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 종주 7구간 둘째날
(산줄기 176일째)

일 자 : 2003년 7월 24일
구 간 : 고운동치 ∼ 외삼신봉 ∼ 삼신봉 ∼ 지리산 영신봉
날 씨 : 맑다가 안개비

참석자
김종국, 나종학, 엄중오, 김태웅, 한용수, 김수인, 최경섭(7명)

도상거리 : 12.0km
고운동치 - 1.7 - 묵계치 - 2.2 - 외삼신봉(1288.4m) - 1.1 - 삼신봉(1284m) - 3.0 - 1254봉 - 4.0 - 영신봉(1651.9m)


종주일정
04:55/고운동치 -- 05:49/묵계치 -- 07:42(07:56)/외삼신봉 -- 08:18/안부 -- 08:28(08:50)/삼신봉 -- 09:12/세석대피소:6.7km지점 -- 09:34/세석대피소 : 5.5km지점 -- 09:54/세석대피소 : 4.8km지점 -- 10:08/헬기장(세석대피소 :4.4km지점) -- 11:09/자연석문 -- 11:25/세석대피소 : 2.5km지점 -- 12:04/세석대피소 : 1.3km지점 -- 12:30/영신봉(낙남정맥의 끝) -- 15:00/거림매표소

산행시간 : 정맥(7시간 35분)/하산(2시간 30분) 휴식시간 포함

행복한 고행(낙남정맥 졸업)

김해 동신어산을 오르면서 시작된 낙남정맥 종주가 어느새 마지막 밤은 맞는다. 설렘과 아쉬움이 잠을 설치게 한다.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 걷기 시작한지 4년 5개월, 지나온 순간들이 어지럽게 맴돌고 있다. 창문 밖에서 들리는 계곡의 물소리는 더욱 잠을 설치게 한다.

04시 55분 새벽하늘을 보니 하루종일 쾌청할 것만 같다. 졸업장을 받으러 가는 특공대원들 모두는 들뜬 마음으로 고운동치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지리산국립공원의 시작, 철망 울타리가 높아 보이고 출입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좌측을 살피니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으로 들어설 수가 있다. 밤새 내린 풀잎에 젖은 이슬이 옷깃을 파고든다.

우수수 떨어지는 물방울, 수풀을 헤치면 들어서니 이내 선명한 정맥길이 나타난다. 새벽을 노래하는 산새들의 합창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고요를 깨트리고 있다. 한차례 가파른 오름길이 잠시 경사가 누그러지더니 다시 가팔라진다.

05시 09분 첫 봉에 오르고 잠시 내려섰다가 올라서는 길은 너무나 지겨워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었던 산죽길이 나타난다. 산죽밭을 헤치며 980봉에 오르니 시야를 가릴 정도로 키를 넘는 산죽밭이 대단하다.

낮은 자세로 장애물을 통과하며 왼쪽으로 돌아 내려서니 잠시 시야는 트이지만 그 것은 잠시일 뿐 다시 시야가 막혀버린다. 내리막길 역시 산죽길이 모두를 힘겹게 한다. 아마 이곳 말고는 이런 산죽밭을 보기 힘들 것 같다. 미끄러지며 내려선 곳이 묵계치다.

05시 49분 고도 810m의 수풀이 무성한 묵계치 헬기장이다. 좌측은 청암면 원묵계로 내려설 수가 있고, 우측은 시천면 내대리다. 고도 800에서 시작했는데 다시 원점을 돌려놓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산죽밭에 시달리라 보니 어느새 몸과 마음이 지쳐 가고 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묵계치과 작별을 한다.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여전히 산죽과 동행을 한다. 코가 땅에 닿을 듯한 오름길이다. 고도계가 1050봉을 가리키는 조그만 바위봉에 오른다. 여기서 빵 1개로 요기를 한다. 우선은 먹어야 힘을 낼 것 같다. 먹는 만큼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10여분의 휴식시간, 외삼신봉을 향하는 내리막길은 산죽밭이 기세를 꺾이기 시작한다. 하긴 특공대 가는 길을 누가 막을 것인가. 잠시 내려섰다 올라서니 드디어 지리산 천황봉이 선 듯 다가와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마치 임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반갑다.

