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 11. 7(일) 맑음.
◎ 산행 기점과 종점 : 32번 국도 위 태안읍 소흥면과 근흥면 경계 유득재 서해산업진입로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 서산시 성연면 일남리와 갈산동의 경계지점 29번 4차선 도로 윗갈치 서산시종합사격훈련장 들어가는 입구에서 산행을 마침.
◎ 도상거리 : 약 26km
◎ 산행 중요 지점과 통과시간 : 유득재(06:55) - 159봉(07:25 삼각점) - 군부대 정문(07:38 초병의 제지로 2분 기다림) - 태안여고 앞 2차선도로(08:08) - 태을암(08:47 사진 찍고 관람. 8분 소요) - 백화산(09:03) - 오석산(10:49 산불감시초소) - 붉은재(11:20 여기서 도로를 따라 이동) - 도내1리(도루째)버스정류장(11:42 좌로 길을 잘 못 잡아 다시 돌아옴으로 10분 지체) - 굴포지유래 안내판(12:03) - 팔봉중학교(12:23) - 수량재(13:20) - 장군산(13:46) - 금강산(14:18 삼각점) - 비룡산(14:56 오래된 무덤 한 기) - 168.8봉(15:42 삼각점) - 서산시 사격장 주차장(16:04) - 윗갈치(16:12 서령정 비석, 사격장 진입로, 종합운동장이 보이는 곳 29번 국도)
◎ 홀로 걸음.
◎ 산행시간 : 9시간 17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태안읍 중심부로 들어가서 24시간 김밥을 파는 식당에서 라면을 먹고 김밥 3줄을 점심으로 준비하고 유득재로 향합니다.

 

06:55 오늘은 입동입니다. 계절은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섰습니다. 성성이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가르며 유득재에서 금북정맥을 이어갑니다. 여명의 빛이 성글게 비쳐 어둠은 다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서해산업 앞 좌측 능선으로 오르자 소나무와 잡목사이로 케이블이 길을 안내합니다.

 

07:10 억새가 보기 좋은 오르막길이 끝나고 길은 우측으로 꺾여지고 소나무는 더욱 힘차게 쭉쭉 뻗어있습니다. 3분을 열심히 걸어 첫 번째 봉우리(150m)에 오르자 수줍게 모습을 다 들어낸 해가 미소를 보내옵니다. 길은 좌로 90도 꺾여집니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의 무리와 잡목 무리를 덤덤히 헤쳐나가는데 흥겨운 음악이 들려옵니다. 정적은 깨어지고 음악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입니다.

 

07:25 퇴비산(159.1m)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습니다. 살짝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길을 이어가는데 음악이 끝나고 만65세 이상 어른들에게 독감예방접종을 무료로 놓아드린다는 방송이 이어집니다.

 퇴비산을 지나 3분쯤 걸었습니다. 갑자기 길은 우측으로 꺾여지는데 정신을 놓고 가다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군인들의 아침점호시간인가 봅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구령소리입니다. 길은 걷기 좋습니다.

 

07:33 철탑이 보이는 봉우리에서 철탑을 향해 내려갑니다. 이곳은 군부대 교육장입니다. 유발수, 소총병, 기준병 등 푯말이 눈길을 끕니다.
 
07:38 철탑을 지나 계속 내려가니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부대에서는 접근을 방지하는 철망을 쳐놓지 않아 정맥을 이어가는 나로서는 그냥 부대 안으로 자연스레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부대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정문에서 근무를 하는 초병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봅니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노란 체육복을 입고 싸리비를 들고 정문을 향해 걸어옵니다. 정문이 열리고 그들은 정문 앞을 청소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나는 초병의 제지로 상급근무자가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립니다. 노란 완장을 팔에 찬 상급근무자는 내가 정맥을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하자 바로 문을 열어주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부대 앞 시멘트도로를 따라 걸어갑니다. 좌우로는 밭이 넓게 펼쳐지고 밭에는 파릇파릇 자란 어린 작물이 하얀 무서리를 힘겹게 이고 있습니다.

 

07:53 소나무 숲이 건너편에 보이고 길은 좌로 돌아가는데 코너에 동양싱크공장 표지판이 서있습니다. 시멘트도로는 계속됩니다.

 

08:02 측후소아파트가 밭 건너로 보이고 그 앞으로 낮은 능선이 이어지지만 나는 능선을 우측에 두고 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갑니다. 청설모가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갑니다.

