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구간

호남정맥

산행일

피재~가지산~큰덕골재

(20km, 9시간 50분)

2008년 9월 20일

 흐리고 비

 

 

<산행기록>

피재-가지산-장고목재-바람재-곰재-봉미산-숫개봉-군치산-큰덕골재

7:10   8:40       9:30      10:30 12:20  13:50   14:50   16:10     17:00

 

 

 비를 맞으며 곰재를 넘고


 

  호남정맥 11구간 산행을 간다. 지난 10구간 산행이 7월 30일이었으니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무더위에 거미줄까지 겹친 악몽이 한동안 호남정맥을 잊게 했으나 가을이라는 계절변화에 마음도 누그러지는 걸까. 세월이 약이 된 격이다.

  밤을 낮 삼아 호남고속국도를 따른다. 논산을 지나고 전주, 김제, 정읍을 지나니 백양사 휴게소다. 아침 7시에 산행을 시작한다고 해도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으므로 2시간여 눈을 붙인다. 나의 산행길이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을 어느 세월에 지나갈 것인지 아직은 까마득한 후일의 일이지만 백양사 휴게소는 언젠가 뒤돌아보게 될 추억속의 휴게소가 될 것으로 믿는다.

  호남고속국도 동광주 IC를 빠져나와 화순 방향으로 29번 국도를 갈아탄다. 화순군 이양에서 곰재를 넘어가는데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어젯밤 일기예보는 분명 비는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나가는 비라고 할지라도 이미 초목은 물기를 머금고 있지 않겠는가. 난감한 마음으로 피재에 닿는다.

 

  7:10

  비는 오락가락 하더니 멎었다. 세차게 내리지는 않겠지만 오늘 산행의 최대 복병이다. 고갯마루 한쪽에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산행준비를 한다. 다시 만나보는 피재는 반갑기 그지없으나 지난 산행의 악몽이 재연되지는 않을까 다소 염려하며 지팡이를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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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재>

  산행 후의 결과론이지만 피재에서 곰재까지는 산길이 너무나 편안했다. 누군가 산길 주변의 잡초를 제거해 놓아서 가랑비에 옷 젖을 걱정이 사라졌고 무엇보다도 잡목을 헤쳐 가며 풀숲을 뚫는 일이 없어졌으니 산행 내내 그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더랬다.

  오늘 산행의 목표는 큰덕골재까지 도상거리 20km인데 희망이 보인다. 피재에서 능선에 올라서기 전의 임도가 약간 헷갈리게 하지만 리본을 보며 쉽게 능선 길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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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재까지 편안한 산길이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가는 적막감은 한 번씩 터지는 조망으로 뭉클한 울림을 자아낸다. 너울거리는 듯한 산줄기들 너머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그 사이의 물길은 장흥을 지나는 탐진강이다. 장흥이 낳은 소설가 한승원의 ‘다산’에는 강진 땅으로 유배를 갔던 정약용이 그를 찾아온 벗 김이재를 탐진강변에서 배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주 쪽으로 넘어가는 재 아래에서 소매를 나누고 돌아선 정약용은 하염없이 걸었고 속절없이 아무런 능력도 희망도 없어 바보처럼 울고, 울고, 또 울었다. 한도 끝도 없이 울어버리고 싶어 탐진강변으로 나갔다. 하구의 갈대숲과 질펀한 강의 물너울을 앞에 둔 채 고향 두물머리의 물너울과 소내 마을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다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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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에서 보는 조망>

  정약용의 눈물을 받아준 그 탐진강은 조선의 선비들에게 사유의 그늘인 정자문화도 허락한다. 강을 앞에 두고 숲을 등지는 곳에 만들었다는 정자들...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의 용호정은 1828년 최규문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버지가 탐진강 건너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고 지었다 하며, 장동면 만년리 장항마을 강가에는 동백정이 있는데 조선조 의정부 좌찬성을 지낸 김린이 관직 은퇴 후 은거하였다. 또 세조가 정권을 찬탈하자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한 김필이 지었다는 사인정은 군동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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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우산 갈림길 이정표>

 

  8:40

  피재에서 1시간 30분을 걸어 가지산 정상(509m)에 닿는다. 정맥 능선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데 장평이라고 쓴 이정표 뒤편으로 봉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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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갈림길>

  조망이 시원스러운 가지산 정상이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아래 산을 넘어가는 구름떼가 지나온 산줄기에 걸려 있고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신선의 세계에서 보는 지상낙원이다.