암릉길은 미끄럽지만 아침공기는 어디다 비교할 수 있을까?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지금까지의 고행 길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하다. 잠시 안부에 내려섰다가 가파른 바위지대에 오른다. 한결 부드러운 정맥길, 특공대를 반기는 야생화들이 웃고있다. 철쭉과 단풍나무가 더욱 푸르러 보인다.

07시 02분 고도계 1020m을 가리키는 능선마루에 오르고 좁은 날등을 따라 이어간다. 외삼신봉 이겠지 하며 오르면 외삼신봉은 저만치 서 우리를 부른다. 바위지대를 우회하며 오른다. 산바람을 맞으며 1000m가 넘는 봉을 몇 개를 넘고서 밧줄에 매달린 후에야 외삼신봉을 만날 수 있다.

07시 42분 드디어 깃대와 표지석이 서있는 높이 1288.4m의 외삼신봉에 올라선다. 휘둘러보는 조망이 막힘이 없다. 북으로 지리산 천황봉을 시작으로 제석봉, 우뚝 솟은 촛대봉, 우리의 목표지점인 영신봉 그리고 어디서나 엉덩이처럼 보이는 반야봉이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남쪽으로 호남정맥의 산 백운산이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하다. 산, 그리고 봉, 봉우리들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끝도 시작도 없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무슨 표현을 해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식탁에서 아침상을 받는다.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07시 56분 삼신봉이 손짓을 하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뿌리치고 일어선다. 가파른 내리막길,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시야에는 삼신봉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계곡 그리고 높이 1264m의 독바위도 보기 좋다. 청학동의 모습도 시선에 와 닿는다. 그저 자연과 더불어 싫건 눈요기를 하며 걷는다.

낙엽송군락을 지나면서 더욱 가까워진 삼신봉이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이정표(청학동 : 2.0km, 세석대피소 : 8.0km)가 서있는 안부(08:15)에 내려선다. 이제 정맥길은 일반 등산로를 만나면서 양호하다. 마치 고생 끝, 행복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양반길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정표(청학동 : 2.5km, 쌍계사 : 8.9km, 세석산장 : 7.5km)를 만나는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드디어 삼신봉을 만날 수 있다. 바윗길로 한 차례 더 올라 선 곳이 삼신봉이다.

08시 28분 높이 1284m의 삼신봉이다. 표지석과 작은 돌탑이 반긴다. 와! 다시 느껴보는 감동의 순간, 지금까지 수많은 고행의 순간들을 한번에 탁 떨어버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두다 입을 벌린 체 담을 줄을 모른다. 한마디로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있다. 이 순간을 있기에 모두다 험한 길을 참고 견디며 달려온 듯하다.

시원한 바람은 젖었던 옷들은 말려주고, 이 때를 놓칠세라 이 것은 조금 야한 것이라 이 것으로 중단해야지, 그저 시간은 붙잡을 수없이 흘러가고 있다. 뒤돌아보는 지나온 능선들 그리고 어서 오라 손짓을 하는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들, 어느새 인가 반야봉이 구름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08시 50분 삼신봉 출발한다. 가파른 바윗길을 내려서면서 만나는 산수국 그리고 산나리도 곱게 꽃을 피우고 있다. 미끄러운 길이지만 보는 즐거움이 진하기에 모두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고사목이 여기저기서, 아마 이곳도 어느 해인가 산불이 스치고 지나 간 듯하다. 키를 넘는 싸리나무군락이 나타난다. 이럴 때는 역시 한 발 한발 더듬듯이 조심해서 진행하여야 한다.

09시 12분 이정표(청학동 : 3.3km, 세석대피소 : 6.7km)통과한다. 능선길에는 또다시 산죽밭이 무성하다.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똥바람 고개에서 신어산으로 오를 때가 생각난다. 새로운 시작을 후회했었지. 노자의 도덕경을 떠올리며 걸었던 순간이 스치고 지나간다. 勝人者(승인자)는 有力(유력)이요, 自勝者(자승자)는 强(강)이니라. 했다.

일기예보에 오후 늦게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삼신봉을 출발하면서 심상치 않던 날씨가 어느새 서쪽 방향부터 파란 하늘을 수십간에 삼켜 버리고 있다. 신어산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신어산 서봉에서 하산길은 힘들었지만 지는 해는 너무나 아름다웠어...