 

08:08 모래기재는 태안여고 앞 603번 2차선지방도로 위를 말합니다. 도로를 건너면 충청남도 태안교육청 담장이 가로막습니다. '태안마애삼존불500m'표시판을 보면서 좌측으로 담을 따르다가 직각으로 꺾여지는 담을 따라 도로를 뒤로하고 산을 보고 올라갑니다.

 

08:15 개가 짖어대는 민가를 지나고 밭을 지나 무덤 뒤에 큰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들어섭니다.

 

08:28 백화산으로 오르다가 5분 휴식을 한 후 다시 출발을 하는데 잘 생긴 바위들이 즐비합니다. 나무와 바위는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냅니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능선과 그 능선 끝으로 바다가 보입니다.

 

08:35 가로등이 있는 넓은 산길은 3명이 나란히 서서 걸어가도 될 정도입니다. 기원을 담은 돌무더기와 단풍이 화려한 나무는 가깝게 서있습니다. 물오리나무, 굴참나무, 노간주나무 등 푯말을 단 여러 가지 나무들이 이어지고 갖가지 모양을 한 바위까지 동행을 하니 혼자 간다는 생각을 잠시 잊습니다.

 

08:40 건강식생활 안내판과 연이어지는 경고문(군사시설보호구역 8220 부대장)과 전신주를 보면서 아스팔트 도로위로 올라섭니다.

 

08:45 백조암 앞에는 운동시설과 태안마애삼존불 표시판이 있습니다. 잘생긴 바위 백조암을 사진으로 남기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3분을 올라가니 지뢰매설 경고판, 위험지대 경고판, 제설함 앞 도로 아래에 새로 지은 듯한 태을암의 깨끗한 기와지붕이 보입니다.
 도로는 계속 산 위로 이어지지만 태을암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을암은 백화산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어 멀리까지 전망이 좋습니다.

 

태을암 : 태을암은 태안읍 동문리에 자리한 태안의 진산(鎭山)인 백화산 중턱에 건립되어 있는데. 창건연대(創建 年代)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태을암」이란 명칭은 국조(國祖)인 단군영정(檀君 影幀)을 안치(安置)시켰던 태일전(太一殿)에서 연유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를 실증(實證)할 수 있는 문헌이 없으니 신빙성이 희박하다. 태일전은 태안마애3불이 있는 위쪽 약 200미터 지점에 있었다고 전하나 건물은 이미 없어지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또한 이 태을암의 대웅전(大雄殿)에 안치된 불상은 중앙에 석가여래(釋迦如來)·좌측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우측에 석가여래(소형)를 배열해 놓았는데, 이는 석가삼존(釋迦三尊)의 형식도 아니고 또한 협시불(脇侍佛)로 석가여래를 배열해 놓은 것도 매우 이례적(異例的)인 보기 드문 일이다. 이 태을암은 지난 1962년 10월 1일에 전통사찰(傳統寺刹)제40호로 등록되어 현재 관리 중에 있다.

 

태안마애삼존불 :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소재 백화산 정상부근의 바위에 새겨진 태안마애삼존불상 (높이 向左佛 身高 255cm, 向右佛 身高 240cm, 중앙보살 181cm)은 1966년 2월28일 보물432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 2004. 8. 31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것으로 거대한 바위의 동면에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삼존불입상을 새겼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배치와 달리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더욱이 좌우의 불상은 크고 중앙의 보살은 상대적으로 작아 일보살·이여래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좌우의 불상은 기본적인 형태가 같은데, 다만 오른쪽 불상의 얼굴이 뚜렷하고 좀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두 손의 인상(印相)이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한 모습이 약간 다를 뿐이다.
왼쪽 불상은 소발(素髮)의 머리에 팽이모양의 육계가 표현된 것이 부여 군수리 석조불좌상(보물 제329호)과 비슷하여, 얼굴의 기본 골격과 함께 같은 백제불의 전통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 같다.
신체 역시 장대하여 얼굴과 잘 조화되어 있지만, 얼굴은 신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서 서로 대비된다.
통견의 불의도 두껍고 힘차게 처리되었으며, 앞자락이나 두 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듬직하게 표현되어 부처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두 손은 가슴 부근에 평행하게 모아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면서 손가락을 굽히고 왼손은 보루를 살짝 잡고 있는데, 능숙한 기량에는 미치지 못하고 고졸성을 보여준다.
  
