정병기/김의정, 유한준,

           김정호, 오창환, 45기김영준, 초대손님 박현출님)


 

  46번 국도상의 가평교에서 다섯 번에 걸친 한북화악지맥 종주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화악지맥은 서쪽 건너편의 한북정맥 일부구간 및 연인지맥과 더불어 장장 38Km의 가평천에 물을 대는 동쪽의 울타리로, 경기도 제1고봉인 우람한 화악산이 이 지맥 길에 자리하고 있어 누구라도 한 번은 꼭 밟고 싶은 매혹적인 산줄기입니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만고불변의 산자분수(山自分水)의 원리에 따르면 대간이든 정맥이든 지맥이든 산줄기를 따라 걷는 종주산행에서 물 위의 다리를 건너는 것은 기나긴 산줄기 종주를 모두 마치고 나서나 유효합니다. 가평천을 가로지르는 가평교 앞에 다다르자 이제 화악지맥 종주도 끝났다 싶었습니다. 작년 9월 한북정맥의 도마봉에서 이 지맥에 발을 들인지 만 1년 만에 종주산행을 모두 마치고 나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지맥종주를 시작한지 한 달 남짓 후 춘천의 용화산을 오르다가 실족 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홍적고개에서 열달이나 발이 묶여 있었기에 더 그러했습니다.


 

  아침9시50분 개곡리합수점의 달개지를 출발했습니다.

청량리역을 7시50분에 출발했으니 가평 개곡리의 들머리까지 이동하는데 꼭 2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청량리에서 기차타고 가평으로 와서 이곳까지 택시로 내달렸는데도 2시간이나 걸린 것은 전적으로 경춘선 열차의 굼뜸 때문입니다. 얼마 전 서울서 춘천까지 고속도로가 뚫렸고 머지않아 공사 중인 전철마저 개통된다면 이 굼뜬 열차여행도 끝나게 됩니다. 눈에 잡힐 정도로 서서히 바뀌는 차창 밖 풍경들을 느긋하게 지켜보는 것도 경춘선 열차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이자 멋인데  이 느림의 미학을 완상하는 기쁨도 전철개통과 더불어 끝이 난다하니 벌써부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7월 홍적고개-북배산-가일고개 구간의 화악지맥을 종주한 후 한참을 걸어 택시를 불러 탔던 달개지에서 그림같이 아담한 옆집에 사신다는 한 아주머니에 부탁해 합동사진을 찍고 나자,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여름폭서와 8시간 가까이 맞서며 키를 넘는 억새들이 가득히 들어선 지맥 길을 걷느라 진땀을 억수로 흘린 두 달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그새 산객들에 그토록 잔혹했던 여름은 물러나고 가을이 산 능선을 차고앉아 마음 놓고 다시 지맥 종주에 나섰습니다. 춘천시의 당수반으로 넘어가는 꽤 넓은 임도를 따라 걸어 지맥 길과 합류하는 가일고개로 올라서기까지 15분이 걸렸는데도 등 뒤로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가일고개에 오르자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올라와 지난 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는 40대 중반의 부부 두 분이 아침 식사를 들고 있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0시11분 해발320m의 가일고개에서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종주 때 오르내렸던 계관산이 바로 뒤에 보이는 가일고개에서 산행대장이 배포한 개념도를 받아보자 이번에 밟을 마지막 구간의 화악지맥에서 가지 친 산줄기가 40개가 넘게 나와 있었습니다. 이 많은 봉우리를 다 넘어야 화악지맥의 끝 봉인 보납산에 이를 수 있어 이번 산행도 만만치 않겠다 싶었습니다. 제일 높은 월두봉이 해발453m이고 보납산이 330m 높이이며 출발지인 가일고개의 산 높이가 해발 320m여서 안부와 산 마루간의 표고차가 크지 않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했습니다. 지맥 길은 계속해 서쪽으로 이어졌고 가일고개 출발 40여분 동안 오르내린 산 마루와 안부간의 표고차가 대략50m를 넘지 않았습니다. 몽가북계의 억새 풀 대신 졸참나무를 위시한 넓은잎나무들이 해를 가려주어 종주산행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지난주까지 산상음악회 연주 단원이었던 매미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산새들의 조잘거림도 힘이 빠진 듯 한여름만 영 못했습니다.


 

  11시35분 좌측사면이 토양이 드러날 정도로 깨끗하게 벌목된 개활지를 지났습니다.

까까비탈의 나무들을 저토록 깔끔하게 베어내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다른 수종으로 바꿔 심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고 그렇게 심은 나무들이 다 자라 숲을 이루기에도 십 수 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그 사이 나무숲과 경계를 이루는 능선 길에는 키가 작은 잡목들과 억새들 그리고 이런 저런 가시나무들이 제 멋대로 자라 종주꾼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 함을, 저는 그간 정맥과 지맥을 종주하면서 이런 산길을 수도 없이 뚫고 지나오면서 몸소 겪어 잘 알고 있습니다. 북동쪽으로 화악산 정상과 응봉 그리고 그 사이 화악터널 위의 실운현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몇 곳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잠시 지체한 것은 다음 삼거리에서 길이 갈리는 월두봉 갈림길을 잘 못 알고 진행했다가 허탕치고 되돌아왔기 때문입니다.


 

  12시43분 해발453m의 월두봉을 들렀습니다.