09시 34분 좁은 공터가 있는 능선분기점에 올라 왼쪽으로 꺾어 오르내림이 이어지다 만나는 이정표(청학동 : 4.5km, 세석대피소 : 5.5km), 안부사거리(09:49)를 통과한다. 정맥은 여기서 오른쪽이다. 새봄의 느낌을 만끽하며 걸었던 용지봉과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 정병산 오름길에 매달렸던 밧줄도 생각나네...

09시 54분 오르락내리락 하다 만나는 이정표(청학동 : 5.2km, 세석대피소 : 4.8km, 한벗샘 : 40m)를 가리키는 안부에 도착한다. 우측에 있는 한벗샘으로 잠시 내려서니 샘보다는 계곡물이 한결 나아 보인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다.

10시 01 다시 안부에 되돌아와 걸음을 재촉한다. 한참 지나서야 분대장을 따라잡을 수가 있다. "분대장 분대원을 그냥 내버리고 가도 데는 거여" 대곡산, 대산의 진달래꽃은 너무나 화려했었지,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우린 서북산과 여항산을 점령했었지, 가도 가도 끝이 없더라...

10시 08분 헬 기장에 닿는다. 이정표(세석대피소 : 4.4km)를 가리킨다. 이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산죽길을 헤치며 내려서니 바위벽이 가로막는 안부를 만날 수가 있다. 가파르게 봉에 오른다. 산안개 가득하다. 공터를 만나면서 왼쪽으로 정맥길은 나있다.

10시 26분 암릉을 우회하며 힘겹게 올라선 안부, 골바람이 쉬었다 가는 곳인 듯하다. 한동안 바람을 맞다보니 떠날 줄을 모른다. 우리의 큰형님 되시는 나선배, "모두 빠져버렸네" 모두다 "저 성님 정말 힘든가봐". 내려서는 길에 만나는 "엄마 찾아 구만리" 리본하나가 눈길을 끈다

10시 39분 안부에 내려선다. 안개비가 내린다. 이정표(세석대피소 : 3.3km)를 통과하며 암봉에 오르지만 산안개 가득하여 더 이상 감동은 없다. 오직 도착의 순간만이 기다릴 뿐이다. 기암으로 이루어진 바위 봉우리가 눈길을 끌지만 앙꼬 없는 진빵이다. 정맥길은 외길이라 그냥 따라만 가면 된다. 전망대바위도 파란불이 들어온다.

11시 09분 자연석문을 통과한다. 4분 뒤 쉼터를 만나면서 다리 쉼을 한다. 돌밭길의 미끄러운 허리길은 능선길로 바뀌며 정맥의 꽃들이 아름답다. 여름의 문턱에서 가화강 유수교를 넘어서면서 힘겨웠던 정맥의 하루도 잊지 못할 거야, 정말 힘들었지...

11시 25분 이정표(세석대피소 : 2.5m)를 통과한다. 한차례 올라선 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다. 기기묘묘한 바위지대를 만나면서 다시 주저앉는 특공대원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정맥의 길, 백운산, 대곡산, 천황산, 작은 고추가 매웠었지...

다시 만나는 전망대는 실망만 안겨준다. 마지막 시련인가. 정상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아니 쉽게 그 영광을 안겨주려 하지 않는다. 조금은 여유로운 능선길에는 모처럼 산새 한 마리의 지저귐이 아름답다.

12시 04분 이정표(세석대피소 : 1.3km)를 통과하고 곧이어 만나는 넓은 공터, 예전에 무슨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길목에 돌절구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만나는 넓은 돌길을 오르면 음양수를 만날 수가 있다. 영신봉능선은 일찍이 포기해야 했기에 발길을 돌려 등산로를 따른다.

12시 30분 드디어 영신봉이다. 또 하나의 정맥을 졸업하는 순간이다. 안개비는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셔서 이렇게 또 하나의 정맥을 완주했습니다.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순간을 영원히 남으리라...

등산객들로 발 들여놓을 틈이 없는 세석대피소를 뒤로 거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아래위로 계산하면 거림까지 산행거리가 6km가 된다. 끝없는 너덜길, 빨리 내려가 한잠 푹 자고 싶을 뿐이다. 북해도교(13:47)를 건너기 직전 이정표(거림 : 3.2km)를 만날 수 있다.

15시 아름드리 노송 한 그루가 서있는 바위지대를 내려서니 드디어 거림매표소가 보인다. 낙남정맥의 대장정의 막이 내리는 순간이다. 비록 종주는 여기서 끝났지만 낙남정맥은 영원하리라.

종주 사진첩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04 14:16)