 태을동천(太乙洞天), 일소계(一笑溪), 감모대(感幕臺) 등의 석조물까지 감상을 하고 사진으로 남깁니다.

 

08:55 태을암 위로 올라서서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부대정문 앞 우측으로 나무계단이 산 정상으로 이어집니다. 경고판과 철조망 그리고 건물을 지나면 산불감시초소가 연이어 집니다.

 

09:03 백화산(284m)에 오르니 밝은 표정의 사람들이 나를 반깁니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산은 이름난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분에게 사진을 부탁합니다. 봉화대를 둘러보고 내려서서 이정표(군민체육관 2km, 흥주사 2.2km, 태을암 0.5km)를 보고 시선을 팔봉산으로 돌립니다. 능선은 춤을 추는 듯합니다. 백화산 왕성한 기운을 몸에 담으며 잠시 백화산을 즐깁니다.

 

백화산성 : 태안읍 동문리 백화산 정상에 축조된 백화산성은 고려 충열왕(1275-1308)때에 축성되었으며, 성의 규모는 길이 700m, 높이 3.5m이다. 성안에는 2개의 우물이 있고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어 동쪽으론 서산의 북주산, 남쪽으론 부석의 도비산과 연락을 취했다. 지금은 폐성되어 700여m의 성곽만이 남아 있다.
태안읍지(1872)에 의하면 축성한지 이미 오래되어 현재는 퇴락 되었으나 지세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있어 사람이 발붙이기 어려운 곳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1975년 2월 5일 충청남도지정문화재자료 제212호 지정된 석성이다.

 

09:08 백화산 정상에서 정맥은 흥주사 가는 길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3분 정도 철망을 따르다가 철망 너머로 건물이 보이면 능선에서 내리막길로 방향을 바꿉니다. 좌측에는 경고문이 우측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고 전방으로는 팔봉산능선이 수려합니다.

 

09:22 시멘트포장도로는 오룡동과 냉정골을 잇고 있습니다. 도로를 넘어 산불순찰함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니 평탄한 소나무숲길이 이어지고 참호가 보입니다.

 

09:34 230m봉 갈림길에서 길은 좌측으로 V자로 꺾어지며 북으로 길을 잡아야합니다.

 

09:50 특징 없는 길을 오르다가 큰 바위 두 개가 서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어야 되는데 주의할 지점입니다.

 

09:54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다시 음악이 들려옵니다. 언덕을 올라서서 우측으로 방향이 꺾여집니다. 잡목이 널브러져 있고 희미한 걸음의 흔적을 찾아가야 하기에 신경을 온통 길 찾기에 쏟으며 나아갑니다.

 

10:04 가시잡목으로 어지러운 길을 올라 우측으로 방향이 꺾이면 다시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길입니다.
 1분을 걸어가니 넓은 방화선에는 잡목이 가득하지만 걷기 좋은 길입니다.

 

10:10 상옥리(제나리)와 산후리(강실)를 이어주는 시멘트포장도로를 지나서 바로 산으로 올라갑니다. 좌측 마을에서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10:13 봉우리에 올라서서 좌로 방향을 꺾어 길을 가는데 계속 소나무 숲이 이어집니다.

 

10:30 잡목으로 어수선한 길을 내려서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니 방화선이 이어집니다. 무덤을 지나서 마루에 올라서니 좌측으로 '가로림만' 푸른 바닷물이 가깝게 보입니다.

 

10:41 크다란 물통 앞에서 김밥을 먹고 다시 일어섭니다.
 3분 정도 임도를 따르다가 우측 산아래 주택이 가깝게 보이면 임도를 버리고 좌로 꺾어야 합니다. 허물어진 무덤 뒤로 산으로 오릅니다.

 

10:49 산불감시초소가 먼저 반기는 오석산(168.7m)정상에 올랐습니다. 삼각점은 찾지 못하고 우측으로 내려섭니다. 3분을 걸어가서 수원백씨묘 두기 옆으로 올라서면 서해바다(가로림만)가 보기 좋고 섬도 보이고 방파제도 보입니다. 3분을 더 걸어서 우측으로 좌측으로 길을 찾아 잡목과 억새를 헤치며 방향을 잡아가는데 좌측 능선으로 잡목과 억새가 이어지고 이 능선 좌측 아래로 흰색 집이 보이고 마당에 매인 개가 짖는데 여기서 한동안 길을 찾아 가시에 긁히며 어지러워 하다가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아보니 우측 능선이 정맥임을 깨닫습니다.
 