  내가 산행하면서 참조했던 ‘따라가기’님의 산행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가지산은 정맥에서 벗어난 왼쪽에 있으므로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여 가파르게 암봉을 올라선 곳이 가지산(13:27)인 것 같은데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바람이 세차게 불며 30미터 지근에 조금 낮은 봉 같은 것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날씨만 좋으면 조망이 뛰어날 것 같으며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찾기로 하면서 다시 능선갈림길(13:30)로 되돌아와 정맥길(서북)을 따라가다~”

  날씨가 흐린 탓에 따라가기 님은 조망을 놓친 것인데 날씨가 좋으면 조망이 뛰어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의 예상처럼 가지산 정상의 조망은 한동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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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정상에서 보는 지나온 산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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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방향에 내리는 햇살>

 

  범상치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가지산을 예견했던 것일까. 가지산의 남쪽 기슭에는 신라의 선문구산 가운데 제일 먼저 개산했다는 가지산파의 보림사가 자리 잡고 있다. 가지산파의 법맥을 이어받은 체징이 860년에 창건했다고 하는데 보림(寶林)이라는 사찰명에 걸맞게 국보 2점과 보물 8점이 있어 더욱 가치가 돋보인다.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과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보림사 3층석탑과 석등이 그것이다. 특히 3층 석탑은 다른 석탑의 건립연대를 추정하는 하나의 기준자료가 되고 통일신라 시대이후의 탑 중에 상륜부가 완벽하게 남아있는 탑이라서 귀하게 여겨진다는 평가다.

   지난 10구간 산행 후에 찾아간 보림사는 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7월이었는데 사찰내 중앙에 있는 약수터는 한국자연보호협회가 지정한 ‘한국의 명수’에 들어 꿀맛같은 생수를 들이킨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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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비로자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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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3층석탑>

 

  가지산 정상에서 조망한 후 다시 산길을 간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지만 잡목이 제거된 산길은 고속도로와 같아서 편안한 등로를 이어간다. 우리나라 정맥의 산길이 이처럼 단장되어 있다면 좀 더 많은 산행객이 쉽게 정맥산행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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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제거된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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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송전철탑>

  가지산을 출발한 지 50분 후에는 장고목재를 통과한다. 유치면의 죽동마을 1.8km와 장평면의 병동마을 1.3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고개다. 흔히 호남정맥의 구간나누기를 이곳에서 하기도 하는데 마을에 접근하기 용이해서일 것이다.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잠시 사진만 찍고 곧장 출발한다. 오름길이 시작되고 작은 봉우리를 지나자 전망이 트이면서 해발 503.9m의 삼계봉에 닿는다. 장흥군의 유치면과 장평면 그리고 화순군의 청풍면 등 3개의 면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지도를 자세히 보면 3개 면의 경계가 되는 곳은 이곳이 아니다. 근처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보니 삼계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고 실제로 3개 면의 경계가 되는 곳은 바람재가 지척에 있는 430m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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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봉>

 

  10:30

  삼계봉을 지나 땅끝기맥의 분기점이 되는 바람재에 닿는다. 바람이 많아서 바람재라고 한 것일까. 잡초가 무성한 헬기장 오른쪽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왼쪽에는 ‘노적봉 430m’ 안내석이 있다. 노적봉 안내석에는 “호남정맥과 땅끝기맥 분기점, 이 곳에서 해남 땅끝까지 도상 117km 시발점”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선답자의 리본들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땅끝기맥으로 향하는 산행객이 제법 많은 것 같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이 넘어서고 있지만 작은 오르내림은 평탄한 산길이고 흐린 날씨가 오히려 땀을 식히는데 도움이 될 정도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름철에 그렇게도 진행을 방해하던 거미줄이 상당히 줄었다는 점인데 아마도 잡초가 제거된 점이 가장 큰 이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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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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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기맥 분기점>

  다시 길을 간다. 높은 산에서 흔히 보는 조릿대가 숲길을 이룬다. 바람재를 지나면서부터 전라남도 화순군 땅으로 들어섰음을 확인한다. 이제는 장흥군의 산길을 벗어나 화순군과 장흥군의 경계능선을 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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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과 장흥군의 경계능선을 지나간다>

  20분 후에는 해발 448m의 깃대봉을 지나고 부드러운 산길은 다시 20분이 지나 국사봉으로 이어진다. 이곳에도 ‘준.희’님의 이름표가 걸려 있고 유순한 산길은 곰치까지 무난하게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우려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재에서 곰치까지 소요된 2시간 중에서 절반은 빗속을 걷는다. 우의를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곰치에서 산행을 끝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산길이 무난했기에 빗속을 노래하며 낭만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곰치에서 시작되는 고행은 전혀 예상을 못했다. 행복한 산길은 여기까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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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

 

  12:20

  호남정맥 등산로 입구라는 표지판을 나와 곰치에 닿는다. 화순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니 곰치 휴게소가 나오고 점심식사로 콩국수를 들면서 휴식한다. 낮에는 기온이 올라가므로 비가 오고 있지만 추위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따르므로 피곤함은 가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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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휴게소>

  30분의 긴 휴식을 가진 후 다시 출발한다. 곰치에서 큰덕골재까지 오늘 산행의 후반전 격이다. 곰치 고갯마루에서 능선으로 오르는데 이상하게 길이 없다. 선명하던 가시덤불 사이의 작은 길이 끊겨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 나와 우회로를 살펴보았으나 마땅한 길이 없어서 뒤로 보이는 능선까지 뚫는다.