지맥 길에서 남쪽으로 십 수분 떨어져 있는 월두봉에 오른 것은 이봉우리가 이번 산행 중 오르는 최고의 봉우리여서 전망이 빼어날 것으로 기대해서였는데 남서 쪽 아래로 북한강이 조금 보일 뿐 나뭇잎에 가려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월두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릉 길도 있고 로프도 쳐져있어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지만 정작 월두봉에 오르자 정상을 알리는 나무 판때기만 걸려있고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어 그저 밋밋했습니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점심을 함께 들으며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13시49분 자리에서 일어나 북서쪽으로 난 엄청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길가로 쳐 놓은 로프 줄을 잡는 대신 스틱을 길게 빼고 내려가느라 산행이 조금 더뎠습니다. 295봉과 305봉을 차례로 넘어 내려선 헬기장에서 조금 더 내려가 만난 움푹한 십자안부가 지금은 길이 끊긴 원래의 주을길고개 같았습니다.


 

  15시23분 해발 438m의 물안산에 올라섰습니다.

십자안부에서 15분을 채 못 걸어 오른쪽 아래로 개곡리 길과 왼쪽으로 주을길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임도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물봉선과 꽃송이가 아주 작은 야생화들이 떼 지어 피어 있는 임도사거리에 세워진 표지목에 보납산까지 4Km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적혀 있어 쉬지 않고 물안산을 향해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오름 길로 들어섰습니다. 수직으로 180m가량 고도를 높여야 하는 된비알 길을 힘들게 올라 다다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4-5분을 더 걸어 425봉에서 쉬고 있는 선두팀 대원들을 만났습니다. 방금 지나온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3-4분만 오르면 다다를 수 있는 물안산을 그냥 지나쳤음을 뒤늦게 알고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지맥 길에서 북동쪽으로 야간 비껴 서있는 물안산 정상에서 서쪽 아래로 가평천이 흐르고 또 남동쪽으로 해발425m의 마루산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 가평천과 수직으로 면하고 서있는데다 마루산 너머로 북한강까지 눈에 들어와 조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소나무 한그루가 암 봉의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물안산에서 삼거리로 되돌아가 지맥종주를 이어갔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보납산으로 향하는 길은 초반 얼마간은 암릉 길이 이어졌습니다. 400m를 조금 넘는 봉우리 몇 개를 지나 375봉을 넘은 다음 235봉에 이르기까지 몇 십분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흙길이어서 모처럼 편안했습니다.


 

  이 능선삼거리에 이정표가 서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직진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선지 한참 후에야 이 길이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이 아니고 보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됐습니다. 사람 다닌 흔적이 희미한 지방의 산줄기를 혼자서 종주하며 이런 갈림길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생고생을 한 적이 꽤 여러 번 있습니다.  지형도를 꺼내 보고서도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은 이제까지 걸어온 대로 그대로 이어가려는 관성과 절대로 제가 틀릴 수 없다는 과신이 주 이유였습니다. 제 판단이 옳다고 믿은 나머지 심한 경우에는 제 생각과 다르게 나온 지도를 불신하고 나침반도 고장 났다며 엉뚱한 길로 들어가 급기야는 그 날 종주산행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삶의 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릴 것이 아니라 가끔은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인생의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보고 자기 길을 점검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제껏 제 인생에서 지도와 나침반 이 되어주신 여러분들에 감사말씀 올립니다.


 

  17시2분 해발330m의 보납산에 올랐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선지 오래되지 않아 운동기구들이 들어선 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이 16시45분으로 보광사가는 길이 왼쪽 아래로 갈렸습니다. 이곳에서 보납산까지 오름 길은 조금 가팔랐으며 인근 가평시내에서 산책 나온 분들을 여러 분 만나 뵈었습니다. 가평시내가 한눈에 잡히는 보납산은 화악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로 북한강이 조망되는 최고의 전망대여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은 후 경동고교 교가를 제창했습니다. 교가에 나와 있는 대로 “옛 성 밖 뫼 뿌리에 우뚝 선” 구릉 위의 학교를 3년 동안 오르내린 덕에 이번에 십 수Km를 걸어 여기 보납산에 오를 수 있었고 작년에 도상거리 기준 160Km가 넘는 한북정맥 종주를 거뜬히 마칠 수 있었다 싶어 한껏 목청 높여 불렀습니다.


 

  18시5분 가평교에서 화악지맥종주산행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보납산에서 정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엄청 급했습니다. 왼쪽 위로 보광사 길이 나있는 큰 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왼쪽 아래 계곡가로 내려가 땀을 씻어 냈습니다. 마을 지나 가평천 방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남진해 가평교에 다다랐습니다. 다리 건너 시내로 옮겨 지난 달 딸을 출가시킨 박현출님이 낸 저녁을 맛있게 든 후 20시발 청량리 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저는 이번 화악지맥 종주로 1대간 7정맥 7지맥의 산줄기를 밟았습니다.

그 사이 제 나이는 다섯 살이 더해졌으니 그간의 종주산행기록은 제 나이와 맞바꾼 나이테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낙동정맥과 낙남정맥을 오르지 못했고 앞으로 올라야 할 기맥과 지맥도 수두룩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 나이와 맞바꿀 산줄기가 얼마나 되는지 그래서 제몸에 나이테를 몇 개나 더 그려야 하는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번 화악지맥 종주로 몸이 많이 좋아졌음을 확인했기에 내년 봄부터 남은 정맥 종주에 나서볼 뜻입니다. 기왕이면 굵은 선으로 제 나이테를 그려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