11:12 될수록 위쪽으로 붙으며 우측 능선을 보고 길 없는 사면을 치고 나가 반가운 표시기를 만납니다.

 

11:20 공장용지인 듯한 빈 땅을 가로질러 컨테이너박스 옆 붉은재(예전에는 나무가 없고 붉은 흙만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아스팔트도로에 내려섭니다. 한 쪽에서는 굴착기가 땅을 파고 있습니다.

 

* 오석산에서 붉은재까지는 특히 주의를 기울이며 길을 찾아야 할 지역입니다.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면서 목장을 두어 개 만납니다.

 

11:25 인삼밭을 지나 이정표(도내리-태안, 서산)가 서있는 15번 도로 북창4거리입니다. T자형 도로로 보이지만 우측으로 살짝 비켜있는 길이 하나 더 있음을 보면서 4거리임을 알게 됩니다. 북창버스정류장(도내2리)이 있고 은해감리교회 표지판과 슈퍼도 있습니다. 길은 살짝 우측으로 비켜 보이는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길 따라 농사용 수로가 함께 합니다.

 

11:34 도내1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일어서서 막 발걸음을 옮기는데 좌측으로 비닐하우스가 우측에는 젖소를 키우는 목장이 보이고 주변은 넓게 농토가 펼쳐져 있습니다.

 

11:42 좌측에 젖소를 키우는 우사가 있고 소가 많습니다. 도내1리(도루째)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입니다. 통신탑을 보면서 빠른 길로 질러가려고 좌로 길을 잡습니다.

 

11:53 다시 도내1리(도루째)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는 바르게 도로를 따라야합니다. 성급함이 오히려 시간을 허비한 결과가 됩니다.

 

11:57 인평3리(하창)버스정류장 앞에는 다목적회관(경로당)이 있습니다.

 

12:03 굴포리 유래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 안내판을 읽어보면 이미 오래 전에 수로공사로 인해 금북정맥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굴포의 유래 : 굴포란 판개를 말하는 것으로 운하라는 뜻이며 이곳의 지명이 되었으므로 굴포운하라 한다.
고려시대 태안지역은 조운제도의 정비와 더불어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었다. 조운(漕運)이란 지방에서 수납된 조세를 선박을 이용하여 하천이나 해안을 따라 왕도(王都)의 경창(京倉)으로 운송하는 제도로 삼남(三南)의 조곡(組穀)을 모두 서해를 통하여 개경의 서강(예성강 하류)에 집중시켰기에 운송로로서 태안지역이 중요하게 되었다.
   당시 세곡(稅穀) 운송로는 반드시 보령 앞바다―태안의 안흥량(안흥)―당진 난지도 서쪽을 경유하여야만 하였다. 그런데, 이 안흥량은 전남의 울돌목(鳴梁)·강화의 손돌목과 함께 가장 험난한 곳으로 해안 기복이 심하고 암초가 산재해 있으며, 조수간만의 차가 큰데다가 유속이 빨라 해난사고가 빈번하였다. 조운 선박의 피해는 곧 국가 재정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는 일찍부터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운하라고 할 수 있는 조거(漕渠)의 개착을 시도하게 되었다. 즉, 태안반도는 바다로 돌출한 좁고 긴 반도인데, 그 중간쯤에 남쪽 천수만과 북쪽 가로림만 사이의 폭이 좁은 허리부분(태안읍 인평리에서 서산시 어송리에 이르는 곳으로 굴포라고 함)을 관통시켜 안흥량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북상할 수 있는 수로를 개발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하여 안흥량의 통과 대안으로 조거 개착을 처음 시도한 것은 1134년(인종 12)이었다. 이 때의 공사는 10여 리의 거리를 굴착하여 불과 7리 정도만 남겨놓고 중단하였다가 1391년(공양왕 3)에 다시 굴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지하에 암반이 깔려 있고 뻘흙을 개착하는 과정에서 조수에 밀려 계속 막히자 결국 중단하고 말았다. 그 뒤 조거 개착에 대한 노력은 조선시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조정에서 조운과 관련하여 조거(漕渠) 개착이 논의되면서 다시 이 지역이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2차례 실패하였던 개착공사는 태조 4년에 있었던 경상도 조운선 16척의 난파를 계기로 다시 논의되었다. 이때 최유경(崔有慶)과 남은(南誾)이 실제로 현지에 파견되어 사안을 검토하였으나 지중에 암반층이 있어 개착이 어렵다는 이유로 중지되고 말았다.
   이후 안흥량에서의 사고가 이어지게 되자 태종 12년 하륜(河崙)의 발의로 이전과는 달리 갑문식(閘門式)과 유사한 형태의 조거를 개착하기로 하고 다음해 2월에 일단 공사를 완공하였다. 이 방법은 5개의 저수지를 만들어 물길을 연결시키는 방법이었는데 저수지의 규모가 작아 소규모의 배 1척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었으며, 그나마 조수간만의 차로 인하여 실제 배가 운항할 수 있는 일수가 며칠 되지 않았다. 또한 조운선이 그대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큰배에서 작은배로 조곡을 몇 차례 옮겨 실어야하기 때문에 이 조거는 전혀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태종은 태안지방에 2회나 순행하는 등 조거의 개축문제에 고심하였으나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하였다.
   그 후, 이 문제는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다가 중종대에 와서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는 삼도체찰사(三道體察使) 고형산(高荊山)의 건의에 의해 1522년(중종 17)에 시작되었는데, 이 때에는 그 위치를 바꾸어 지금의 소원면 의항리 일대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공사도 착공 4개월만에 중단되었다.
   1537년(중종 32)에 한차례 더 공사가 시작되어 6개월만에 준공을 보았으나 조수가 제대로 넘나들지 못하여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조거 유적 일대는 지금 대부분 논으로 되었으며, 특히 연선의 가장 높은 지대인 해발 40m의 신털이봉 왼쪽의 논을 판개골, 판골 등으로 부르고 있다.