  간신히 가시덤불을 헤쳐 나와 봉미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찾아든다. 그런데 산길은 아까 곰치까지의 전반부에 비하여 어려워졌다. 피재부터 곰치까지는 산길 주변의 잡초가 제거되어 있어 쉽게 진행하였으나 봉미산으로 향하는 길은 물기 머금은 잡목까지 가세하여 진행에 지장을 준다. 수풀에 맺힌 물방울은 어렵지 않게 신발을 적셔오고 급경사의 오름길은 빗물인지 땀인지 온몸이 물로 뒤범벅된다.

 

  13:50

  곰치에서 1시간의 산행 끝에 수풀 가득한 헬기장을 지나고 봉미산 정상(505m)에 닿는다.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봉미산 정상에서는 조망이 없고 구름 사이로 비 내리는 하늘만 우러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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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산 정상>

  이제는 어디로 가는가. 숫개봉으로 북진하는 산길은 앞뒤가 온통 산인데 왼쪽 저 너머로 어렴풋이 웅치에서 청풍과 이양면으로 연결되는 839번 지방도가 내려다보인다. 땅은 넓으나 논밭은 좁아서 화순군 전체 넓이의 18%만이 평야지대라는 화순군의 산길을 걷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까지는 산길의 북쪽은 화순군이요 남쪽은 장흥군이다.

  비를 피하여 입은 우의가 나뭇잎과 스치며 나는 소리만이 유난하게 커 보이는 적막한 산길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옷 스치는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는데 나의 마음속에는 무언가에 쫓기는 불안감이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옷 스치는 소리에 대한 시인 최승범 님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송강 정철, 서애 유성룡, 백사 이항복, 일송 심희수, 월사 이정구가 술자리를 벌였다. 거나해지자 소리에 관한 이야기가 도는데 송강이 “맑은 밤 밝은 달에 다락 머리 구름 걷히는 소리가 좋다”고 하자, 일송은 “타는 듯 붉은 만산의 단풍 속을 바람이 실어 오는 잔나비 먼바람 소리가 썩 좋다”고 했다. 서애는 “새벽 밝아오는 잠결에 들을 수 있는 술통개 술방울 듣는 소리가 더욱 좋다”고 하고, 월사는 “산간초당에서 들려오는 시 읊는 소리가 좋다”고 했다. 이어서 백사가 웃으며 말하기를 “사람이 즐겨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뭐니 뭐니 해도 첫날밤 미인의 옷 벗는 소리를 당할 게 없으려니.”했다는 것이다.

 

  16:10

  어느덧 군치산 정상(412m)에 닿는다. 봉미산에서 1시간 거리의 숫개봉을 지나고 다시 1시간이 더 지난 시간이다. 외길로 이어지는 산길은 리본따라 진행하기에 불편함은 없으나 억새 무성한 구간만이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군치산 정상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에너지를 보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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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치산 정상>

  지도를 보니 군치산 직전에 뗏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흔적을 찾지 못하고 지나쳤다. 수풀과 잡목으로 인하여 분간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를 걷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나무들 사이로 조망은 가려져 있어서 산마을이나 논밭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은 흐르고 몸은 무거워 온다. 오락가락 하던 비는 그치고 우의를 벗어 배낭 속에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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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치산을 지나가는 산길>

  군치산을 지나자 긴장감은 다소 여유를 보인다. 큰덕골재가 가까워졌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 멀리 희미하게 드러나는 조망이 반가워서 카메라를 꺼낸다. 푸른 들판이 어느새 황금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니 수확의 계절이 머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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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조망>

 

  17:00

  작은 구릉을 넘어서면서 임도를 만나고 임도의 끝에는 작은 비석이 서 있는 큰덕골재다. 오늘의 산행 종착지다. 예기치 않은 비 때문에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상거리 20km이지만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걸었으니 10시간이 가깝다.

  큰덕골재는 화순군 초방리와 장흥군 복흥리를 이어주는 843번 지방도가 연결되는 곳인데 포장이 되지 않아 차량의 왕래는 거의 없어 보인다. 사륜구동이라면 어렵지 않게 오르내릴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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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덕골재>

  산행이 끝난 큰덕골재의 길가에는 들국화가 낯선 산행객을 반긴다. 택시를 불러 놓고 기다리는 동안 예쁘게 피어난 꽃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틀 산행을 예정하여 찾아온 호남정맥은 신발과 옷이 온통 빗물과 땀으로 젖어버리는 바람에 쉽지 않게 되었다. 여유분을 준비하지 않은 것도 불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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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덕골재에서 만난 들국화>

  호남정맥의 전체 25구간 가운데 이제 11구간을 지났다. 절반이 못미치는 거리를 어렵게 지나온 만큼 남은 거리도 만만치 않을 것인데 북진하는 구간이라서 기대도 크다. 쌍봉사와 운주사가 있는 화순, 무등산이 기다리는 광주, 조선 가사문학의 고장 담양이 차례로 대기하고 있는 산행길이다.<2008.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