 

12:06 태안군 도내1리(정말) 버스정류장 앞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90도 꺾어야 합니다. 성안농원 표시판이 있고 송신탑이 가깝게 보이고 사과나무에 굵고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12:11 삼원조경 제2농장 4거리에서 바로 나아갑니다.
 3분을 걸어가니 SK텔레콤, KTF 안테나가 있고 우측으로 학교가 보입니다.
 계속 도로를 따르면 공동묘지 뒤로 낮은 산이 정맥이지만 공동묘지 앞 도로를 따라도 됩니다. 나는 도로를 따라 학교를 향해 걸어갑니다.

 

12:23 팔봉중학교에서 채미를 만나 짧게 반가움을 나누고 중학교 정문을 나와 32번 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납니다. 굴다리를 지나서 바로 좌측 주택 뒤 봉긋한 산으로 올라야 하지만 나는 밭을 가로질러 산 옆구리로 방향을 잡습니다.

 

12:40 물래산을 향해 오르막을 오르는데 잘 생긴 바위를 만납니다. 잠시 멈춰 주변을 살피고 길을 갑니다.

 

12:50 첫 봉우리에서 간식을 먹고 지형도를 살펴봅니다.

 

13:03 물래산 정상으로 판단하고 좌측으로 산을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은 넓고 걷기 좋은데 정맥표시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의심하지 않고 계속 내려갑니다.

 산을 다 내려가서 주택을 만납니다. 주택 마당에 계시는 아줌마에게 도로건너 장군산 오르는 길을 물어봅니다. 아줌마는 내가 내려온 산의 이름이 장군봉이며 물래산을 물으니 그것은 모르고 도로건너 가야할 장군산을 오르려면 수량재로 올라가서 만복식당 앞에서 도로를 건너야 할 것이라는데 수량재는 우측으로 약200m 위쪽에 높게 보이는 고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물래산까지 가지 않았고 아줌마가 칭하는 장군봉에서 바로 좌측으로 차리고개를 향해 내려온 것이 됩니다. (5만분의 1지도를 보면 차리고개는 물래산에서 바로 좌로 산을 내려가야 되는 것이다.) 잘못 내렸음을 깨닫습니다. 지도를 보면 차리고개 우측으로 수량재라는 지명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는 것이 정확한 정맥길인 것입니다.

 

13:20 수량재에는 '수량재교차로'라고 적힌 표시판이 있습니다. 4차선 도로 위로는 차들이 속력을 높여 달립니다. 조심에 또 조심을 하며 도로를 건너뛰어 중장비가 여러 대 서있는 홍성건설기계공업사 질퍽한 마당을 가로질러 1789부대 예비군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길로 10m 정도 걸어가니 좌측 산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표시기가 보입니다.

 

13:42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거대한 바위가 있는 장군산 바로 전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표시기가 여기에 많이 달려있습니다.

 

13:46 참호가 있고 가깝게 팔봉산이 보이는 장군산 정상은 별다른 특색이 없습니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갑니다.

 

14:00 금강산 바로 전 봉우리에 올라 다시 팔봉산을 바라보면서 5분간 휴식을 하고 우측으로 표시기를 따릅니다.

 

14:16 오르막길이 끝나고 능선에 오르면 좌측 바위봉우리가 멋있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길은 바위봉우리 쪽이 아니고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야합니다.

 

14:18 삼각점이 있는 금강산 정상(316.1m)입니다. 정상에는 잡목이 너절해서 금강산이라는 이름을 무색케 합니다.

 

14:24~29 금강산 다음 봉우리에 올라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하는데 빨간삼각점이 땅에 깊게 박혀있는 것이 보이는데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5분을 쉬었습니다.

 

14:33 잡목지대를 빠져나와 잘생긴 바위를 지납니다.

 

14:40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릅니다.

 

14:42 잘 생긴 느티나무(수명이 오래된 듯함)가 나를 반기고 느티나무에서 우측 산 아래로 시선을 돌리면 풍전저수지가 보입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마전과 용암을 이어주는 시멘트도로입니다.

 

비룡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온 몸에 붙어있는 도깨비풀 씨앗 가시를 떼어 내느라 가파른 오르막길이 힘든 줄도 모릅니다.

 

14:56 무덤 한 기가 있는 비룡산(290m)은 서산시 갈산동, 팔봉면, 인지면 경계의 꼭지점입니다. 4분을 쉬면서 간식을 하고 일어섭니다.

 

15:06 비룡산 다음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낙엽이 많이 쌓인 길로 들어서면서 발아래 눌려 부서지는 낙엽 부수어지는 소리를 감상합니다.

 

15:22 지루하게 걸어가다가 좌로 슬쩍 꺾어서 내려가면 류제억의 묘가 나오고 묘를 지나 내려갑니다.

 

15:27 냉장고가 버려져 있는 곳을 지나면서 솔개재가 아닐까 잠시 멈칫 하면서 지도를 보지만 긴가민가합니다. 

 

15:33 봉우리에 올라서니 공사장 소음이 엄청납니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기가 막혀 잠시 멈출 수밖에 없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아! 빨리 지나가야 하겠습니다. 귀에서 돌 부수어지는 소리가 계속 울립니다.

 

15:42 계속되는 소음을 들으며 걷기 좋은 평탄한 길을 따라가니 삼각점이 있는 168.8m봉입니다.

 

15:52 좌우로 나무는 보이지 않고 억새와 키 작은 잡목만이 좌우로 산 아래까지 이어지는 곳 우측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이는 개활지를 지납니다.

 

15:55 임도에 들어서서 2분을 걸어가면 좋은 길은 12시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고 정맥은 좌로 90도 꺾여지는데 희미한 길이라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이곳에 표시기가 없다면 그냥 지나치고 말 곳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16:04 서산시 사격장 주차장으로 내려서면 송전철탑이 보이고 여기서 사격장으로 들어오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도 되겠지만 나는 표시기가 없는 잡목 숲으로 들어갑니다.
 산으로 들어서서 우측으로 능선을 따르는데 길은 잡목과 청미래덩굴이 계속 길을 막습니다. 방향만 잡고 잡목을 헤치며 갑니다. 간혹 표시기가 보이기는 합니다.

 

16:12 무덤 두 기(의성김씨)를 지나 도로로 내려서니 오늘 산행의 종점인 성현면 일남리와 서산시 갈산동의 경계 29번 국도 위 윗갈치 고개입니다. 종합운동장이 건너편에 보이고 국도 위로는 차들이 많이도 다닙니다. 서령정이라는 글을 적어 세워둔 바위가 눈길을 잡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 서산시 종합운동장 옆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황간에서 차를 내려 늦은 저녁을 먹었는데 채미는 양이 많은 올갱이국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비워냅니다. 굉장히 시장했나봅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